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 이상훈(33)의 야구인생은 마운드에서는 화려했지만 인간관계에서는 순탄치 못했다. 럭비공처럼 어디로 튈지 모르는 거침없는 성격은 주위를 피곤하게 했고 그 때마다 구설에 올랐다. ‘야생마’라는 별명은 로커를 연상시키는 치렁치렁한 머리카락보다 직선적으로 터져나오는 그의 기질에 오히려 더욱 부합할지도 모른다.
‘반기의 역사’는 고려대 시절부터 유명했다. 3학년 때 호랑이 사령탑이던 고 최남수 감독의 눈을 피해 3개월간 도망을 다니다 결국 무릎을 꿇고 다시 글러브를 낀 일화는 널리 알려져 있다. 92년 국내 역대 최고 계약금(1억8800만원)을 받고 LG에 입단해서도 ‘야생마’는 결코 ‘양’이 될 수 없었다. 자존심을 목숨보다 소중하게 여기는 성격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불협화음을 노출할 수밖에 없었다.
LG와 이상훈이 크게 틀어지며 마치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널 것 같던 사태는 97년 말에 터졌다. 해외진출 문제로 구단과 티격태격하던 이상훈은 구단 고위관계자와 물리적인 충돌까지 벌이다 결국 일본 주니치 드래건스로 떠났다. 일본에서도 잠잠하지 못했다. 98년 9월 20일 2군 강등에 불만을 품고 라커룸에서 소동을 피운 것을 비롯해 그로부터 4일 뒤 욱하는 성질을 제어하지 못하고 통역을 때리는 소동을 벌였다.
99년 마무리 선동열과 함께 주니치를 10년 만에 센트럴리그 우승에 올려놓는 데 공헌한 이상훈은 또다시 회오리 바람을 일으킨다. 다이에 호크스와의 일본시리즈를 코앞에 두고 ‘폭탄선언’을 하며 일본 프로야구계를 술렁거리게 했다. 일본 시리즈를 앞두고 뜬금없이 터져나온 이상훈의 퇴단발표에 주니치의 분위기는 찬물을 끼얹은 듯 가라앉았고 결국 주니치는 우승컵을 품에 안는 데 실패했다.
이상훈은 2000~2001년 메이저리그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에도 입단계약 첫날부터 화장실에서 담배를 피우다 발각되는 등의 기행을 일삼으며 걸끄러운 선수로 낙인찍혔다. 어쩌면 2년간의 짧은 미국 생활에서 이상훈의 앞을 가로막은 벽은 실력보다 적응력 부족이라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공교롭게도 이번에 ‘야생마’에게 단단한 고삐를 채우기로 마음먹은 이순철 감독 역시 현역 시절 ‘반기의 역사’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이력을 지녀 눈길을 모은다. 그 무서운 김응룡 감독도 이순철의 기고만장한 콧대를 꺾는 데 갖은 애를 먹었고, 이순철은 전지훈련 보이콧까지 치달은 96년 ‘하와이사태’를 촉발하며 호랑이 감독을 궁지에 몰아넣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