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움의 발견> 타라 웨스트오버 지음, 열린책들
배움에 대한 인류학적 보고서로 읽어도 무난할 듯.
영원 원제목과 한글 제목은 얼마나 거리가 먼 것인가?
이 책은 오히려 아버지의 망상과 편집증에 의해 결박당했던
유년의 자아가 고투를 하며 서게 되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다.
소설 같으면서도 생생한 자서전인지라 재미 있게 읽었다.
가부장제 남성사회 안에서 여성으로서 살아가기 위한 고투로 읽어도 된다.
이 책은 여성이 스스로의 주체를 찾는 과정을 보여주는데,
그런 점에서 남성가부장제 가족구조 안에서 - 그것이 몰몬교의 형태로 이데올리기화한-
자라 세계 자체가 그렇게 질서지웠다고 믿으며, 그래서 분열된 자아를 가질 수밖에 없었던
여성이 자아를 회복하는 과정에서
기억을 재생하고, 기억들 사이의 차이를 발견하며
개인들이 가진 한계들을 발견하고 객관화하고 그 작업과 더불어
외부의 새로운 세계를 경험하고 외부의 관점들을 습득하며
자서전의 형식으로 재서술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것 자체가 즉 기억의 해석과 서사의 재탄생에 의해
주체가 비로소 설 수 있다는 것을 개인사적 혹은 인류학적 보고서의 형식으로 보여주었다.
자기의 언어로 자기의 삶을 이야기하는 것
나는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하지만 저마다의 진실을 전하는 방식일 것이다.
동시에 말이 가진 권력은 어쨋든 피할 수 없다.
구어가 그렇듯 문어도.
당신의 진실은 당신이 경험하며 사유하고 서술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말하지 않는다면, 서술하지 않는다면.... 그것을 알 길이 없다. 자기 자신조차.
인간은 말을 함으로써 인간이 된다.
그런데 봐라. 마지막 시비겠지만,
한국에서 번역된 제목이 '배움의 발견'이다. 원제목은 'educatated'이다.
즉 제목의 의미가 완전 달라진다.
원제목은 내가 번역하라고 하면, '세뇌된, 교육된'의 뜻이 아닐까?
물론 그런 무력했던 유년을 극복하며 스스로 자신을 교육한 배움일 수 있지만,
책의 내용으로도 자신을 잉큐베이트한 가족이라는 반국가체의 절대적 영향력을 다루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고투를 다룬 책이기 때문이다.
순수하게 책 제목으로 봤을 때는 스스로 공부하는 발견의 기쁨을 기대했는데,
그것과는 전혀 다르다.
이런 제목으로 꼭 번역을 해야할까?
= 차례 =
저자의 말
프롤로그
1부
1 선을 선택하라
2 산파
3 크림색 신발
4 아파치 여인
5 정직한 검댕
6 보호막과 방패
7 주님이 마련해 주시리니
8 꼬마 창녀들
9 그 세대로서는 완벽한
10 깃털로 만든 방패
11 본능
12 물고기 눈깔
13 교회 내의 정적
14 내 발은 더 이상 땅에 닿아 있질 않아
15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닌
16 불충한 인간, 불복하는 하늘
2부
17 신성함을 지키기 위해
18 피와 깃털
19 태초에
20 아버지들의 합창
21 골무꽃
22 우리가 속삭인 말들과 우리가 외친 말들
23 나는 아이다호에서 왔어요
24 모험을 찾아 떠나는 기사
25 지옥 불길의 조화
26 흐르는 물을 기다리며
27 내가 여자였다면
28 피그말리온
29 졸업
3부
30 전지전능하신 주님의 손
31 비극 그리고 광대극
32 커다란 집의 떠들썩한 여자
33 물리학의 주술
34 사물의 내용
35 태양의 서쪽
36 허우적거리는 네 개의 긴 팔
37 구원을 위한 도박
38 가족
39 버펄로 떼 지켜보기
40 교육
감사의 말
본문에 관한 저자의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