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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 롯을 구함
창 14:13-16
13 도망한 자가 와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알리니 그 때에 아브람이 아모리 족속 마므레의 상수리 수풀 근처에 거주하였더라 마므레는 에스골의 형제요 또 아넬의 형제라 이들은 아브람과 동맹한 사람들이더라
14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 집에서 길리고 훈련된 자 삼백십팔 명을 거느리고 단까지 쫓아가서
15 그와 그의 가신들이 나뉘어 밤에 그들을 쳐부수고 다메섹 왼편 호바까지 쫓아가
16 모든 빼앗겼던 재물과 자기의 조카 롯과 그의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
창 14:13-16 / 그런데 다행히도 롯의 식구 중에 한 사람이 끌려가던 도중에 도망을 쳐서 히브리 사람 아브람에게 달려와 이러한 사실을 알렸다. 그때 아브람은 아모리 사람 마므레의 소유로 되어 있던 상수리나무 숲 근처에 살고 있었다. 마므레는 에스골과 아넬의 형제였다. 이 아모리 사람들은 모두 아브람과 동맹을 맺고 가까이 지내던 사람들이었다. 14) 아브람은 조카 롯이 사로잡혀 갔다는 말을 듣고 집에서 사병으로 훈련시켰던 318명을 이끌고 단까지 네 나라의 왕들을 쫓아갔다. 15) 아브람은 거기서 부대를 여러 파로 나누어 캄캄한 밤에 그 네 나라 연합군을 습격하였다. 그 네 나라 연합군이 혼비백산하여 도망치자 다메섹 북쪽에 있는 호바까지 쫓아가 16) 조카 롯뿐 아니라 빼앗겼던 롯의 재산과 아낙네들, 그리고 끌려갔던 사람들까지도 모두 되찾았다.
그돌라오멜을 중심으로 한 동방 4개국 연합국이 배신한 사해 5개국 연합군을 무찌르고 소돔과 고모라 성을 파괴하고 많은 것들을 약탈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살아남은 패잔병들이 아브람을 찾아옵니다.
아브람이 그의 조카가 사로잡혔음을 듣고(13) 전쟁에서 패한 패잔병이 아브람에게 찾아와서 롯이 가족들과 잡혀갔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아브람은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군사를 일으켜서 군사를 쫓아갑니다. 자신을 떠나갔던 롯을 섭섭해 하거나 자기 의로 정죄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본능적으로 롯을 구하러 갑니다. 318명의 군사들을 데리고 강력한 4개국 연합군을 상대하는 것은 상식으로 이길 수 없는 전쟁입니다. 상식적인 사람은 318명의 군사로는 전쟁에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쫓아가지 않았을 겁니다. 그런데 아브람은 롯을 구하기 위하여 무모한 전쟁도 불사합니다. 이성으로는 걸어갈 수 없는 길을 사랑이 걸어가게 합니다. 사랑은 이성으로 갈 수 없는 길을 가게 합니다. 이는 비상식적인 예수님의 사랑을 떠오르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성으로는 올 수 없는 거리를 뛰어 넘어서 우리에게로 오신 것입니다.
재물과 또 부녀와 친척을 다 찾아왔더라(14-16) 아브람은 집에서 훈련된 자 318명을 데리고 동방의 네 왕들을 추격해서 롯을 구했습니다. 아마도 4개국 연합국은 전쟁에서 참패한 5개국 연합국이 반격할 수 없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아브람은 군대를 나누어서 밤에 불시에 공격했습니다(15). 이것은 지혜로운 작전이었습니다. 4개국 연합국은 밤에 공격을 받았기에 아브람의 군대가 얼마나 되는지 알 수 없었고 자신을 공격하는 자들이 누군지도 알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혼란 가운데 아브람은 적들을 완패시키고, 다매섹 왼편 호바까지 추격해서 빼앗겼던 재물과 포로들 그리고 롯을 되찾아 왔습니다. 아브람이 말도 안 되는 전쟁을 이겼습니다. 작은 힘으로 엄청난 힘을 이긴 전쟁입니다. 아브람은 빈틈없는 작전을 세웠고 훌륭하게 전쟁을 지휘했습니다. 그러나 이 전쟁은 아브람의 힘으로 승리한 전쟁이 아닙니다. 승리는 숫자, 훈련, 무기, 작전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입니다.
적용: 아브람은 롯을 사랑하기에 이성으로 갈 수 없는 길을 사랑으로 갔습니다. 여러분은 누군가를 위해서 이성으로 갈 수 없는 길을 사랑으로 걸어가 본적이 있으십니까?
‘머리에서 발끝까지 당신을 빛나게 보이게 하는 것은 바로 자신감이다’<데일 카네기>
사람의 자신감은 보석의 광택과도 같습니다. 보석이 아름다운 이유는 그 자체로 반짝반짝 빛이 나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스스로 자신감을 가지 못한다면 사람들이 당신의 진가를 쉽게 알아보지 못합니다. 다른 사람에 의해서보다 스스로 빛나는 사람이 되세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며 갖게 되는 자신감으로 주변에 선한영향력을 끼치는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시기를 소망합니다.
< 설 교 >
이기게 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4:13-20
하루는 제가 연구실에서 책을 읽다 너무 피곤해서 좀 쉬려고 로비에 나와 수족관의 물고기들을 보았습니다. 물고기들이 저를 보더니 입을 좍좍 벌리기에 담임목사님이 왔다고 인사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유심히 보니 인사를 하는 것이 아니라 ‘배고파요. 배고파요.’하는 사인 같아 사무실에 가서 직원들에게 “물고기 밥 좀 주지.”라고 했습니다. 한 직원이 “아이쿠! 밥 줄 시간이 되었습니다.”라며 밥을 주니 물고기들이 정말 잘 먹었습니다. 그런데 작은 물고기는 세 개 정도 먹더니 103번 내지 105번 씹고, 큰 물고기는 예닐곱 개를 먹더니 265번 정도 씹었습니다. 중간 크기의 물고기는 너덧 개를 먹고 나서 63번 내지 65번 정도 씹었습니다. 그냥 받아 삼키지 않고 꼭꼭 씹어 먹는 것을 제가 일일이 헤아려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제가 두 가지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한 가지 사실은, 우리도 하나님께 “은혜를 주세요. 말씀을 주세요. 축복해 주세요.”하며 입을 벌릴 때 하나님께서 은혜와 축복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81편 10절에 『네 입을 넓게 열라 내가 채우리라(Open wide your mouth and I will fill it.)』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저 은혜 받아야 돼요. 제게 은혜 주셔야 돼요.”라는 자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시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 사실은, 새김질을 잘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말씀을 자꾸 묵상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시편 1편 1절에서 2절 말씀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라고 하십니다.
저는 서울에 갈 때 자동차로 가면 그 안에서 너덧 시간 동안 성경을 읽고 묵상하고, 성경을 읽고 묵상하곤 합니다. 이번에 충신교회 철야예배를 인도하러 갈 때도 차 안에서 계속 성경을 읽고 묵상했더니 예배를 인도할 때 불을 토하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자꾸 새김질할 때 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말씀을 잘 받고, 월, 화, 수, 목, 금, 토요일을 살아갈 때 이 말씀을 자꾸 새김질해야 됩니다.
율법을,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는 시냇가에 심겨진 나무처럼 잎이 청청하고 가뭄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 밤에도 말씀을 잘 먹어 복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시날 왕, 엘라살 왕, 엘람 왕, 고임 왕이 연합해서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그리고 소알 5개 연합군을 쳐서 이깁니다. 모두 걸음아 날 살려라 하며 뿔뿔이 도망가고, 또 많은 사람들이 칼과 화살에 죽고 역청 구덩이에 빠져 죽었습니다.
엘람 왕 그돌라오멜은 그 지역의 모든 재물과 예쁜 여자들을 빼앗아 갔습니다. 그때 롯과 그의 식구들도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방송도 신문도 전화도 없었기 때문에 아브람은 그 사실을 전혀 몰랐습니다.
마므레 상수리 수풀 근처에서 살고 있는 아브람은 그 지역 사람들과 동맹을 맺고 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힘을 길렀습니다. 그래서 양을 치고 소를 먹이는 종들이 아닌, 집에서 훈련시킨 종들이 318명이나 되었습니다. 아브람은 그들에게 늘 활쏘기, 창던지기, 칼 쓰기 훈련을 시켜 혹 적의 공격을 받으면 언제나 싸울 수 있도록 준비시켰습니다. 아브라함 영화를 보면, 아브라함이 새로운 땅에 이를 때 그 땅의 사람들이 화살을 겨누면 아브라함의 군사들도 금방 화살을 겨누었습니다. 그러니 그들이 아브라함 일행을 함부로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한 사람이 달려와서 말했습니다.
“아브람이여! 아브람이여! 싯딤에 큰 전쟁이 있었습니다. 그 전쟁에서 소돔 왕, 고모라 왕, 소알 왕, 아드마 왕, 스보임 왕이 다 망했습니다. 그리고 어르신네 조카도 전쟁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이 일을 어떡합니까?”
아브람이 충격을 받습니다. 비록 욕심을 따라 갔지만 롯은 아브라함에게 아들 같은 조카입니다. 아브람이 끊임없이 사랑하는 조카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은 자기 군사들을 이끌고 기습 공격을 하여 연합 4개국을 치고 부녀자들과 포로들은 물론 재물을 다 빼앗아 옵니다. 제 짐작으로는 그들이 승리의 개가를 부르며 축제를 벌이는 중에 술에 취해 있을 때 아브람이 공격을 한 것 같습니다.
특별히 그때 롯이 가장 큰 감동을 받았을 것입니다.
“삼촌!”
“고생했구나.”
그리고 아브람이 돌아올 때 소돔 왕이 나와서 아브람을 영접했습니다. 또 살렘 왕 멜기세덱도 떡과 포도주를 가지고 나와서 영접했습니다. 멜기세덱은 사람으로 나타났지만 부모가 없는 신비로운 존재로 하나님의 제사장입니다. 그 신비로운 멜기세덱이 나와서 “천지의 주재시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여! 아브람에게 복을 주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람에게 “너희를 이기게 하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찬송할지로다.”라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브람이 기뻐하며 신비로운 살렘 왕 멜기세덱에게 십의 일조를 드렸습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의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깨닫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아브람은 사람을 한 번 사랑하면 끝까지 사랑했다는 것입니다. 상대방이 변해도 아브람은 변함없이 그를 사랑했습니다. 사랑하는 조카 롯이 욕심에 눈이 어두워 의리도, 은혜도 다 버리고 갔지만 아브람은 변함없이 롯을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롯이 포로로 끌려가자 아브람은 목숨을 걸고 롯을 구해 줍니다. 그 전쟁에서 지면 자기가 죽는 것을 알면서도 직접 군사를 이끌고 나갔습니다. 그만큼 아브람은 변하지 않는 사랑의 사람이었습니다.
변하지 않는 사랑이 값진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변함이 없습니다.
요한복음 13장 1절에 『예수께서……세상에 있는 자기 사람들을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시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 부인해도 그것을 다 덮어주셨습니다. 환경이 겁이 나서, 사람들이 두려워서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지만 베드로의 마음에 예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는 것을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라고 물으셨던 것입니다. 그때 베드로가 “그럼요, 제가 부족하지만 주님을 사랑합니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세 번이나 확인하시고 “내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라고 하시며 베드로를 수제자로 세워 주셨습니다.
저 지용수도 하나님께서 일찍이 택하셔서 어릴 때부터 은사와 사명을 주시어 산에 가서 기도하게 하시고 훈련을 시키셔서 오늘도 이렇게 사용하고 계십니다. 하지만 제가 하나님 앞에 잘못한 것이 얼마나 많은지 제가 행한 대로 하나님께서 갚으셨다면 제 목이 백 번, 천 번 부러졌을 것입니다. 부부 싸움도 많이 했고, 심지어 이혼 도장을 찍기도 했습니다. 그래도 우리 주님께서는 또 용서하시고 바로잡아 주셔서 오늘까지 사랑하시며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점찍어 택하신 사람은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아브람도 한 번 사랑한 조카 롯을 끝까지 사랑했습니다.
좋은 친구는 변하지 않는 친구입니다.
한 부자(父子)가 있었습니다. 아들에게는 친구가 열 명이나 되었지만 아버지에게는 친구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아들이 아버지 앞에서 은근히 자신의 친구가 많은 것을 자랑했습니다. 하루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물었습니다.
“아들아, 네 친구들을 믿을 수 있니?”
“그럼요. 생명을 걸고 우정을 지키기로 한 친구들입니다.”
“그러면 우리 한 번 시험해 보자.”
아버지와 아들이 시험을 하기로 했습니다. 돼지 한 마리를 잡아서 푹 삶은 다음 거적에 말았습니다. 그리고 깊은 밤에 아들이 그것을 등에 지고 친구 집을 찾아갔습니다. 아버지는 대문 밖에 숨어 있었습니다. 아들이 등에 진 짐을 내려놓으며 친구에게 말했습니다.
“여보게, 큰일 났네.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어. 여기에 있는 시체를 지금 산에 가서 파묻으려고 하는데 혼자 가기는 겁이 나네. 좀 도와주게.”
“미안하네. 난 그런 짓 못하네.”
그리고는 집안으로 들어가 버렸습니다.
아들은 다른 친구들을 차례로 찾아가 보았지만 열 친구 중 도와주겠다는 친구는 하나도 없었습니다.
이제 아버지 친구 집으로 가서 아버지가 친구를 불렀습니다.
“이 사람, 어떻게 하지? 내가 실수로 사람을 죽였다네. 여기에 그 시체가 있네. 지금 산에 묻으러 가려고 하니 나를 좀 도와주게.”
“그러세. 자네 같은 사람이 어쩌다가 사람을 죽였나? 어서 가세. 내가 도와줄게.”
“이 사람아, 고맙네. 사실은 아들과 내가 연극을 한 걸세. 참 친구가 어떤 친구인지를 이 일을 통해 내 아들이 알게 되었네.”
그래서 그 친구 집에서 돼지고기를 먹으며 좋은 시간을 가졌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그런 친구가 있습니까? 그런 친구를 찾기가 쉽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친구가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우리의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의 친구인 우리를 위해 목숨을 버리셨습니다. 할렐루야!
이 세상의 친구들이 나를 버려도 나를 버리지 않는 친구는 예수님이십니다.
“오직 예수!” 할렐루야!
어쨌든 우리가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저는 김영숙의 남편으로서 변치 않고 더 좋은 남편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남편은 아내가 어찌하든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에게 해야 할 일을 다 하려고 변함없이 노력해야 합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엄마, 아빠!”하며 엄마 아빠를 가장 사랑합니다. 그리고 “너 커서 뭐 될래?”하고 물으면 “아빠 될 거야.”라고 하던 아이들이 다 자라면 아빠 엄마를 우습게 봅니다.
그러나 부모님이 젊을 때뿐 아니라 80, 90, 100세가 되어도 변함없이 부모님을 사랑하는 것이 아브람의 마음이요, 복 받은 하나님의 사람의 자세입니다.
사랑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교회 사랑이 변하지 않고, 가족 사랑이 변하지 않아야 됩니다.
사람을 사랑하되 끝까지 사랑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아브람은 유비무환의 자세로 미래를 준비했습니다.
하나님의 도움으로 평안한 중에서도 혹 적이 공격해 오거나 도적을 만날 때를 대비하여 318명에게 활쏘기와 칼 쓰기, 창던지기를 훈련시켜 그들을 군사로 길렀습니다.
낮에도 말씀드렸지만, 미래를 준비하면서 힘을 길러야 합니다. 소 잃고 나서 외양간 고치지 말고 소 잃기 전에 외양간을 고쳐야 하는 것입니다.
롯이 끌려갔다는 소식을 들었어도 군사가 없었다면 아브람은 그냥 가슴만 쳤을 것입니다. 준비된 군사가 있으니 기습 공격을 해서 롯을 구해 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힘을 길러야 합니다.
사람이 목숨을 거는 마음으로 하면 안 될 일이 없습니다.
대우 기업의 김규환 씨는 가난한 농부의 5대 독자로 태어났습니다. 중학교를 졸업하고 집에서 농사일을 돕던 그는 어머니가 편찮으셔도 약을 살 돈이 없으니 어머니의 약값을 벌기 위해 무작정 서울로 상경해서 대우 기업에 사환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생각한 바가 있어 아침 출근 시간에 상관없이 5시에 출근해서 회사를 깨끗이 청소했습니다. 아무리 추운 겨울에도 5시 이후에 출근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장이 감동을 받아 그를 정식 사원으로 승진시켰습니다. 그는 무슨 일을 하게 되든 부지런히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도 그를 괴롭히는 상사가 있었는데, 하루는 그 상사가 회사의 기계를 전부 다 깨끗이 닦으라는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는 2,612개의 기계를 다 뜯어서 하이타이로 깨끗하게 닦았습니다. 그를 괴롭히며 “야, 이 새끼야.”라고 하던 그 상사의 말투가 그때부터 “김군”이나 “미스터 김”으로 바뀌었다고 합니다.
매일 새벽 5시에 출근하고 열심히 노력한 그가 지금은 5개 국어를 능통하게 하고 62개의 발명 특허를 낸 인재 중의 인재가 된 것입니다. 어디를 가든 대접 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미래를 준비해야 됩니다.
잠언 28장 19절에 『자기의 토지를 경작하는 자는 먹을 것이 많으려니와 방탕을 좇는 자는 궁핍함이 많으니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하는 것은 미래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도박하고 방탕하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애가 1장에 보면, 공주 같은 자, 왕자 같은 자가 비천한 자, 환난을 당한 자, 끌려 다니는 자가 되었는데, 그것은 음란한 죄를 지었기 때문이고 음란한 죄를 짓는 것은 그 결국을 생각하지 아니해서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의 더러움이 그 치마에 있으나 결국을 생각지 아니함이여』
그 더러움이 치마에 있다는 것은 음란한 죄를 말합니다. 남편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면 그 결국이 어떻게 된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렇게 하겠습니까? 그 결국을 생각하지 않다가 망하는 것입니다.
죄를 지으면 그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게으르면 그 결국은 망하는 것입니다. 부지런히 일하면 그 결국은 성공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전쟁 준비뿐 아니라 인생의 모든 부분에서 준비를 하고 살아야 됩니다. 학생이 시험 준비를 잘 하면 좋은 고등학교, 좋은 대학교에 척척 붙습니다. 그리고 실력을 쌓아 놓으면 월(月)초봉이 천이백만 원, 천오백만 원인 곳에서도 서로 오라고 합니다.
미래를 준비하면 미래가 환히 열리게 되는 것입니다.
따라 합시다.
“미래는 준비하는 자에게 찾아온다.”
아브라함 링컨은 학교라고는 9개월밖에 다니지 않았지만 그의 슬로건은 “나는 준비하리라. 하나님이 쓰시리라.”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부지런히 책을 읽으며 열심히 공부하니 미합중국의 대통령이 된 것입니다.
목회를 하는 저도 오늘만 위해 일하지 않습니다. 제가 만일 오늘만 위해서 목회를 한다면 여러분의 가정에 심방도 할 것입니다. 제가 심방을 하지 않는 것은 미래를 위해서입니다. 우리 장로님 부인이신 권사님께서 편찮으셔서 몇 개월째 교회에 나오지 못하셔도 제가 한 번도 심방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심방을 다니면 저를 키워나갈 시간이 없습니다. 저를 자꾸 키워나가야 우리 교회도 5만 명, 10만 명, 20만 명으로 커나가는 것입니다. 교회는 목사의 그릇만큼 커나갑니다. 제가 오늘에만 충실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않으면 우리 교회가 커나갈 수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집회를 인도하러 갈 때도 책을 서너 권씩 가지고 가서 미래를 위하여 공부하며 그릇을 키워나가고 있습니다.
미래를 준비할 때 미래가 밝아지는 것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 미래를 생각해야 합니다.
밥이 맛있어도 미래를 생각해서 절제해야 합니다. 먹고 싶은 대로 다 먹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조금만 더, 조금만 더, 그 조금이 사람을 망하게 합니다.
항상 미래를 생각하며 준비해서 미래에 웃고 기뻐하며 승리하는 여러분과 제가 될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그리고 결국은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이김을 주셨습니다.
멜기세덱이 “너희에게 이김을 주신 하나님을 찬송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그돌라오멜 왕의 연합군 수가 얼마나 많았겠습니까? 아무리 축제 기분에, 승리의 술에 취해 있었다 해도 318명이 어떻게 그들을 쳐 죽이겠습니까? 하나님께서 이김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기드온 용사 300명에게 은혜를 주시니 바다 모래처럼 많은 미디안 군사를 이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연약한 다윗에게 용기를 주시니 골리앗을 이긴 것처럼, 하나님께서 318명 군사에게 이김을 주시니 그 많은 적을 이긴 것입니다. 결국 이김은 군사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습니다.
여호수아 12장에 보면, 여호수아는 그의 일생 동안 31개국을 정복했습니다. 그런데 여호수아 23장 8절에서 10절에 보면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앞에서 적을 쫓아내심으로 우리를 당하는 자가 하나도 없었느니라. 하나님께서 우리와 싸워 주심으로 우리 하나가 천을 쫓아냈도다.” 할렐루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한 사람이 천 명을 당했다는 것입니다.
아브람의 군사는 318명밖에 안 되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니 수많은 적을 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사무엘하 8:6)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사무엘하 8:14)
저는 이번 주에도 집회를 인도하러 갑니다. 거기에 갈 때 주님께서 이기게 하시니 마귀를, 사탄을, 귀신을 멸하고 은혜를 심을 수가 있는 것입니다.
“지용수가 어디를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가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우리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의지하면 아무리 상황이 어렵고 경제가 어렵고 조건이 어려워도 하나님께서 이기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도 아브라함처럼 이기는 복을 저와 여러분에게 내려 주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