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조선시대 국제정세에 대한 이야기가 나와서 제가 예전에 가졌던 궁금증이 다시 떠오르게 되었습니다.
청나라는 왜 조선을 점령하지 않았을까..
조선과 근대 토론방에서도 쓴 내용인데, 명나라의 경우는 조선을 점령할 여력이 사실상 없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점령해선 안될 나라들 가운데 조선을 넣은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도 명나라는 초대 홍무제와 영락제 정도를 제외하고는 대외팽창을 시행한 적이 거의 없었기 때문에 그저 조선이 사대하는 것으로 만족하는 정도였습니다. 물론 동아시아에서 명나라 중심의 국제질서가 거의 확립되었으므로 굳이 점령할 필요를 못 느꼈을 것입니다.
그런데 청나라의 경우는 달랐습니다. 청은 이전의 요, 금, 원과 더불어 정복왕조라 불리는 국가입니다. 유목민들이 농경지 등으로 침략하면서 점령한 국가였기 때문에 그들은 기본적으로 중심부 내지 농경지와 속령, 영향권으로 구분되는 영역을 지닙니다. 청나라도 명을 점령하는 과정에서 몽골, 준가르, 티베트 등 다른 국가들도 점령했습니다. 그런데 왜 조선은 점령하지 않았을까.. 아니면 못했던 것인가.. 궁금한 부분이 아닐 수 없습니다(19세기 근대에 들어 조선을 속방화하려던 것은 후대의 일이므로 제외).
조선이 청나라와의 전쟁에서 결국 굴복하였지만 오히려 원간섭기의 고려처럼 내정간섭을 당하지 않았던 것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궁금합니다.
첫댓글음.... 청나라가 조선을 점령하지 않은 것은 조선을 점령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청이 조선을 점령할 힘이 없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리고 한두번의 원정으로도 '항복'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즉, 조선이 계속해서 청을 부정하지 않는한 청은 조선 조정을 멸할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그러면 청은 왜 그랬을 까?...이것이 신농님 질문의 핵심인 것 같은데....그것은 청이 한반도에서 딱히 취해야할 이익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아무래도 '청은 조선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뭐 3류 신파극같은 답이지만, 카오스는 그렇게 봅니다.
카오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민족적 동질감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로군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다만 냉정한 현실 국제정치 세계에서 동족끼리도 싸우는 일이 허다해서 청태종이 조선을 그렇게 바라보았을지 조금 의문스럽기는 합니다(참고로 태종 홍타이지는 태조 누르하치와 달리 조선에 대해 주전론자였음). 조선을 점령할 의사가 없었던 청나라가 어째서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은 점령하였는지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원나라 때처럼 거국적 항쟁을 펼쳤기 때문이라면 나름 이해가 가겠습니다만, 조만전쟁 때는 의병조차도 거의 일어나지 않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1. 청이 조선을 그저 작은 집 정도로 보았다는 것이지요...중국대륙,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등은 소위 남의 땅이니 힘있을 때 먹어야 하겠지만, 조선은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아도 바로 '자기자신과 거의 같은' 부류로 인식하였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과 청이 서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조선을 통합하려고 했겠지만, 납작 업드리는 작은집을 허물 '패륜아'는 되고 싶지 않았겠지요..카오스는 청이 조선을 멸하지 않은 이유로 '한반도에서 얻을 지리적 이득이 없다는 것'보다도 이 '동류의식'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2.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상,고대사는 결과적으로 그리고 또 최종적으로 청에 의해서 극단적으로 '왜곡'되게 되었다고 보이는 점입니다. 즉, 가장 최근에 정리된 '흠정'으로 시작되는 여러 '사서들'이 청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발간 되었다는 점인데, 발간(집대성) 된 사실도 그렇지만 그 내용들의 커다란 흐름이 '중화'에 촛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즉, 지리적인 견지에서 볼 때 만주에서 발흥한 청이 저 넓은 '중화'를 완전히 대표할 수 있는지가 참으로 이해되기 어려운데...'흠정사서들'은 청의 정통성을 '중화' 내지 '하화'에서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3. 물론 이점은 우리가 아직 '청의 역사'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 못 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도 청이 중국 전체를 아우르는 소위 '중화사상'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배척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마 중기 이전의 청나라 지배층은 청나라 말기의 새 중국지도자들이 '멸청흥한'을 내세울 줄을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개념의 불일치가 있는가가 정확하게 분석되어야 하는 중요점이라고 봅니다.... 카오스가 그것을 감히 추측컨데,.. 청은 저 '중화라는 것 자체'가 바로 '청의 본질'인 것으로 인식했거나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고자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아닙니다. 생각을 한참 해보아야겠지만 가능성이 있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청나라가 편찬한 <만주원류고>에 고구려는 없다고 하죠.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떤 블로그에서 이것이 당대의 동북공정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본 적은 있었습니다. 만주원류고에 대해 깊이 공부한 연후에 어떤 견해를 밝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아직은 제가 실력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다만 동북공정과 동일선상에서 보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즉 동북공정이 완전 억지라면, 만주원류고는 실제 어느정도 친연성을 근거로 나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
첫댓글 음.... 청나라가 조선을 점령하지 않은 것은 조선을 점령할 의사가 없었다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청이 조선을 점령할 힘이 없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군요. 그리고 한두번의 원정으로도 '항복'을 받았으니 그것으로 족했던 것으로 보입니다.즉, 조선이 계속해서 청을 부정하지 않는한 청은 조선 조정을 멸할 이유가 없었다고 본다는 것입니다...그러면 청은 왜 그랬을 까?...이것이 신농님 질문의 핵심인 것 같은데....그것은 청이 한반도에서 딱히 취해야할 이익이 없었던 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아무래도 '청은 조선에게서 연민의 정(?)을 느꼈다'고 볼 수 밖에 없다고 봅니다...뭐 3류 신파극같은 답이지만, 카오스는 그렇게 봅니다.
카오스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은 민족적 동질감이 작용하지 않았겠느냐는 것이로군요. 그것도 좋은 생각이라고 봅니다. 다만 냉정한 현실 국제정치 세계에서 동족끼리도 싸우는 일이 허다해서 청태종이 조선을 그렇게 바라보았을지 조금 의문스럽기는 합니다(참고로 태종 홍타이지는 태조 누르하치와 달리 조선에 대해 주전론자였음). 조선을 점령할 의사가 없었던 청나라가 어째서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은 점령하였는지가 궁금해서 말입니다. 원나라 때처럼 거국적 항쟁을 펼쳤기 때문이라면 나름 이해가 가겠습니다만, 조만전쟁 때는 의병조차도 거의 일어나지 않은 줄로 알고 있습니다.
맨땅에 헤딩할 정도로 완전 굴복한 조선을 두고 점령할 가치조차도 못느꼈던 것일까요,,
1. 청이 조선을 그저 작은 집 정도로 보았다는 것이지요...중국대륙, 티베트, 위구르, 몽골 등등은 소위 남의 땅이니 힘있을 때 먹어야 하겠지만, 조선은 굳이 먹으려고 하지 않아도 바로 '자기자신과 거의 같은' 부류로 인식하였다고 본다는 것입니다. 물론 조선과 청이 서로 '주도권' 다툼이 벌어진다면 당연히 조선을 통합하려고 했겠지만, 납작 업드리는 작은집을 허물 '패륜아'는 되고 싶지 않았겠지요..카오스는 청이 조선을 멸하지 않은 이유로 '한반도에서 얻을 지리적 이득이 없다는 것'보다도 이 '동류의식'이 더 크게 작용했다고 봅니다...
2. 그런데, 여기서 정작 중요한 것은.... 우리의 모든 상,고대사는 결과적으로 그리고 또 최종적으로 청에 의해서 극단적으로 '왜곡'되게 되었다고 보이는 점입니다. 즉, 가장 최근에 정리된 '흠정'으로 시작되는 여러 '사서들'이 청에 의해서 대대적으로 발간 되었다는 점인데, 발간(집대성) 된 사실도 그렇지만 그 내용들의 커다란 흐름이 '중화'에 촛점을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즉, 지리적인 견지에서 볼 때 만주에서 발흥한 청이 저 넓은 '중화'를 완전히 대표할 수 있는지가 참으로 이해되기 어려운데...'흠정사서들'은 청의 정통성을 '중화' 내지 '하화'에서 찾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3. 물론 이점은 우리가 아직 '청의 역사'를 완전히 정리하지 못했기 때문에 잘 못 보고 있을지는 모르지만, 최소한도 청이 중국 전체를 아우르는 소위 '중화사상'을 역사적인 측면에서는 배척하지 않았다는 것은 분명해 보입니다. 아마 중기 이전의 청나라 지배층은 청나라 말기의 새 중국지도자들이 '멸청흥한'을 내세울 줄을 몰랐었던 것 같습니다. 왜 이런 개념의 불일치가 있는가가 정확하게 분석되어야 하는 중요점이라고 봅니다.... 카오스가 그것을 감히 추측컨데,.. 청은 저 '중화라는 것 자체'가 바로 '청의 본질'인 것으로 인식했거나 아니면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고자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봅니다...
어떤가요?... 또 좀 엉뚱한 발상이지요?... 아직 단정하는 것은 아니니까 너무 '괴상하게' 보시지는 마시길...
아닙니다. 생각을 한참 해보아야겠지만 가능성이 있는 말씀이라고 봅니다. 청나라가 편찬한 <만주원류고>에 고구려는 없다고 하죠. 그 이유는 저도 잘 모르겠지만, 어떤 블로그에서 이것이 당대의 동북공정이라고 주장하는 글을 본 적은 있었습니다. 만주원류고에 대해 깊이 공부한 연후에 어떤 견해를 밝힐 수 있으리라고 생각되지만..아직은 제가 실력이 굉장히 부족합니다.;; 다만 동북공정과 동일선상에서 보기는 좀 어렵다는 생각 정도는 갖고 있습니다.(즉 동북공정이 완전 억지라면, 만주원류고는 실제 어느정도 친연성을 근거로 나왔다고 보는 입장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