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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작 기도
주님...
오늘 말씀을 기록하면서 그 말씀이 내 심비에 새겨지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그 말씀이 오늘도 나를 이끌어 가게 하시고 나는 그 말씀에 순종하게 하옵소서.
나의 육의 소욕에 따라 살지 않게 하시고 오직 말씀에만 집중하여 주님의 뜻을 따라 가게 하옵소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솟구쳐 올라와 나를 덮으려 할 때 즉시 십자가로 달려가게 하시고 오늘 말씀이 생각나게 하셔서 나를 온전히 장악하여 주옵소서.
나의 생각과 눈과 귀 등 모든 감각이 주의 말씀에만 민감하게 하시고 늘 주님 안에서 깨어 있게 하옵소서.
나의 영은 주님만 좇게 하소서.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 말씀 / 본문 : 왕상 14:21-31
- 제목 : 또 다른 방패를 만드는 자가 말씀 앞에 고꾸라지다.
21.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이 41세에 왕이 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이스라엘 모든 지파 가운데서 택하신 성읍 예루살렘에서 17년을 다스렸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나아마이고 암몬 사람이었습니다.
22. 유다는 하나님 보시기에 그의 조상들이 행한 것보다 더욱 악을 행하여 여호와 하나님을 노엽게 하였는데
23.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 산당과 우상과 아세라 상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24. 그리고 남색하는 자가 있었는데 이는 하나님이 그 땅에서 쫓아내신 모든 족속이 행한 가증한 일들을 그들이 본받아 행한 것입니다.
25. 르호보암 왕 5년에 애굽 왕 시삭이 예루살렘을 치고
26.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보물과 왕궁의 보물을 모두 빼앗았고 또 솔로몬이 만든 금 방패를 다 빼앗아 갔습니다.
27. 르호보암 왕이 그 대신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왕궁 문을 지키는 시위대장의 손에 맡겼더니
28. 왕이 여호와의 성전에 들어갈 때마다 지키는 자가 그 방패를 들고 지키다가 일이 끝나면 도로 갖다 놓곤 하였습니다.
29. 르호보암의 남은 사적과 그가 행한 모든 일은 유다 왕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30. 르호보암과 여로보암 사이에 항상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31. 로호보암이 죽어서 그의 조상들과 함께 다윗 성에 장사되었고 암몬 사람인 나아마의 아들 르호보암이 죽자 그의 아들 아비얌이 왕이 되었습니다.
* 나의 묵상
애굽 왕 시삭이 유다를 침공하여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과 왕궁의 모든 보물을 다 빼앗아 갔을 뿐 아니라 이전에 솔로몬이 금으로 큰 방패 200개와 작은 방패 300개를 만들었는데 이것도 모두 빼앗아 갔다.
그래서 르호보암은 놋으로 방패를 만들어 시위대장에게 주어 지키게 하였다.
성전 문을 지키는 경비대원들은 놋으로 만든 방패를 잘 간수하기 위하여 그 방패를 들고 지키다가 근무가 마치면 그 방패를 경호실에 다시 갖다놓곤 하였다.
한 나라를 다스리고 지키는 일이나, 한 개인을 지키는 일에는 여러 가지 방법과 다양한 능력이 필요할 것이다.
르호보암은 아마도 선친인 솔로몬이 만들어 놓은 금 방패를 소중히 여겼던 것 같다.
왜냐하면 자기가 맡고 있는 유다를 지켜 주는 아주 중요한 보호 장구였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열왕기서 기자는 애굽 왕 시삭이 그 금 방패를 모두 빼앗아 갔다고 기록한다.
그것은 아마도 독자에게 그것을 고발하는 성격이 짙게 묻어나온다.
아무리 첨단 무기와 방어 능력을 갖추었다 할지라도 한 나라를 지키는 것은 그 무기에 있지 않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다.
그런데 르호보암은 금 방패를 빼앗기고 난 뒤에도 이런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놋 방패를 만들어 경비대장에게 맡기면서 그것을 소중히 관리하도록 지시한 것 같다.
그래서 경비대원들이 근무하러 나갈 때 방패를 가지고 나갔다가 돌아와서는 그 방패를 경호실에 보관하고 있다는 사실을 적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실 뒤에 바로 이어서 기록되고 있는 것은 르호보암과 여로보암의 전쟁 사건과 함께 르호보암이 죽음에 대한 기사이다.
다시 말하면 르호보암이 만든 놋 방패가 크게 유용하지 못했다는 것을 말해준다.
한 나라의 안위는 방패에 있지 않다.
그것이 금 방패든 놋 방패든 상관이 없다.
금으로 만든 큰 방패 200개와 작은 방패 300개를 빼앗겨서 나라가 위기 상황일 때 한 나라의 통치자로서, 그것도 여호와를 섬기는 나라의 수장이 가장 발 빠르게 움직여야 할 것은 무엇인가?
르호보암과 같이 또 다른 방패인 놋 방패를 만드는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선 할 것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으며 이런 상황에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스스로 질문하면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 안에 답이 있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특별히 사랑하셨던 이유는 다름 아니라 그가 하나님께 물었기 때문이다.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 묻기를 마다하지 않았다.
전쟁을 하러 올라갈 때도 물었고, 지역을 옮길 때도 물었으며 큰 일이든 작은 일이든 하나님께 묻는 것이 그의 일이었다.
하나님의 말씀하심 앞에서 행할 때 그 뒤의 모든 일은 하나님이 책임지셨다.
그러나 르호보암은 이런 일이 있을 때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으로 해결하려고 놋 방패를 만들고 그것을 잘 간수하는데 급급하였으며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에 쉐마하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 산 위와 모든 푸른 나무 아래에다 산당과 각종 우상들과 아세라 상을 세워놓고 음란하게 섬기는 일을 하였다.
이것 뿐 아니라 남색, 즉 동성애자들이 있었는데 이것은 본받지 말라고 쫓아낸 가나안 족속들이 행했던 일들을 그대로 본받아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공의는 잘못된 것이다.
이런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엎드려 자복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옳다는 것을 인정하면서 은혜를 구하여야 함에도 르호보암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그리하여 그는 화를 자초한 것이다.
르호보암 역시 성전에 드나들었다.
그는 나름대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고 제사하였다.
그러나 그가 구하는 것은 온전히 땅의 것이었을 것이다.
그런 그에게 임한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다.
나 역시 르호보암과 다를 바가 없는 자였다.
내가 나 자신을 지키는데 소중히 여겼던 것을 잃어버렸을 때 나도 르호보암처럼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는 했지만 그것은 형식적인 것이었고 또 다른 방패를 만드는데 급급했었다.
경기도에서 직장 생활을 하다가 결혼을 하고 1년 후에 퇴사를 하고 부산으로 내려 왔다.
때마침 새로 지어서 입주를 시작하는 주공아파트에 전세로 들어갈 수 있었다.
나는 새롭게 직장 생활을 하였고 아내는 무료함도 달래고 생활비라도 벌어보고자 피아노 개인교습을 시작 하였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마다 ‘피아노 개인교습’ 안내장을 붙였다.
그 모집광고를 보고 유치원생 한 명이 등록하였다.
그래서 그 아이를 가르치고 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아내에게 피아노와 함께 공부도 가르쳐 줄 수 있느냐고 물었고 아내는 그때부터 공부도 함께 가르쳤다.
그러다가 머리에 스쳐 지나가는 생각이 피아노보다는 공부를 가르치는 것이 훨씬 효율적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래서 나와 의논한 끝에 과외를 시작하게 되었다.
물론 그 당시 과외는 일반인들이 할 수 없도록 되어 있었다.
대학생들이나 아르바이트 정도로 할 수 있도록 허락되었다.
그런데 나는 아내와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과외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결과는 시쳇말로 대박이었다.
22평 아파트에서 80여명까지 과외를 했으니 말이다.
유치원생부터 시작해서 고3까지 80명을 가르쳤으니 과외가 시작되는 점심시간 이후부터는 그야말로 완전 전쟁터였다.
아내 혼자서 감당이 안 되니까 선생님 한 명을 채용했고 그것도 부족해서 나도 직장을 그만두고 과외에 함께 뛰어들었다.
이미 아파트 내에서는 소문이 파다하게 퍼져서 잘 가르치는 공부방으로 소문이 났고, 심지어 주변에 있는 학원들에도 소문이 퍼져나가게 되었다.
과외를 시작한지 1년여 지났을까 싶다.
어느 날 교육청에서 사람들이 들이닥쳤다.
그리고 그날부로 공부방 문을 닫게 된 것이다.
주변에 있는 학원에서 교육청에 고발하여 오게 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아내는 생활 터전을 잃었다고 낙심하여 한없이 울고만 있었다.
나는 욥기를 펼쳐서 아내에게 읽어주고 위로하였다.
생각해보라.
나는 믿음이 있는 양 욥기를 읽었다.
그때는 내가 당한 고난이 욥의 고난과 같은 마음으로 읽었다.
하지만 얼마나 우스운가?
물론 하나님께서 욥 안에 있는 자기 의를 깨우치기 위해서 주신 고난이지만, 나는 내 죄로 인하여 받는 고난이었다.
욥의 고난과 나의 고난은 질적으로 차이가 있었다.
그런데 그런 의미도 모르고 그저 고난이라고 생각하면서 욥기를 읽었고 또한 욥기로 아내를 위로하려고 했었다.
이처럼 말씀을 이용하는 일은 이것 뿐 아니라 나의 삶속에서 수도 없이 자행되어 왔다.
그러면서도 나는 또 다른 놋 방패를 만들려고 애썼다.
그것은 우리를 지지하는 몇몇 학부모들을 모아서 다시금 과외를 시작하려는 시도를 하였다.
불법으로 인하여 깨졌건만 그것에 대한 질문과 함께 진실된 마음으로 말씀 앞에 나아간 것이 아니라 단지 말씀은 위로받기 위한 하나의 수단이었고 또 하나의 놋 방패를 만들려는 불법을 시도한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을 결국 이루어지지 않았고 더 이상 그곳에 살 수가 없어서 다른 곳으로 이사하여 합법적으로 학원을 시작하게 되었다.
어쩜 이렇게 나는 르호보암과 똑같은지 모르겠다.
말씀을 나의 유익을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나를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것이다.
그 후로도 수많은 세월을 복음이 아니라, 복음을 가장한 신앙으로 살아왔다.
물론 나는 순간순간 진실되게 살려고 노력하였고 몸부림도 쳤지만 그것은 복음이 없는 나의 의였고 자기주장의지로 행한 일이었다.
그것을 깨닫기까지는 그 후로도 얼마나 많은 댓가를 치렀는지 모른다.
하지만 그것까지 감사한 것은 그런 과정을 거쳐서 오늘 참된 복음을 깨닫게 된 것을 생각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이루어진 일임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지금은 그 복음을 증거하는 자가 되었고 아들의 생명으로 살 수 있게 된 것이다.
아직도 부족한 점 투성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생이 부재했던 지난날의 시간과 비교하면 이제는 나의 눈이 땅의 것에 매여 있지 않고 하늘을 향하여 영생에 붙들려 있음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모른다.
오늘도 이 모든 영광을 주님께 올려 드린다.
* 묵상 후 기도
주님...
넘어지고 깨지고 터지면서도 지금 이 자리에 올 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신 은혜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주님의 심판이 나를 향하신 은혜의 징계임을 깨닫지도 못하고 또 다른 놋 방패를 구하고 만들었던 지난날의 잘못을 회개합니다.
이제는 나를 지키는 것이 금 방패, 놋 방패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임을 깨닫게 하시고 날마다 그 말씀 앞으로 나아갈 수 있게 하시니 얼마나 감사한지요.
창세전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가졌던 그 영광을 오늘 저에게 함께할 수 있도록 은혜 주심에 몸 둘 바를 모르겠나이다.
이전에 알지 못했던, 아니 알 수도 없었던 그 영광을 주시오니 무한 감사합니다.
땅의 것을 구할 때, 응답이 되면 그것이 영광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날 향하신 주님의 긍휼이었음을 깨닫습니다.
주님의 영광은 오직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을 통하여서만 계시되는 것임을 아오니 오늘도 그 영광에 나아가지 않을 수 없나이다.
그로 인하여 내 영이 춤을 추며 기뻐하여 그 나라로 들어갑니다.
영원을 잇대어 사는 삶이 바로 영생임을 알기에 말씀으로 시작하는 하루가 복입니다.
이 영생은 나의 행함이 아니라 오직 주님의 은혜입니다.
주님, 감사합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첫댓글 아멘!
전쟁은 주님께 있는것이거늘
말씀떠나가 주님 떠나니, 사람과 물질을 방패삼던 자가 여기도 있나이다.
전쟁치르는 일상, 주님만이 나의 방패이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