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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7 - 베이트셰안과 길보아산을 거쳐 나사렛과 가나 혼인잔치를 보다!
1월 24일 (목) : 베이트셰안 - 길보아산 - 나사렛 - 가나 - 티베리아
갈릴리 호수의 티베리아에서 어제는 가이드 투어에 참가하여 가버나움의 베드로,
빵 교회를 보고는 멀리 시리아와의 접경지대인 골란고원을 구경하고 돌아오는
길에 팔복교회에 들러 예수님의 산상수훈을 떠올리며 그 의미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오늘 1월 24일 에는 가이드를 쓰지 않고 우리 부부 둘만의 여행으로, 티베리아 에서 시외
버스를 타고 남쪽으로 달려 로마 시절 옛 유적지 베이트셰안에 도착하는데, 어제
가이드에게 우리가 내일은 우리끼리 여행하겠다니까 절망하던 표정이 걸리기는 합니다!
*** 베이트 셰안의 도로 - 뒷쪽의 산 처럼 보이는 것이 "텔" 이다 ***
이스라엘은 기독교 성지이자 관광지이지만 늘 테러와 전쟁으로 정정이 불안하니 가이드들은
굶어죽게 생겼다는? 베이트셰안은 4천년 전인 기원전 19세기에 이집트 문헌에 이
도시의 이름이 나타 난다니 아득히 오랜 옛날부터 교역의 중간 도시로 발달했던 모양 입니다!
로마 시대의 원형 경기장은 8천명을 수용 한다는 데, 상당부분이 그대로 남아
있어 감회가 새로우니.... 하여 이곳에서 ‘그네’ 를 소리 높여
불렀더니 유럽인 관광객 할머니들이 원더풀을 연발하네요? ( 우이 창피..... )
*** 베이트 셰안의 도시 시가도 ***
2천년전 당시의 도로며 건물의 화려한 기둥들이 볼만한데.... 수천년전의 계획도시
를 보노라니 당시 문화가 무척 발달했음을 알겠으니... 이때 우리 선조들은
신라나 고구려가 일어설 때니 일반 백성들은 땅에 움집을 지어 살았던 시기 입니다.
도시의 끝 부분에 엄청나게 높은 언덕이 있는데, 이곳 말로는 ‘텔’ 이라 불리우는 곳으로
옛날 사람들이 도시를 전망과 방어를 위해 평야가 아닌 언덕 위에 건설 하였습니다.
전쟁으로 폐허가 되면 치우지 않고 평탄하게 고른후, 그 위에 다시 집을 지었던 것이니 땅을 수직
으로 파내려가면 시대별로 유적이 나타나는 것이니, 그런 술레이만이 발굴한 트로이는
땅속에 이런 도시 유적이 9겹이나 쌓여 있다는데 어느 층을 호머 일리어드의 트로이로 볼것인가?
*** 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정복 전쟁 ***
다시 버스를 타고 길보아산 으로 향하는데..... 다윗이 물러난 이스라엘군은
페리시테 (블레셋) 군을 이 산에서 맞아 항전했으나.....
사울왕과 요나단 왕자가 전사 하는 등 이스라엘군이 참패를 당한 곳입니다!!!
*** 사울이 이룩한 왕국 ***
하지만 우리 부부는 나사렛도 가야 하는지라 시간이 없어 길보아 산 정상 까지는
못가고, 기슭에 옛 유적지인 베이트 알파 시나고그 를 찾아 가는 와중에......
*** 이스라엘군이 블레셋 군대에 패한 길보아산 전투 ***
길을 잘못 들어서 엉뚱한 키부츠를 헤메고 있는데..... 현지인 유대인 농부가
고맙게도 자신의 경운기 비슷한 차에 태워서는 우릴 데려다 줍니다.
베이트 알파 시나고그는 6세기에 가난하지만 신앙심 깊은 촌사람들이
정성을 다해 지은 것으로 특히 모자이크 가 핵심인데, 아브라함이
이삭을 하나님께 바치는 장면등 아직도 선명한게 너무나도 놀랍습니다.
여기 베이트 알파 시나고그 유적지의 규모는 비록 아주 작기는 하지만
당시의 모습들을 비디오로 만들어 상영해 주어 쉽게 이해가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 부부는 다시 베이트세안 까지 걸어 가서는 시외버스를 타고
이제 다시 북쪽으로 예수님이 살았던 마을인 나사렛을 찾아 갑니다.
우리 버스는 들판에 위치해 교통의 중심지인 아풀라를 거쳐서....
나사렛 으로 가는데 언덕을 구비구비 올라가는게 신기합니다.
옛날 사람들이 그 넓은 들판을 놔두고 굳이 언덕 위를 선택 한 것은
앞에서도 말한바 전망과 침략자들로 부터 방어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 나사렛 Nazaret 은 높은 언덕 위에 있지만 생각 보다는 큰 도시인데, 호기심 강하고
웃음이 많은 아랍 여학생들에게 길을 물어서 "수태고지 교회" 를 찾아 가노라니....
구시가지는 온통 아랍인 차지 이고.... 유대교를 믿는 유대인들은 변두리에 신시가지
를 새로 만들어 거주하는 모양이네요? 이 도시 뿐 만 아니라 예루살렘등
이스라엘의 모든 도시의 구시가지에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은....
서기 66년 유대인들이 로마의 지배에 항거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예루살렘이 파괴
된 후, 로마 당국에 의해 이스라엘 땅에서 추방된 이래..... 빈 도시를
차지해 2천년간 조상 대대로 살아온 이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사람인 것입니다!
팔레스타인 사람들에게 물어본다면 가나안은 3천년 전에 자기들 고향땅인데, 이집트
에서 모세와 여호수아가 이끄는 유대인 침략자들이 출애굽 이라며 요단강을
건너와 자기들 소왕국을 침공해 몰아내고는 이후 이스라엘을 세웠다고 말할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스라엘 땅은 수천년 전 부터 유대인과 팔레스타인이 서로 자기 땅
이라고 생각하는 것인데.... 이스라엘에서 참으로 오랜만에 그리스 정교회가
아닌 가톨릭 성당을 보는 것은 건립 연대가 그리 오래되지 않았음을 짐작케 합니다.
여기 나사렛 도시에서도 처음엔 길을 잘못 들어 조금은 거리를 헤멘 후에
성요셉 교회를 거쳐서 드디어 학수고대하던 수태고지 교회를 찾습니다!
수태고지 교회 내부에 성모 마리아의 모습 이 여러점 보이는 데.... 그중 하나가 독실한 기독교도인
울 마눌은 이건 일본 양식 이라기에 보니.... 일본에서 제작 하여 보내온 것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오? 세상에!!! 기모노를 입고 아기 예수를 안고 있는 성모의 모습이라니... 그러고
보니 세계 각국의 민속의상을 입은 성모의 모습들..... 우리나라에서
성모를 그리면 동그스럼한 얼굴, 낮은 코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성모가 되네요?
말이 나온김에 말인데,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온 예수님의 모습은
당시 실제와는 달라도 너무 다른 엉터리(?) 모습이라고 합니다.
얼굴이 갸름하고 콧날은 오똑하며 머리를 산발한 갸느다란 창백한 모습은 중세에 이 그림을
그린 당사자인 유럽인 자신들의 모습 인 것이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
그림도 예수님이 식탕 중앙에 앉아 있는데....당시 풍습에 주인공은 식탁 모서리에 앉아
비스듬히 누워 식사하는 것이었지만, 이 그림을 그리던 중세 유럽의 방식대로 그린 것이라?
당시의 가나안 유골을 분석하고 갖가지 자료를 조사해 보면, 예수님은 각이진 사각형
얼굴에 구리빛 색깔을 하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아주 짧고 수염이라고는
기르지 않은.... 다시 말해 2천년 동안 유럽인의 피가 섞여 혼혈이 된 현재
이스라엘의 유대인 보다는 오히려 팔레스타인의 아랍인 모습이라고 보면 되는 것이라?
인간이란 원래 부터 자기 위주이다 보니.... 그러고 보니 옛날 신문에 운보 김기창 화백 이
1952년에 그린 ‘예수의 생애’ 30점에서, 수태고지에서 승천까지 예수님의 일생 을
표현하고 있는데, 화폭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한복을 입고 있고 배경도 우리 농촌 이랍니다.
*** 예루살렘 성전에서 아들을 찾은 성모 마리아 ***
흔히들 나사렛 예수라고 부르는 것은 마태복음에서 저자가 붙인 것으로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5KM 떨어진 궁벽한 산촌마을 이라.... "나사렛에서 무슨 선한
것이 나겠느냐?" 고 했듯 예수님이 별볼일 없는 지극히 낮은 출신임을 의미한답니다.
조선에서 평안도 출신을 얕잡아 보아 과거에서 제외하니 결국 홍경래의 난이 일어나는...
구약에서 메시아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인물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 출신이어야 하기에
신약에서는 여기 나사렛에서 만삭의 마리아가 머나먼 베들레헴으로 가야했
듯.... 헤롯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신했던 요셉에게 헤롯왕이 죽은후 천사가
나타나 이제는 돌아가라고 이르니 요셉은 처자를 거느리고 이스라엘로 들어 오는데....
헤롯은 죽었지만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지방은 아버지 못지않게 포악한 큰 아들
아켈레오가 왕이 되었다는 소식에 두려워 멀리 나사렛까지 왔으니....
그리하여 예수는 여기 나사렛에서 목수로 자랐다는데, 목수를
뜻하는 희랍어 Tekton 에서 후일 기술을 뜻하는 Technic 가 나왔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사렛의 주인인 헤롯의 둘째 아들 안티파스도 그에 못지 않으니, 배다른
형 빌립 1세의 처 헤로디아를 빼앗고 세례 요한을 죽엿던 것인데.... 헤롯은
유대인이 아니고 헤브론 남쪽 이두매인이라? 이두매는 옛날 이스라엘 12부족의
조상인 야곱의 형인 에서의 후예가 사해 동남방 페트라에 세운 "에돔" 왕국 입니다.
이스라엘과 다윗 및 솔로몬이래 오랜기간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는데.... 후일
알렉산드로스 대왕 사후 셀레우코스조 그리스가 동화정책을 강요
하니... BC 2세기에 유대인 하스몬가가 반란을 일으켜 이스라엘을 재건합니다.
이 하스몬가의 이스라엘이 이두매를 점령해 강제로 할례를 시켜서는 유대인으로 개종시켰던
것이니... 후일 그 이두매 출신 안티바와 그 아들 헤롯이 로마에 잘보여 헤롯은 BC 47년에
갈릴리 총독이 되고, 7년 후에는 이스라엘 왕이 되어 예루살렘 제3 성전을 건설했던 것이지요.
수태고지 교회를 나와서는 길을 더듬어 마리아 우물을 보고는 시외버스 정류장
으로 가서 버스에 오르는데..... 여기 나사렛에서 티베리아로 가는
도중에 옛 "가나 혼인잔치" 로 알려진 그 가나가 있어 가는 길에 잠깐 들릅니다.
지금의 지명은 " 카프르 칸나 Kafer Kanna " 인데..... 1879년
프란체스코 교회에서 가나 혼인잔치 교회를 세웠으니,
그러니까 결국은 200년 전에 세운 교회를 보러 가는 셈인가 합니다.
예수님께서 혼인잔치에 술이 떨어졌다는 말을 듣고 항아리에 물을 채운후 포도주
로 변화 시킴으로써..... 이적을 보인 곳으로 제자 나다니엘 의 고향 입니다.
마리아 를 중심으로 양쪽의 십자가 푸른탑이 있고, 내부에도 6개 항아리를
배치했는데... 이곳이 과연 옛날 그 "가나" 인지는 분명하지 않으니,
왜냐하면 땅을 발굴하니 6세기경 유대 회당 의 유적이 발굴 되었기 때문이라...
모든 것이 그러하듯.... 이른바 성탄절인 12월 25일 도 실제로 예수님이
태어나신 날은 전혀 아닙니다! 그러나 종교 라는
것은 궂이 실제 사실을 따지기 보다는 믿음이 우선하면 되는 것이지요?
예수님이 정확히 탄생한 달이나 날에 대해서는 어느 기록에도 없습니다.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후 로마 기독교가 현지인 사회에 정착
하면서..... 오랫동안 토착 사회에서 행해지던 하늘에 감사하던 축제인.....
그러니까 로마도 그렇지만 이스라엘 지방은 여름이 건기이고 겨울이 우기라 비가
와야 삶의 우너천인 농사를 짓는데.... 비가 내리는 시기가 겨울철인 12월 25일
경이라 주민들은 오랫동안 애타게 비를 기다리던 이 날을 축제로 지켜왔던 것입니다.
로마 교회가 아무리 금지해도 이교도의 축제를 없앨수가 없으니, 아예 이날을 성탄절로
선포했던 것인데.... 어쨌든 간절히 기다리던 시기에 성탄절이 되니 자연히
융합된 것이라? 중요한건 예수님이이 땅에 오신 그 참된 의미를 깨닫는데 있지 않을까요?
이윽고 밤이 되어 티베리아로 돌아오는 버스 안에서는 비록 호텔이나마
누워잘 곳이 있으니 마치 내 고향집으로 향하는 듯한 기분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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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老年이 되면 누구나 네 가지 苦痛 속에서 살아간다.
孤獨苦 -고독의 고통은 혼자 노는 연습이지만 가까운 친구 몇 명은 두어라.
無爲苦 - 아무 것도 안하는 것도 고통이니 정할 것 없으면 걷기라도 열심히 해라.
貧苦 -갈수록 가난해짐도 고통이니 살 날들 만큼 돈을 묶어두어라.
病苦 -끝내 병고로 세상을 마감하지만, 열심히 병 고쳐가며 살자.
명은 하늘에, 몸은 의사에 맡기며 살자.
간강하시고, 행복하시기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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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노병사............
세상에서 목숨이 있는 생물들은
피할수 없는 숙명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