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이로 여행8 - 시타델에서 십자군을 맞아 예루살렘을 탈환한 살라딘을 보다!
올드 카이로 에서 택시를 타고 시타델 로 가는데, 거리는 무질서하기 짝이 없고
신호등이나 횡단보도가 전혀 없기 때문에.... 도로를
무단횡단 하는 사람들을 보고도 차들은 절대로 속도를 줄이는 법이 없습니다!
연방 시끄럽게도 경적을 울려대며 차선도 희미해 없는 것과 같은 도로 에서
머리카락 한 올 틈만 있으면 차 머리를 우선 들이밀고 보는데....
교통질서 하나만 보면 선후진국이 분명 해지니... 일본이나 미국, 유럽이
상위이고 그아래 한국, 그밑에 중국과 태국, 그아래 베트남과 이집트 입니다?
20여분이나 달렸을까요? 드디어 오른쪽에 성벽 이 나타나더니 저 멀리 앞쪽에 성벽을
두르고 언덕위에 우뚝 선 모스크 가 그 웅자한 자태를 드러내니 우린 과거 카이로와
이집트를 통치하던 왕들이거처했던 아랍어로 일 아루아 라 불리웠던시타델 에 온 것입니다!
그런데 출입문은 닫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입장하지 못한 채 출입문 밖에
운집해 있으니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데.... 벌써 문을 닫을 시간은
안되었을 텐데 영문을 모르겠네요??? 앞쪽으로 나아가 눈치를 살피건대
아마도 너무 많은 사람들이 이미 입장해 있기로 인원을 통제 하는 모양입니다?
기다리노라니..... 나오는 사람은 철문은 닫은 채 쪽문으로 내보내는데 관광버스가 빠져
나오지 못해 안달을 하네요? 그때 울 마눌이 언제 들어 갔는지 우리 3명 더러
빨리 들어오라고 외치는데..... 그러니까 서양인들이 들어가는 것을 보고 잽싸게
뒤따라 들어간 것 같은데, 우리는 들여 보내주면서도 이집션들은 계속 출입을 막네요?
언덕을 오르며 무슨 이런 일이 다 있나 하고 의아해 했더니.... 우린 50LE (1만원) 티켓을
끊어 입장하는데 마눌의 말이 현지인들은 입장료가 공짜(?) 인 것 같다나요?
성벽은 너무나도 웅장하고 튼튼 해서 적군이 공격하기에는 참 어렵겠다는
생각이 드는데...... 사원이 여럿 있는양 그 미나렛 이 하늘을 향해 치솟은게 보입니다.
무더위에 갈증이 너무나도 심하여 매점에서 찬 물 을 사는데, 가격이 5파운드
(천원) 로 비싸다 보니 마눌이 나중에 민박집에 가면 있다고 사지말고
그냥 가자네요.... 세상에! 아낄게 따로 있지? 아 염천 무더위에
강행군을 하는데 물을 먹지 못해 체력이 떨어지면 결국 우리 손해인 것이라?
울 마눌은 국내에서 평소에 쌀은 어느 마켓이 싸고 세제며 비누는 다른 어느 마켓이
싸며 무와 추어탕은 또 5일장이 싸다는 식으로..... 반드시
한푼이라도 싼 곳에서 따로 따로 구입 하는 것이 몸에 배여있다 보니 또 그
버릇이 나와 매점의 물이 민박집 물 보다 배 이상 비싸다는 논리를 펴는 것이라?
야자수 우거진 길을 따라 당당하게 버티고 선 성벽과 망루 와 살라딘의 우물 을 지나
오른쪽에 나타나는 사원은 시간 관계상 포기하고 왼쪽으로 모퉁이를 돌아가니....
잔디 밭에는 많은 현지인들이 희잡을 두른 여인 과 아기를 데리고 마치
가족소풍 나온 것처럼 앉아 있는 모습을 보는데..... 터키
에서도 보았지만 이 아랍 사람들은 참으로 가정적 이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여기 시타 델 (il-Qal'a 일 아루아) 은 아이유브 왕조 의 창시자 살라딘 이
십자군에 대항하기 위해 1176년에 무캄마 언덕에 쌓은 요새로
이후 정치의 중심지 역활을 해 왔다는데.... 입장료 50£E
(책에는 20LE 였는데!!!) 금요일 은 예배가 있는지 휴무 라고 합니다?
이집트는 BC 3000년 메네스왕 이 상,하 이집트를 통일한 후, 고왕국과 중왕국 시대를 거쳐
BC 1565년경 아멘호테프 1세는 이집트를 150년간 통치하던 외래인 침입자
힉소스인 을 몰아내고 테베를 수도로 신왕국 을 건설하는데.... 이를 제18왕조
라고 부르니, 호화로운 무덤이 발견된 투탕카멘 과 하트셉수트 여왕 이 여기에 속합니다.
제19왕조는 BC 1320년 람세스1세가 세웠으며 람세스2세는 BC 1,275년 시리아 에 진격해
히타이트 왕과 카데시의 전투 를 치르며 아부심벨 등 대신전과 조상을 건축하는데
이 시기 모세가 출애굽 을 한 것으로 보이나 구약성서에 장정 60만의 탈출은 과장됐습니다.
출애굽은 실제로는 소수 인원인 것으로 짐작 되는데..... 람세스의 미이라가 장수하여
노환으로 죽은 것으로 밝혀진 때문에, 최근에는 그 이전인
18왕조 때 인 투트모세 3세 때로 보는 학자도 있지만 사실적 근거는 약하다고 합니다?
그후 이집트는 쇠퇴하여 BC 1080년 리비아인과 누비아인이 이집트를 지배했으며
BC 525년 페르시아의 침략 을 받아 그 지배하에 들어가므로써 멸망합니다!
이후 BC 322년 알렉산더의 침략을 받아 사후 부하 장군 프톨레마이오스 가
새 이집트 왕조를 세우며 BC 30년 클레오파트라 때 망하여 로마제국의 땅 이 됩니다.
이후 641년 이슬람 을 믿는 아랍의 아무르장군이 침입하여 정복되고 푸스타트에
도읍을 정하니 오늘날의 카이로 인 데, 705년에 수니파 우마이야왕조 가
세워졌으며..... 그후 969년 시아파 고우하르 장군에 점령되어 파티마왕조
가 시작되는데 도읍을 카히라라고 했으니 오늘날 카이로 이슬람 지구에 해당됩니다.
이후 바그다드의 수니파 압바스왕조 의 세력이 약해져 터키지역에서 오스만 터키가
일어나 바그다드의 칼리프 는 이름 뿐이고 아랍이 오스만 술탄 의 휘하에 들어
가는 데... 세월이 흐르면서 오스만 터키 세력도 약해져 칼리프와 술탄은 명목
뿐이고 각지에는 유력자이자 장군인 아미르 들이 분할 통치하는 시대로 변합니다.
이 무렵 오스만 터키의 침입 에 전전긍긍하던 비잔틴(동로마) 제국 의 황제가
그간 동서 기독교 교회의 대립에서 저마다 우월적 지위를 주장해
왔었는데 비잔틴 교회의 자존심을 버리고 로마 교황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1095년 11월 로마 교황 우르바누스 는 비잔틴교회를 누르고 기독교 주도권 을 잡을
호기로 인식하고 클레르몽 공의회 에서 십자군 궐기를 제창하니...
독일과 프랑스 및 이탈리아에서 모인 6만여명 제1차 십자군 은 고드프루아
와 보드엥 형제의 지휘로 독일을 출발해 헝가리를 거쳐 비잔틴에 이르게 됩니다.
비잔틴 황제가 보급을 잘 해주지 않자 연도의 “기독교 마을을 습격해 약탈로 배를 채우며”
해협을 건너 터키에서 셀주크 터키군의 습격 을 받아 만여명을 잃고는 우회하는데
험한 산맥을 돌아 평야에 내려와서는 동생 보드엥 이 본색을 드러내어 기독교
도시인 에데사 로 들어가 이슬람으로 부터 보호해 준다는 핑계로 성주의 양자 가 되었으나....
성주가 죽기를 기다리지 못하고 배신하여 직접 죽이고 도시를 탈취해 1098년 에데사
백국 을 설립하고는 주저 않는데.... 이래저래 병력이 3만으로 줄어든 형
고드프루아는 안티오크의 이중성벽 을 공격하지만 이슬람
아미르(영주겸 장군) 야기 시안의 선방으로 8개월이 지나도 함락하지 못하다가....
안티오크의 아미르에게 불만을 품은 아랍인 피루쥬의 내통 으로 성을 함락한
후에 3만이 넘는 이슬람 및 유대교도를 노인과 어린애까지 무참히
살육 하고..... 기독교 십자군 국가인 안티오크 후국 을 세워 들어 앉게 됩니다.
분노한 아랍군 지원군이 도착해 성이 함락되기 일보직전에 기독교 사제 피터바르툴
이 성 지하에 예수님의 옆구리를 지른 로마군의 창 이 있다는 계시를
받았다고 주장해서는 지하 땅 속에 묻힌 성스러운 창(?) 을 발굴해서는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고 외치니 병사들의 사기가 올라 아랍군을 격퇴합니다.
1년간 안티오크 성을 차지하고 지내다 보니... 목적을 잃은 병사들 사이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십자군 고드프루아는 무거운 엉덩이를 일으켜 남진하여....
1099년 예루살렘 성 을 포위해 고전 끝에 성의 약한 부분을 공격해 항복을 받습니다.
그러나 항복하면 목숨만은 살려준다는 약속 을 저버리고는 모든 아랍인과 유대인을
노소불문하고 짐승 까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채를 죽이니....
종군한 기독교 사제의 기록에 따르면 “예루살렘은 무릎까지 피바다” 를 이루었다라?
아마도 “이교도의 피로 더렵혀진 성도 예루살렘을 정화” 한다는 생각 이었는지는 모르
겠지만... 이렇게 세워진 예루살렘 왕국 에서는 고드프루아가 왕이
되었으며, 1년후 그가 죽으니 에데사에 이어 안티오크 까지도 동생 보드엥이 차지합니다!
이슬람은 바그다드의 수니파 압바스 왕조와 카이로의 시아파 파티마 왕조, 멀리
터키의 셀주크 술탄이 서로 분열되어 암투 를 벌이고... 그 아래에
각 지역의 아미르 들이 각자 자신의 영지만을 지키려 하니 효과적인
대응을 못하는 가운데 예루살렘왕국, 트리폴리 백국, 키프로스 왕국이 세워집니다.
그 전해에 세워진 에데사백국과 안티오크 후국까지 합쳐 기독교측은 5대 왕국
을 세우고는 전선은 교착상태에 빠지는데..... 세월이 흘러
이슬람 측에서 모술의 총독 장기 란 인물이 에데사를 공격하여 1144년
에 함락 시키니.... 충격을 받은 유럽에서 제2차 십자군 이 일어나게 됩니다.
프랑스의 루이7세 는 3만의 대군으로 터키에 도착하나 셀주크군의 매복과 전염병, 식량
문제로 곤경을 겪으며 템플기사단에 의지하게 되는데... 마침내 독일
황제 콘라트 3세, 예루살렘 왕 보드엥 3세와 연합해 다마스쿠스를 공격 하다가 패퇴 합니다.
장기가 노예에게 살해당한후 아들 누르알딘 은 다마스크스를 방어한 후 1168년살라딘 을 이집트로
파병 하니.... 그는 과감히 진격해 시아파 파티마 왕조를 굴복 시키고 자신의 세력을
확장하는데.... 그후 오랜 기간 내실을 다지며 자립해 1176년 여기 카이로 무캄마
언덕 위에 시타 델 il-Qal'a 일 아루아 를 쌓고는 아이유브조 이집트 왕국 을 건설했던 것입니다!!!
그후 보드엥이 나병으로 죽자 그 누이와 결혼 했던 템플기사단의 기 드 루지앵 은 마침내
예루살렘 왕 이 된후 살라딘과의 평화협정을 깨고 1187년 이집트에서
시리아로 향하던 대상을 습격하여 사람들을 죽이고 재산을 탈취하는 만행을 저지릅니다.
이에 살라딘이 아랍군을 결속하여 6월에 예루살렘 북쪽 갈릴리 호수 티베리아 부근의
하틴 에서 1만5천의 기독교 군대를 전멸 시키고 남하하여 예루살렘을 함락 하는데.
살라딘은 신의를 아는 인물 로 과거 십자군이 약속을 저버리고 포로를 학살한
데 비해 그는 약간의 몸값을 받고 기독교 군대와 민간인들을 모두 풀어주니.....
그들 기독교도들은 축재한 엄청난 재산 을 수레에 싣고 무사히 서쪽 해안으로 물러갑니다!
이때 예루살렘 왕 기 드 루지앵 은 몸값 없이 살라딘의 후의로 풀려났는 데, 그는
배은망덕하게도 풀려난 병사들을 모아 북쪽 해안도시 아크레를 공격
해 옵니다. 예루살렘이 함락되면서 유럽에서는 제3차 십자군
이 일어나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프랑 스의 필립 2세, 독일의 왕이 참전하게 됩니다.
그러나 독일왕 프리드리히 1세 는 무려 10만 대군을 이끌고 터키를 지나는
데, 도중에 강을 건너다가 익사하게 되니...... 그 병사들은
십자군을 이탈하여 대부분 뿔뿔이 흩어져서는 고국으로 귀환해 버립니다?
영국왕 리처드 는 기 드 루지앵이 공성하며 고전하고 있던 이스라엘 최북단
아크레를 함락 한 여세를 몰아.... 남쪽으로
진격해서는 해안지역을 공략하며 자파 ( 텔아비브 남쪽 ) 를 수중에 넣습니다.
예루살렘으로 진격 했으나 프랑스왕과 사이가 좋지 않아 협동을 하지 못하여 1만
5천의 병사로 단독으로 공격하기에는 예루살렘성의 방비가 엄중한 것을
보고 고민하다가... 고국에서 동생 존이 왕위를 노린다 는 첩보를 받고는
살라딘과 협상 에 들어가 해안가 기독교 도시들을 그대로 인정하고
기독교도 예루살렘 성지순례 를 보장한다는 선에서 평화조약을 맺고는 귀합니다.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는 귀국 도중에 풍랑으로 배가 이탈리아 해안에 난파 되어
프랑스군의 눈을 피해알프스를 넘다가 독일군에 체포 되어 감옥에
갇히는데..... 독일왕은 묵은 원한으로 인해 그를 프랑스에 인도하라는
필립왕의 요구를 거절하고 대신에 엄청난 거액의 몸값을 받고 영국에 넘겨 줍니다.
이후 아랍에서는 살라딘은 죽지만 그 후예들은 세월이 흘러 마침내 기독교도들을
모두 지중해 건너편으로 축출하니.... 십자군 전쟁은 실패 로 끝나는데...
여기 이집트의 카이로가 십자군으로부터 공격당한 것은 1163년 예루살렘 왕국
군대와 5차 십자군, 7차 십자군 (알렉산드리아 바로 상륙함) 등 모두 3차례에 이릅니다.
그는 여기 카이로에 시타델( 일 아루아) 성채 를 쌓고 굳건히 방어한 덕분에....
3차례의 고비를 넘기고 이집트 왕국은 번영을 구가했으나 후일 투르크
노예인 맘루크 들이 1,250년에 반란을 일으켜 아이유브 왕국을 가로
채서 새 맘룩왕조 를 세우고 몽고군의 침입을 격퇴 하지만 오래 가지는 못합니다.
결국은 새로 일어난 오스만 터키의 지배 하에 들어가 이스탄불의 오스만
터키 술탄이 임명한 총독 이 다스리게 되는 것인 데.....
그 치소가 바로 여기 내가 서 있는 시타델 ( 아랍어로는 일 아루아 ) 입니다!
|
첫댓글 老年이 되면 누구나 네 가지 苦痛 속에서 살아간다.
孤獨苦 -고독의 고통은 혼자 노는 연습이지만 가까운 친구 몇 명은 두어라.
無爲苦 - 아무 것도 안하는 것도 고통이니 정할 것 없으면 걷기라도 열심히 해라.
貧苦 -갈수록 가난해짐도 고통이니 살 날들 만큼 돈을 묶어두어라.
病苦 -끝내 병고로 세상을 마감하지만, 열심히 병 고쳐가며 살자.
명은 하늘에, 몸은 의사에 맡기며 살자.
간강하시고, 행복하시기바랍니다.
🍃🍃🍃
무엇이든 한가지 일이 있으면 좋지요?
아니면 좋은 취미......
여행과 테니스와 바둑... 이렇게 흘러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