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정사(正史)에 기록된 백제 왕들의 책봉 기록 중 가장 대표적인 근초고왕, 전지왕, 비유왕, 무령왕등의 원문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근초고왕계는 장군(여구 진동장군. 여전 진동장군)이지만 비유왕계부터는 대장군(여비 진동대장군. 무령왕 영동대장군. 성왕 수동대장군) 으로 기록됩니다
근초고왕계보다 비유왕계가 더 우위에 있다고 할 수 있조.
1. 근초고왕 (여구): 백제 최초의 책봉 기록
출처: 진서(晉書) 권9 제기(帝紀) 제9 간문제(簡文帝) 조
원문: 咸安二年 ... 六월 庚午, 遣使 拜百濟王 餘句 爲鎭東將軍 領樂浪太守.
> 해석: 함안 2년(서기 372년) 6월 경오일, 사신을 보내 백제왕 여구를 진동장군 영낙랑태수로 삼았다.
이 기록은 백제가 중국 왕조로부터 공식적으로 책봉을 받은 최초의 사례입니다.
2. 전지왕 (여전): 위기 속 외교의 지속
출처: 송서(宋書) 권97 열전(列傳) 제57 이이(夷蠻) 백제국 조
원문: 高祖 踐阼, 詔曰 : "百濟王 餘腆 忠勤 遐外, 遠 ... 宜 授 殊 號. 可 爲使持節 都독百濟諸軍事 鎭東將軍 百濟王."
> 해석: (송나라) 고조가 즉위하여 조서를 내리기를, "백제왕 여전은 먼 곳에서도 충성스럽고 부지런하며, 멀리서 정성을 다하니 마땅히 특별한 칭호를 주어야 한다.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장군 백제왕으로 삼는다." (서기 416년)
3. 비유왕 (여비) : 대장군 칭호의 시작
출처: 송서(宋書) 백제전
원문: 元嘉七年 ... 遣使 奉表 獻方物. 以私署 鎭東將軍 百濟王 餘毗 爲使持節 都督百濟諸軍事 鎭東大將軍.
> 해석: 원가 7년(430년),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이에) 사사로이 서임했던 진동장군 백제왕 여비를 사지절 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으로 삼았다.
4. 무령왕 (여사마) : 유물로 증명된 기록
출처: 양서(梁書) 백제전 (무령왕릉 지석의 내용과 일치)
원문: 天監二年 ... 詔曰 : "行都督百濟諸軍事 鎭東大將軍 百濟王 斯摩, 竝志業淸銳, 驅役境內 ... 可爲寧東大將軍."
> 해석: 천감 2년(503년) 조서를 내리기를, "행도독백제제군사 진동대장군 백제왕 사마는 뜻과 업적이 맑고 날카로우며 나라를 잘 다스리니 영동대장군으로 삼을 만하다."
5. 성왕 (여명) : 수동대장군 책봉
출처: 양서(梁書) 백제전
원문: 普通五年 ... 詔曰 : "百濟王 餘明, 守藩海外, 遠修貢職 ... 可爲綏東大將軍."
> 해석: 보통 5년(524년) 조서를 내리기를, "백제왕 여명은 바다 밖에서 번국을 지키며 멀리서 조공의 직분을 다하니 수동대장군으로 삼을 만하다."
6. 의자왕 (여의자) : 백제 마지막 책봉
출처: 구당서(舊唐書) 백제전
원문: 貞觀十五年 ... 遣使 奉表 貢方物. 拜 餘義慈 爲柱國 帶方郡王 百濟王.
> 해석: 정관 15년(641년), 사신을 보내 표문을 올리고 방물을 바쳤다. 이에 여의자를 주국 대방군왕 백제왕으로 삼았다.
기록의 주요 포인트
성씨 여(餘): 모든 원문에서 백제 왕들은 부여씨를 상징하는 여(餘)자를 성으로 쓰고 있습니다.
장군직의 변화: 진동(鎭東, 동쪽을 진압함) → 영동(寧東, 동쪽을 편안케 함) → 수동(綏東, 동쪽을 달래어 어루만짐)으로 변화하며 백제의 위상과 중국의 인식이 반영되었습니다.
대방군왕(帶方郡王): 7세기에 들어서면 '백제왕'이라는 명칭 앞에 '대방군왕'이라는 작호가 추가되어 더 높은 작위를 받았음을 보여줍니다.
이 원문들은 백제가 고구려와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중국 남조 왕조들과 대등한 외교 파트너로서 인정받았음을 보여주는 근거로 보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