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날이 오면
심 훈 ( 沈 熏, 1901~1936 )
그 날이 오면, 그 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량이면
나는 밤하늘에 나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두개골은 깨어져 산산조각이 나도
기뻐서 죽사오매 오히려 무슨 한(恨)이 남으오리까.
그날이 와서, 오오 그 날이 와서
육조(六曹) 앞 넓은 길 울며 뛰며 딩굴어도
그래도 넘치는 기쁨에 가슴이 미어질 듯하거든
드는 칼로 이 몸의 가죽이라도 벗겨서
커다란 북을 만들어 들쳐 메고는
여러분의 행렬에 앞장을 서오리다.
우렁찬 그 소리를 한 번이라도 듣기만 하면
그 자리에 거꾸러져도 눈을 감겠소이다.
<심 훈(沈 熏)은
일제시대 때일지라도 아름다운 농촌 계몽소설 '상록수'를 쓴
서정적인 작가 인 줄로만 알았는데,,,
일제시대 때야 글을 쓰는 사람은 대부분 저항성을 가졌겠지만,
저런 극단적인 시를 쓴 시인이라는 것은
어느 한 편을 몰랐다는 면에서 내가 생뚱맞고 어리석네.
공산주의자 '박헌영'과 경성고보 동창이고
그에 대하여 시를 지어 줄 만큼 절친한 친구라고 하지만
일찍 죽은 탓인가!? 다행히 공산주의자 같지는 않다.
'드는 칼로 가죽을 벗기는'같은
처절한 표현이
지금의 평화로운 시대에는 섬뜩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랴만,
그 때는 그렇치 않았겠나.
심 훈(沈 熏)은
독립운동가, 시인, 소설가, 영화감독이었는데
이 분도
1945년 해방을 맞이하지 못하고
1936년 36세의 나이에
장티푸스로 사망했다고 되어 있다.>
심훈의
그 날은 이미 왔지만
아직도
우리민족에게 와야 할 그 날이 있다면,
이 시(詩)는
아직도 꿈을 꾸는 시(詩)이거나
유효(有效)가 끝나지 않은 시(詩) 아닌가.
우리는
지금도
누구나
어떠한 형태일지라도
'그날이 오면'과 같은 과녁을 가진, 목적(目的)형의 꿈을 담은 삶을 살아야 하는거 아닐까.
첫댓글 좋은 글과 좋은 생각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