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403 고난주간 새벽기도(월요일)
본문: 마태복음 21장 12~13절
찬송: 303장(날 위하여 십자가의)
12.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쫓으시며 돈 바꾸는 사람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사람들의 의자를 둘러 엎으시고 13. 그들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오늘부터 고난주간입니다. 고난주간에 채우는 기도를 하려고 합니다. 종려 주일 다음날 주님은 성전에 들어가십니다. 성전에서 주님이 하신 일을 보십시오. 성전 뜰에서 돈을 바꾸고 비둘기를 파는 상인들을 향해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하시며 내쫓으셨습니다. 채움은 비움이 먼저입니다.
예수님이 들어가시자 성전이 깨끗해졌습니다. 이것이 믿음의 순서입니다.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면 예수님이 오시는 게 아닙니다. 예수님이 내 속에 오시면 자연스럽게 내 삶이 깨끗해집니다. 마치 빛이 들어오면 어둠이 사라지는 것과 같습니다. 내 마음의 주인이 밝아지면 내 삶의 어둠은 사라집니다. 이것이 주인효과입니다.
아파트 101호와 102호는 평수와 구조가 같습니다. 하지만 내용이 다릅니다. 집의 냄새, 가구, 활용이 다릅니다. 아이가 많은 집은 방 두 개를 아이들 방으로 만들어줍니다. 아이가 없는 집은 방 하나는 드레스룸으로 하고, 한 방은 침실로 하고, 한 방은 서재로 꾸미기도 합니다.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같은 교회에서 같은 말씀을 듣고, 같은 예배를 드리는데 신앙의 내용이 다른 이유는 주인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내 삶은 어떤 냄새가 나는지 보십시오. 나는 하루를 어떻게 보내는지 보십시오. 마음의 주인에 따라 삶의 내용은 다를 겁니다. 중국 속담에 ‘산을 옮길 수는 있어도 습관을 바꾸기는 어렵고 바다는 메울 수 있어도 욕심은 채우기 어렵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람은 자기만의 패턴이 있습니다. 돈을 좋아하는 사람은 항상 돈이 먼저입니다. 예수님 당시 성전에서 장사를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대제사장의 묵인과 야합이 있었습니다. 장사꾼들은 대제사장에게 돈을 상납했던 거죠.
그랬던 대제사장은 가룟 유다를 무엇으로 매수하던가요? 돈입니다. 그랬던 대제사장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서도 돈을 사용합니다. 마태복음 28장 11-13절을 보십시오. “여자들이 갈 때 경비병 중 몇이 성에 들어가 모든 된 일을 대제사장들에게 알리니 그들이 장로들과 함께 모여 의논하고 군인들에게 돈을 많이 주며 이르되 너희는 말하기를 그의 제자들이 밤에 와서 우리가 잘 때에 그를 도둑질하여 갔다 하라”
습관과 욕심은 잘 바뀌지 않습니다. 마음이 바뀌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참 이상하기도 합니다. 배신했던 베드로가 왜 예수님을 전하다 감옥에 갔을까요? 예수 믿는 자들을 잡아 가두던 사울이 왜 사나 죽으나 주의 것이라고 고백했을까요? 예수님의 동생들은 예수님이 미쳤다고 잡으러 다녔는데 왜 야고보는 야고보서를 쓰고, 유다는 유다서를 쓰면서 제자가 되었을까요? 마음의 주인이 바뀌었기 때문입니다.
삶이 깨끗해지길 원하십니까? 나를 비우고 예수님을 채우십시오. 어둠이 물러가는 이유는 빛이 들어왔기 때문입니다. 어둡던 방을 밝히는 방법은 간단합니다. 불을 켜든지 커튼을 젖히면 됩니다. 어두운 내 삶이 밝아지는 원인은 너무나 어렵습니다. 하지만 너무나 어려운 일도 방법은 있습니다. 무엇일까요?
마음의 지성소에 예수님을 모시면 됩니다. 이 말은 너무 거창하게 들립니다. 좀 쉽게 풀어봅시다. 주님이 기뻐하실 일을 선택해 보십시오. 그것이 삶의 주인을 따르는 길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을 풍성하게 채워주시기 위해 오셨습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은 말씀합니다.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하게 얻게 하려는 것이라”
채움은 비움이 먼저입니다. 내 마음의 성전에 나를 비우고 예수님을 채우십시오. 그때 삶은 밝아지고 성령님의 역사는 밝게 비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