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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골산 칼럼 제1024호 /우리가 할 아름다운 일이 무엇일까?
우리가 할 아름다운 일이 무엇일까?
이사야 12장 5절에 “여호와의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온 세계에 알게 할지어다.”라는 구절에서 하나님 아버지를 향하여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행하신 일들을 열거한다면 아마 평생을 두고 한다고 해도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것만 해도 다 할 수 없을 것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을 하면서 찬송만 할 수 없다. 그리고 기도만 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숨 쉬고 있는 것이나 활동하는 것 모두가 찬송이며 기도라고 한다면 그 자체가 거룩한 것이며 경건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가운데 우리의 정과 욕심으로 나오는 행위는 근접할 수 없을 것이며 인정하지 않을 것이다.
기껏 주일날 예배에 나와서 기도하고 찬송하는 것이 너무나 미약할지 모르지만 우리 일상생활에서 일일이 개입하신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었다면 그런 찬송과 기도마저도 사라질 것이다. 우리의 찬송과 기도가 압축된 것이지만 그 양과 질이 사람마다 다름을 측량하기 보다는 내 중심인가 아니면 주님과 함께 한 중임인가가 문제다.(시 40:5)
찬양은 음악적인 요소가 바탕이 된 독특한 내용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수단이다. 그러나 이것이 찬양의 전부가 아니며 일부에 불과한 것이라는 것을 얼마나 인식하고 있는지....... 찬양을 한다는 구실 아래 찬양대에 올라가 찬송을 하는 것만이 하나님을 기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찬양대에 올라가 있으면 거룩해지는 것도 아니며 설교를 하는 강대상에 올라가 서 있다고 해서 특권을 가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의 자리가 바로 설교하는 강단이요, 찬양대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이것을 망각하고 있는 것도 문제이지만 세상에 나가서 별 짓을 다한 후에 올라와서 찬양하고 설교한다면.......
그것뿐만 아니라 대표 기도를 한답시고 세상에 바빠 성경구절 한 번도 보지도 않고 일주일 기도에 대한 묵상을 하지 않은 채 기도를 하는 이들도 있다. 대구에 어느 은퇴하신 장로님은 과거 대표기도를 하기 위해 월요일부터 수요일까지 기도문을 작성한 후 목요일부터 토요일까지 기도문을 완벽하게 외워서 등단하여 기도하신다.
또한 갑자기 기도를 하게 될 경우를 대비하여 장례식에 가서 할 기도문, 경축사에 가서 할 기도 등등 여러 기도문을 틈틈이 준비하였다고 한다. 이와 같이 우리가 열심히 살아가면서 찬양하고 기도하는 것이 길들여 지지 않으면 안 된다. 하지만 그런 찬양과 기도가 내 중심으로 할 때가 너무나 많다는 것이다.
아니 찬송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지만 무엇을 찬송해야 하는지, 어떻게 찬송해야 하는지가 관건이다. 오늘 위에서 거론된 성경말씀이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하는 것은 누구나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핵심은 온데간데없으며 형식적으로 찬양하거나 그 본질과 의미가 부여된 찬양이 아니라 내가 음악적인 기질이 있어서 찬양이 좋아서 부른다면 그것은 찬송이 아니라 그냥 음악에 불과하다.
창세기 1장과 2장을 봐도 하나님이 지으신 일이 육일 동안 창조한 것인데 그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찬양한다면 듣고 있는 하나님께서 얼마나 기가 막혀 졸도하실 지경일 것이다. 자연의 역사를 만드신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을 하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것이 내 몸 밖에서 조성하신 것도 되지만 나를 위해 창조하신 것이며 그 창조가 밖에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내 안에도 똑같이 이루어졌다는 사실, 이것을 찬양해야 한다. 내 안에 창조된 것 우주만물이 이루어진 것도 되지만 사실은 우주만물이 어떤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것처럼 내 안에 주님과 한 몸이 된 법이 세워졌다는 것, 그리고 그 분과 함께 살아가야 한다는 법이 세워졌음을 찬양해야 한다.
그 법을 인간 스스로 깨어 버려 다시는 그 법대로 살아갈 수 있는 기미가 전혀 없기에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어떤 법을 지켜서 나와 함께 살아갈 수 없음을 항상 경고해 왔다. 십계명을 지킬 수 없고 산상보훈대로 살아갈 수도 없으며 주기도문을 주문처럼 외워도 소용도 없을 뿐 아니라 기독교에서 할 수 있는 것을 다 동원해도 안 된다는 것을 성경에 다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그것뿐만 아니라 기독교에서 행해지고 있는 방법만 다 동원해도 안 되니까 세상의 방법까지 다 동원하여 하나님께 찬양한다는 것이 가관이다. 마치 열왕기 상 18장에 나오는 유명한 사건으로 갈멜 산에서 바알 선지자 450명과 앗세라 선지자 400명이 모여 창과 칼로 자신의 몸을 상하게 하면서까지 온갖 방법들을 다 동원하여 자기들의 신들을 불렀지만 아무 응답이 없었던 것처럼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찬양하고 있다면 다시 한 번 고려해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한국교회 안에 단순히 찬양만 하는 것이 아니라 악기를 동원하고 몸 찬양이 등장하며 오케스트라와 국악으로 온갖 동원되어지고 있다. 이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찬양이 무엇인지 알고 하는지 모르고 하나님께 향한 축제인지, 우리들만의 잔치로 생각하는 착각인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이 무엇일까 몰라서가 아니다. 욥 5:9에 크고 측량할 수 없는 일을 행하신 분이다. 우주만물을 지으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급에서 이끌어내신 위대한 일을 행하셨다. 인간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행하시는 일은 인간의 운명을 뒤바꿔 놓거나 삶의 자리에 있는 우리들의 삶에 개입하셔서 어려움에서 건져주시는 정도로 생각한다면 세상에 믿고 있는 신과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욥기 9:10에 가면 측량할 수 없는 큰 일, 셀 수 없는 기이한 일들처럼 왜 우리들의 삶 속에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고 하는 이들도 있을 수도 있지만 그런 경험을 하여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찬양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모든 일들은 각기 다르며 감동한 것마저도 남달라 찬양과 간증이 다양하게 표현되고 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 가운데 가장 위대한 일은 예수님을 이 땅에 즉 우리 안에 보내셔서 우리를 온전하게 구원하시고자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어린 양이 되어 주셨다는 것이다. 예수님 혼자 죽으신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죽으시고 함께 3일 동안 장사지내 주시고 함께 부활하셔서 죄로 인해 벌거벗은 우리의 모습을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시어 그 어느 누구도 감히 우리를 참소할 수 없도록 만들어 주셨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일을 지금까지 하고 계심을 감사하고 찬양하며 영광을 돌려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것은 아랑곳 하지 않고 이제 내가 구원받았으니까 내 생활에 궁핍함이 없도록 윤택함을 주시고 체면에 깎이지 않도록 괜찮은 자리도 마련해 주시면 감사하고 찬양하고 있으니 말이다.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으시고 무슨 독을 마셔도 죽지 않게 하신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애급에서 이끌어내기 위해 홍해를 갈라놓으시며 각종 기이한 일과 행적들을 하신 이유와 목적이 무엇인가? 우리가 잘 나서 아니면 괜찮은 족보를 가진 자이기 때문에 천만에 말씀!
모태신앙인이라고 아니면 좋은 교회를 다닌다고 아니면 오랫동안 교회에 헌신하고 봉사했기 때문에 천만에 그것 가지고 하나님 앞에 명함도 꺼내지 마라. 40일 금식 3번 5번 해도 소용없으며 철야기도 새벽기도를 수없이 해도 안 된다. 헌금 많이 냈다고 그것도 하나님 앞에 무용지물이다.
내가 하나님 앞에 철저하게 악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한다. 죄인 중에 괴수 정도가 아니라 상상할 수 없는 괴물임을 알아야 한다. 괴물 같은 우리가 처절하게 죽어야 하며 사라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살려주시고 새로운 생명을 부여하시며 신분과 위치를 바꾸어 주신 것은 우리가 잘나서도 아니며 우리가 이 땅에서 무엇을 했기 때문에 하시는 일이 결코 아님을 깨달아야 한다.
하나님 앞에 너무나 악하기 때문에 미약한 존재임에도 불구하고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것만 해도 그리고 주님과 한 몸이 되어 신분이 달라졌고 새 생명을 주시어 머리카락 하나도 상하지 않게 하시고 무슨 독을 마셔도 죽지 않게 하신 것이 바로 하나님의 일이다. 이것을 진정으로 찬양해야 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일하시기 때문에 예수님도 일하시고 성령님도 일하시는 것이다. 내 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하셨고 그 분과 함께 자라나고 십자가에서 나의 죄를 청산하기 위해 함께 달려 죽으셨으며 삼일 동안 함께 장사지내었다가 무덤에서 함께 살아나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옷을 입혀 주신 것을 다른 사람에게 베풀고 있는 것이다.
내 입을 통해서 내 삶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이 놀라운 사실을 알려야 한다. 그리고 이것을 찬양하며 실천해야 하는 것이 진정한 찬송의 본질이며 핵심이다.
찬송은 곡조 있는 음악으로만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나가며 생명의 일을 하는 것이 바로 찬송이며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다. 음악적인 소질이 없으며 목소리가 별로라 음치하고 상관이 없으며 악보를 볼 줄 몰라도 괜찮다. 악기하나 다룰 줄 몰라도 좋다. 하나님의 말씀을 지켜 천국의 생명을 불러일으킨다면 그것이 하나님께 찬양하는 것이며 악기로 표현하는 것임을 명심해라.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신 하나님의 일을 나도 해보겠다고 목회자로 아니면 선교사로, 직분자로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있는 그대로 생긴 그대로 살아가라. 물이 흘러가는 것처럼 주님과 함께 흘러가라. 이것이 겸손이며 주님께서 원하시는 삶이다. 무엇을 잘 해보겠다는 다짐보다는 주님과 함께 한 몸으로 열심히 사는 것뿐이다. 그것이 극히 아름다운 일이다.출처/창골산 봉서방 카페 (출처 및 필자 삭제시 복제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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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그분과 함께살아가는것 을 찬양드리는것입니다......
좋은 말씀 감사합니다.
좋은글 감사합니다.
귀한말씀 감사합니다 , 사순절 ,, 주님과 더욱 가까이 할 수 있도록 은혜 베풀어 주시사 경건에 힘쓰도록 도와주시고 삶의예배로 드려지게 하옵소서 ~!!
잘 읽었습니다 . . . 글 읽는데 좀 눈이 피곤해요 글 배색에 신경써 주시면 더욱 좋겠네요
귀한글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올바로 알아가는데 소중한 글임에 마음에 새기고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