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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류열풍 사랑 원문보기 글쓴이: 수원★이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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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9월 01일 16시 3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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핌 베어벡 축구대표팀 감독이 '김호의 아이들(Kim Ho's Babes)'들을 주목하기 시작했다. '김호의 아이들'이란 김감독이 8년간 수원 삼성 지휘봉을 잡을 당시 꾸준히 육성해온 젊은 선수들을 말한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전설적인 명장인 매튜 윌리암 버즈비경(1909∼1994)이 길러낸 '버즈비의 아이들(Busby Babes)'을 빗댄 표현이다. 지난 7월 24일 베어벡 1기 예비명단 36명에는 조병국(25) 김두현(24·이상 성남) 조성환(24·포항) 이강진(22·부산) 권집(22·전북) 이종민(23·울산) 조재진(25·시미즈) 신영록(19·수원) 등 무려 8명의 '김호의 아이들'이 포함됐다. 8월29일 발표된 2기 명단에도 김두현과 조재진에 이어 탈락한 안정환 박주영 대신 조성환과 이종민이 깜짝 발탁되는 행운을 누렸다. 이들 외에도 김준 윤화평(수원) 손대호(성남) 고창현 김유진(이상 부산) 남궁웅 손승준 박주성 정윤성(이상 광주) 등 김호의 아이들도 K리그에서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버즈비의 아이들
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36세의 나이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지휘봉을 잡았던 버즈비 경은 스타 선수들보다도 어린 선수들을 육성해서 맨유를 최고의 팀의 반열에 올려놓은 영국의 대표적인 명장이다. 그가 길러낸 스타들은 보비 찰튼과 던컨 에드워즈같은 '잉글랜드 축구의 전설'들로 이때부터 '버즈비의 아이들'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시작했다. 버즈비의 아이들은 1956년, 1957년 리그 우승을 차지하며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1958년 뮌헨에서 비행기 추락으로 선수 8명이 사망하는 참담한 재난을 당하며 팀은 와해직전에 몰렸다. 버즈비경은 자신도 중상을 당했지만 다시 팀을 재건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며 데니스 로와 조지 베스트 등 새로운 '버즈비의 아이들'로 1968년 유럽연맹컵을 거머쥐었다. 젊은 선수들을 체계적으로 지도하는 능력으로 정평이 난 지도자인 버즈비는 여전히 맨유 팬들로부터 존경받고 있다. 맨유의 홈경기장인 올드 트래포드에서는 지금도 그를 기리는 응원가 '헬로 헬로 우리는 버즈비의 아이들(Hello, Hello, We are the Busby boys)'을 들을 수 있다.
●김호의 아이들
김호 감독은 선수를 은퇴하고 지도자의 길로 들어서던 1979년 자비를 들여 혈혈단신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하노버와 뮌스터를 돌며 수업을 받았는데 가장 유심히 지켜봤던 부분이 유소년 육성법이었다. 어린 선수들의 성장과정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95년 수원 삼성의 창단 감독에 오른 그는 '10년 구상'을 머리 속에 새겼다. 10년 구상의 골자는 유소년에서 길러낸 스타들로 리그 우승을 차지해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꾸준히 어린 선수들을 영입했다. 당장 우승해야 하는 성적표가 급급했음에도 그는 갓 고교를 졸업한 풋내기들에게 아낌없는 정성을 쏟았다. 2000년 대신고를 졸업한 조재진을 영입했다. 당시 조재진은 K리그에서도 즉시 전력감으로 손색이 없다는 평가였다. 하지만 김감독은 조재진의 무릎이 좋지 않자 일본에서 수술을 받게 한 후 1년을 재활에만 힘쓰게 했다. 뛰는 데는 무리가 없었지만 자칫 부상이 커지면 선수 생명을 단축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이 입단할 때마다 김감독이 꼭 챙기는 게 있다. 그동안 사용했던 축구화보다 한 칫수 큰 것을 신기는 것이다. 젊은 선수들은 '감독이 별 걸 다 신경쓴다'고 귀찮아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속에는 세심한 배려가 묻어 있었다. 한국 선수들은 발에 꼭 맞는 축구화를 선호하는 편이다. 어린 선수들이 축구화를 꽉 맞게 신다보면 종종 아킬레스건염에 걸리고는 한다. 아킬레스건이 굳어 세로로 찢어지는 이 증상이 심각해지면 축구 선수로서는 이미 생명이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김감독은 자칫 젊은 선수들이 잘못된 습관으로 부상으로 선수생명을 단축할까봐 잔소리를 아끼지 않았다. 올초 '러시아의 신사' 발레리 니폼니시 전 부천 SK(현 제주) 감독이 한국을 찾았다. 부천 OB 모임에 참석한 그는 러시아로 돌아가기 전 김감독을 꼭 만나고 싶다고 수소문했다. 소식을 전해들은 김감독은 자신의 단골집인 서울의 한 일식집으로 그를 초청했다. 필자도 그 자리에 초청받아 함께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맞대결을 펼쳤던 옛 이야기를 나누던 니폼니시 감독은 "김기동 이을용 윤정춘 윤정환 등 당시 부천 선수들이 지금도 현역에서 뛰고 있는 게 가장 보람된다. 지도자란 선수들의 장래도 고려해줄 수 있어야 한다"면서 "김감독도 나와 같은 축구철학을 지니고 있어 만나고 싶었다. 김감독의 제자들도 여전히 건재하더라"고 말했다.
●못다 이룬 '10년 구상'
'김호의 아이들'은 이후 청소년대표와 올림픽대표의 주축을 이뤘다. 조재진과 김두현은 아테네올림픽을 거쳐 2006독일월드컵호에 승선하며 한국축구의 대표주자로 성장했다. 2005네덜란드세계청소년선수권 스위스전 득점을 올렸던 신영록은 박주영에 이어 청소년대표팀의 최고 킬러로서 또 한번 세계대회를 노리고 있다. 당시 신영록과 함께 이 대회에 출전했던 이강진은 일본 J리그를 거쳐 부산에 새둥지를 차렸다. 외모와 플레이스타일이 홍명보와 닮은 이강진은 수비수의 세대교체가 절실한 한국축구에 있어 기대해볼만한 떡잎이다. 이외에도 조병국 조성환 등은 이미 K리그에서 검증받은 수비수들인데다 '테크니션'으로 꼽히는 권집 역시 성장하고 있다. 김감독은 2002년 어느 때부터인가 젊은 선수들 자랑에 시간가는 줄 몰랐다. 안양 LG(현 서울)와의 피말리는 혈전을 앞두고도 감독실에 모여앉은 기자들에게 어린 선수들 얘기만을 늘어놓았다. 키가 얼마나 자랐고 체중이 늘고 기술이 부쩍 향상됐다는 내용들이었다. 그는 칭찬에 인색한 지도자다. 제법 괜찮게 플레이하는 선수들에게도 "저 놈 저거 어디다 쓸고!"하며 혀를 끌끌 차기 일쑤였지만 속정 깊은 배려로 어린 선수들과 하나가 돼갔다. 그럼에도 김감독은 이들을 제대로 활용해보지 못했다. 그의 10년 구상은 8년에서 종지부를 찍었기 때문이다. 국내외 대회를 13차례나 석권한 그가 아쉬울 것은 없었다. 다만 그동안 정을 쏟아 키운 젊은 선수들에 대한 미련이 짙게 남았다. 2003년 11월 16일 빅버드(수원월드컵경기장). 대구 FC와의 정규리그 최종전이 바로 김감독의 수원 고별전이었다. 1-1로 비기던 후반 종료 직전 김두현의 오른발 프리킥이 대구 골네트를 적중했다. 김두현은 떠나는 김감독을 위해 가장 짜릿한 승리를 선물한 것이다. 김두현이 누군가? 통진종고에서 별다른 활약을 펼쳐보이지 못하던 벤치멤버였지만 김감독은 그를 가능성있다며 수원에 입단시켰던 선수였다. 경기 후 4000여 수원 서포터들은 '스승의 노래'를 합창하며 푸른색 종이 비행기를 하늘 높이 날렸다. 프랭크 시나트라의 '마이 웨이'가 울려퍼지는 속에 조용히 퇴장했다.
●'김호의 아이들'의 시대가 도래하다
4년 주기로 찾아오는 세대교체 시기. 베어벡 감독은 이름값보다는 축구 지능을 갖추고 열정적인 새 인물을 찾고 있다. 부임하자마자 아시안컵 예선 통과라는 과제를 받아들었기 때문에 그는 아직 본격적인 개혁의 칼날을 뽑아 들지 못했다. 아마도 그는 12월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새로운 얼굴들을 집중 테스트할 것이다. 아시안게임은 23세 이하 선수들과 3명의 와일드카드가 출전할 수 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젊은 선수들의 발굴에 무게를 실을 수밖에 없다. 베어벡 감독이 강조하는 '축구 지능(football brain)'은 김감독이 젊은 선수들에게 항상 강조해왔던 부분과 일맥상통하다. 김감독은 훈련할 때마다 젊은 선수들의 창조성을 파괴한다며 휘슬마저 불지 않았다. 그만큼 스스로 판단하고 해결하는 능력을 주문했고 공간을 이용한 플레이와 움직임을 강조했다. 김호의 아이들. 이제는 한 울타리를 떠나 각 팀으로 뿔뿔히 흩어졌지만 붉은 유니폼을 입고 다시 뭉쳤다. 독일월드컵은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강인한 팀정신과 체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화두를 남겼다. 이들은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지능을 펼쳐보여야 한다. 또한 실수 속에서 교훈을 찾고 칭찬 속에서 자신감을 탄탄하게 무장해야 한다. 그래야 2010남아공월드컵 때는 누구도 의심하지 않는 태극전사로 한국축구의 새로운 가능성을 알릴 수 있을 것이다. 대표팀 명단이 발표될 때마다 김감독은 필자에게 전화를 걸어온다. 자기들의 제자들의 이름이 포함돼있을 때마다 기쁨을 감추지 못하며 플레이 특징과 장·단점을 한참동안이나 얘기한 후에야 전화기를 내려 놓는다. 그는 "대표 선수 10명은 길러내야 진짜 명문이다"는 평소 지론처럼 많은 제자들이 베어벡 감독의 선택을 받아 한 대표팀을 이뤄 활약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http://totalsoccer.news.empas.com/forum/pro/read.html?_bid=forum_chang&asn=21 |
첫댓글 개인적으론 후자쪽이 끌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