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학사상과 서양 근대철학의 주체성 비교
1. 동학사상의 만민평등사상
조선 후기, 내부적으로는 유교 사회의 질서인 삼강오륜(三綱五倫)은 형식적으로 존재할 뿐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었다. 또한, 외부적으로는 청나라, 일본제국, 서구 열강들이 조선을 침략하려고 하고 있었다. 이런 조선의 사회 속에서의 백성은 하나의 수탈 대상에 불과 하였고, 백성들은 국가를 자신의 생명, 신체, 재산을 몰수하는 호랑이로써, 국가공동체는 와해 된 상황이였다.
동학은 이런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사회적 구조로 다원적 만민평등 공동체를 꿈꾼다. 대동사회는 다원적인 존재들이 공동체 안에서 삶을 공유하고 문화와 정치를 보존하며 상호 협력하여 삶의 질서를 구축한다. 대동사회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의 원리를 다원적 존재들이 세계안에 함께 거주하는 공존과 화합의 장이다.물론 동학의 만민평등 사상은 현대 사회의 평등과는 다소 차이가 있다. 유교적, 신분제 사회문화가 남아있는 사회속에서 완벽한 평등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 각자의 역할에 맞는 일을 다하는 사회를 보장하여 사회적 취약계층을 포용하는 것이다.
동학은 이러한 만민평등사회를 ‘하늘의 마음이 곧 마음이다.’라는 하늘 아래 모두 가치적으로 동등한 생명을 기반으로 한다. 동학은 우주적 공동체성을 강조하며 화이부동의 다원적 포용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반인권적, 봉건적 요소를 해결하기도 한다.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능력을 갖추었지만, 신분제의 벽에 막혀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것을 방치하고 구(舊) 풍습을 유지하고 신분제를 유지하는 것은 가족 공동체를 해체하고 양반과 서민, 천인에 대한 차별은 국가공동체를 붕괴시키는 악습으로 규정한다.
동학사상의 만민평등사회는 공동체에 참여 하는 사람들에 대한 존중과 책임, 연대의식을 통해 실현된다.
부인은 한 집안의 주인이다. 음식을 만들고, 의복을 짓고, 아이를 기르고, 손님을 대접하고 제사를 받드는 일은 부인이 감당하는 일이다. 주부가 만일 정성 없이 음식을 갖추면 하늘이 반드시 감응하지 않고, 정성 없이 아이를 기르면 아이가 반드시 충실치 못하니 부인수도(婦人修道)는 우리 도의 근본이다.
이 글을 해석한 강윤택에 따르면, 기존 유학적 전통은 예(禮)를 중심으로 가족동동체가 형성됐으면, 동학에서는 부인을 가족 공동체의 가장 막중한 역할로 설정했다. 즉, 기존 유교사회는 공동체의 구성원을 예(禮)를 위한 하나의 도구로 보았다. 하지만 동학 사상에서 공동체 구성원의 역할은 공동체를 위한 수단이 아닌 공동체를 구성하는 한 명의 구성원으로서 행동하는 것이다.
2. 서양의 주체성
개인은 자유로운 존재임은 중세에서 근대로 넘어오기 시작하면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홉스는 자연상태의 개인은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로써, 개인들은 최악의 상태를 피하기 위해, 각 개인보다 힘이 쎈 리바이어던, 즉 국가를 형성한다고 주장한다. 자연상태의 인간은 모두 평등하고 자연은 육체적, 정신적 능력의 측면에서 평등하도록 창조 됐다. 물론 각 개인마다 어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차이는 종과 종을 비교 하였을때는 개인의 능력이 모두 평등 할 것이다. 이런 자연상태에서는 자연의 희소성이 있기 때문에 서로를 의식하고 경쟁을 해서 재화를 뺏고 얻어야만 생존 할 수 있다. 이런 자연 상태에서는 자기 보존을 위한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 상태가 된다. 통제할 어떤 강제력도 없기 때문에 각자 개인들은 항상 투쟁의 상태에 있어야 했다. 각 개인들은 자신의 생명과 신체를 빼앗길수도 있는 최악의 상태를 벗어나고자 국가를 형성한다.
그리고 로크는 모든 인간은 자유롭고 평등한 독립적인 존재임을 천명하고 개인의 자유와 재산권을 보장받기 위해서 사회계약으로 국가를 구성한다고 말한다. 로크는 자연상태에서의 인간이 사회로 들어가는 사회계약을 체결하는 이유는 자신들의 생명, 자유, 재산을 보호하기 위한 것이고 시민 사회의 주된 목적은 재산의 보존이라 한다.
근대의 ‘자유’에 대한 생각에따르면, 자유로운 독립체로서의 개인은 자신의 행동에 대해서 예측하고 결정한다. 미리 자신의 선택한 결과를 생각해보고 자신의 판단을 자유롭게 결정한다. 개인은 그런 자신의 판단에 대해서 책임을 질 뿐이다. 국가는 국민의 생명, 신체, 재산에 관한 국방과 치안을 제외하고서는 개인에게 어떠한 개입을 해서는 안되는 것이다. 다시말해 올바른 가치라고 하더라도 국가는 개인에게 강제하면 안된다.
근대 자유주의 사상은 중세시대의 신(神)으로부터, 근세시대의 왕권신수설인 절대왕정 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로운 개인, 주체적인 개인을 찾았다는 의의가 있다. 로크는 신은 모든 개인들에게 자유롭게 자연을 이용할 권리인 소유권을 주었다고 주장한다. 자신의 노동력을 투여한 자연물은 자신의 소유물이며, 어느 누구도 자신의 소유한 물건을 강제로 빼앗을 수 없다고 한다.
3. 동학의 근대성과, 서양철학의 주체성 비교
동학 사상의 주체성, 즉 개인의 형성은 현대의 공동체주의와 굉장히 유사해 보인다. 현대 공동체주의는 한 공동체의 구성원들을 원자화된 개인으로 보지 않으며, 공동체 구성원들은 각자의 공유된 가치를 갖고 공동체를 구성한다. 사회를 잇는 공유된 가치를 중요한 것으로 여겨지고 이 공유된 가치가 훼손되거나 변질되게 되면 필연적으로 공동체가 무너진다는 것이다. 이와 비슷하게도, 동학사상은 만민평등사상이라는 공유된 가치를 가지고 다원적 만민평등 공동체를 구성했다. 기존의 유학사상과 비교했을 때, 유학은 도덕이 원인이 되어 국가공동체를 결과로써 구성했다면, 동학은 만민평등 공동체가 원인이 되어 구성원들이 있음이라는 점에서 차이 있어 보인다. 이런 대동세계의 구성원들은 스스로가 만민평등이라는 가치 공유된 가치를 갖고 있으며, 이 공유된 가치가 훼손되거나 없어지게 되면 대동세계는 무너진다는 것이다.
공동체를 통해서 개인이 형성되는 동학과 달리 서양에서 개인의 형성은 자족적인 개인에서 출발하여 국가 공동체를 형성한다. 홉스는 자유로운 개인들이 존재하고 이 개인들은 자신들의 생명과 신체를 온전하게 보전을 받기 위해 국가를 형성했다고 보았고, 로크 또한 자유롭고 평등한 개인은 존재하고, 즉 주체적인 개인을 상정하고 자유로운 계약을 통해 국가를 만든다고 보았다.
이처럼 한국의 동학과, 서양의 철학 모두 결과적으로는 왕이나, 신으로부터 벗어나 ‘개인’이라는 주체성을 확보하였지만, 주체성을 확보하는 과정이 상이해 보인다. 동학은 공동체로부터 개인이 있고, 서양의 주체성의 확보는 개인이 존재하고 공동체를 이룬다는 차이가 있어 보인다.
첫댓글 오늘날 인권의 주체로서 개인에 대한 관념은 서양에서도 근대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할 것입니다. 물론 그리스 도시국가의 시민에서부터 그 기원을 찾을 수도 있겠지만, 중세 사회에서는 서양이나 동양할 것 없이 권리의 주체로서 개인에 대한 생각이 일반적이지는 않았습니다. 동학은 서학이 외세를 대표하는 것으로 인식되던 조선후기, 대한제국시대를 거치면서 그에 대한 반발로 출발한 민중운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따라서 "만민평등사상이라는 공유된 가치"가 이미 서구의 인권 사상에 어느 정도는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점에서 유학과는 완전히 다른 접근으로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글쓴이가 지적하였듯이 동학은 동아시아적 전통에서 공동체의식이 선행되는 데 비해, 서구에서는 개인의 권리가 선행된다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