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길학당 (New Silkroad Academy) | 난법 - 정산(鼎山:조철제 도주) 1편 - Daum 카페
다음 글은 네이버 밴드 '판밖의 소식 - 태한도'에 올라온 글 중에서 벽초(開草)라는 분이 쓴 글을 편집(눈에 보기좋게 재정리)해 올립니다. 증산의 공사는 '난법'에 기초해 성립됐음을 증산을 추종하는 모두는 거의 아는 사실입니다. 이는 증산께서 직접 언급한 내용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수도인(도생)들은 이 개념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합니다. 이번에 올리는 글은 벽초라는 분이 '판밖'의 종통자로 인정되는 정산(鼎山:조철제 도주) 자체가 난법을 위해 세워진 분이라고 합니다. 수도인들 특히 대순 쪽 분들에겐 충격으로 다가올 수도 있겠지만, '판밖'이란 틀을 이해하기 위해선 이글이 많은 도움을 주리라 봅니다. 그렇다고 이 글이 진리란 뜻은 아닙니다. - 혜공
● 정산(鼎山:조철제 도주) 1편
정산(鼎山)은 만주 봉천으로 향하던 기차 안에서 열다섯 살에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하였고, 이후 증산(甑山)과 자신(鼎山)의 도를 양산도(兩山道)라 규정하며 무극도를 세웠습니다. 정산과 관련된 공사 전반을 종합해 보면, 저는 이 주장과 함께, 증산을 구천상제로 격상하고 옥황상제라 칭한 사건 또한 거의 확실하게 실제 계시 체험에 근거해 이루어진 행위라고 판단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징적 연출이나 사후적 포장이 아니라, 정산 개인이 계시를 분명한 현실 인식으로 받아들이고, 그는 그러한 확신에 따라 직접 행동에 나섰기 때문입니다. 이는 증산의 뼈와 둔괘를 탈취한 사건을 통해 여실히 드러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1909년, 정산은 15세의 나이에 만주 봉천으로 이주. 1918년, 24세가 되던 해인 무오(戊午)년에 그는 ‘무극도(無極道)’라는 교단을 창시. 무극도는 1935년 일제의 유사종교 해산령으로 보천교와 마찬가지로 해산당함. 해방 후 정산은 이를 ‘태극도’라는 이름으로 재건.』
또한 그는 선돌부인을 찾아가 봉서(封書)를 받았으며, 선돌부인은 을미생(乙未生)이 오면 이 편지를 전하라는 부탁을 받고 봉서를 전달합니다. 이 일은 증산 어천 이후 10년이 지난 1919년에 이루어진 것으로 전해지며, 이후 정산은 둔(遁)괘와 증산의 뼈를 취하여 그 힘을 바탕으로 교세를 확장해 나갔습니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았던 듯, 하늘은 정산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하여 비결서의 문맥 속에도 정산과 관련된 단서를 군데군데 남겨 두었습니다. 그 결과 정산 계열 도인들은 비결서에 나타난 정산의 흔적과 봉서를 근거로 자신들이 종통을 계승하였다고 주장하게 됩니다.
이를 단계별로 정리하면,
첫째, 봉서(封書)를 받음
둘째, 스물네(24) 살에 무극도를 창도
셋째, 스스로를 옥황상제라 칭
넷째, 둔(遁)괘 속에서 자신의 사명이 들어 있음을 발견
다섯째, 비결서에서 드러나는 정산의 흔적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확신
여기까지가 증산(甑山)이 난법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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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정산으로 하여금 모든 도적(道的) 기반을 마련하게 한 뒤, 이제부터 증산은 정산의 도(道)가 난법임을 드러내는 단계로 들어가며 본격적으로 단절시키는 수순에 들어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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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가 글 쓴 목적은 '정산의 도(道)가 난법임' 을 주장하기 위해서이다... (붉은 글씨로 표시했다.)
누구든지 어떤 주장을 하기 위해서는 주장의 근거가 되는 '사실관계' 는 정확해야 하는데, 위의 글에는 사실관계가 정확하지 않은 부분이 있다...이에 잘못된 '사실관계' 를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1) 사실과 다른 부분
『1909년, 정산은 15세의 나이에 만주 봉천으로 이주. 1918년, 24세가 되던 해인 무오(戊午)년에 그는 ‘무극도(無極道)’라는 교단을 창시. 무극도는 1935년 일제의 유사종교 해산령으로 보천교와 마찬가지로 해산당함. 해방 후 정산은 이를 ‘태극도’라는 이름으로 재건.』
첫째, 봉서(封書)를 받음
둘째, 스물네(24) 살에 무극도를 창도
셋째, 스스로를 옥황상제라 칭
넷째, 둔(遁)괘 속에서 자신의 사명이 들어 있음을 발견
다섯째, 비결서에서 드러나는 정산의 흔적을 통해 자신의 위치와 역할을 확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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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부합되지 않는 부분을 붉은 글씨로 표시했다...
(근거)
대순진리회 여주본부도장
1925.04전북 구태인 도창현에 도장을 건설하시고 종단 무극도를
창도하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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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극도 창도: 1925
도주님 탄강: 1895
1925-1895+1=31(세)
(2) 글쓴이의 주장
"여기까지가 증산(甑山)이 난법을 만들어 가는 과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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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까지 이야기하려면, 당근 사실관계는 정확해야 한다...
하나의 단체를 저 정도까지 난도질하려면 적어도 그 정도는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그리고 저런 정도의 글을 옮기는 사람이라면, 그 목적이 무엇이 되었든지간에 적어도 사실관계 정도는 검증을 하고 옮겨야 道理 에 맞다...
하늘에 계신 증산께서는 저런 글을 읽고 나면 어떤 생각이 들까?
아마 이런 생각을 하실 것 같다.
" 내가 난법을 만들려고 기차역에서 그렇게나 기다렸다가, 계시를 했다고?"......그래서 내가 이야기했노라..."도(道)에 늙은 놈하고 늙은 당나귀는 쓸데가 없다” 고.....
그래서 채지가에는 이것을 경계하는 말이 아래와 같이 있다.
(아래)
5. 당나귀야, 노당나귀야, 너의 꾀를 내가 안다. 너 아무리 그러한들 천운을 어길쏘냐 어미 잃은 어린 아고兒孤 유인하여 몰아가니 저이 운수 망쳐노니 한심하고 가련하다. ---
(참고) 개유보에서...
22.내가 입도를 할 때 구천하감지위. 옥황상제 하감지위…와 같은 오주가 있었다. 그것이 궁금하여 알아보려고 입도를 했었다. 그런데 지금 그것이 잘못됐다는 것은 상제님을 逆하는 것이 된다. 그보다 더 큰 죄가 어디에 있느냐.
첫댓글 https://www.youtube.com/shorts/De4BZ2Hq-kY
(하나 더 이야기해야겠다...)
단체이름은 ‘무극도(無極道)’ 가 아니라, ‘무극도(无極道)’ 이다...
😀😃😝 무극도 창도에 대해
1ㆍ정산께서 포교를 시작한 1918~1919년을 무극도의 창도년으로 보는 관점이 있고 글쓴이는 1918년을 기준으로 무극도 창도를 언급함 (그런데 1918년으로 계산하면 24세)
그런데
1918-1895=23 (글쓴이도 증산처럼 뱃속의 나이까지 합쳐 24세로 계산함)
2ㆍ대순의 공식 기록은 1925년을 무극도 창도년으로 봄 (1925-1895)=30
뱃속의 나이를 합쳐 31세
이 글을 그대로 옮긴 이유는 글을 펌했기 때문. 내가 기대한 답은, 바로 위에 쓴 내용임. 그럼에도 스핏님은 계속해서 증산과 정산의 나이 차이를 드리밀고 25세로 주장함^^
(암튼 증산사상 연구에서 나이나 년도는 +1을 해야 함을 배움. 매우 중요)
😀😃🤔 나는 이 글의 원 저자의 글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 태극도 설립 년도는
1ㆍ포교년인 1918년
2ㆍ종교형태를 갖춘 1925년
이라는 2개의 관점이 있다.
글쓴이를 두둔할 생각은 없지만 암튼 글 쓴이는 사실에 입각해 쓴 것이 맞다.
탐구자는 객관적 입장에서 관찰해야 하고, 대답을 하는 종단인들은 자기 생각을 솔직히 드러내면 된다.
자신의 관점이 틀리면 교정하면 되는 것이다. 문제는 이런 글을 객관화시키기 위해 정교한 자료를 들이밀 수 있느냐다.
https://www.tgd.or.kr/Intro/taegeukdo/historyEvolu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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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극도 연혁에 의하면...
1921 4월 28일 무극도 선포, 봉축주 신설
1923 6월 24일 전도문 하교, 이재신원 시작
1925 4월 28일 태인도장 영건, 무극도 취지서,
으로 되어 있음...
그러니까, 적어도 1921년 4월 28일 이전에는 '무극도' 가 선포되지 않은 것으로 보는 것이 타당함...따라서 글쓴이의 주장인 "1918년, 24세가 되던 해인 무오(戊午)년에 그는 ‘무극도(無極道)’라는 교단을 창시." 는 사실이 아닌 것이 분명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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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ar-reaching spirit
(참고)
1911 옥황상제님께서 2년간의 노고산 공부를 마치심
1917 2월 10일 노고산에서 득도치성 봉행하심
1919 1월 20일 정읍 마동의 본소에서 천서(현무경, 주문)를 받드심
1919 9월 19일 천보인 둔궤를 모셔 오심
1920 2월 17일(양력 4월 5일) 둔궤를 여시고 삼천을 완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