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6년 1월 26세였던 조지 포먼은 15개월 전 자이르에서 알리에게 당한 첫 패배의 상처를 겨우 수습하고 전선으로 복귀했다. 당시 전적은 40승 1패 36 KO. 복귀전의 상대는 31승 4패 1무를 기록하고 있던 론 라일이었다. 라일은 75년 5월에 알리에게 도전했다가 11라운드 TKO패를 당한적이 있는 A급 파이터였다.
경기 직전 해설진에 참여한 켄 노튼 (알리의 시대를 논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역할을 담당했던 명복서)에게 캐스터는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다.
"포먼이 알리와의 경기 이후 트레이너를 교체했는데 이것이 과연 경기스타일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을까요?"
노튼은 "도장안에서는 가능할것입니다. 그러나 막상 실전에 투입되면 예전의 습성을 버리기는 어렵죠" 라고 대답했다.
사막의 마도이자 복싱의 메카로 떠오른 라스베가스, 그 중에서도 시저스 펠리스호텔의 특설링은 상징적인 장소였다. 세계복싱의 중심에서 76년 1월 24일 벌어진 이 역사적인 대 혈전. 두 선수는 진정한 파이터의 표상이 어떤것인지를 증명했다.
조지 포먼
론 라일
국적
미국
미국
연령
1949년생 (당시 26세)
1941년생 (당시 34세)
신장
193 cm
191 cm
체중
226 파운드+ (102.3+)
220파운드 (약 100kg)
리치
208 cm
197 cm
스텐스
오소독스
오소독스
조지 포먼 대 론 라일 1977 1. 24
2. 카를로스 사라테 대 알폰소 사모라 Z-보이스의 대회전 1977. 4. 23
1977년 벤텀급은 황금기를 구가했고 그 중심에는 두명의 멕시칸 KO 킹이 있었다. 알폰소 사모라와 카를로스 사라테, 두 선수는 각각 WBA와 WBC, 양대기구의 벨트를 하나씩 나누어 가지고 있었다. 사모라는 당시 29전 29승 29KO, 사라테는 45전 45승 44KO의 전적을 거두고 있었다. 두 선수는 모두 'Z'로 시작하는 성을 가지고 있었으며 이에 따라 미국에서는 두 선수를 Z-Boys라는 애칭으로 불렀다. 77년 초, 두선수는 더이상 서로를 피해갈 수 없었다. 양측의 메니저는 대전에 합의 했다. 그러나 양대기구는 이 경량급의 역사를 새롭게 정의할 통합 타이틀전에 대한 승인료를 무지막지하게 불렀다. 프로모터는 타이틀전의 승인을 포기하고 이 경기를 10라운드 논타이틀 매치로 성사시켰다.
이것은 한동안 경량급과 중경량급의 체급대를 피로 물들일 잔인한 연쇄반응의 시작점이었다.
알폰소 사모라
카를로스 사라테
국적
멕시코
멕시코
연령
1951년생 (당시 만 25세)
1954년생 (당시 만 22세)
신장
178 cm
168 cm
체급
밴텀급 (53.52 KG)
밴텀급
리치
183 cm
180cm
스탠스
오소독스
오소독스
알폰소 사모라 대 카를로스 사라테 1977년 4월 23일
3. 홍수환 대 헥터 카라스키야 1977. 11. 26
복싱 미디어의 대명사였던 링지 1976년 2월호
1975년 홍수환의 WBA 밴텀급 타이틀은 알폰소 사모라에게 넘어갔다. 19개월후의 재전에서도 홍수환은 사모라를 넘지 못했고 그는 체급을 올려 1920년대에 제정되었다가 한동안 사라졌고 이즈음 부활했던 슈퍼 벤텀급을 향한 출사표를 던졌다. WBA는 77년 슈퍼벤텀급의 초대 챔피언 결정전을 발표했다. 출전 선수는 홍수환과 파나마의 젊은 강타자 헥터 카라스키야였다. 홍수환은 당시 39승 4패 3무의 전적이었으며 상대인 카라스키야는 11전 전승 11KO의 깔끔한 레코드를 작성하고 있던 중이었다. 적지에서 벌어지는 타이틀전을 위해 홍수환은 파나마행 항공편에 몸을 실었다. 현지에 도착했을 때 홍수환은 카라스키야가 자신을 무시하는 인터뷰를 하는등 안하무인의 태도를취하자 자존심이 상했고, 경기에서 본때를 보여주리라고 결심을 했다. 이 경기에서 승리하면 홍수환은 국내 선수로써는 최초로 2체급 정벌의 위업을 달성하게 되는 상황이었다.
홍수환
헥터 카라스키야
국적
대한민국
파나마
연령
1950년생 (당시 만27세)
1960년생 (만 17세)
신장
170 cm
N/A
체급
슈퍼 벤텀급 (55.34 KG)
슈퍼벤텀급
리치
N/A
N/A
스텐스
오소독스
오소독스
홍수환 대 헥터 카라스키야 WBA 슈퍼벤텀급 챔피언 결정전 1977. 11.26
4. 라파엘 마르케즈 대 이스라엘 바스케즈 2007.8.4
이스라엘 바스케즈 (좌) 라파엘 마르케즈 (우) 2차전 직후
36승 3패 32KO의 전적을 가진 WBC 슈퍼밴텀급 세계랭킹 1위 라파엘 마르케즈(후안 마뉴엘 마르케즈의 동생)와 챔피언 이스라엘 바스케즈 (41승 3패 31KO)간의 2007년 3월 3일 첫 대결에서는 도전자가 3라운드에 다운을 빼앗기며 불안하게 출발했지만 강력한 펀치를 잇다라 적중시키며 챔피언의 코뼈를 부러뜨렸다. 심한 출혈과 붓기로 호흡이 곤란해진 챔피언 바스케즈는 7라운드가 끝난 후 8라운드를 알리는 공소리에 응하지 못했다. 같은 해 8월 4일 두선수는 두번째로 만났다. 스피드와 기술과 파괴력과 맺집과 정신력 면에서 극도로 우수한 조화를 보이는 두 경량급 전사들의 정면 승부. 이것은 총4부작으로 구성될 두 선수의 장편 드라마중 2회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라파엘 마르케즈
이스라엘 바스케즈
국적
멕시코
멕시코
연령
1975년생 (당시 만 30세)
1977년생 (당시 만 28세)
신장
165cm
164cm
체급
슈퍼 밴텀급
슈퍼 밴텀급
리치
스텐스
오소독스
오소독스
라파엘 마르케즈 대 이스라엘 바스케즈 WBC 슈퍼 밴텀급 타이틀전 2007. 8. 4.
5. 아투로 가티 대 가브리엘 루엘라스 1997. 10. 4
WBC 슈퍼 페더급 전챔피언이었던 가브리엘 루엘라스는 벨트를 잃은 후 IBF의 동급 챔피언 아투로 가티에게 도전했다. 가티는 당시 28승 1패 23KO를 기록하고 있었다. 44승 3패 23KO의 전적을 가진 베테랑 루엘라스는 아웃사이드로 크게 휘어치는 훅이 특기였다. 가티는 상대의 체력과 기백을 흡수해버리는 특수재질의 턱을 자랑했다. 자신의 공격습성에 의해 정면이 자주 열리는 루엘라스와 턱에 비해 잦은 고장을 일으키는 양쪽 눈 아랫부분이 문제였던 가티, 두 선수는 그러나 약점을 커버하기보다는 특기를 살리려 애썼다. 경기는 일대 난타전으로 전개되었으며 관객과 시청자들의 의식은 경기 시작후 몇분 사이에 대기권 밖으로 날아갔다.
첫댓글 예전엔 복싱 별로 안좋아 했었는데 요즘은 복싱이 좋아 졌어요. 여러 종목을 연습하다보면, 복싱이 왜 필수 과목인지 알듯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