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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레타 1 - 미코노스에서 아게안 항공으로 아테네를 거쳐 크레타에 가다!
이번 지중해 여행 5일째인 2024년 4월 27일 아침에 그리스 미코노스섬의 코라에 위치한
호텔에서 일어나 크레타섬으로 가야 하는지라.... 배낭을 메고 내려와서는
호텔에 체크아웃을 하고는 5 ~ 6분을 걸어서 파브리카 FABRIKA 버스 터미널에 갑니다.
공항행 버스 시간이 좀 남은지라 배낭을 메고는 하얀색의 집에 꽃들이 지천인 미코노스 타운의
골목길을 걸어보고는.... 파브리카 버스 터미널로 돌아와 10 시 정각에 출발하는 2.5 유로
하는 버스를 타니 언덕을 올라 미코노스 타운을 벗어나 15분 후에 미코노스 공항에 도착합니다.
3일 전에 아테네에서 여기 미코노스 공항에 도착했을 때 버스를 타고 코라(미코노스
타운) 의 파브리카 버스 터미널로 들어가려고 했지만 버스가 보이지 않아
택시(20유로) 를 탄 기억 때문에 오늘은 일부러 버스 정류장을 살펴
보지만 Public Bus 간판은 보이는데.... 출발 시간표나 요금은 적혀있지 않습니다?
공항으로 들어가 에게안 항공에 체크인을 하고 보딩패스를 발급 받은후 대기실로 들어가서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모니터에서 나오는 여러 화면 중에 원래 일본이었지만
이제는 세계 음식이 된 체인 음식점인 스시를 만드는 장면이 나오는지라 흥미롭게 구경합니다.
여기 미코노스섬에서 크레타 섬으로 가는 방법은...... 그리스 국적의 아게안 항공
비행기는 일단 아테네에 가서 다른 비행기로 환승해야 하고 배는 산토리니
섬을 거쳐 크레타로 가는데, 여기 공항은 작기는 하지만 게이트는 6개나 됩니다.
이는 여름 성수기에는 유럽의 여러나라에서 오는 비행기로 미어터지기 때문인데......
오늘은 4월말 비수기 인데도 미코노스에서 크레타섬으로 가는 비행기는
없으나 아테네로 가는 비행기가 60% 라면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도 40% 는 됩니다!
미코노스에서 항공기 대신에 페리를 타고 아테네의 피레우스항으로 갈수도 있는데
먼저 아테네의 피레우스항에서 여기 미코노스로 오는 배 편을 살펴 보자면....
① Sea Jets 사의 Sea Jet2 호 : 60유로, High Speed 고속 페리 월드 챔피온 제트
8번(6번, 7번) 게이트 7시 출발 - 2시간 40분 09시 40분 미코노스 Mykonos 신항구
② Blue Star Ferries 사의 Blue Star Paros 호 : 20~35유로, 7시 30분 출발 - 5시간
15분후 12시 45분 도착(Syros 섬과 Tinos 섬을 거쳐 3번째 미코노스 신항구
③ GoldenStar F : 4시간 35분 걸림 : 버스 10분 , 택시나 Sea Boat - Old Port
OR 피레우스항이 아닌 아테네 동쪽에 라피나항 Rafina 에서 출발 :
① Cyclades Fast Ferries (fast Ferries Andros) : 7시 30분 - 11시 50분, 28유로
② Golden Star Ferries(Super Ferries) : 7시 55분 - 12시 20분, 30유로
③ 블루스타 페리(Blue Star Ferries) : 8시 05분 출발 5시간 Mykonos 섬
④ Fast Ferries Ekaterini 4시간 Air Seat 30유로에 끊으면 지정좌석, 08시 05분
출발해 시로스섬 Syros 와 티노스 Tinos 섬 거쳐 3번째 항구에 12시 05분 도착.
아테네에서 미코노스로 오는 배 편을 살펴 보았는데...... 여기 미코노스 신항구
New Port of Mykonos 에서 아테네의 피레우스항으로 가는 배입니다.
① Blue Star 회사 36유로 Blue Star Paros 호 14시 15분 출발 - Tinos 섬과
Syros 섬을 거쳐 19시 45분 아테네 피레우스 Piraeus ΠΕΙΡΑΙΑΣ 도착
② OR 14시 35분 Sea Jets 회사 60유로 World Champion Jet 호 -
- 17시 15분 아테네 피레우스 Piraeus ΠΕΙΡΑΙΑΣ 항구 도착
아테네 관문인 피레우스 항구는 “그리스인 조르바” 에서 조르바가 두목이라고 부르는 주인공이 조르바
를 처음 만난 곳으로..... 북아프리카에서 불어오는 시로코 바람을 맞으며 조르바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산투리를 칠때는 당신은 말을 걸어도 좋습니다만, 내게 들리지는 않아요. 들려도 대답을 못해요.
해봐야 소용없어요. 안되니까... 이런 모르시는군,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비로 그게 정열이라는 것이지요.“
그리스는 해운업이 발달해 수많은 선박을 거느리니 오아시스도 나왔는데 군부 독재시절 부유층이
재산을 지킬려고 선박을 구입했으니..... 배는 선주가 아닌 배가 등록된 나라에 세금을
내기 때문인데, 이기환씨는 한국 해양대학교 학생들을 세계 해운업 1위인 그리스 아테네 경제
경영대학원에 보내 전문성을 높여 해운분야 베테랑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힌 사실이 떠오릅니다.
만약에 아테네에서 크레타섬으로 가자면 시내 신타그마역에서 지하철 3호선(보라)
을 타고 1정거장 모나스티라키역 Monastiraki 에서 1호선(초록색) 으로 환승
해서 20분을 가면 종점 피레우스(피레아스) Piraeus ΠΕΙΡΑΙΑΣ 항구에 도착합니다.
지하철 대신에 버스는 신타그마 광장에서 C 40번, 오모니아 광장을 경유하는 49번이 있으며 예약은
www.openseas.gr www.ferries.gr www.gtp.gr 혹은 현지 피레우스 항구에서 구입할수 있습니다.
우린 아게안 항공 홈페이지에 바로 접속해 회원 가입도 하지 않은채 항공권을 간단하게
예약했는데 추가 요금을 내지 않기 위해 라기지 신청을 하지 않은지라 중간 정도의
배낭 하나씩만 휴대하고 거기 들어가지 못한 짐은 종이 가방에 넣어 손에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게안 항공 직원이 우리 중간 정도의 배낭을 컨베이어벨트에 올리라기에 이게 라기지로 부치면서
추가 요금을 요구할까 보아 기겁을 하면서 들고 탄다고 하니 웃으면서 계속 올리라기에 어쩔수
없어 올렸는데 추가로 돈을 받을려는 것이 아니고, 무게가 8kg 을 초과하지 않는가 확인하기 위함이니
리본을 붙여주는데.... 8kg 이하 증명으로 비행기에 들고 타도 탑승구에서 제지하지 않는다는 표시입니다?
사흘 전에 아테네에서 미코노스로 오던 비행기는 옛 올림픽항공이라 소련제 비행기니 비행기 안에 선반
(화물칸)이 너무 작아 혼란을 겪었는데..... 오늘은 미국제 비행기라 선반이 커서 별 문제가 없습니다.
옛날에 부산에서 러시아 블라디보스토긍로 가는 비행기를 탔다가 선반이 작아 배낭을
올리지 못하고 또 발 아래 공간도 좁아 무릎 위에 몇시간을 얹고 갔던 기억이 나서 쓴 웃음이 나옵니다?
미코노스 공항 Mykonos Airport 에서 나와 활주로를 걸어 나가서... 올라탄 12시에 출발한
아게안항공 A 3375 기는 에게해를 날아 12시 40분에 아테네 Athens 공항에 도착합니다.
아테네공항 활주로에서 2대의 버스에 나누어 타고 공항 건물로 들어가니 여긴 0층이라
항공기를 타려면 에스컬레트로 1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생각하며 컨베이어를 지나 나옵니다.
그런데 문을 나서니 이런? 비행기를 타려고 대기하는 사람들이 여거 게이트에 보이니
그럼 여기가 1층인 것일까요? 그럼... 도착층과 출발층이 같은 층일까요?
아테네 시내에서 비행기를 타려고 온다면....... 아니지 싶은데?
그리고 옛날 산토리니 에서 도착해 로도스 갈때도 에스컬레이트 타고 올라갔었는데!
전광판에 크레타섬의 헤라클레이온으로 가는 비행기는 B31 번 이라 건물 끝까지 찾아갑니다.
게이트 앞에는 벌써 긴 줄이 만들어져 있는데 앞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이 뒤로 밀려나기에
뭔일인가 싶어 보니 비즈니스석 사람들이 먼저 탄 가운데 아이를 동반한 승객을 먼저
태우고 다음은 거동이 불편한 지체부자유 사람과 노인, 마지막으로 일반 승객 차례 입니다.
마눌과는 좌석 거리가 떨어진지라 따로 앉았는데, 항공사에서는 과자와 물 한병을 서비스를 합니다.
비행기가 이륙하자 마자 창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데.... 오랜 옛날에 제3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여기 아테네 앞에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 을 생각하고는 그 살라미스섬이 어딘지 찾으려는 것입니다?
고대의 해전은 서로 근접해 갈코리를 던진후 상대편 함선에 올라타서 창칼로 승부를 가리는 것인데.... 그
전에 충각을 이용한 충격으로 적 함선에 큰 피해를 주었으며 충격시 요동으로 적군 배의 탑승 전투원
을 줄이는 부수효과도 얻을수 있었으니 대표적 해전은 기원전 480년 9월 벌어진 “살라미스 해전” 입니다.
다리우스가 죽고 페르시아 왕위에 오른 아들 크세르크세는 유언을 받들어 제3차 그리스 원정을 준비했으니
BC 480년 봄 16만명의 병력과 1,200척 함선을 끌고 그리스 북부로 진격했는데... 그 전에 4년에
걸쳐 노예들을 동원해 헬레스폰토스(다르다넬스) 해협에 선박을 연결시켜 만들었던 “다리” 를 건넜습니다.
페르시아군은 테르모필레와 아르테미시온 방위선을 돌파하게 되는데... 페르시아 크세르크세스 1세의 대군은
파죽지세로 진격했으나 스파르타 왕 “레오니다스” 가 테르모필레에서 7일 동안 페르시아 군을 막아내며
“그리스 해군의 퇴각시간” 을 벌어준 덕분에 아테네인은 아티카를 포기하고 살라미스섬으로 도망치게 됩니다.
페르시아군은 빈 아테네성은 점령했으나 살라미스섬에 대한 공격이 여의치 않으니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졌는데.... 아테네의 장군 테미스토클레스는 거짓 정보를 보내 페르시아
군을 폭이 좁은 살라미스만으로 유인하니.... BC 480년 9월 23일 아테네 함대를
주력으로 한 그리스 연합 해군은 살라미스 해협에서 우세한 페르시아 해군을 격파 하게 됩니다.
전투는 적의 정보를 최대한 수집한 다음에 원하는 시기에 원하는 장소에서 원하는 방식으로
전투하는자는 반은 이기고 들어가니 카이사르와 이순신에 나폴레옹이 그러한데
테미스토클레스도 이런 범주에 속하니 델포이에서 신탁을 받았는데, “나무 성벽
만이 파괴되지 않고 그대와 그대의 자식들을 도와주리라”..... 신녀에게 돈 깨나 썼나 봅니다?
“테미스토클레스” 의 호소로 아테네는 “3단 노함선” 을 건조했는데 170명까지 노를 저을수 있는
배는 1인당 하나의 노를 맡도록 했으며, 노는 3단으로 배열되어 있었으니
그리스 도시국가들은 모두 총 380척의 함대 를 확보했는데.... 1,200척의 페르시아
함선과는 비교가 안되는 숫자지만...... 그리스 3단 노함선이 질적으로는 더 우수 했다고 합니다.
전술적 이점은 그리스 쪽에 있었으니 페르시아 함대는 명량 해전 처럼 “좁은 살라미스해협”
때문에 모든 배가 동시에 싸울수 없었는데다가 대형을 유지하지 못한채 무질서 하게
공격하는데 비해, 그리스군은 “준비된 장소” 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반격을 취하는
것이 가능했으며...... 또한 “빠른 속도와 단단한 충각” 을 이용할 수도 있었기 때문 입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일순간에 공격명령을 내림으로써 격전이 벌어지는데... 그리스 3단 노
함선은 적선의 “노를 부러뜨리고” 적선 “좌우 측면을 들이받는” 등 의 기술적
이점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 7시간의 격전을 치른 결과 페르시아는 200척의 함선이
격침당하고 200척이 그리스군에 포획당했는데 그리스 함대는 40척을 잃었을 뿐 이었습니다.
크세르크세스는 “해전에 패해 보급” 마저 끊길 위험에 처하게 되자 서둘러 회군하고 말았으니
그리스 해군은 승리의 여세를 몰아 이듬해 여름에는 “소아시아로 출동” 하여 페르시아
의 나머지 함대를 모조리 쳐부수었는데 이후 두번 다시 페르시아의 침공을 받지
않았으며 “막강한 해군력”을 가진 아테네는 오랫동안 지중해의 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습니다.
한참 바다를 내려다 보았지만 결국 어느 섬이 살라미스섬인지 확신하지 못한채 비행기는
크레타섬의 헤라클레이온을 향해 남쪽으로 날아가는데.... 13시 25분에 출발한
아게안 항공 A 3314 기는...... 14시 20분 헤라클레이온 Heraklion 도착할 예정 입니다.
비행기에서 내려다 보며 다시 애기나섬을 찾는데.... 살라미스섬을 지나면 오른쪽에 보이는게
애기나섬이니 아몬드, 포도, 올리브에 아폴론 신전과 아피아신전이 유명한데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이 섬의 애기나타운에 머물며 “그리스인 조르바” 를 집필했다고 합니다.
애기나섬은 BC 7세기에 동방의 이집트와 페니키아와 교역으로 큰 부를 축적했으며 물산이 넘치고
은화를 주조했는데.... 살라미스 해전에서 애기나 선단은 분전하여 헬라 연합군 승리에
크게 기여했으니 이후 459년 애기나 선단을 시기한 아테네는 이 섬을 침략해 점령했으며
터키 지배하에서 그리스가 터키와 싸워 독립할 때 까지 애기나 타운에 임시정부가 있었다고 합니다.
제우스가 아내 헤라의 눈을 피해 애기나 라는 처녀를 이 섬에 숨겼기 때문에 후일 섬의
이름이 되었다고 하는데.... 애기나는 강의 신 이스포스의 딸로 트로이전쟁의
최고 영웅으로 발 뒤꿈치에 화살을 맞고 죽은 아킬레스의 증조모가 된다고 합니다.
비행기는 에게해를 날고 있는데.... 태양이 작열하는 에게해의 뜨거운 바다를 보노라면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 이 생각나니..... 주인공 뫼르소는 리비에라의 태양
아래에서 살의를 느끼고 아프리카 출신 이슬람 교도 무어인을 죽인다는 구절이 떠오릅니다.
계속해서 많은 섬이 나타나는데, 이 중에 멜로스섬이 어느 것인지 항공기 창 밖으로 내려다 보는데
확실히 이 섬이다 싶은건 모르겠으니... 문득 조대호 연세대 철학과 교수가 동아일보에
쓴 “패권주의 민낯 보여준 멜로스의 학살” 부제로 아름다운 정경을
자랑하는 멜로스섬. ‘밀로의 비너스’ 조각상이 발견된 곳으로도 유명하다' 는 기사가 떠오릅니다.
"강자의 정의는 약자의 정의와 다르다. 약자는 정의가 자신의 권리를 지켜주기를 기대하지만, 강자는 힘의
지배를 정의 라고 부른다. 제국들은 평화, 질서, 자유를 내세우지만 분칠을 벗겨내면 논리는 하나다!
‘힘 있는 자의 지배가 정의다!’ 펠로폰네소스 전쟁중 아테네 제국이 주변국을 제압하기 위해 내세운 논리도
똑같았다. 투키디데스는 패권주의의 민낯을 보여주는 사건을 자세하게 기록했다. 멜로스의 학살 사건이다."
주윤발이 주연한 영화 '왕과 나' 에 보면 영국 여인으로 태국 왕실의 가정교사가 영국의 비열한 음모를 보고는
'이게 정의냐' 라고 힐난하자 영국 귀부인이 말하길.... 정의라고 했느냐? "영국의 국익이 바로 세계 정의야"
그러니까.... 약소국이 강대국에 굴복하여 속국이 되면 전쟁 대신에 세계 평화가 유지된다는 뜻인가 합니다?
동서고금 5천년 역사에서 국경을 접한 나라는 99% 철천지 원수지간이니 조공을 강요하고 침략전쟁으로
인해 100년 평화가 드문데.... 두 나라가 평화를 유지하는 경우는 속국이 되거나, 아님 서로 국력
이나 군사력이 비슷할때 이니, 국력이 차이가 나면 바로 긴장이 조성되는데... 조선과 일본은
1603년 부터 1874년 까지 270년간 선린우호했으니 "세계사에서 유일한 긴 평화시대" 인가 합니다!
현대인에게 멜로스섬을 유명하게 만든 것은 ‘밀로의 비너스’ 이니, 1820년 한 농부가 멜로스섬에서
아프로디테 조각상을 발견했는데 이 조각상이 루브르박물관에 전시 되면서 ‘밀로의 비너스’
로 이름이 굳어졌으니 멜로스가 이 비너스상의 고향이라는 사실을 몰라도 많은 사람이 섬을 찾는다.
아테네 피레우스 항구에서 배로 1시간 거리인 데다가 다른 섬들과 달리 관광객들로 북적이지도 않는다.
백색의 섬을 둘러싼 에게해의 물결은 검푸르고 산꼭대기에서 내려다본 항구에는 은빛 물결이
반짝인다. 모든 것이 평화롭고 아늑하다. 하지만 기원전 416년 여름의 멜로스 항구는
달랐다. 섬을 정복하기 위해 아테나이 함대가 집결해 있었다. ‘힘의 지배가 정의’ 라는 논리를 앞세워.
아테나이의 패권주의와 멜로스의 중립주의의 충돌이 사건의 발단이었다. 멜로스는 아테나이의 가까운
이웃이었지만, 인근의 다른 섬들과 달리 아테나이의 동맹국이 아니었다. 멜로스인들은
스파르타 혈통이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이들은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발발하자 중립주의를 고수했다.
처음에는 아테나이도 묵인하는 듯했다. 하지만 전쟁이 길어지면서 아테나이인들은 조급해졌다.
아테나이는 기원전 416년 여름 최후통첩을 날렸다. 항복하고 조공을 바칠 것인가, 싸우다 죽을
것인가? 멜로스인들은 항복을 거부했다. 그들은 아마도 스파르타의 원군에 희망을 걸었을 것이다.
생존이 걸린 담판에서 아테나이인은 멜로스인들의 희망을 읽어낸 듯 이렇게 타이른다. “위기를 맞으면
희망(스파르타 원군) 이 위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요.” (‘펠레폰네소스 전쟁사’· 천병희 옮김) 멜로스인들도 듣고만 있지 않았다.
그들은 정의와 신들의 호의를 내세워 항변했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우리가 귀국의 힘과 아마도
월등한 행운에 맞서 싸우기는 어렵다는 것을 물론 잘 압니다. 하 지만 우리는 '불의에 대항해
정의의 편' 에 서 있는 만큼,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여러분 못지않은 행운을 내려 주시리라 확신합니다.”
‘신들께서 우리에게도?’ 멜로스인의 반론에 아테나이인은 패권주의의 험한 얼굴을 드러냈다. “신들의 호의를
말하자면, 우리도 여러분 못지않게 참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오. 우리의 목표와 행위는 신들에 대한
인간의 믿음과 인간 상호간의 행동에 대한 신념에 전혀 배치되지 않기 때문이오. 우리가 이해하기에,
신에게는 아마도, 인간에게는 확실히 지배할수 있는 곳에서는 지배하는 것이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오.”
신들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에서나 “지배할수 있는 곳에서 지배하는게 자연의 변하지 않는 법칙이다”.
이것이 모든 제국의 지배 논리이자 아테나이 제국의 지배 논리다. 힘의 지배를 정의로 내세우는
이런 논리에 맞서 신의 정의와 운명의 호의를 내세우는 것은약자들의 ‘유치한 도덕론’ 에 불과했다.
멜로스는 ‘유치한 도덕론’ 과 힘을 앞세우는 ‘현실주의’ 가 충돌할때 생기는 결과를 보여주는 본보기다.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섬을 포위하고 외부세계와 고립시켰다. 굶주림에 내몰린 멜로스는 항복했다.
하지만 아테나이인들에게 관용 같은 것은 남아 있지 않았다. 모든 남자들을 살해하고 여인들과
아이들을 노예로 팔아 넘겼다. 그러니 승리한 것이 약자들을 위한 정의가 아니라 강자의 정의였음
을 누가 부정할수 있겠나? 멜로스인들을 도울 신은 나타나지 않았다. 스파르타의 원군도 오지 않았다.
하지만 멜로스 학살의 결과를 그렇게 눈에 보이는 당장의 결과만으로 판단하기는 어렵다. 이 사건은 그 뒤
다른 사건들 속에서 진면목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를 정복함으로써 눈엣가시를
제거했다고 믿었을 것이다. 일탈 조짐을 보이던 다른 동맹국들 앞에 일벌백계 징벌 효과도 얻어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멜로스의 학살이 자신들에게도 몰락의 시작임을 예상치 못했다. 멜로스섬
에서의 승리후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 아테나이인들은 6개월도 채 지나지 않아
멀리 떨어진 시켈리아섬으로의 원정을 감행한다. 하지만 무모한 원정은 참패로 끝났다.
멜로스에서의 승리는 아주 작은 승리였다. 하지만 이 승리는 지지부진한 전쟁을 치르던 아테나이인들
에게 자기 확신의 계기가 되었다. 그 때문이 아니었을까? 더 큰 욕망에 사로잡힌 아테나이인
들은 멜로스섬을 정복한 뒤 채 6개월도 지나지 않아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모험에 나섰다.
100km가 아니라 800km 떨어진 남부 이탈리아의 큰 섬, 시켈리아 원정이었다. 겨울이면 전령조차 4개월이
걸리는 먼 곳이었다. 탐욕과 정복욕에 사로잡힌 이 무모한 원정은 ‘거대한 사업’ 이었다. ‘희망’ 에
들떠 원정에 앞장섰던 ‘다수’ 가운데 어느 누가 2년 뒤 다가올 재앙을 예측했을까? 원정은 참패로
끝났다. 막강 함대는 괴멸되었고 군대는 거의 전멸했으며 아테나이는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내몰렸다.
멜로스의 승리와 시켈리아 원정의 참패는 아테나이 제국의 지배욕과 탐욕이 시차를 두고 낳은
쌍둥이였다. 무너지는 제국을 바라보며 아테나이인들은 멜로스인들에게 했던 말을
이제 스스로 되뇔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위기를 맞으면 희망이 위안이
되겠지요. 그러나 가진 것을 한판에 모두 거는 사람은 망한 뒤에야 희망이 무엇인지 알게되지요.”
13시 25분에 아테네 공항에서 이륙한 아게안 항공 비행기는 에게해 바다를 남쪽으로 한시간을 날아
14시 20분 크레타섬의 헤라클레이온 Heraklion (니코스 카잔차키스 ) 공항에 도착하는지라...
배낭을 메고 공항을 나와 걸어서 시내버스 정류장을 찾아갑니다! 나의홈 : cafe.daum.net/baik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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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겸손(謙遜)과 배려(配慮)와 사랑으로 사는 삶속에
화가 날 때나, 언행을 조심해야 할 때,
참아야 할 때, 기다려야 할 때,
"삼세번 을 생각하고,
3초, 3분, 3시간, 3일, 3개월, 3년이 지니는
존재의 힘을 활용해 지혜롭게 살아가는 삶이면 좋겠다.
고맙습니다.
🎋🎋🎋🎋
드디어 신화의 섬 크레타 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