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휘(避諱)
주변에서 자신의 이름을 '무슨 자(字), 무슨 자, 무슨 자'라고 소개하는 경우를 가끔 보게 된다. 그런 사람들은 아마도 자신이 최대한의 예의를 갖추어 자신의 이름을 밝히는 것으로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예전의 예법에 따르자면 이는 맞는 예절은 아니다. 이것은 원래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웃어른 이름을 말할 때 쓰던 방법이다. 자신의 부모 성함을 있는 그대로 붙여서 ○○○라고 입에 담는 것은 불손한 일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씨 성(姓)에 ○자, ○자 쓰십니다."라고 했었던 것이다. 또한, 웃어른에게 자신의 이름을 밝힐 때는 씨(氏) 대신에 가(家)를 써서 '성은 ○가이고 이름은 ○○입니다"라고 했다. 혹 상대방이 이름을 잘 못 알아듣는 때에는, 한자에 훈을 달아 무슨 ○, 무슨 ○를 쓴다고 설명을 덧붙이지만, 이 경우에도 자신의 이름에는 절대 자(字)자를 붙이지 않았다. 그러니까 ‘무슨 자 무슨 자를 쓴다’고 하는 것은 일종의 높임말인 셈이다.
예전 우리의 옛 풍속에서는 '실명경피속(實名敬避俗)‘이라 하여 이름을 소중히 여겨 실명을 함부로 부르지 않았다. 그래서 기껏 공들여 지은 이름은 놓아두고 아명(兒名)부터 짓기 시작해서 자(字)와 호(號)를 쓰고 친구 사이에서도 상대방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다, 이는 중국에서 비롯된 풍습으로, ≪예기(禮記)≫에는 “남자는 20세에 성년이 되어 관례(冠禮)를 마치고 성인이 되면 자가 붙는다. 여자는 15세로 결혼하게 되어 비녀를 꽂으면 또한 자가 붙는다”고 하였다. 자는 윗사람이 본인의 기호나 덕을 고려하여 붙여주며 자가 생기면 본명은 별로 사용하지 않았다. 흔히 윗사람에 대해서는 자신을 본명으로 소개하지만, 동년배 이하의 사람에게는 자를 썼다고 한다.
이런 풍습이 생긴 데에는 오랜 연원이 있다. 유학이 지배하던 사회에 한자문화권인 한국, 중국, 일본에는 '피휘(避諱)'라는 제도가 있었다.
살아 있는 사람의 이름을 명(名)이라 하는 것에 대하여 휘(諱)는 고인이 된 사람의 이름을 가리키는 말이다. '휘(諱)‘라는 한자는 ’숨기다‘ ’꺼리다‘라는 뜻을 가져 원래는 죽은 사람의 생전의 이름을 삼가 부르지 않는다는 뜻에서 나온 말이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죽은 사람의 생전 이름을 높여서 이름 앞에 붙이거나, 부를 때 이름이나 성함이라는 말 대신 쓰는 글자가 되었다. 주로 왕과 성인들에게 적용되었지만, 윗사람이나 존경하는 사람에 대해서도 존경의 뜻으로 사용되었다. 아울러 죽은 사람의 이름에 사용했던 글자를 피해서 쓰지 않는다는 '피휘(避諱)'란 제도도 생겨났다.
피휘에는 황제나 왕의 이름을 피하는 국휘(國諱), 집안 조상의 이름을 피하는 가휘(家諱) 및 공자나 맹자 같은 성인의 이름을 피하는 성인휘(聖人諱) 등이 있다. 중국에서는 국휘의 경우 황제는 7대, 왕은 5대 위의 이름까지 피하여 사용하지 않았다. 국가 간의 외교문서나 집안 사이의 서신 등에서도 서로 이 피휘의 원칙을 지켜야만 했다. 이 경우 왕의 이름에 일반적으로 많이 사용되는 글자가 들어있으면 나라 전체에 큰 불편이 생기기 때문에, 왕족의 이름은 잘 쓰지 않는 글자를 골라 짓되 주로 외자로 이름을 짓는 관습이 생겼다. 예를 들어 세종의 이름은 도(祹)이고, 영조는 금(昑), 정조는 산(祘)으로 모두 잘 쓰지 않는 한자 하나만을 골라 이름으로 삼았다.
우리나라에서는 우리나라 왕뿐만 아니라 중국의 역대 황제들의 이름에도 이 피휘가 적용되었다. 일례로 경복궁의 광화문과 근정문 사이의 중문(中門)인 흥례문(興禮門)의 경우, 원래는 세종 8년인 1426년에 집현전에서 '예(禮)를 널리 편다'는 뜻의 홍례문(弘禮門)으로 이름을 지어 올려 그렇게 불려왔었다. 그런데 1867년,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복원하면서는 청나라 고종 건륭제의 이름이 홍력(弘曆)이었기 때문에 ’홍(弘)‘자를 빼고 ’흥(興)‘자를 넣어 흥례문(興禮門)으로 이름을 바꾸게 된 것이다.
[흥례문, 문화재청 사진]
이름에 쓰인 글자 하나 가지고도 이렇게 복잡한 내력을 따져야 하는 사회에서, 웃어른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거나 입에 담는다는 것은 예의범절에 벗어난 몰상식함으로 취급되었던 탓에 이름을 글자로 나누어 말하는 풍습이 생겨난 것이다.
그런데 딱히 피휘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유대에도 이와 흡사한 풍습이 있었다.
하나님의 십계명을 전하는 구약성경 출애굽기에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 나 여호와는 나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자를 최 없다 하지 아니하리라'(출애굽기20:7)라는 말씀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 말씀을 엄격하게 따라 성경을 읽을 때도 하나님의 이름이 나오면 발음하지 않고 지나갔다. 히브리어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이름이 오직 자음으로만 (영어식으로는 YHWH 또는 YHVH) 표기됨으로써 누구도 하나님 이름의 정확한 발음을 알 수 없었다고도 한다. 그래서 정확한 음가(音價)도 전해지지 않았다. 그러다 바벨론 포로기 이후 이 표기에 아도나이(Adonai : ‘주님’, ‘나의 주’라는 뜻)라는 단어의 모음을 따다 붙여 ‘여호와’라고 발음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여호와’로 쓰이지만, 원래 음은 오히려 ‘야훼’에 가깝다고 한다.
풍습이란 시대와 환경에 따라 변하기 마련이다. 윗사람의 이름을 함부로 입에 담지 않으려던 방편이 근래 와서 자신의 이름을 나름 예의를 갖춰 정확하게 전달하는 용도로 쓰이는 것에 대하여 맞고 그름을 논하는 것은 지금 시대에 의미 없는 일이긴 하다. 하지만 내 평생에 내 이름을 '무슨 자, 무슨 자'라고 소개하지는 못할 것 같다.
[출처] 피휘(避諱) 종심소욕
[출처] 피휘(避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