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802#제401차강원도영월:왕사남의 현장[청령포]기행(1)기행 답사기를 써야 한다는 생각은 있었지만 게으름을 부려도 너무 많이 부렸다. '핑계 없는 무덤이 없다'는 속담 처럼, 없는 실력에 머리를 쥐어짜며 써놓으면 댓글 하는 없는 글을 쓴다는 것도 고역이었다. 죄수에게 가장 혹독한 벌이 우물을 파게 했다가, 물이 나오면 다시 메우라고 하는 것이다. 땀 흘리는 노력의 허무감을 느끼게 해서 교정의 효과를 높이겠다는 방법이다. 예전에 영월기행은 몇번 했던 터라 계획이 없었다. 어느 회원이 답사 추천을 했다. 영화의 배경은 영월 청령포이지만, 왕사남의 촬영은 대부분 경북 문경 셋트장이었다.
답사기행 날짜는 다가오는데 강원도 영월에 폭우가 내려 서강을 건너는 배가 운항을 못할수 있다. 청령포에 입장이 안될수 있다며 대체 여행지를 준비 하라고 했다. '지성이면 감천이다'라는 마음으로 제401차 기행 출발했다. 휴게소를 2군데 거쳐 청령포 주차장에 도착하니 배를 타려고 줄선 사람들의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어제까지는 강물이 많아 배가 뜨지 못했다. 30분을 기다려 배를 타고 강을 건넜다. 다리를 놓아도 되지만 유배지의 극적인 효과를 노리고 있었다. 청령포 해설사의 집에서 부터 유창한 해설사를 따라 답사를 시작했다.
청령포는 단종의 유배지이다. 조선 제 6대 왕이자 문종의 아들로 이름은 홍위이다. 1452년 문종이 재위 2년만에 죽자 12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랐다. 병약했던 문종은 자신이 죽기 전 황보인, 김종서 등에게 세자의 보필을 부탁했다. 문종의 부탁은 불행이 되었다. 단종은 세조 찬위 후 이곳에 유배 되었다가 사약을 받았다. 조선 시대까지는 호랑이 등 맹수들이 득실거렸다고 한다. 단종이 한양 쪽을 바라보며 시름에 빠졌던 노산대가 있다. 다만 산에 막혀서 주변 풍경은 온통 산뿐이다. 갇힌 지형이라 단종은 부인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자규가’를 부르거나 돌탑을 쌓는 등 쓸쓸하게 살았다고 한다. 청령포 안에서는 단종어소와 관음송, 망향탑, 노산대 등 단종의 삶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유적지가 있다.
단종어소는 단종이 살던 집으로 1996년 홍수로 떠내려갔는데, 졸속으로 복원해서 웬 으리으리한 기와집이 되었다. 옆에는 단종을 따라 온 궁녀들이 생활한 행랑채가 있다. 단종어가 뒤쪽에서는 관음송(천연기념물 제349호)이 있다. 또 한양에 두고 온 정순왕후를 그리워하며 쌓았다는 망향탑과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젖었다고 하는 노산대, 단묘유지비,금표비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