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번째. 여말에 온건파 사대부에 대해서요. 여말의 온건파 사대부의 불교의 대한 생각은 조선중기의 사림파들과는 달리 배타적이 아니라. 그냥 불교에 타협적이라는 설명을 봐서요.ㅠㅠ
그러면 여말 온건파에서 조선중기로 오면서 불교에 대한 생각이 바뀐것인가요?
아니면 제가 타협적이라는 말을 잘못이해한것일까요?
너무 어이 없나요? ㅠㅠ
답변
1. 고려말의 상황에서 온건파 사대부들은 고려왕조 내의 개혁을 추구하였지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혁명파사대부보다는 불교에 대한 비판의 강도가 조금 약했다라고 볼 수도 있겠지요.
2. 이러한 고려말 온건파 사대부가 조선왕조가 개창되자 향촌에 정착하여 나름의 성리학을 공부하였겠지요. 그래서 이들은 중앙의 관학파보다는 보다 성리학의 본질적인 면을 천착해 나갔지요
3. 즉 정통성리학을 공부한 사림파들은 불교를 보다 철저하게 배격하는 입장을 가졌겠지요
4. 사람은 변하지요 고려말 온건파 사대부가 그대로 조선중기 사림파가 되는게 아니지요 세월이 흘렀고 사람들도 바뀌었지요.
두번째.이건 그냥 제가 궁금한건데요.
고려 성종대부터 현종대까지 거란이 3차까지 침입을 하잖아요.
그게 중요한게 아니구요. 고려와 몽고와의 첫접촉은 강동의 역 이잖아요?
그런데 강동의 역은 거란의 2차 침입때 고려와 몽고 동진국(여진)이 연합해서 거란의 격퇴하고 난 다음에 몽고에 조공을 바치겠다는 것이라고 나오더군요.ㅠㅠ
그럼 그 거란의 2차침입은 당연히 고려 성종대부터 현종대까지 있었던 거란의 1차 2차 3차 침입과는 다른거겠죠오오오? 당연히 그렇겠지만.
첫번째 거란의 침입은 10~11세기고 몽고와의 첫접촉은 13세기니까. 다른거겠지만.
그냥 모르고 스윽 읽어보고 지나가니까 그냥 거란의 2차침략이라고만 적혀있어서 헛갈리더라구요.
그러면 그 두번째의 거란은 첫번째 거란(?)이 약해지고 여진이 성장하고 금을 세우고 그담에 몽고가 또 성장해서 금이 약해졌을때 그 때를 틈타 새운 두번째 거란.(이름을 까먹었습니다. 대요수국인가?)인가요?
답변 어디서 이런 설명이 나오던가요 강동의 역이 거란 2차 침입때라고 말이지요
글쎄요... 거란 2차 침략은 현종이 왕으로 있던 1010년이고 강동의 역은 1219년의 일인데.... 고려 고종때의 일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