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탄과 새해 인사를 드리면서 매일 매일 해야 할 일들을 접고 차일피일 미루었던 일들 가운데 여러분에게 편지 쓰는 일을 결심해 봅니다.
늘 감사하면서 사는 제게는 대단히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을 준비하면서 아둥바둥 살아왔던 2003년을 되돌아보면서 정작 내가 어디쯤 왔는지 어디에 서있는지 되돌아보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이 글을 쓰면서 언어와 문화가 다른 장소에서 가난한 아이들과 함께 살아 왔던 은혜로운 일들과 도전 받았던 일들을 회상하려고 합니다.
2001년 처음 여기 오기 전부터 맨홀에 아이들이 살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고 맨홀이 어떤 곳인지 알고 싶어 아이들이 살고 있는 맨홀을 찾아다녔습니다.
그리고 그들을 불러 기술학교에서 오라또리오를 시작했고 그 중에 정작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데려다 운동장에 게르를 지어 살게 되었고 다시 부근의 장소로 다시 옮겨 한 겨울을 나게 되었습니다.
이 사업을 본격적으로 해야 겠다는 열정으로 구청을 찾았고 그리고 하는 사업에 대한 첫 단계로 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로부터 점차적으로 아이들이 늘어나고 그로 인한 사건과 사고도 점차 늘어나기도 하였습니다.
터전과 기반을 잡아야 하는 나로서는 늘 문제 속에서 많이 활동해야 할 여름 시절에 몇 개월 감기를 달고 있어야 했고 내 몸을 제대로 돌보지 못해 피곤해서 온 것임을 알았고,
온 세상의 가난한 아이들이 그러하듯 몽골에서도 버림받는 아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부모부터 그리고 사회로부터도 이와 같은 아이들을 거두거나 환영하는 분위기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살면서 불쌍한 아이들을 위해서 무얼 도와주겠다고 나타난 분이 별로 없는 것으로 보아 그리스도적인 사랑과 문화가 정착하기에는 아직도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과제가 많습니다.
아직도 잊지 못 할 기억이 있다면
2002년 청소년 사업을 막 시작할 무렵에 아이들을 여기 저기서 불러다 놓고 게임도 하고 영화도 보여주고 오라또리오를 하고 있는 데,
하루는 키가 큰 몽골 아줌마가 비닐 봉지에 음료수 과일, 사탕, 과자 등을 싸들고 찾아 왔습니다.
일반적으로 후원자가 공동체를 방문하게 되면 그쪽 책임자에게 선물을 나누어주는 것을 일임하는 것이 통상적인데 불구하고 그것들을 아이들 각자 각자에게 나누어주고 봉지 속에 남은 것들을 마저 들고 가버렸습니다.
알고 보니 그것은 아이들을 위해서 가져다 준 것이 아니라 얼마 전에 남편이 병원에서 수술을 하다가 의료실수로 사망하게 되었고 49일째 되는 바로 그날 죽은 남편을 위해 50명의 사람 혹은 100사람에게 보시를 하게 되면 죽은 영혼이 좋은 곳에 간다는 불교적인 관습과 미신이 복합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땅은 2003년 4월24일 성모님 축일에 구청으로부터 땅을 얻게 되었고 한달 만에 다시 5월 24일 도움이신 마리아 성모님 축일에 지금의 주교님으로부터 땅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그 땅은 나무 한 그루 없는 푸른 초원이고 그리고 겨울에는 하얀 눈으로 쌓인 들판입니다.
얻은 땅의 크기는 가로 250미터*세로 250미터로 약 18,900평으로 정사각형입니다. 물이 있는 습지라 수리와 정리 작업만 잘하면 농사짓기에 안성맞춤이라 생각해서 그곳을 얻었습니다.
우리는 5월부터 일부 마른 땅 지역에 창고를 짓고 게르를 세우기 위하여 시멘트로 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아이들은 살고 있는 곳에서 이동하여 매일 조금씩 작업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12개의 게르를 만들었습니다.
7월 28일에 수사님과 부제님이 함께 국제 봉사단 25명이 왔습니다.
잠시 만났던 봉사단과 아이들과 맺었던 깊은 우정으로 상처를 주지 않을까 염려했던 일들을 접고 그들의 마음속에 희망이 생겼다는 것을 그들이 사는 모습에서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9월에는 게르 양쪽으로 4개의 줄을 짓고 가운데 3미터 정도의 복도를 내어 그 공간에서 겨울을 나도록 했습니다.
유목민 게르를 약간 구조 변경하여 긴 겨울을 나도록 복도를 만들었습니다. 10월에는 나무로 만든 식당과 창고를 만들었고 한 개의 컨테이너에는 겨울을 나기 위해 석탄을 저장했습니다.
9월 말 경에는 열매를 따러 먼 곳으로 3일간 소풍을 갔지만 열매는 따지 못하고 그냥 맨손으로 돌아왔던 적이 있었습니다.
10월말 경 대구 파티마 병원 수녀님(베네딕도 수녀회)과 의료진 12명이 다르항시 의료봉사활동을 한 주일 하였습니다.
우리는 선생 둘, 아이들 3 가세하여 의료활동을 도왔습니다. 신부인 나는 아무 것도 할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다른 일들을 준비해 갔으나 문도 열기 전에 찾아온 사람들의 기도역할과 약사 보조노릇 등등 종합적인 맥가이버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살아가면서 실제적인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아무래도 공동체 언어는 영어로 해야한다는 것과 몽골 사람과는 몽골어로 해야 하는 언어적인 도전입니다.
다음의 도전은 도둑과 위협으로부터의 전쟁입니다.
세 번째는 외국인이 하는 일이기 때문에 몽골 사람 보다 실제적으로 두 배의 수업료를 지불해야 하는 일입니다.
동네와 한참 떨어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전기가 들어오지 않기 때문에 이웃에 임시로 빌려쓰기 위해 깔아 놓은 300m 전기선을 어느 날 새벽 도둑이 훔쳐간 적도 있고 겨울이 시작될 무렵 봉사단이 오면서 수사님이 가져다 준 냉동고와 냉장고를 어느 날 유리창을 깨고 4-5명이 와서 모두 들고 간 적도 있습니다.
가장 큰 도전은 살다가 알고 지냈던 큰 녀석의 소행입니다.
친구와 함께 작은아이들을 데려와 아이들을 위협하고 때리고 겁주었던 일들 때로는 아이들에게 강제로 술 먹이고 컨테이너를 열어 훔쳐 가는 일들이 한 청년에 의해 몇 차례 자행되었습니다.
나랑 함께 살았던 그 아이는 무언가 기회를 주어 보려고 했지만 극복하기 힘든 모습을 봅니다.
그는 마음을 바꾸지 않는 이상 더 이상 구제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내가 만났을 때 21살이었고 지금은 나이가 23살인 그 아이를 분석해 보면 또 다른 마음의 상처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평소에는 연약하고 순진하기 선량하기 그지없지만 술만 먹으면 훔치고 때리고 깡패로 변하는 이유는 바로 맨홀에서 오랫동안 살다 생긴 습관이었습니다.
맹 정신으로 훔치거나 무슨 나쁜 짓을 할 수 없는 심성이 살아 남기 위해 동료와 함께 술을 먹고 나쁜 짓을 하는 생존방법입니다.
좀더 일찍이 만났으면 좋았을 텐데....부모가 버렸고 사회가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선 살고 아이들이 그가 나타나면 두려워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잘 형성시킨 모든 것들을 그가 나타남으로 인해 파산을 시키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동안 경찰이 여러 차례 다녀갔지만 경찰견까지 데려 왔지만 아무 것도 해결해 준 것이 없습니다.
내국인도 별로 관심 갖지 않는 일에 한 외국인 선교사가 좋은 일을 하겠다고 나서서 위로부터 아래로부터 위협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여러 도전들 앞에서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좋은 환경을 갖는 일입니다.
제대로 된 집을 지어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전기도 물도 집도 모든 것을 새롭게 하는 이 마당에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하는 것이 건물입니다. 그래서 물도 파고 전기 공사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새땅을 얻으면서 시작한 전기공사는 아직도 전기가 들어오지 않는 것은 우리의 잘못도 있지만 행정 구조적이 문제가 더 있습니다.
우리는 한전에서 전기가 필요하다고 신청하면 신청한 날로부터 7일 혹은 15일 이내에 전기 공사를 하겠지만 아직도 공산주의 행정체제가 그대로 남아 계단식으로 거쳐야 하는 공정이 너무나 많았습니다.
한사람이 해도 될 일을 5사람 6사람이 한다는 것입니다.
우선 전기회사에 가서 전기설치 허가를 받아야 하고 그리고 전기회사를 선정하여 공사를 해야 하고 그것을 점검하는 기관이 있고 그리고 구청의 전기회사에서 급기야 계량기를 달아서 요금을 지불하는 데 이것이 실내 내부 전기 공사가 아니라 300m 전방에 지나가는 전기를 끌어오는 일입니다.
많은 서류와 행정 그리고 많은 경비와 억지로 감사해야하는 돈을 주어야 하는 복잡성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법에 관해서 말씀 드리면 법 적용은 외국인에게만 적용되고 몽골인에게는 그 법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매일 아침 시내버스와 같은 정원 12인승 봉고차에 20여명씩 태우고 다닙니다. 다르항 가는 길에 의료봉사단을 9인승 승용차에 9명을 태우고 갔는데 벌금을 먹였습니다.(앞좌석에 두 사람이 탔기 때문에 10명으로 착각) 사업을 하는 모든 분들의 한결 같이 하는 곤란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 법을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현재 살고 있는 아이들은 30명입니다. 종사하는 사람까지 합하면 41명입니다. 제가 매일 아침하는 일은 미사를 마치고 출근하는 직원들을 태우고 아이들이 사는 곳으로 직원을 데려갑니다.
아침체조를 하고 조회를 합니다. 내 게르의 난로에 불을 피워야 하고 매일 학교에서 물을 길러 와야 합니다.
빨래하고 씻는 것은 매 주말마다 돈보스꼬 기술학교에서 씻곤 합니다.
매일 아이들 한 두명 내 게르에서 특별지도를 받는 일, 몽골어를 스스로 공부하는 일, 잦은 일들, 저녁에 직원들을 퇴근시키고 공동체로 돌아가 다른 신부들과 함께 저녁 로사리오와 저녁기도를 함께 합니다.
다시 들어가 아이들과 저녁기도를 하고 재우는 일까지 나의 일은 마칩니다. 다시 공동체로 돌아와 느린 컴퓨터의 메일을 확인하는 일이 이어집니다.
아직 아이들이 사는 공동체에 신부들이 함께 살기에는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습니다.
먹는 것에 대해 말씀 드리면 몽골 식사는 그야말로 일품요리입니다. 반찬은 아예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사용하는 채소는 감자, 당근, 양파 이 세 가지 만 있으면 됩니다. 어떤 음식이던 고기를 넣고 시작합니다.
고기는 1킬로그램 시세에 따라 다르지만 소고기는 1400원에서 1600원 정도입니다.
감자와 당근과 양파를 볶아서 물을 붓고 국수를 넣어서 국물을 만들면 고이명퇴 숄이 되고 여기에 그냥 굵은 당면을 넣으면 분둔쯔가 됩니다.
여기에 밥을 넣어서 볶음밥처럼 하면 보따퇴 흘이 됩니다.
고춧가루나 마늘등의 양념을 전혀 사용하지 않습니다. 단지 후추나 향료용 이파리 소금으로 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만두형태의 보-쯔가 있습니다. 식용유에 튀겨서 먹는 호슈르라는 게 있습니다. 그나마 아이들은 하루 세끼를 먹을 수 있다는 게 행복합니다.
모든 것이 한솥, 한 난로에서 요리된다는 것입니다.
아침에는 간단하게 버터와 빵 그리고 차로 대신하고 점심 저녁은 위와 같은 요리를 먹습니다. 겨울에는 운동부족과 채소 문화가 발달하지 못한 몽골은 성인병에 가까운 병들이 많습니다. 건강을 위해서라도 채소를 먹는 습관도 길러가기 위해 채소 농사를 지으려고 합니다.
도움을 주시는 분이 계시다면
여기에 집을 짓고 농사를 짓고 공부하고 기술을 배우고 독립을 해 나갈 수 있을 때까지 성장하는 코스를 만들고 싶습니다.
바람을 막는 나무를 심고 물을 저장하는 호수를 파고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밭을 만들고 그리고 열 한 두서명이 그룹으로 살 수 있는 작은 집과 마을을 짓고 주민들과 아이들을 위한 경당을 짓고 학교를 짓고 운동장을 만들고 그리고 실습을 할 수 있는 실습장과 긴 겨울을 날 수 있는 체육관을 만들고 싶습니다.
한편으로 사회를 바라보면
급성장해 나가는 그들의 문화 인식은 저질 자본주의에 물들까 염려됩니다.
이 말씀은 사회 전체적인 상징적이기는 하지만....
하루는 선교사 수녀님이 데려다 준 아이가 있었습니다.
공부하기에는 약간 머리에 문제가 있지만 일하기로는 우리 집에서 제일 일을 열심히 하는 아이였습니다.
그런데 주일 미사전례를 참석하고 나오는데 도로에서 러시아제 푸르곤 자동차가 그를 치었습니다. 그렇게 많이 다친 것은 아니었지만 머리에 찰상을 입히고 정신적인 충격도 받았습니다.
그 자동차는 아이에게 만원만 주고 그냥 가버렸습니다. 다음 날 선생이 병원으로 데려가기 위해 택시를 탔는데 마침 탔던 그 택시가 전날 그 현장을 목격했던 자동차였고 그리고 그 택시 운전수는 자동차 번호까지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선생은 그 운전수에게 부탁했습니다.
“달아난 그 자동차의 번호를 줄 수 없냐고” 그 운전수는 말했습니다.
“나에게 돈을 준다면 자동차 번호를 알려주겠다는 것입니다.”
“이 아이는 불쌍하고 가난한 아이이다.” 그를 측은히 여기고 도와달라고 해도 운전수는 가해 차량 번호를 알려 주지 않았습니다.
몽골은 한국 사람처럼 추운 겨울에 길가는 사람 재워 달라고 하면 거절을 하지 못하는 민족입니다.
거절해서 여행자가 피해를 입으며 법으로 소나 말이나 양을 벌금으로 내어야 합니다.(유목민 고대 관습법)
집을 방문했을 경우에 무언가 주고 싶어하는 풍습이 있습니다.
여행하는 사람에게 빚을 내어 선물하는 마음을 보았습니다.(10월 15일자로 대전교구 김스테파노 신부님 한국 두 주간 방문가실 때 그러나 병원에서 폐결핵으로 판명 아직 요양 중임)
말타는 민족처럼 자동차를 좋아하고 몇 년 사이에 자동차가 급작스럽게 늘어나고 그 자동차를 유지하려면 기름 값이 필요할 것이고 정상적인 급료로는 도무지 자동차를 유지할 만한 능력이 있는 사람이 많지는 않습니다.
자동차가 늘어 난 만큼 그 동안 개방되면서 산업이나 공업이 무성하게 발달한 것도 아닙니다.
아직도 울란바타르에 게르나 판자집에서 사는 사람의 비율이60%이상 차지하고 있습니다.
몽골에 한국 사람이 700여명 산다고 합니다. 그 중에 선교적인 목적으로 오신 선교사님들과 가족들이 450여명으로 잡고 나머지는 사업을 하는 분들입니다.
몽골에서 사업하는 분들의 크고 작은 사업체가 110여개 정도입니다.
작은 식당에서부터 시작에서 광산까지..
돈을 벌겠다는 일념으로 윤리성이나 도덕성은 저만치 두고 이것저것 재지 않고 돈 되겠다는 일에만 몰입해서 저질 자본주의 사회를 만드는 데 한몫을 하는 사람이 한국사람이라며 반성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싼 맛에 무분별한 관광객이 날로 늘어나고 성을 파는 여대생이 생겨나곤 합니다.
투자자는 산업이나 공업 혹은 인력양성과 기술창출을 위한 투자로서 가 아니라 먹고 놀고 소비하는 소 투자자들이 늘어남으로써 한국인이라는 인식을 더럽힘으로써 이러한 것들이 선교에 저해 요소가 되기도 합니다.
몽골의 입장에서는 한국은 대단히 우호적 나라입니다.
한국을 그들이 부를 때 솔롱고스라고 부릅니다. 솔롱고는 무지개라는 뜻입니다.
이런 인식들이 차츰 한국으로 취업해 나가 만난 악덕 업주에 의해서 여기서 사업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좋은 인식들이 나쁜 인식으로 바뀌어 지고 있다는 것은 슬픈 사실이고 몽골의 좋은 전통과 문화에서 손을 놓고 있는 실정임을 지각있는 분들은 개탄을 금치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이런 시대적인 위치에 서 있는 나는 아이들을 잘 양육할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의 입장에서 보면 그 옛날의 실크로드를 재현하는 발판이 될 것이고 그동안 연결되지 못했던 북방아시아 정책의 다리를 놓는 일일 것입니다.
시간이 걸리기는 하겠지만 가톨릭적인 정신을 가진 아이로 성장하는 것입니다.
제 자신만 생각하는 것에서 나눌 줄 아는 마음으로. 세례 받고 안 받는 것은 자유이겠지만 착한 시민으로 살 수 있도록, 부모로부터 버림받았지만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을 키워 가는 것이 나의 일입니다.
규칙생활에서 배운 정의와 성실을 사회에서 부지런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고 싶습니다. 보호받지 못하는 것에서 보호받으며 살아가도록 하는 그런 일이 나의 일인 것입니다.
몽골의 땅은 넓고 인구가 부족한 나라입니다.
정치적인 역량만 있다면 그들은 잘 살 수 있는 나라입니다.
세계 지하 자원 매장량이 10위를 점유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손재주가 있을 뿐만 아니라 언어 습득에 대한 특별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고하는 것도 우리와 비슷한 부분이 있습니다.
지금은 힘들지만 언젠가는 형제자매들이 이곳에 와서 편히 쉬어갈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간절히 빌어봅니다.
늘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한국인으로서는 한번 다년간 몽골을 보고 다시 오고 싶은 어떤 매력을 지녔기 때문입니다.
자연이 인간의 스승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동안 감사해야 할 것을 감사하지 못한 것도 있고 용서해야 할 부분에서도 용서치 못하고 그냥 지나쳐 버린 경우도 있었습니다.
주님만이 이일을 하실 수 있는지라 대림 시기를 통해서 주님께서 내 마음에 말씀의 씨앗으로 다시 오시도록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이 글을 드리는 이유는 내가 고생하고 수고하고 있다는 것을 자랑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나의 수고가 또 다른 복음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어렵게 살아가는 분에게 희망이 되고 불평과 불만족으로 사는 분에게는 하느님에게로부터 받고 받은 많은 은혜들을 감지하면서 살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에서입니다. 인간이 삶을 걸어가면서 어떤 고통이던지 참아 갚을 수 있는 것은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확연히 알 때입니다.
삶을 아지랑이처럼 늘 쫓아서 살게 될 때 감내하지 못하는 고통을 안게 되는 것입니다.
부디 바라는 것은 내적으로 기쁘게 사시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내 곁에 있어 주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 곁에 계시니 좋은 것입니다. 아기 예수님으로 오셨으니 정말 축하해야 할 일입니다.
2003년 12월 25일
몽골에서 이호열 시몬 신부드림
____________ 혹 도와 주시고 싶은 맘이 드신다면 살레시오 수도회에 어떤 도움이 필요하실지 물어보시면 좋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