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로 보는 전쟁사]
<35>소피의 선택(Sophie’s Choice), 1982
 
"두 자녀 중 한 명만 살릴 수 있다"
잔인한 선택에 내몰린 모성
 
감독: 앨런 J. 파큘라/출연 메릴 스트리프, 케빈 클라인
아우슈비츠에서 간신히 살아남았지만,
자식을 지키지 못한 죄의식과 후회로 끝내 죽음 선택하는 모습 먹먹하게 그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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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명의 어린 자식이 있다. 그중 한 명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아이를 선택해야 할까? 바꾸어 말해 누구를 포기해야 할까? 부모의 입장에서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는 있는 것일까? 이것이 문명사회에서 가능한 일일까? 불가능하지 않을까? 그러나 정말로 아들이든 딸이든 한 명만 살릴 수 있다면 어떤 자식을 포기해야 하는 것일까?
영화 ‘소피의 선택’은 이 같은 ‘잔인한 선택’을 강요받은 어머니에 대한 이야기다. 소피는 2차 대전 때 유대인 집단수용소 아우슈비츠에 어린 남매와 함께 수용된 채, 죽음을 목전에 두고 있는 여자다. 소피는 어린 남매만큼은 살리고 싶다는 생각에 나치 장교에게 애원한다.
“폴란드인이에요. 크라카우 출신이고요. 유대인도 아니고요. 아이들도 기독교 신자예요.”
“공산당이 아니야? 신자라고?”
“예, 그리스도를 믿어요.”
“그리스도를 믿는다? 예수께선 어린아이들을 내게 오라고 하지 않으셨지. 한 아이는 데려가도 좋다.”
“뭐라고 하셨어요?”
“두 아이 중 하나는 데려가도 좋아. 하지만 하나는 죽어야 해.”
“나보고 선택하라고요?”
“그래. 유대인이 아니라 폴란드인이니까 봐주는 거야.”
“선택할 수 없어요. 그렇게는 못해요!”
소피가 계속 거부하자 독일군이 아이 둘을 모두 데려가려고 한다. 순간 소피는 얼떨결에 “딸아이를 데려가요!”라고 소리친다.
부모, 남편, 자식을 잃은 한 여자의 기구한 운명
영화는 2차 대전 중 히틀러의 유대인 말살 정책으로 부모, 남편, 자식들을 잃은 한 여자의 기구한 운명을 그렸다. 전쟁 중 자식들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의식, 후회와 절망감에 시름하는 모성이 보는 이의 가슴을 먹먹하게 한다. 많은 유대인 학살을 주제로 한 영화 가운데서도 전쟁의 잔인함과 비극성을 감동적으로 표현한 수작(秀作)이다.
영화는 2차 대전 종전 직후인 1947년 미국 브루클린을 배경으로, 작가 지망생 스팅고(피터 맥니콜)가 미국으로 이민 온 소피(메릴 스트리프)와 동거남 유대인 네이단(케빈 클라인)과 같은 집에서 지내면서 시작된다. 소피는 네이단의 변덕스러운 성격에 힘들어하면서도 그에게 매달린다. 네이단은 평소 소피에게 그렇게 잘할 수가 없다가도 순간 마음이 바뀌는 정신이상자다. 스팅고는 은근히 소피를 사랑한다. 그러던 중, 성질이 폭발해 네이단이 집을 나간 날 소피로부터 지난 유대인수용소에서 겪었던 악몽 같은 가족사를 듣게 된다.
폴란드에서 살았던 소피의 아버지는 유대인 몰살을 제안했던 교수였다. 그런 정치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소피의 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자였던 남편은 나치에게 총살당했다. 소피 또한 암시장에서 쇠고기를 몰래 샀다는 이유로 아우슈비츠로 보내진다. 수용소에서 두 아이를 데리고 있는 소피를 보고 한 독일 장교가 아리안 전형의 흰 피부와 금발을 가졌다며 추근댄다. 독일 장교는 아이들만이라도 살려달라는 소피에게 아이들 중 한 명만 살려주겠다고 말한다. 딴에는 선심을 쓴 것이다. 결국 소피는 얼떨결에 딸을 버리는 선택을 해 버리고 만다. 독일 병사에게 잡혀 울면서 멀어지는 딸을 보며 소피는 오열한다.
‘홀로코스트’의 잔인함 고발
영화는 나치에게 온 가족이 희생된 주인공이 나치를 피해 미국으로 왔지만 그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지 못하고 죽음을 택할 수밖에 없었던 고통스러운 심정을 잘 그려내고 있다. 홀로코스트라 불리는 유대인 대학살에서 가족을 지킨 아버지의 이야기 ‘인생은 아름다워’, 아우슈비츠에 끌려가는 유대인들을 구출하는 ‘쉰들러 리스트’를 능가하는 전쟁의 메시지를 전하며 가족의 소중함을 일깨워준다.
특히 전쟁터에서 우발적·충동적으로 벌어진 다른 전쟁의 학살과는 달리, 홀로코스트가 민간인을 대상으로 매우 계획적이고 체계적으로 이뤄졌으며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잔인했다는 것을 고발한다. 무엇보다 학살 자체 즉 인종 말살 자체가 목적이었다는 것을 비판한다. 나치는 유대인의 정치 및 사회적 권리 박탈 - 경제적 권리 박탈 - 인종말살정책 순으로 이어갔다.
메릴 스트리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수상작
소피 역의 메릴 스트리프는 자식들을 잃은 아픔을 처절하고 섬세하게 연기해 1983년 아카데미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감독은 워터게이트 특종보도를 다룬 ‘대통령의 사람들(All The President’s Men)’을 연출한 앨런 J. 파큘라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전쟁의 상흔은 치명적이다. 그 고통은 길고 상처는 깊다. 주인공 소피는 결국 전쟁의 아픔을 극복하지 못하고 스스로 목숨을 버린다. 영화의 끝 부분,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소피와 네이단의 모습은 평화롭고 아름다웠다. 엄마로서 자식들에 대한 죄의식을 씻을 수 없었던 소피는 영면을 통해 용서를 빌었다.
착한 전쟁은 없다. 전쟁의 광기는 인정사정이 없다. 유대인 학살이 그랬다. 전쟁 후 인류는 반성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인종청소는 계속됐다. 종교의 이름으로, 이념과 민족을 명분 삼아…. 아마도 미래 역시 크게 달라질 것 같지 않다. 평화는 저절로 오지 않는다.
사진=영화 스틸
<김병재 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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