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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2024. 3. 31. 일요일.
오늘도 아내와 함께 서울 송파구 석촌호수 서호쉼터로 나갔다.
2024년 4월 10일에 있을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임박한 탓인지 주요 정당의 선거유세 단체가 진설하였다.
교통경찰관, 안내자 등이 곳곳에 배치되고 대형 차량도 서호 입구 주변에 주정차되었다.
정치와 하등 관계가 없는 나는 이들의 마이크 소리에 귀가 먹먹해서 자리를 피하고는 석촌호수 산책로를 따라서 걸었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2024. 3 27. ~ 31.)의 마지막 날이라서 그럴까? 봄나들이 나온 상춘객이 엄청나게 많았다.
외국인도 숱하게 산책하면서 이제 막 피기 시작한 벚꽃을 향해서 카메라를 쳐들었다.
'벚꽃 없는 벚꽃축제'에서 '벚꽃 피지 않은 벚꽃축제'가 되었다가 마지막 날인 오늘은 '벚꽃 피기 시작한 벚꽃축제'로 진행 중이다.
힘들게 한 바퀴 돈 뒤에 바로 인근에 있는 잠실아파트 단지로 되돌아왔다.
밤중에 컴퓨터를 켜서 오래전에 활동했던 카페에 들렀다.
<불혹의 노래(40대 이상) 카페>.
초기에 가입했으나 내가 나이가 많아진 뒤로는 활동을 중지했던 카페이다.
혹시나 내 글이 남아 있을까 하면서 검색하니 다행히 남았다. 정말로 고마운 카페이다.
내가 활동을 중지한 카페 대부분의 카페에서는 내 글이 완전히 사라졌다.
내 글이 아직껏 남아있는 <불혹의 노래(40대 이상)카페>에 고마워하면 내 글 하나를 퍼서 <아름다운 5060카페>에 올린다.
내 어머니를 충남 보령에 있는 '보령아산병원'에 입원시킨 뒤.... 병원 내에서 보았던 이야기이다.
<불혹의 노래카페>에서 내 닉네임은 '산다'.
글 더 다듬어야 한다.
글 다듬으려고 <아름다운 5060카페>에 올린다.
담배꽁초 많았던 병원
산 다(최윤환)
2014년 6월부터 충남 보령의 '보령아산병원' 중환자실에 집나이 아흔여섯 살의 어머니를 입원시켰다.
극도로 연노한 노인, 고혈압으로심장박동이 아주 불규칙했고, 치매 진행 중이고, 말 한마디도 못하는 중환자.
보호자인 나, 하나뿐인 아들인 나는 병원 주변을 떠날 수가 없었다.
차 타면 얼마 안 되는 거리에 시골집이 있는데도 나는 중환자실이 있는 복도를 맴돌면서 시간을 보내야 했다.
하루 세 차례, 한 번에 30분만 허용되는 면회시간에 잠깐이라도 어머니를 들여다보아야 했다.
그 이외의 시간은 정말로 지루했다. 그래서, 병동 건물 옥상에도 올라갔다.
긴 복도 끝에 있는 계단에서 한 계단 두 계단 오르려면 늘 얼굴을 찡그려야 했다. 계단 통로는 꽁초 냄새로 가득 배었고, 계단 구석에는 꽁초가 마구 버려져 있었다. 때로는 쌓여 있었다.
시멘트 계단에 걸터앉아서 숱하게 피웠다는 물적 증거. 옥상 시멘트 바닥에도 많았다. 쓰레기통 속에도, 빗자루와 쓰레박 주변에도 수북이 있었다.
진폐환자 병동.
노인 환자들이 무척이나 많았다.
이들은 진폐환자.
더러는 이따금 입에 담배 한 가치를 물고는 뻑금거렸다.
가짜 담배도 입에 물었을까?
충남 보령지방의 산속에 있는 종합병원에는 진폐환자 노인네들이 왜 그렇게 많았을까?
원인과 이유는 있었다. 예전에는 청석 바윗돌 많고 산 깊은 주변에는 탄광지대, 석산지대, 석면을 캐는 사업장이 많았다.
허름한 함석지붕을 인 공장들이 숱하게 지방도로 건너편 산속에 줄을 이었던 곳이다.
석탄 캐는 갱부, 돌 깨는 석수장이, 이를 가공하고, 운반하는 작업부. 탄가루 마시고, 돌가루 마셨던 사람들은 그게 생업이었다.
지금은 흔적만 남고, 폐광을 활용한 관장지가 되었고, 폐광의 찬 공기를 이용한 농업/임업이 발전하는 고장으로 변신했다. 채탄 채석해서 산에 구멍을 내고, 산을 허물었던 흔적은 감춰졌다. 속성으로 크고 사시사철 잎사귀가 있는 소나무를 식재하여 그 현장을 눈가리고 아옹하고 있었다. 지금도 비가 많이 내리면 계곡물은 시꺼멓게 먹빛이 되어 하류로 흘렀다.
폐병 걸리고 폐암 걸려서 치료받으려고 병원에 왔던 노인 환자들.
이들 가운데 어떤 환자는 담배를 피웠다, 피운다, 피울 것이다.
팔뚝에 주사기를 꼽고서도, 코에 산소호흡기 줄을 꼽고서도 의사와 간호사, 간병인도 모르게 몰래 담배 피웠다는 증거.
나는 그 병동 통로와 계단을 통해서, 샤터 달린 철문을 빠꼼히 열어서 옥상으로 올라갔다.
깊은 산속, 내려다보이는 대형 담수호, 통나무 기둥으로 된 쉼터에서는 시원한 바람이 불어왔다.
그런데 병동에 들어서면 병원 냄새가 났다. 병동 끝으로 가면 꽁초 냄새도 났다.
커다란 저수지 근처에 있는 쉼터 마룻바닥에는 꽁추가 늘 있었다.
쉼터 곁 쓰레기 통 속에도 구겨져 버린 빈 담뱃갑, 꽁초들이 늘 수북이 비에 젖고 있었다.
담배 전혀 못 피우는 나한테도 냄새가 은근히 쩔어들었던 곳이었다.
오늘 어떤 카페에 담배 피우는 사람에 대한 글이 떴다.
담배 피우는 장소, 마땅한 흡연장소 구역이 자꾸만 줄어든다고.
담배 한 가치도 피운 적이 없어서 담배맛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서 그럴까?
나는 담배와 관련한 정부정책에 고개를 흔든다.
한때, 과거에는 정부조직 기구에는 전매청이 있었다. 세상에나. 담배를 만들고, 담배를 팔고, 담배에 관한 세금을 거둬들이는 게 정부조직이었다니.
대전 사는 아버지는 신문사 지국 기자들과 함께 나를 데리고는 대전 신탄진 1965년에 세운 동양 최대의 담배공장을 방문, 구경시켜 주셨다. 지금 생각하면 전매청 소관 신탄진 담배공장 건물이 그게 무슨 큰 자랑거리라고 구경시켜 주셨을까?
지금은 '한국담배인삼공사'로 명칭을 거듭 바꿨다.
골초였던 아버지는 폐암에 걸려서 예순여섯 살에 먼 길 떠났다.
얼마 뒤 언제인가, 전매청은 정부조직에서 떨어져 나갔다.
정부 재정수입 목적으로 허가해 주었던 그 당시의 국가, 정부의 행정에는 고개를 흔든다, 지금도.
담배.
그게 정신건강 증진에 좋은 기호품일까?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한때에는 담배 피우도록 권장하는 듯한 꼬락서니를 지속했다.
왜? '돈이 되면 그 어떤 짓도 해도 된다'는 경제논리'였다.
국민건강을 생각한다면, 담배 관련 사업을 전면규제해야 한다.
담배 재배 금지, 담배 제조 금지, 담배 수입 금지, 흡연자 단속과 검거, 이를 어긴 업체와 업자, 개인들한테 엄중한 처벌을 해야 한다.
과거에 비하여 현행 정부는? 과거의 정부조직인 전매청과 유사하게 담배 관련 사업을 슬쩍 눈 감아주는 것은 아닐까?
국민한테 폐암을 걸리게 하고, 담배꽁초로 인한 화재발생 위험도 은근슬쩍 감춰주고 있을 것이다.
나는 이따금 서울로 올라온다.
송파구 잠실동 88로(올림픽로)에 있는 하나로마트 외곽 건물 북편 인도에는 느티나무를 심은 쉼터가 길게 줄지어 서 있다.
이곳에서 앳된 여자애가 뻐금대는 것을 자주 본다.
담배를 꼬나물고는 쭉 내민 입술로 연기를 뿜어내고는 입김으로 후우 불었다.
아주 가느다란 꽁초도 슬쩍 내버리고.
나는 애숭이 앳된 여자를 보면 속으로 '어이구 잘났다. 담배 진에 쪄들었다가 나중에 임신하면 그 아이 어쩌려나?'라는 걱정이 앞섰다. 그런데도 나는 아뭇말도 꺼낼 수 없다. 흡연하는 개인 자유를 늙은 내가 제지할 근거는 하나도 없기에,
내 두 아들도 서른 살을 넘겼다. 이 자식 놈들도 아주 오래된 골초다.
자기 할아버지가 담배 많이 피운 골초이었고, 돌 다루는 석수장이, 사장이어서 돌가루를 숱하게 마시고는 진폐증 폐암 걸려서 일찍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나한테 들어서 뻔히 알고 있는데도 담배를 뻐금 대고 있다.
큰아들은 세 살인 딸, 두 살인 아들을 키우고 있으니 어쩌면 지금쯤 담배를 덜 피우거나 아예 끊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직 장가도 못 간 막내아들은 자주 뻐금 댄다. 안 피우는 척해도 이따금 꽁초가 발견된다.
2016년 작년이다.
나는 경기도 성남시에서 운영하는 실버농장을 방문한 적이 있다. 지하철 모란역에서 내려서 분당구청 쪽으로, 남쪽으로 인도 따라 천천히 걸어가면 곧 드넓은 농장이 나온다. 노인세대 3,000여 명한테 무료로 분양해 준 텃밭이다.
텃밭으로 들어가는 초입구 빈 터에서 재배하는 담배를 보았다.
세상에나, 50여 년 만에 보는 처음 보는 담배였다.
예쁘장한 담배꽃이라니...
성남 실버농장 빈 터에서 발견한 담배.
꽃이 진 뒤에 씨앗 좀 받아달라고 친구한테 부탁했다.
친구는 내 부탁을 건성으로 들었을까? 채종했다는 이야기를 나는 아직도 듣지 못했다.
내가 담배 씨를 채종해서 재배하려는 이유는 있다. 종자 확보, 담뱃잎을 큰 양푼에 넣고 물 붓고 끓이면 그 물이 무척이나 강한 독성을 지녔기에, 담배진을 우려낸 물로 농사 짓는 데에 활용한 심산이었다. 농약(살균제, 살충제)를 전혀 쓰지 않는 나로서는 텃밭에서 숱하게 번지는 병균, 작은 벌레를 예방하고 잡는 천연농법으로 실험하고 싶었다.
그런데 틀렸다. 성남시에서 무료로 제공한 땅, 3평짜리 텃밭농사 짓는 친구, 새내기 농사꾼이 내 사정을 알랴? 담배 씨앗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을 터.
60년 전, 50여 년의 옛적,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수십 년이 경과한 뒤인 2016년, 성남시 실버농장의 빈 터에 빼곡히 들어섰던 담배 줄기, 바람에 너풀거리는 담뱃잎과 예쁘장한 담배꽃을 보았기에 옛날 옛적을 떠올린다.
종조부(작은할아버)네도 낫으로 베어낸 담뱃대 줄기를 지게로 져서 날랐다.
내 시골집에서도 담배 농사를 지었다. 우리 집 머슴(일꾼 아저씨)은 담배 잎줄기를 잘라 엮어서 처마 끝에 주렁주렁 매달았다.
넓적한 잎이 마르면서 나오는 냄새는 무척이나 강렬했다.
일꾼 할아버지는 목침 위에 담뱃잎을 올려놓고는 주머니 칼로 잘게 싹뚝 싹뚝 끊임없이 썰었다.
담배 쌈지에 넣었고, 조금씩 꺼내서 긴 대나무 담뱃대 끝에 달린 작은 쇠통에 쑤셔 박았다.
화롯불에 담뱃대를 한참이나 담갔다가 불빛이 빠꼼히 보이면 입술을 오므려 깊게 숨을 들리마시고, 빨아들이면서, 뻐금대기 시작했다.
장독대 뒤편의 대나무밭 가생이에서 시누대(줄기가 가느다란 대나무 일종)로 길게 잘라서 만든 대나무 담뱃대.
담뱃대가 오래되면 담배 진 냄새가 엄청나게 났다.
머슴은 담뱃대 구멍 속에 가느다란 풀꼬챙이를 길게 쑤셔 넣고는 밀고 잡아당기면서, 대롱 속에 든 진을 조금씩 뽑아냈다. 꼬챙이는 어느새 검추레한 진이 묻었다.
시꺼멓고 진득거리는 담배 진에서도 냄새가 고약했다.
또 하나의 예다. 벌써 60년 전. 시골 5일장에서, 또는 마을에 있는 담뱃집에서, 제법 크고 묵직한 종이봉지에 든 연초를 샀다.
그 당시 마을 개인 집에서도 '담배집'이란 간판을 내걸고 담배를 보루로 팔았다.
그 당시 논일, 밭일을 하려면 많은 일꾼들이 늘 벅신거렸다. 일꾼마다 담배 한 갑씩 나눠드려야 했다. 피우던 안 피우던 간에.
2016년 작년에도 산소 이장 일을 하는데 사촌동생은 석공 일꾼, 포클레인 중장비 기사한테도 담배갑을 사다가 각각 나눠주었다.
예전, 내 할머니도 어머니도 담배를 피웠다. 겨울철에는 안방, 안방 옆 골방에서 담배연기가 뽀얗게 올랐다.
어머니는 젊은 날 이십대에 소박맞았던 분과 한을 풀으려고 젊었을 때부터 일부러 폈다고 했다. 담배 피우면 마음이 조금은 진정되는 것 같았다면서. 중년과 노년에 담배를 조금씩 피우는 것을 보았다. 이따금 살짝 뻐금 뻐금 댔으나 그다지는 아니었다. 젊은 날부터 가벼운 해소병을 앓아서 목구멍에서 늘 구렁구렁하는 소리는 아흔일곱 살 죽은 날까지도 냈다.
어머니의 담배 피해는 조금은 있었다. 이따금 옷에 담뱃불통이 떨어져서 태운 구멍이 드문드문 있었다.
더 늙어서는 더 이상 치맛자락, 바지자락에 구멍을 내지 않았다.
대전 사는 아버지가 시골집에 오면, 담배 재는 한지 바른 문, 문살 틈새에 잔뜩 있었다.
재떨이가 있건마는 나무 문살에 담뱃불을 짓이겼다. 탄 재를 빗자루로 털어서 쓸어내려면?
아버지를 힐끗 쳐다보았다. 골초인 아버지에 대한 기분은 뭐뭐 했으니까. 지독한 골초.
2014년 6월부터 2015년 2월 25일까지 어머니가 심장혈관, 뇌병변 치료받던 산 속에 있는 지방종합병원은 진폐환자 전용병동.
폐병환자, 폐암환자도 몰래 담배 피운다는 사실에 놀라서 내가 처음에는 숨을 헉 들이마셨지만 나중에는 별로였다.
그들은 진폐환자 임종말기에 와 있는데도 담배를 몰래 피우는 것일까?
21세기를 사는 초현대사회, 서울 송파구 번화가 도로변 쉼터에 걸터앉아서 뻐금대는 20대 여성들.
왜 이들은 담배를 피울까? 서울의 내 두 자식, 심신이 멀쩡한데도 왜 끊지를 못할까?
아무래도 담배 제조업체에서 담배에 마약 성분을 슬쩍 삽입했을 것 같다. 피우면 피울수록 더 피우고 싶도록, 담배를 전혀 끊지 못하게 하는 어떤 마약성분을 가감했을 것 같다. 이들 재배업자, 제조업자, 판매업자, 수입업자, 재정수입을 고려해서 허가를 내주는 담배 관련 공기업만을 탓해야 할까? 은근슬적 재정수입 증액을 고려한 정부기관들.
아니다, 나로서는 담배를 피우는 본인한테 더 큰 잘못이 있을 게다.
어쩌면 의지력이 약한 그들을 먼저 탓해야 할 게다.
'못난 것들 같으니라구, 그거 왜 못 끊어?
많은 사람들한테 눈총받고, 본인 건강 해치고...'
진폐환자 병동의 보도 끝에 달린 계단에는 왜 꽁초들이 많을까?
병원 내 환경미화원이 늘 빗자루로 쓸고, 걸레로 닦는데도 왜 꽁초들은 끊임없이 쌓이고, 담배 냄새는 절을까? 왜 노인환자들은 담배 피우면 더욱 병이 든다는 것을 알면서도 피울까?
꽁초 많았던 병원의 문제는 무엇일까?
본질은 무엇일까? 진폐환자가 유달리 많았던 이유는 무엇일까?
먹고살기 힘들었던 가난한 노동자가 왜 더 많이 담배를 피웠을까?
그 싸구려 봉지담배를, 그것조차도 돈이 없어서 살 수 없는 머슴(일꾼 할아버지)은 담배를 직접 재배했다. 그 쓰디쓴 잎사귀를 칼로 썰어서 신문종이에 침 퉤 뱉고는 종이를 말았다. 화롯불에 긴 담배대를 묻고는 불이 붙으면 뻑금거린 그 이유는 무엇일까?
울화가 연기되어 허공에 사라지는 것을 기대할런지도 모른다
때로는 억울하고 분해서 담배라도 태우고 싶었을 게다
아무리도 입이 심심해서 일 게다
이런저런 이유가 합당한가?
아무래도 아니다.
더는 안 된다.
안 된다.
안 돼.
더 이상 진폐환자가 내던진 꽁초를 보지 않아도 된다.
더 이상 그 병원에 가지 않는다.
어머니는 지금 그곳에 없다.
꽁초 많았던 병원.
그만 피우자.
그만 하자
그만.
끝.
2017. 1. 16. 월요일. 산다
빠르게 자판기 두둘기는 이유는 나중에 글감으로 쓸 수 있기에
생각날 때 그냥 다다닥 한다. 나한테는 그냥 다 글감이다.
32815 '호소문' 글에서 글감 얻었기에 '고맙습니다.'
첫댓글 장편 소설을 읽은 기분 입니다..
카페에 이런 긴글이 얼마나 읽을까? 의문이 드는군요..
글쓴이의 노고는 생각 않고 길고 지루하면 읽다가 중단 하거나 아예 읽지 않으니까요?
댓글 고맙습니다.
앞으로는 보다 짧게 올리겠습니다.
빠르게 글 쓰고, 빠르게 글 읽는 습관/버릇이 있는 제 탓이지요.
위 글 다듬어서 어떤 문학지에 올리려고 했으나.... 포기해야겠습니다.
산문 길이가 길면 독자들이 지루하겠지요.
일단 선생님의 장문의 글을 쓰시는 노고에 박수를 보냅니다. 헌데 요새는 너무 길면 지루해서 사람들이 금방 외면합니다. 참조하시구요.
아직도 우리나라 담배값은 너무 쌉니다. 현재 4500원에서 8000원정도로 올려야 합니다. 요번에 중국가서보니 대다수 담배가 8~9000원짜리로 피울만 하다고 일행들이 말합니다. 비싼건 15000원도 합니다.
저도 35세이후에는 한대도 안피웠고 두아들도 담배를 다행이 안핍니다. 담배는 건강에 최대의 적이라는것을 모르고 알게되면 늦은겁니다. 폐암환자다수가 골초입니다.
제가 가입했던 초창기 카페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에는 나이가 차이 많이 나서 활동을 접었더니만 제가 올린 글이 거의 다 사라졌대요.
다행히도 40대 불혹카페에서 제 글이 남아있기에 고마워서 퍼서 여기 5060카페에 올렸지요.
저는 지금 또 나이가 많아져서 만75살이기에 앞으로는 우리 카페에서 활동하는 거 꺼려지겠지요
앞으로는 보다 짧은 글 올려야겠습니다.
저는 일평생 담배 한 개도 피운 적이 없지요.
고교시절에 친구들이 피는 것을 보고는 한 번 빨았다가는... 쿨럭거리고는 ...전혀 피우지 못하지요.
제 아버지는 골초였지요. 그 결과는? 폐암 걸려서 서울대 병원... 지방대 병원.. 집나이 66살에 돌아가시대요.
그거 왜 피우나요?
국가 정부도 나쁘지요. 조세 수익을 위해서 담배를 피우도록 은근히 ....?
돈이 되면 그 어떤 짓도 하는 게 정부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