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무엇일까 이창동 문화부장관의 말대로 영화는 창녀일까
창녀라는 것은 야시시한 옷을 입고 거리가 훤하게 보이는 집에 요염하게 앉아서 손님을 기다리는 풍경이 떠오른다 창녀가 나쁜 것은 아닐것이다 배설의 욕망이 나쁜것은 아닐것이고 쾌락의 충족 또한 나쁜것은 아닐것이다 우리는 창녀에게 오만원 혹은 그 이상의 돈을 지불하고 자신의 쾌락을 충족하듯이 영화를 보면서욕망을 충족시키는 것이다 이러한 창녀적 문화 관습은 인간의 부조리, 갈등의 도피처로서 구실을 확실하게 하고있다 삶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을 응시하거나 탐구하는 것이 아니라 한순간의 말초적 감정을 충족시키는 것이다.지금까지 대부분 영화가 창녀로서의 구실을 아주 착실하게 했다는데 있어서 이장관의 의견에 동의 하면서 박찬욱과 장준환 감독을 주목하게 된다 물론 홍상수나 김기덕의 영화도 주목하게 되지만..솔직하게 인간의 부조리를 들추어내는 것은 박찬욱 감독과 장준환 감독이 뛰어나다고 본다 그런데 올드보이에서 아쉬운것이 있다면 `지나친설명`인 것 같다 굳이 관객에게 모든것을 설명해야할 이유가 있을까 이미지만 던져주면 되지않았을까 그리고 관객이 상상하게 만들면 되지 않았을까
`복수는 나의 것`에는 말이 별로없다 관객에게 설명하는 말이 없다는 것이다 좌우간 이런 영화가 흥행에 성공했다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고 본다 이제 우리는 밖으로 향한 시선을 자신에게 향하게 되는 것이다
올드보이이야기 계속됩니다...
오대수가 경찰서에서 술에 만취한 상태에서 깽판(?)을 부리는 장면으로 영화는 시작된다.직장에서의 스트레스 때문에 술을 마시고 여우같은 혹은 마귀할멈 같은 아내와 토깽이 같은 자식을 위해서 직장상사의 스트레스 해소 상대가 되어야 하는 남자, 오 대수 그리고 이땅의 평범한 아저씨들,어느날 오 대수는 이상한 곳에 갇히게되고 복수를 꿈꾼다...아이러니칼하게도 복수를 꿈꾸는 순간 그의 눈이 반짝이고 삶의 의욕이 넘쳐나게 된다.그가 땅굴을 파면서 흥분하는 모습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가 석방된 후 아파트 옥상에서 만난 자살을 기도하는 사람, 사실 그사람은 독방에 감금되기전의 오대수라고 본다.예전에 그는 살아야 할 이유가 없었지만 지금은 살아야 할 이유가 충만하다 이우진도 마찬가지다 이우진의 삶도 그가 아무리 부자라고 하지만 돈이 그의 삶을 의미있게 하지는 않는다 그의 삶의 단하나 의미는 복수다,그것이 삶의 에너지다 사실 따지고보면 이 영화에서 사랑이라던가 ...그런것은 그냥 복수의 에너지를 만들기 위한 매개체일 뿐이다 마지막 오대수는 기억을 없애버린다 이제 그의 두뇌는 하얀 백지다 백지라는 것은 고요를 의미한다 복수가 삶의 에너지요 삶 자체였던 오 대수가 그 고요를 견딜 수 있을까
우리의 삶을 돌이켜보자 가난한 자는 부자에게 적개심을 가지고 있다 적개심이란 복수하고자하는,그런 마음의 다른 말이다
부자는 자신의 `부`를 보란듯이 과시한다 `과시한다`라는 말도 마찬가지다 하나의 적개심이며 복수의 다른 말일 것이다
우리는 적개심을 증오하고 평화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하지만 당신은 과연 평화를 고요를 견딜 수 있을까..
첫댓글 영화... 안 본 지도 상당히 오래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