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순신의 어린서절이나 함경도 군생활 등은 나중에 언급하기로 하고 급박한 조-일전쟁 바로 직
전의 상황을 살펴보자
1591년 2월13일 조선정부는 아주 특별한 인사조치를 내린다. 정읍현감이었던 이순신을 갑자기
전라좌도수군절제사로 임명한것이다.
당시 정읍현감에서 전라좌도수군절제사로 임명된것이 얼마나 파격적이었냐면은 그것을 현대적
기준으로 본다면 정읍현감은 지금의 면장자리이다. 전라좌도수군절제사는 지금 해군함대사령관
으로 소장(별두개)자리이다.
정읍현감은 당시 종6품이었고 전라좌도수군절제사는 정3품이었다. 무려 6계급 파격 승진이다.
지금도 불가능한 이야기이다. 정읍현감은 지금으로 따진다면 육군대위에서 육군 중위 그 사이이
다. 즉 대위(중대장)보다 못한 자리이다.
당현히 사헌부에서 난리라 났다. 조선왕조실록을 보자.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591년 2월 16일 기록]
사간원:이순신은 현감으로 아직 군수에 부임하지도 않았는데 전라좌수사에 초수하시니 비록 인
재가 없다고 하나 관작의 남용이 이보다 심할 수 없습니다. 관리를 갈아 바꿈소서.
[조선왕조실록 선조실록 1591년 2월18일 기록]
사간원:이순신은 경력이 매우 얕으므로 중망에 흡족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인재가 부족하다지만 어떻게 현령을 수사에 승임시킬 수 있겠습니까? 요행의 길이 한번 열리면 그 폐단을 막기 어려우니 빨리 관리를 바꿈소서
이처럼 조정 내부의 반발은 컸다. 그러면 어떻게 이순신은 이처럼 파격승진이 가능할 수 있었을
까? 사간원의 이러한 요청에 선조는 거부한다. 그렇다면 선조가 이순신의 능력을 알아보고 그를
전라좌수사에 임명했을까?
조선왕조실록 1597년 1월 27일자 기록을 보면 선조가 유성룡에게 이순신이 "서울사람인가?"라
고 묻는다. 이는 선조 스스로도 이순신을 잘 몰랐다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단 한사람 이순신의
죽마고우 유성룡이었기에 가능한 이야기다.
하지만 비단 유성룡 덕분에 이순신이 파격승진한것은 아니라고 본다. 이순신은 그전에도 원칙주
의자로서 치밀한 성격을 가졌고 청렴 결백했다. 이는 수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이순신의 됨됨
임을 일려주엇고 그것이 이순신에게 파격 승진을 가져다 주었다.
바로 조-일전쟁 발발 1년전....어느 한 면장이 갑자기 해군함대사령관으로 임명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조-일전쟁의 엄청난 영향을 미칠꺼라고는 어느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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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의 군사이야기★
역사이야기
1편:이순신....육군대위에서 해군소장으로 파격 승진하다.
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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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4.08.11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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