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문제는 이곳이 삼국지 카페가 아니기 때문에 넘어가겠습니다. 그러나 당시 촉에겐 형주가 중원공
략의 교두부였다는것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실입니다. 또한 님이 말씀하신대로 제갈량이 형주, 관우,유
봉, 상용일대를 포기했다면 제갈량 그자신의 능력에 문제가 있습니다. 관우는 촉나라 제일의 장수입니
다. 내부결속을 위해서 난세에 관우같은 맹장을 죽인것은 사령관으로서 미친짓이죠. 상용일대도 사후처
리를 위해서라면 그것도 미친짓이죠. 상용은 위나라의 양양일대를 노릴 수 있는 노림수를 행할 수 있는
좋은곳입니다.
← 상용 일대를 위한테 뺏겼다는 게 아니라, 상용을 지키는 유봉을 그러한 명분으로 처리해 후사 문제에
뒤탈이 없게 하는 거죠... 좀 불편한 진실이지만, 삼국지의 구도를 보면 아실 텐데요? 오래 전부터 제갈량과
관우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알력다툼 뿐만 아니라 코드 역시 맞지 않아서, 제갈량이 적절히 희생양으로 남겨둘
사석으로 관우를 쓴 건 제가 봐도 수긍이 가는데요? 제갈량의 체계적인 관료화 시스템에 조운은 그야말로 충실히
따르고 장비 역시 제갈량의 그 지모와 시스템을 믿어 주고 했지만 유독 관우만은 그렇지 못합니다. 그럴 입장도
못 됐구요.. 관우만의 프라이드가 너무 강해서기도 하고, 기존 유비세력의 대표주자로서 제갈량 관료 체제에 대한
텃세일 수도 있지만; 제갈량이 구현하려는 체계적인 군신관계와 관료 시스템의 국가 구현이라는 코드에 상당히
반발할 입장이었던 것 만큼은 확실하죠. 제갈량 입장에선 관우는 카리스마 있는 맹장으로서 우리군의 든든한 버팀목
이라기보다는 주인 유비님의 튼튼한 나라 체계에 맞지 않는 걸림돌의 인상이 더 컸습니다. 어쨌든 제갈량으로서는
관우는 위연과 더불어 체계적인 촉을 구현하기 위해 기회가 된다면 적절히 숙청 대상이 될 수 있는 0순위죠//
(화용도에 굳이 관우를 보냈던 이유 역시 관우와의 2인자 서열 다툼에 대한 마침표의 발로구요...)
그리고 촉에게 중원공략의 교두보가 형주? 당시 형주는 오, 위 어느 나라든 다 꿀꺽하고 싶어 안달나 있던 요충지입니다.
번성 전투 전 후를 보면 아시겠지만 오와 위가 함께 달려들죠..; 그만큼 지키는 데 무리가 따르면 버리는 게 맞는 법이거늘..;;
그럼 왜 애초에 제갈량은 천하삼분계의 근거지를 익주로 했을까요?
그냥 형주에서 살림 차리고 유장 가지고 적절히 부추겨서 위를 견제만 해 주면 될 걸?
소음인인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국력차이가 나는데 줄기차게 공세를 취한다? 이거야 말로
가장 안좋은 방법입니다. 조조는 원소와 전투인 관도대전을 먼저 일으키지 않았습니다. 원소가 먼저
걸어오자 싸웁니다. 원소와의 싸움에서 조조가 먼저 건 싸움은 하나도 없습니다. 세력이 두렵기 때문이
죠. 제갈량의 무리한 북벌로 인하여 촉의 국력은 더욱 떨어지게 됩니다. 공세를 취하는것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는 국력을 쓰고도 얻은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제갈량의 타이밍이 좋다고요? 글쎄요.
1차북벌의 타이밍은 저도 감탄을 합니다. 서량군사령관이 바뀌고, 황제도 바꾼상태에서 치는.....
그러나 2차부턴 아니라고 봅니다.
← 제갈량의 무슨 타이밍이 안 좋았죠? 어찌 되든 시간을 더 주면 위는 더 압박해 올 것이 뻔한데요?
그게 제갈량의 전략적 실수다? 막말로 제갈량 마지막 출사표 때 위와 오의 전쟁에서 오가 승리하고 제단의 그 제사가
(일단 사실 여부는 집어치우고 스토리대로 따라가라면) 성공하기만 했어도 전황은 어찌 될 지 모릅니다. 제갈량을 제대로
따라가 줄 만한 촉의 역량이 부실해서임은 확실합니다. 촉 내부에 그럭저럭 실무는 잘 하지만, 카리스마 있는 이도 없었고
무엇보다 황제서부터가 어리석고 그 측근에서부터 썩었으니 말이죠... 설령 그 대세를 완전히 뒤바꾸기 힘든 어려운 조건
이이었다 한들, 당시 자신의 일생을 바칠 충의, 그 숙명을 위해 내던질 카드가 원정 말고는 뭐가 있었을까요? 오히려 가만히
냅두고 자신의 세대가 넘어가면 촉은 더더욱 일어날 수 없을 텐데요... (그렇다고 무모한 쾌도난마의 급습전을 감행했다간
자기 살아있을 때 나라 망해먹을 수 있는 역효과가 날 수 있고, 실제로 제갈량이 가장 조심했던 게 이건데요..)
더군다나, 제갈량의 출사표를 향한 충심은 어리석은 전략이고 어떻고를 떠나서 그 자체로 감탄할 만한 겁니다. 이런 글도 많이
봤죠.. 제갈량은 이미 삼고초려 때부터 얻지 못할 천하임을 이미 알았으나 그걸 알면서도 유비에 대한 변함없는 충심으로
출사표를 감행해 간 거라고... 거기서 위가 침략해 들어오기를 기다리는 것은 더욱 비효율적일 뿐 아니라, 제갈량의 도의적
가치관과 명분에도 합당하지 않았겠죠...
조조나 카이사르가 보인것을 보면 모르시겠나요? 원소와 폼페이우스라는 막강한 세력앞에서도 그들
은 관도대전에서 병력을 나누어서 군량고를 찌르고, 디라키움 포위에서도 적은병력으로 대병력을 포위
해버렸습니다. 자신들이 거느린 병력이 괴멸당하며, 다시는 재기할 수도 없는데요. 이런말이 있습니다.
"자신의 모든힘을 붓지 않고 막강한 적과 맞서려고 하지마라" 제갈량의 실패원인은 이것입니다. 막강
위나라에 맞서서 모든힘을 붓지않고 나누어 붓은것... 이것이 실패원인입니다. 조조와 카이사르는 다
자신이 짜낼수 있는 모든병력을 짜내서 일생일대의 도박에 겁니다. 물런 조조의 경우는 다른지역의 방
어군이 따로 있기 때문에 전병력이 아니죠. 그러나 황제를 빼기고, 원소가 영토를 갈라버리면 조조 역시
도 끝난거나 다름없는 상황에 빠지게 됩니다. 막강 위나라에 맞서 일생과업을 수행하면서 너무 안전만
을 추구했다는점.... 자신의 힘에 100%를 쓰지 않은점!! 문제가 있다고 봅니다.
← 이건 마치 제갈량이 신중주의라서 조직과 시스템만 신경 쓰고 안정화시켜 적을 찔끔 찔끔 건드렸다는 의도로 오해할
공산이 충분히 큰데요, (소음인과 태음인을 헷갈리는 경우와 같지만, 추모왕님이 말씀하신 스타일은 오히려 사마의에
가깝습니다.) 제갈량의 조직, 시스템화의 소음인 가치관이 무엇 때문이었는데요? 정해진 물량과 군사력으로
최적화된 전투력을 발휘하기 위해서입니다. 자신의 힘을 100% 쓰지 않았다구요? 여유가 되는 촉의 모든 힘은 다 긁어내서
그것도 자신이 직접 출전까지 하여 작전 일일히 다 지시해 가며 감행한 게 출사표인데, 촉이 그럼 당시 원정군 말고
무슨 대단한 잠재적 병력이라도 있었나요? 제갈량의 물샐틈 없는 전략과 완벽주의적인 작전으로 주어진 병력에서
적에게 최대한의 위력을 발휘하기 위해선 제갈량만의 체계적인 시스템이 필수입니다. 거기다 위의 대군을 대파한
사례들만 봐도 그건 입증되구요... 그걸 그냥 고작 성 몇개 뺏은 거랑 찔금찔금 입힌 피해라고만 표현한다면 정말
할 말이 없구요... 자꾸 조조의 경우랑 비교하려 하시는데 조조의 세력 성장 배경과는 너무나도 타이밍과 입장이 다릅니다~
서양의 경우는 더 그렇구요~~ 촉의 제한사항과 당시 제갈량의 의도대로 잘 수행되지 못했던 주변 인재나 상황들을 탓하려면
탓해야지 제갈량의 선택이 잘못됐다? 그럼 말을 바꿔 유관장 조자룡 거기다 다른 인재들도 살아있었을 시절에는
어땠을까요? 제갈량의 출사표때나 그때나 변함없는 자신만의 전략에 조조군이 한번이라도 이긴 적이 있었습니까?
위험없이 대업은 없습니다. 제갈량이 가장 성공한 1차북벌도 성은 딸랑 3개 빼앗습니다. 안정,천수
남안.... 제갈량 좀더 병력을 투입하여 조진을 완전 괴멸시켜서, 장안 바로 위에 있던 성이름이 ㅡㅡ?
아 미성까지 차지했다면 어댔을까요? 어떤나라를 침공할때는 빠른시간에 해치워야 합니다. 특히나 오
나라 옆에서 호시탐탐한 기회를 보던시대에는 더욱 빠르게 끝내고, 큰승리를 하여 중국천지를 요동치게
할 큰승리를 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오나라도 도울마음이 생기고, 위나라 민심도 흔들리죠. 제갈량처
럼 조금만한 승리만을 계속하면서는 국력이 약한 촉으로서는 100년이 걸려도 힘들죠.
← 조금 안된 말이기도 하지만, 당시 촉 입장으로서는 대업을 이룰만한 위험을 감행할 여건도 못 됩니다.
아니, 도박이라기 보다는 무모한 꼴아박기죠... 더군다나 당시 상대는 원소가 아닌 위나라입니다. 그리고
제갈량의 당시 촉은 조조의 그 때처럼 병력은 좀 적어도 그걸 충분히 활용해 줄 만한 인재가 다양했던
것도 아니구요.. (당시 조조군 장수와 군사들 보십시오~ 얼마나 많습니까?) 인재, 물량, 군사력, 어떤 점이든
관도대전 때보다 훨씬 더 불리한 상황이죠.. 그만큼 제갈량 자신이 이끄는 군의 움직임 하나에만 행보가
주목될 수밖에 없는 부담스런 입장이기도 했구요... 게다가 조조와 원소의 관도대전은 비록
조조측이 숫자는 적다 해도 양 대군이 건곤일척으로 마주 싸우는 형국입니다. 거기다가 당시는 삼국의 형세
가 아니었기 때문에 원소에게는 조조 말고도 다른 이런저런 불안요소도 있었을 뿐만 아니라 슬슬 내분의
분위기까지 보여 줬구요... 반면 출사표는? 제갈량의 원정군 막고 있을 동안, 위에게는 다른 사이드에서 촉 본국을
털어먹을 충분한 군사력이 차고 넘치는 상황입니다.. (무엇보다 촉은 인재가 모자랐으니까요) 거기서 무모하게
우르르 갔다가 성도 털리면요? 원정군만 샌드위치 쌈싸먹히는 꼴이 되고 말죠. 경천동지할 승리며 쾌도난마의
승리라는 것은 상대가 그런 타격을 허용할 만한 약점이나 배경을 만들어 줄 때나 가능한 거죠.. 그 마저도 도박이지만....
북벌시 제갈량이 퇴각한 이유는 2가지 정도입니다. 전략적 전투에서 패하여, 보급로가 끊어질 염려가
있을때, 전술적으로 전략적으로 중요한 전투를 승리하였어도, 군량이 없어서 입니다. 효과적인 승산이
없어서가 아니라 어쩔수 없이 퇴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퇴각시에도 조심성 많은 제갈량은 당연히 복
병등으로 적을 저지하면서 퇴각했을 것입니다. 무슨 솥 몇개 걸어서 퇴각하는것은 말이 안되죠. 그리고
촉의 퇴각은 님이 말씀하신대로 패하여 줄행랑하는것이 아니라 물러나는것 뿐입니다. 위나라도 그전에
많은피해를 입었기에 못추격하는거죠.
← 일부 동의는 합니다만, (그리고 이건 연의와 정사의 고증 따지기가 애초 그 의도도 아닙니다.) 제갈량과
사마의가 대치하면서 장기전으로 치닫자, 출사표의 퇴각은 사마의의 지구전과 촉 내부의 이간질 등에 의한
철수지, 제갈량의 전략적 패배? 가정 전투에서의 마속의 실수 말고 제갈량이 전략적으로 패배한 전투는 단
어차피 제갈량이란 인물상에서 출발한 거니 굳이 정사의 역사적 사실까지 참고할 필요는 없다 느꼈습니다. 즉, 어떤 비유를 넣건 인물들간의 스타일과 재능의 뚜렷한 차이점을 제시하는 게 제 목표였으니까요.. 적어도 제갈량만큼은 확실히 정사와 연의에서의 가치관과 인물상, 재능 등이 흡사해요... 그리고 솔직히 다른 인물상들도 연의의 과장에 그렇게 크게 영향받고 구애받고 한 건 없구요; 연의는 사실이나 결과의 과장이 좀 심했을 뿐이지 인물 성격과 스타일을 크게 고쳐놓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주연급은 더더욱.
첫댓글 여기가 삼국지 카페는 아닙니다만, 그래도 두분 계속 좋은 글 이어주셧으면 하는 바램이 있네요..ㅎㅎ
어쩌다 보니 글이 길어졌군요; 나중에 여건이 되면 삼국지 인물에 관한 체질로 따져본 심학의 평론글이 있는데 그 책 내용 옮겨보도록 하죠...
나중에 동아시아 역사 토론방으로 옮기면 어떨련지 그리고 글을 읽다보니 확실히 느꼈는데, 소설이랑 역사를 혼동하는듯 하군요.
어차피 제갈량이란 인물상에서 출발한 거니 굳이 정사의 역사적 사실까지 참고할 필요는 없다 느꼈습니다. 즉, 어떤 비유를 넣건 인물들간의 스타일과 재능의 뚜렷한 차이점을 제시하는 게 제 목표였으니까요.. 적어도 제갈량만큼은 확실히 정사와 연의에서의 가치관과 인물상, 재능 등이 흡사해요... 그리고 솔직히 다른 인물상들도 연의의 과장에 그렇게 크게 영향받고 구애받고 한 건 없구요; 연의는 사실이나 결과의 과장이 좀 심했을 뿐이지 인물 성격과 스타일을 크게 고쳐놓은 것은 별로 없습니다. 특히 주연급은 더더욱.
글쎄요. 위나라의 조인,조홍등은 삼국지연의로 인하여 형편없는 사람으로 나옵니다.
연의에서 좀 비중없이 나왔다 뿐이지 형편없었다구요? 제가 연의를 읽어볼 때는 그런 인상 없었는데요? 물론 정사에서 이 둘이 맹장이라는 건 알고 있습니다만; 그리고 인물상이라는 것도 그런 단순한 무력 수치의 차이 같은 것에 대입하면 곤란하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