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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손석희입니다. 정말 다르게 해보겠습니다” 화장실에 앉아있는데 모르는 번호 전화가 왔다. 새로 국회 출입하는 기자의 경우 내 핸드폰에 저장되어 있지 않은 경우가 있다. 그런 전화인 줄 알았다. 사무적인 목소리로 받았다. 화장실에서 ‘솔’톤 전화 목소리도 부담이거니와 웬만하면 점잖게 끊으려는 생각이었기 때문이다. “저 손석희입니다” 전화통화가 처음은 아닌 것 같은데 라디오 연결 목소리와 전화기 목소리의 차이를 더듬어 그가 누군지 알아채는데 몇 초는 걸렸던 것 같다. 의례적인 인사가 오고갔다. “고민 많으셨겠다. 어쨌든 새로운 도전 잘되기를 바란다. 축하한다.” 손석희 사장은 주로 각오를 이야기 했다. “그냥 온게 아니다. 허니문으로 생각하고 한 달 정도만이라도 지켜봐 달라. 잘 못하면 세게 비판해 달라. 정말 다르게 해보고 싶다” 신임사장으로 이런 저런 사람들에게 취임 전화도 하고 자신의 생각도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둘이 개인적으로 친한 사이라기보다는 그의 방송에 몇 번 출연해서 알고 있는 사이이기 때문에 아마도 의례적인 전화였을 것으로 생각한다. 하지만 그와의 전화대화를 통해 나는 손석희 사장의 각오를 느낄 수 있었다. 자신에게 쏟아지는 우려와 비판을 보란듯 넘어서고 싶어 한다는 걸 알았다. 그에게 응원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진심으로 잘 되기를 바랐다.
5.18 왜곡…종편방송과의 난타전 5월 13일, TV조선은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정면으로 부정하는 해괴한 방송을 내보냈다. <장성민의 시사탱크>라는 프로그램에서 탈북인사 등을 출연시켜 5.18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왜곡하는 충격적인 유언비어를 아무런 여과 없이 방송으로 내보낸 것이다. 탈북인사인 임천용 씨는 “북한군 1개 대대가 들어왔다”, “광주시청을 점령한 것은 시민군이 아니고 북한에서 내려온 게릴라다”는 등 어처구니없는 내용을 쏟아냈다. 일개 종편의 프로그램이지만 워낙 그 내용이 황당하다고 가만있을 수 없었다. 강력 규탄과 함께 TV조선의 공식사과를 요구했고 이틀에 걸쳐 반박 논평을 내보냈다. 민주당 입장은 “대한민국이 국가적으로 기념하는 민주항쟁에 대한 부정과 정신훼손 행위는 마치 3.1운동 정신을 부정하고 임시정부의 독립운동 노력을 부정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국가정체성에 대한 중대한 도전행위이며 범죄행위로 용납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일이 더 커졌다. 이틀 뒤인 5월 15일 이번엔 채널A가 비슷한 내용의 막장방송을 내보냈다. 처음엔 대변인실 차원에서 대응하려 했던 민주당은 전당적인 차원에서 이를 대응하기로 했다. 대변인으로서 3일 연속 반박 브리핑을 진행했고, 관련 상임위 의원들에게 해당 방송사를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심의 및 제재’를 요구하도록 요청했다. TV조선의 <장성민의 시사탱크>, 채널A의 <김광현의 탕탕평평> 두 프로그램은 국민적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이에 반해 <JTBC>는 진보성향 <한겨레>와의 공동사설 계획을 발표한 <중앙일보>의 결정 등의 영향을 받으며 이미지 쇄신의 기회를 얻는 듯 했다. 종편 대응 전담 대변인?
하지만 아니나 다를까 JTBC도 사고를 쳤다. 5월 22일 <임백천의 뉴스콘서트>에서 출연한 이석우라는 정치평론가가 “노무현 종북으로 볼 수 있다”는 막말을 내뱉은 것이다. 하필 내가 다음날 당직 대변인이었다. 이러다가 ‘종편 대응 전담 대변인이 되는 것 아니냐’는 농담을 하며 즉각 대응했다. 시정조치를 요구하는 브리핑 내용에 일부러 손석희 사장 이름을 넣었다. 그가 아프길 바랐다. “민주당은 방송사의 편집권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만큼 방송사가 해당 프로그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방송사 프로그램에 나와 전직 대통령을 종북으로 몰아가는 비상식적인 발언을 하고도 단순히 출연자의 책임으로 전가하는 태도가 손석희 신임사장의 보도제작 방침은 아닐 것으로 생각한다. 많은 국민들이 손석희 사장 시대를 맞은 JTBC를 대해 매우 민감하게 지켜보고 있다는 점을 잊지 말길 바란다.” JTBC 측에서는 보도국라인과 책임자가 “유감 및 해당발언자의 출연금지” 입장을 알려왔다. 발생한 문제에 대해 인정하고 관련 시정조치를 당의 지적이 있고나서 곧바로 했다는 점에서 다른 종편과는 좀 달랐다. 이를 두고 ‘종편은 어쩔 수 없다.’거나 ‘거봐라. 손석희도 별수 없다’는 식의 반응이 나오는 것도 당연하다. 그러나 나는 이번 일로 손석희의 도전이 좌절한 것이 아니길 바란다. 이번 일로 손석희의 도전이, ‘조중동 종편’의 한축이 허물어질 수 있기를 기대하는 국민들의 바람이 꺾이지 않기 바란다. 섣불리 조중동 종편의 삼각편대가 공고하다고 선언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중에는 보수적인 인사들 뿐 아니라 이른바 진보개혁 진영에 속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들은 손석희가 실패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닐지 몰라도 성공할 수 없는 일을 손석희가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규정하고 싶어 한다. 손석희의 도전이 성공해야 하는 이유 그러나 손석희가 실패하는 것이 누구에게 도움이 되는지 모르겠다. 그가 실패하면 진보개혁진영은 손석희를 잃고, 보수진영은 아무것도 잃지 않는다. 그의 도전과 각오가 성공해야 보수진영이 하나를 잃고, 진보 개혁진영이 하나를 얻는다. 손석희의 도전이 진영의 도전은 아니지만 그의 개인적인 도전이 우리사회의 불균형을 허무는 의미 있는 결과를 낳기를 간절하게 바란다. 그래서 나는 손석희의 도전을 응원하고 그가 쉽사리 자신의 도전을 포기하지 않기를 격렬하게 박용진 민주당 대변인은 촉구한다. 그가 13년 동안 <시선집중>에 쏟아 부었던 열정보다 더 큰 열정으로 반드시 성공해야, 내가 온갖욕먹을각오하고그를 공개 방어해주는 보람도 있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