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과 무관심》
사람으로서 살아가는데 어떻게 살아야 잘 사는 것이고, 어떤 방법이 최선의 길이라는 정의는 없다.
가족ㆍ학교ㆍ사회에서 우리는 늘 사람들과 부딪히며 살아간다.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람 문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흔히 ‘인사만사人事萬事’라는 말이 있다.
어떤 일이든 사람과의 문제만 해결되면, 모든 일이 잘 된다는 뜻이다. <법구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지혜로운 자는 그릇되게 행동하는 사람을 훈계하고, 충고해서 그가 잘못되지 않도록 미리 예방해 주어야 한다. 그런데 현명한 사람은 지혜로운 자를 공경하지만, 자기 사견에 갇혀 있는 사람은 지혜로운 자를 멀리한다.”
위 내용을 정리하면, 첫째는 남에게 관심 갖고 충고를 통해 좋은 길로 인도해 준다.
둘째는 남의 충고에 감사히 여기고 충고해 주는 사람을 공경하라.
그런데 이렇게 할 수 있을까?
필자는 예전에 남에게 충고를 잘 하지 않는 편이었다.
솔직히 굳이 나와 관련되지 않으면, 피하는 편이었다고 보면 맞을 듯하다.
종종 불교계 신문이나 원고에서 문제점이 보여도 굳이 틀렸다고 말하지 않았다.
그런데 10년 전쯤이다. 어느 불교계 기자와 개인적으로 차를 마시며 대화하면서 ‘저 신문에 나온 원고가 교리상 문제점이 있어 보인다. 굳이 그분에게 말할 필요가 없어 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이때 그 기자가 내게 충고하였다.
‘스님께서는 공부를 한 학자인데, 당연히 지적해 주는 것이 옳지 않을까요?’
그 기자의 말에 나의 이기적 성향을 부끄럽게 여기고, 이후부터는 행동을 바꾸었다. 상대에게 충고를 해주는 것이 스님으로서의 도리라고 생각한 것이다. 충고는 잠시 서로 불편할 뿐이요,
미래를 위해 좋은 업[業 : 행동]이라고 본다.
그러면 그 반대인 무관심은 어떨까?
‘사오관셴스[少關閑事]’라는 단어가 있는데, 남이 어떻게 되든 말든 관섭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는 중국의 관습적 문화로 중국인들의 좋지 않은 습관 가운데 하나이다.
실제 어떤 할아버지가 길을 지나다 뇌출혈로 쓰러졌는데, 몇 시간 동안 수십여 명이 길을 지나가면서도 쓰러진 사람을 거들떠 보지 않았다.
결국 할아버지는 골든타임을 놓쳐 사망하고 말았다.
‘설마 그럴 리가?’라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실제 그러하고, 필자가 말한 것보다 더 심각하다.
각설하고, 글 첫머리로 돌아가자.
고대 석가모니 부처님 시대[BC 6세기]에도 남에게 충고하거나 충고를 좋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없어 부처님도 이런 말씀을 하신 것 같다.
상대에게 충고를 할 때는 적절한 시기에 하고, 빈정대지 않으며, 진심을 담자.
상대에게 진심으로 대한다면, 언젠가는 부메랑 되어 자신에게 행복을 가져다줄 것이다.
또 그 반대로 상대가 내게 충고할 때는 ‘내가 저 사람으로부터 아직도 사랑받고 있는 증거구나. 내게 무관심하다면, 이런 말도 하지 않을 텐데….’라고 받아들이자. 자기 성장의 기회가 될 것이다. 마음을 조금만 열고 살자.
[글쓴이 : 정 운 스님/ 니련선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