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712#커피한잔의생각(1185)[노교사의 회상]몇일전 오두막 가는아침에 아파트 입구에 있는 편의점에 들렀다. 등교하는 고등학교 학생이 편의점에 있길래 배지가 없어 어느 학교 냐고 물었다. 30년 혼을 묻었던 마산제일고등학교 라고했다. 평교사로 정년퇴직 한지 10년이 되었지만 엇그제 같았다. 고3 학생을 보니 반가워 몇마디 물었다. 교복은 디자인과 품질이 변해서 옛날 모습은 아니었다. 후배 교사들의 안부를 묻고 학교를 물었더니 선생님들이 그냥 풀어준다고 했다. 얼마전 전국 교사들의 어려운 마음까지 품어 주었던 네플릭스 드라마 '참교육'이 떠올랐다.
교직원노동조합 마산제일고등학교 분회도 있었다. 학생부장의 보직을 받고 난 직후 설립자이형규(작고)박사가 학교를 방문하여 '아이이들 담배를 피우는 것 방치 하려면 학교 문 닫아라'고 하며 강한 훈시가 이어졌다. 여학교를 설립했던 분이라 사나이 다운 남자를 배출하는 학교를 소망하고 있었다. 지금이야 명칭도 바뀌었지만 학생생활지도를 담당하는 학생부장으로서 설립자의 이념을 수행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전교조례시간에 명문학교로 만들어 보자고 간절하게 말하고 전교학생회를 통해서 3무 운동을 새활규칙에 넣었다. '학교폭력없는 학교, 음주 흡연없는 학교, 휴대폰없는 학교'를 생활지표로 삼았다.
언젠가 학교동창회에 초대를 받아간 적이 있었다. 참석자가 저조하여 동창회장에게 물었더니 모교가 똥통(!)이라서 그렇다고 했다. 술 김에 내가 관리자는 안해도 반드시 자네들 모교를 명문으로 만들어 놓겠다고 약속했다. 일반고로 전환 되고 학생생활지도 7년 동안 아침7시 출근, 밤10시 퇴근하며 학교를 지켰다. 학생부 선생님들의 헌신적인 협조로 3무 운동을 한치의 오차도 없이 수행했다. 생활규칙을 위반 하면 엄격하게 지도 하며 토요일까지 기숙사에서 공부하며 오로지 명문대학교 진학에 혼신의 힘을 기울였다. 나는 오로지 학생부 선생님들이 학생지도에 전념하도록 외부로 부터 철저한 방어벽이 되어 주었다.
평준화 3년후 학교에는 명문대학을 다수 진학하는 명문고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고 생활규칙을 위반 학생들 단 1명도 퇴학이나 전학조치 하지 않았다. 그래도 소수는 꿈을 이루었지만 다수의 학생들이 자신의 목표를 이루지 못했을 것이다. 처음 동창회장과 제자들에게 약속한 것 처럼 관리자를 사양했다. 정년 퇴직을 하면서 용담 교지에 '용서'라는 칼럼을 써서 제자들에게 용서를 구했다. 정년퇴직 후 전혀 에상하지 못했던 마산대학교 입학부처장을 8년 하고 2023년 1월31일 '박수칠 때 떠나라'라고 하는 은퇴의 변을 하고 초야로 돌아왔다. 마음에 담아 두었던 돈버는 일은 하지 않는다고 했다. 1968년 10월 전북순창 쌍치 두메산골에서 100원 짜리 동전 몇개들고 가출하여 보낸 빛나는 인생이 아닐까 스스로 반문 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