유치원생이란 뭐든 시작하는 그런 풋풋함을
이르는 말일 것이다.
유치원생은 노오란 병아리를 연상시키고
풋풋한 새 봄의 신록같은 싱그러움의 느낌도 준다.
최근 설 지나고 새롭게 들어온 신입 어르신이 있다.
키는 185가 넘는 듯 훤칠하고 미남이시다
공부하는 자세도 꼿꼿하고 들어올때는 봉다리를 들고
있었는데 시내 맛집의 유명한 빵이었다.
처음 들어오는 것이기에 빈손으로 올 수 없어
가져왔다는데 내가 뜯어서 서화연구실의분들과
나누어 먹으려고 하니
양이 얼마 안되니 댁으로 가져가셔서 드세요 하고 말리신다.
배워보니 내 서화연구실에서 배우는 것도 모자라
내가 강의다니는 주민센터에도 등록을 하셔 나오신다.
처음에는 정간긋기라고 우물정자 형태의 바둑판 모양의
줄긋기를 통해 집필법 운필법을 공부하셨다.
그러다가 한 달이 지나면서 어느 정도 기본자획의
형태가 나오기 시작해서
붓털을 반대로 시작하는 역입과
올곧게 진행하는 중봉
그리고 마지막 마무리는 삼가 초심으로 돌아가게 하는
회봉까지 익히고 한문 부수를 차례로 공부한 후
드디어 법첩임서에 들어갔다.
법첩은 한문과 한자서체의 본고장인 중국의 서가들인
왕희지 구양순 등의 글씨탁본을 책으로 묶은
고전을 공부하기 위한 자료책이다.
피아노를 공부하는 사람이 처음에는 바이엘 체르니를
하다가 나중에는 각자 베토벤 모짜르트 등의 곡을
하는 것처럼 서예도 그렇게 기본을 익힌 후
다양한 고법의 서체를 탐구한다.
며칠 전 그날도 아침 9시30분부터 하는 두 시간 수업에
8시 10분부터 오셔서 동사무소 문을 열기 기다리며
먼저 숙제를 내게 보이고 지도를 받으려는
오픈런을 하는 분들...
9시 30분 수업에 9시 25분쯤 오시는 그 어르신은
늘 순번이 마지막 20번 이상에 적힌다.
일번 순서나 마지막 순서나 공평하게
빨간 먹물 주묵으로 하나 하나 첨삭지도를 해드리고
새로운 법첨 임서 체본을 써드리는데
갑자시 어르신이 내가 쓴 한자 글씨 하나를 가지고
획이 빠졌다고 다른 분들 모르게
내게 조용히 소곤소곤....일러 주신다.
응..? 나는 이게 무슨 일인지 순간 눈이 띵해졌다.
주경야육으로 내가 피곤해서 무얼 빠트린건지...
하지만 내 머리는 노년의 체력으로 퇴화되어
기억력이 나빠졌겠지만
사람의 몸은 오랜 수십년의 반복된 습관에
정직하게 나타난다.
그 법첩은 내가 16세때부터 수백 수천번을 쓴 것이라
내 손은 글자 하나하나들을 익숙하게 기억하고 있다.
머리가 생각하기 전에 눈과 손은 자동적으로
움직이는.....
그래서 나도 조용히 소곤소곤...
어르신 안 틀렸어요...이게 맞는거예요..
하지만 어르신은 이제 다른 분들까지 듣게
다시 말씀을 하시며 펜으로 올바른 한자글씨를 써준다.
그래서 나는
어르신이 쓰시는 한자, 한문은 후대의 우리들이 일상용어
학문용어를 만든 것이고..고전의 법첩 글씨는 한자가 아니라 서체라고
불리는 서예술만의 글자..상형에서 조금 변형된 글자라고 설명해드렸다
그래도 갸웃갸웃 하는 어르신에게
총무님을 불러서 서체자전에서 그 글자를 찾아 보여드리고
한 가지 한 자가 육조시대와 한나라시대 당나라 시대별로
어떻게 달라지는지 보여드리고 설명해드리라고 했다.
그리고 수업을 마치고
점심을 하고 다시 다른 곳 오후 수업. 또 다른 곳 수업..
그렇게 한 후 조금 숨 고르고
딸집으로 가서 손자 이유식 먹이고 놀아주고 포대기에 재우는데
그 어르신에게 문자가 왔다.
빙그레 웃음이 절로 나왔다.
내용은 본인이 서예초년 유치원으로 결례를 했으니
용서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사실 이 연세에 이 어르신처럼
열심히 배우고 궁금해 하고 의문나는 것은 바로 물어보고
실수는 또 바로 인정하고 용서를 구하는
열린 마음의 어르신은 참 드물다.
더구나 운전도 하시는데
나의 90대는 상상조차 할 수 없지만
이 분을 생각하면 좋은 기운이 생성된다
작년에 오신 80대 어느 분은 구석진 곳에서
모자와 마스크를 쓰고 누구와도 인사하지 않고
회식도 안하시고 내게 지도만 받고
엄청나게 해 오신 습작의 첨삭 피드백을 받고
내가 질문을 하면 네, 아니오 단답만 하는 경우도 있으셨다.
하지만 무료로 오는 그 어떤 반에서도
본인의 개인기량 향상만 할 수는 없고
습작품들을 늘 모두 봐줄 수는 없다.
2시간에 25명을 지도하려면
1사람에 할애되는 시간과 피드백은
1번에 그칠 뿐이고
공동자치기금을 내야 하고
주민센터 행사준비도 해야 한다.
무료는 무료인 까닭이 있는 셈이다.
그 분이 보낸 문자 ^^
내게 배우신 분들의 발표 작품들 --모두 너무 좋아하셨다.
첫댓글 그분은 나름 안다고 그랬겠지요.
그건 아름다운 관심이었을겁니다.
저같으면 그런가보다 했을텐데요.
92세면 완전 어릴때부터
소학.명심보감 세대니
당연히 다른 글자라고
여긴신거지요
한자와 한자서체가
다른거라는 걸 이번에
배우신 셈이구요 ㅎ
法帖臨書
라는 용어가 있군요
전예해행초서 들만 단순 머리에...
저도 아는 척 하지 말아야겠습니다
고맙습니다
네
법첩은 수백수천수만가지이고
보고하는 임서외에도골격 지도
골서 깔고 하는 배서 등등이~
아마 향적님도 초딩때는
수업중에
배서나 골서를~~^^
무료는 무료인 까닭이 있다.
물론 있겠지요.
몰라서 배우러 온 학생이
유치원 생일 경우는 허다합니다
곧 바로 시정을 하는 분의 모습이
겸손 합니다.
자치회관으로 오시는 분도
무료임을 알고 오시기 때문에...
첫걸음에서 조금씩 익숙해져 가면,
늘평화님에게 개인교습의 필요를 알게 되겠지요.
그냥 여유시간에 놀지않고
서예를 배우겠다는 그맘을 이해하시는 것입니다.ㅎ
2시간에 25명은 무료가 아니라
가르치는 분으로써는 봉사입니다.
무궁한 발전을 빌겠습니다.
주민센터에서는 시의 지원금을
받으니 결과도출 발표는 해야하고 어떤분은 발표 안하고
싶다는분도 있고~ 저는
적당히 필수 인원은 채우고
안하고 싶은분은 존중하면서
꾸려나간답니다
차비는 받으니 완전봉사는
아니지만 나이가 더 들면
지속이 어려운 에너지가
많이 나가는건 사실이라~
일단 할 수 있을때
감사히 여기고
지도하려구요~^^
고맙습니다
오늘도 평온한 하루되세요
대단하신 늘평화님~
서예에 조예가 깊으셔서
제자들도 가르치시고
정말 대단하시다는 말 밖에요.ㅋ
그 어르신도
참 예의가 있으셔서 존경스럽습니다.
불혹즈음 홀로서기 시작하면서
대학사회교육원서 첫 강의 시작
지금 25년째 후학양성 중이네요
하다보면 제가 배우는것도 많고
잘 가르치자니 저도
더 공부도 열심히 하게
되더라구요 ㅎ
평온한 나날 되시구요
고맙습니다 ~^^
결례라 하여 약간 긴장(?)하고 읽었는데,
훈훈한 마무리라 미소가 번집니다.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게 나이가 들수록
어렵다고 하는데 말입니다 ^^
건강한 90대가 괜히 되신게
아니라는것을 느껴지니
제가 외려 배우는게 많아지더라구요 ~^^
부럽습니다.
늘 평강하시길요 ~^^
열심히 성실하게 지도해주는
늘 평화님과 틀린 줄 알고
지적했다가 사실을 알고 나서
바로 진실되게 사과하는 그 어르신
두 분 모두 함께 어울려 사는 삶이
얼마나 아름다운 지를 보여주시는 본보기입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조금만
고개숙이고 그러면서도
마음열면 절로 화합이
되어 살맛나는 공부할 맛 나는
터전이 되더라구요 ㅎ
어르신도 늘 평화 님도 참
아름다우신 분입니다.
본인의 지식이 오류였음을 깨닫고 얼른
사과하는 모습이 참 보기좋습니다.
건강한 90대가 괜히 되신게
아니라는것을 느껴지니
제가 외려 배우는게 많아지더라구요 ~^^
자주 글 보게되어 반가워요
젊잖은 어르신 이군요 ~ 정중한 사과 쉽지 않은데요
주경야육이라는 말에 웃습니다~~ㅎ
저는 주잠야식 입니다.
낮에는 낮잠자고 저녁에는 야식으로 군것질 하지요~~
주잠야식이
전부는 아닐터~
유머감각이 좋으십니다 ㅎ
콩꽃님을 뵙게 된 이후
자연스럽게 흔적을 남기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