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8 - 십자군 전쟁에서 가장 치열했던 전투장 아크레(아코)에 가다!
1월 25일 (금) : 갈릴리 호수 티베리아 - 버스 - 아코(아크레) - 하이파
1월 25일 갈릴리 호수의 도시 티베리아 에서 버스로 하이파로 향하는 데.... 이곳이 이른바
이스르엘 평야로 붉은색의 흙에서 보듯이 이스라엘에서 가장 비옥한 땅 이라고 합니다.
가는 도중에 들판에는 상수도 시설 인 듯...... 아주 큰 연못들이 연이어
있는 것을 보니 이 지역에서는 물 걱정만은 안하고 살겠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이파시의 외곽에다가 새로 지은 하이파 버스 터미널에 도착해서는 다시
버스를 바꾸어 타고 이스라엘 북쪽에 레바논 과의 국경인 아코(아크레) 로 향합니다.
고대의 아크레(아코)는 BC 1504년 이집트 파라오 투트모스 3세 당시의 기록에 보이며
또 성경에도 나오는 오래된 지명으로 고대에는 페니키아인 의 힝구 도시
였는데.... BC 332년 알렉산더 대왕의 침략을 받은후 이집트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지배를 거쳐.... 635 년 마호멧의 후계자들인 이슬람교도 에게 점령되었습니다.
또한 이곳 아크레(아코) 는 기독교 십자군이 성벽을 쌓고 최후 까지 버틴 곳으로, 예루살렘성
상실 후에도 무려 100년간이나 여기서 예루살렘 왕국을 명맥이나마 유지했던 곳입니다.
그러니까 1098년에 1차 십자군이 여기 아크레 성을 공략하여 차지한후 난공
불락의 요새를 건설하여 200년간을 버텼으나.... 마침내 1291년에
여기 아코(아크레) 성이 함락됨으로써 결국 십자군의 시대는 끝나는 것이지요!
유대 히브리어로는 아코이지만 이곳의 십자군 왕국이 주로 프랑스인으로 이루어진
탓에 "아크레" 라고도 불리우는 곳으로 해변가에 바다로 돌출된 부분에 견고한
성을 쌓은 덕분에 유럽과의 바닷길이 열려 있어 그렇게 오래 버틸수 있었던 모양입니다!
*** 현재의 아코(아크레) 시가지 모습 ***
그러니까 이슬람 군대에 겹겹으로 포위된 상황에서도 유럽으로 부터 바닷길로 병력과 군수물자를 계속
보급받을수 있었기에.... 무슬림들의 줄기찬 공격에도 무려 200년 간이나 오래 버틸수 있었습니다.
1096 년에 동로마제국 콘스탄티노플의 보스포러스 해협을 넘어서 터키로 침입한
십자군은 1098년에는 시리아 안티오케이아 (지금은 터키령) 를 점령하고
남진하여 여기 아크레 성을 공략한후..... 마침내 1099년 예루살렘 을
40일간의 포위 끝에 함락 시키고 기독교 십자군 예루살렘왕국을 건설하였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살아남은 자들은 아랍인과 유대인, 여자와 어린아이 가릴 것 없이
항복하면 살려준다는 약속을 헌신짝 처럼 저버리고 전원 몰살시키니.... 당시
기독교 종군 수도사의 기록에 예루살렘 시가지가 발목까지 피로 적시었다고 합니다.
이어 프랑크인들은 팔레스타인과 시리아 땅에 예루살렘왕국, 베이루트공국,
트리폴리스백국, 안티오케이아공국, 에데사백국등 5개 왕국을
세워서는.... 100 ~ 200년간 중동 아랍세계를 기독교 국가로 다스리게 됩니다.
바그다드의 유약한 칼리프를 대신해 실제 아랍세계를 지배하던 셀주크 투르크가 기독교 십자군
에게 허무하게 무너지자 쿠르드족으로 이집트의 술탄이 된 이슬람의 영웅 살라딘이
기독교 군대를 갈릴리 근처 하틴전투 에서 격파하고는.... 마침내 십자군에 뺏긴지
100년만인 1187년에 예루살렘 을 탈환하니 이에 놀란 유럽은 제3차 십자군 을 파견하게 됩니다!
*** 당시 전투를 영화화한 킹덤 오브 헤븐의 영화 포스터에서 가져 왔습니다 ***
셀주크 투르크 살라딘의 아랍군은 그 여세를 몰아 아크레등 여러도시를 수복하고
북쪽에 있는 도시 티레를 포위했으나 십자군의 강한 저항으로 실패합니다.
예루살렘이 함락 되었다는 소식에 전 유럽이 궐기하여 새로운 십자군이 도착해서
레바논의 티레 남쪽에 있는 아크레를 포위 공격 하는 것이 1189년의 일 입니다.
살라딘이 성의 포위를 풀기 위해 도착하나 독일왕 프리드리히가 20만
대군(소문에...) 을 거느리고는.... 보스포러스 해협을 건넜다고
하므로 이를 대비해서 북쪽을 경계하느라 전력을 다하지 못하는 데....
다행히도 독일왕이 강을 건너다가 사고로 강물에 빠져 심장마비로 익사 함으로써... 독일 십자군이
와해되니 아랍군은 간신히 한숨을 돌립니다. 당시 싱성로마제국(독일) 황제는 제후들이 선출
하는지라 누가 황제가 될지 모르는데다가 또 군자금을 댈 사람이 없으니 고향으로 돌아가 버립니다.
이슬람군의 아크레 성은 프랑크군에 포위되어 처절한 사투를 벌이고, 살라딘 이
프랑크군을 다시 포위하여 격멸하려는 그 순간에 프랑스 왕 필립 이 도착합니다.
이어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 가 키프로스를 점령한후 대군을 이끌고 바다를 건너오니
아크레성은 마침내 1191년 2년간의 오랜 사투 끝에 십자군측에 재차 함락됩니다.
*** 이슬람의 영웅 - 십자군으로부터 이슬람을 구한 술탄 살라딘 ***
자비로운 아이유브조 이집트의 술탄인 살라딘이 예루살렘성을 함락한후 적은
몸 값에 포로들을 석방 한 전례와는 달리,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는
살아남은 자 3천명을 성벽 위에 세우고는 성 밖의 아랍군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멀리 성 박에서 포위한 아랍군들이 안타까워서 소리 지르는 가운데 십자군들로 하여금
돌을 던져 아랍인 포로들을 쳐 죽이는 것으로 포로 문제를 깨끗이 마무리 합니다.
포로를 자비롭게 대한 살라딘에 비해 기독교 군대는 잔인무도하였으니 비교가 됩니다?
이렇게 이슬람 포로들을 잔인하게 돌로 쳐 죽이고는 이후 남쪽으로 진군한 영국의 사자왕
리차드와 십자군 연합 군대는 살라딘이 지휘하는 이슬람 군대의 방해와 집요한
습격을 간신히 물리치고는... 마침내 아르수프 연안 (텔 아비브 근처) 을 점령 하게 됩니다.
3차 십자군은 예루살렘으로 진공 했으나 성을 함락시키지는 못하고 시일을 지체하던 중에
영국 본국에 남은 아우 존이 왕위를 노린다는 소식에...... 유럽 기독교인의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허용한다는 조건으로 살라딘과 평화조약을 체결한후 급히 귀국을 하게 됩니다.
사자왕 리차드는 귀국 전에 히티의 전투에서 패배한 예루살렘왕 기 드 뤼지냥은
이미 위신이 실추된자 이니 그 벌로써 키프로스 왕으로 쫓아 버리는 데.....
( 그런데 역설적으로 그의 후손은 400년간 대를 이어 키프로스를 다스립니다? )
리차드는 자기 조카를 새 예루살렘 왕으로 임명하여 아크레를 수도로
정하니.... 그가 앙리 드 상파뉴 인 것이니 이후 아크레의
예루살렘 왕국은 1291년까지 100년을 더 명맥을 이어 가는 것이지요!
이후 100년의 세월이 흘러 1290년 몽고족의 침입 ( 이란을 거쳐 바그다드를 함락하고
다마스커스와 알레포를 점령했으며 예루살렘까지 침입하였음! ) 을 당하게 되자.....
아크레의 기독교 예루살렘 왕국의 군대는 중립을 지키면서 전황을 예의 주시하는
가운데.... 갈릴리에서 몽고군을 저지한 이집트의 맘루크 ( 원래는
초원의 셀주크족으로 노예였으나 군인으로 출세하여 아이유브조를
무너뜨리고 이집트를 차지함! ) 왕조의 술탄 칼라운은 드디어 아크레로 진군합니다.
이집트 왕은 전장에서 병으로 죽었으나 그 아들 킬릴 에 의해 포위된 아크레성은 프랑크군
이 성과 바다에서 사력을 다해 싸웠으나 유럽에서의 지원군은 이미 십자군에
대한 열기가 식어버려 키프로스 왕 앙리의 2천에 이탈리아 농민병 20척에 불과했으니.....
지원군을 합하여 1만 5천명의 기독교 아크레 수비군은 3만에 가까운 아랍
군대를 맞아 용전분투했으나 역부족이라.... 마침내 1291년
성은 함락되고.... 앙리 왕과 요한 기사단 등은 키프로스로 도피 하게 됩니다.
아코(아크레) 시가지로 들어서니 마침 금요일 이라 엘 자자르 모스크로 향하는
아랍인들로 발디딜 틈이 없으니... 이 사원은 아크레가 16세기에 오스만 터키
의 지배하에 들어가는 데, 총독 엘 자자르가 지었기에 그 이름을 땄다고 합니다.
녹색돔과 높은 미나레트 로 유명한 엘 자자르 사원에 들어가려니, 지금은 예배시간이니
두시간 후에 오라고..... 마음씨 좋아 보이는 팔레스타인 할아버지가 친절히 일러줍니다.
골목길로 들어서니 이곳도 이스라엘 도시 어디를 가나 마찬가지이듯이 복잡하고 비좁은
골목길로 이루어진 구시가지는 아랍인 차지인데, 유대인이 170년경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후 이스라엘 땅에서추방 되니......
빈 땅을 차지하고 2천년간 자손 대대로 살아온 사람들이 지금의 팔레스타인 이랍니다!
그러니 20세기 들어 유럽과 러시아 등지에서 2천년 전의 고향땅을 찾아서 돌아온 이스라엘
유대인들은 변두리 들판에 번듯하고 깨끗한 신도시를 새로 건설하여 거주하고 있는데
그래도 교회 간판이 보이는 것을 보니.... 여기에도 소수이나마 기독교도가 있는 것일러나?
아크레의 십자군의 지하 도시 는 입구가 천년 넘은 나무로 우거져 있으며,
지하 내부에는.... 회의실, 교회, 병원, 가게등 없는게 없을 정도로
볼만한 유서 깊은 곳이란다. ( 십자군이 일부러 지하에 건물을 지은
것은 아니고 그 폐허 위에 훗날 팔레스타인들이새로 도시를 건설한 것입니다! )
그러나 좁은 골목길은 불량스러워 보이는 팔레스타인 젊은이들로 인해 조금은
불안합니다만 도시를 한모퉁이 돌아가니 마주치는 아이들은 귀엽고....
그러고는 이어 시가지를 몇 골목을 돌아나가니 앞이 탁 트이면서.....
푸른 바다를 격리하는 육중하고 견고한 성벽이 앞을 막아섭니다.
조금더 걸어 올라가서는 이윽고 바다에서 직각으로 높이 솟은 육중한
성벽 위에 올라서니 지중해 바다가 한 없이 푸르게 보입니다.
높은 성벽 위에서 푸른 바다를 내려다 보며 7~ 800 여년전 두차례에 걸쳐 이 성을 두고 처절한
피의 혈전을 벌였던 기독교 십자군과 이슬람 아랍군의 전투를 다시 한 번 더 떠올려 봅니다.
여기 바다에 면한 아크레성은 참으로 난공불락의 요새이니 그러니까 공성전에 무려 2년이나 걸렸을
것인데...... 무느뜨리려는 자와 지키려는 자의 처절한 사투를 생각하노라니 예사롭지가 않습니다.
첫댓글 자신(自身)의 마음 그릇이 제대로 놓여 있는지
‘확인(確認)’해 볼 일입니다.
사람이 쓰는 말 중에서 ‘감사(感謝)’라는 말처럼
아름답고 귀한 말은 없습니다.
감사가 있는 곳에는 늘 ‘인정(認定)’이 있고,
늘 ‘웃음’이 있고, 늘 ‘기쁨’이 있고,
늘 ‘넉넉함’이 있습니다.
감사(感謝) 합니다.
(❁´◡`❁)
하아..... 감사합니다.
좋은 말만 써도 다 하지 못하고 죽을 짧은 인생인데
남에게 욕을 하고 상처를 주는 일은 시간낭비일테지요?
즐감해요
하아.... 오랫만에 뵙습니다.
이제 오나연한 가을인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