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으면 애 된다는데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 정장영
‘늙으면 애가 된다.‘는 말을 어른들로부터 자주 들으며 자라왔다.
그 때는 무슨 뜻인 줄도 몰랐다.
나이가 들면서 좀 알게 된 것 같다.
요약하면 시람 대접을 제대로 못 받는다는 뜻이다.
사전적으로는 ‘늙음’은
‘① 나이를 많이 먹다.
② 겉모습 따위가 제 나이보다 더 들어 보이다.
③ 지나치게 익거나 자란 상태가 되다’. ‘애‘는
① 성년이 되기 전의 아이
② 나이가 어린 사람
③ 어른이 아닌 제삼자를 예사롭게 이르거나 얕잡아 이르는 말
④ 근심에 싸여 초조한 마음속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
⑤ 마음과 몸의 수고로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지금은 핵가족시대라 실감하지 못하지만
대가족시대에는 실감할 정도였다고나 할까?
상 할아버지. 상 할머니에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셨으니 말이다.
수명도 짧았다지만 의사결정은 물론 신체적 생리적으로도
쇠퇴해져 감당하지 못해 도움을 받아야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가족시대를 지나 장수와 핵가족 시대라 늙은이끼리 산다.
얼마 전에 황당한 일을 당했다.
정수기 임대 계약을 하는데 나이가 많다고 젊은이 이름으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어쩔 수 없이 딸의 이름을 빌어 계약을 헸다.
인격적 대우를 못 받은 경우랄까,
서운하게도 죽을까 봐 염려한 것일까?
한때 경로우대로 시내버스 무임승차 제도가 있었다.
인식부족으로 시골길에서 노인들만 있으면 정차를 않고 지나가버린다.
나중에 알고 보니 백해무익(百害無益)이라는 것이다.
인생을 살아보지 않은 기사들은 항시 청춘인 줄 알았을 것이다.
인생을 착각한 경우다.
‘시간은 돈이다.’
사납금을 못 채우는 기사들은 아예 노인은 승객이 아니다.
동작이 느린데다 보행보조기까지 있으니 금쪽같은 시간을 보내야 한다.
어쩌다 승차해서 급정거라도 하면 사고가 나기 쉽다는 이야기다.
여러모로 푸대접을 받지만 스스로 처신하기 나름이다.
어려움을 이겨내고 늙음을 어렵게 포장하다보니 세상 사람들은 이렇게도 평한다.
노선(老仙), 노학(老鶴)이 있는가하면,
노동(老童), 노옹(老翁)이 있고, 노광(老狂), 노고(老孤)가 있으며,
심하면 노궁(老窮)에 노추(老醜)로 나누기도 한다.
나는 과연 어느 부류에 들까?
더욱 어린이와 같이 생각이 좁아지는 것이 문제다.
조그마한 일에도 서운함을 느끼고 노여움을 사는 경우다.
그저 들어 넘겨야 하는 일을 오래 간직하며
군소라가 있고 그 반복이 심한 경우다.
인생으로서 늙음은 피해갈 길이 없다.
그래서 애가 된다는 것이다. 동심을 미화도 한다.
순수하고 깨끗함을 이른다고나할까?
세상을 바로 보고 제대로 사심 없이 공정하게 원론적으로 보자는 가르침을 주었다.
이제 애들이 모이는 곳이 유치원이라기보다 양로원과 요양원으로 바뀌고 있다.
교사라기보다 요양사애 복지사가 돌보아 주어야 살아갈 세상이 되었다.
사람대접을 못 받으니 ‘늙으면 애가 된다.’는 옛말이 맞아가는 것이다.
귀소성(歸巢性)이란 말이 있는데,
인생도 그 한 과정이랄까?
어린이는 나라의 보배라 칭송헸었는데 '어린애'는 늘지 않고 ‘늙은 애’만 늘어간다.
국가 사회적으로도 큰 문제다. 내 마음은 청춘인데 늙은 애로 본다.
늙으면 애 된다는데 어쩌다 치매라도 걸리면 애 만도 못하니 변명의 여지도 없다.
내 생에 산아제한(産兒制限)은 언제고 이제 파격적인 출산장려책도 그 효력이 없다.
속담도 변했다
병의원이나 요양원에서 죽으면 객사(客死)가 아니라 복인이 되었다.
이제 이 길을 걷지 않은 분은 거의 없다.
옛날은 집 밖에서 죽으면 객사로 불행이고 자택이면 복인이며 호상(護喪)이라 했었는데….
(2023. 5.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