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의 공포...라기 보다는 백지의 막막함...을 더 깊게 느꼈던 듯하다, 나는. 하릴없음. 맥놓고 앉아있음. 아무 생각이 안남. 머릿속이 꽉 차서 과부하가 걸려 오히려 한 글자도 안 빠져나오는 상황을 십년 넘게 지내다보면, 웃음도 나온다는 거.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이제껏의 글들은 모두 습작이었다는 거. 제대로 된 글 한 번 못 써보고 죽겠구나...그런 생각이 들면 마음이 쪼금 아프다는 거. 백지의 막막함은 어쩌면 백지의 공포보다 더 무서운지도)
정작 그는 글 / 천양희
죽음만이 자유의지라고 말한 쇼펜하우어 정작 그는 여든이 넘도록 천수를 누렸구요.
자녀 교육의 지침서인 ( 에밀 ) 을 쓴 루소 정작 그는 다섯 자식을 고아원에 맡겼다네요.
백지의 공포란 말로 시인으로 사는 삶의 고통을 고백한 말라르메 정작 그는 다른 시인보다 평생을 고통없이 살았고요.
( 행복론 ) 을 써서 여덟 가지 행복을 말한 괴테 정작 그는 일생 동안 열일곱 시간밖에 행복하지 않았다고 말했다네요.
정작 그는 알고 있었을까요. 변명은 구차하고 사실은 명확하다는 것을요.
정작 그는 또 알고 있었을까요. 위대한 사상은 비둘기 같은 걸음걸이로 이 세상에 온다는 것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