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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산 조호익선생의 도잠서원
2019년 3월 21일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선생의 도잠서원(道岑書院) 춘(春) 향(享)에 헌관으로 참여하였다. 초헌관 원장 경주 최채량(崔埰亮), 아헌관 영천 정병극(鄭炳極), 종헌관 구미 김교언(金敎彦), 축관 대구 박해률(朴海聿), 집례 성주 송범섭(宋範燮)과 본손 30여명이 춘 향 행사에 참사했다.
우리 문중과 조씨 문중과의 관계를 살펴보니 지산 조호익선생의 형 되시는 생원 휘 조희익(휘 曺希益)공께서는 호군공(휘 鄭守藩)의 장인이 되시고, 삼휴공(휘 鄭好信)의 외조부이시고 지산선생은 호군공의 처삼촌이 되신다.
생원 조희익공께서는 임진왜란 때 호수공(휘 鄭世雅)과 같이 영천에서 창의하여 영천성, 경주성 복성에 큰 공을 새우셨고, 왜란이 평정되자 호수공께서 사돈 생원 조희익공께 군권을 이양하셨다.
그리고 우리 집과의 인연은 휘 조필환(曺弼煥) 종동고모부께서는 지산 조호익선생의 11세손이 되시고, 절도사 휘 조학신(曺學臣)공은 5대조가 되신다.
서원 입구에 서있는 도잠서원 표석
도잠서원 전경
도잠서원 강당인 회만당(會萬堂)
망회정(忘懷亭)
도잠서당(道岑書堂)
지산선생께서 선조(宣祖)로 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라는 칭호 받음.
지수문(止水門) 가까이 돌에 새겨져 서 있다.
도잠서원의 지수문(止水門)
서원 앞에 있는 저수지
기해(己亥) 2019년 도잠서원 춘 향시 집사분정표
지산(芝山) 조호익(曺好益)선생 유사
1.인적사항(人的事項) : 지산 조호익선생은 조선중기 인종 1년 1545년에 태어났고 65세 때인 1609년
에 돌아가셨다. 본관은 창녕(昌寧) 자는 사우(士友) 호는 지산(芝山) 시호는 정간(貞簡)이었으나, 뒤에 문간(文簡)으로 개시되었다.
2.가계(家系) : 집안은 영남의 대표적인 사족가문으로 강계도병마사를 지낸 7대조 조선충이 조선건국
에 참여하지 않고 낙향하여 영천에 자리 잡았다. 그 후손들이 영천군의 창수리 마단촌(麻丹村)에 은거해 살다가 증조인 정우당(淨友堂)공 때 창원의 지개동(芝介洞)으로 이사하여 살았으며. 지산선생은 그곳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조윤신(曺允愼)이며 어머니는 인동장씨(仁同張氏)로 장중우(張仲羽)의 따님이다.
3.퇴계(退溪) 이황(李滉)선생 문하에 들다
당시 영남은 좌도(左道)에 퇴계 이황, 우도(右道)에 남명(南冥) 조식(曺植) 선생이 쌍벽을 이루고 있
었는데 지산은 17살에 퇴계 선생 문하에 입문했다. 그 시기에 벌써 16세 때 이미 대과초시(大科初試)
에 합격할 정도로 학문적 성취를 이룬 수재였다.
19세 때 창원에 있는 지산의 집을 방문한 퇴계 선생에게 ‘대학’을 21세에는 ‘주자어류(朱子語類) ‘근
사록(近思錄)’ 등의 책을 강독하고 질문하는 열의를 보이며 성리학의 핵심 전적을 공부함으로 퇴계
학파의 중심적 인물로 자리 잡았다.
4.학문(學文) : 유학을 근간으로 하고 역학, 예학 등에 조예가 깊은 경지에 이르렀지만 그가 추구하
는 바는 유학 편향적인 것이 아니라 불교 등 제 학문에도 연관을 짓고 있다.
학문을 하는 것은 자기를 완성하는데 있고 나아가 배운 바를 실천하는 것으로, 선비들이 서원에서 향
음주례(鄕飮酒禮)와 향사례(鄕射禮)를 시연하는 것도 결국 예의와 겸손을 익히는 자리이며 나아가 책
에만 파묻혀 있는 선비 상이 아니라 문무 겸전의 특성을 갖춘 인재를 양성하는 것이다.
즉 시문에 연연하지 않고 근원에 대한 것, 즉 일원 (一源)이 가장 중요함을 제자들을 보내면서 주는 시에서 말하고 있는데, 이것의 핵심은 심성(心性)이다.
바로 학문의 요체가 구구한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간 본래의 순수한 성품으로 돌아가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고 근본임을 제자들에게 말했다.
일평생 학자로 교육자로 정치가로 의병장으로 활동하면서 학문과 현실을 충실하게 실천했던 학자였다.
5.관서(關西)의 강동현에 귀향 가다.
1575년(선조 8) 경상도도사 최황(崔滉)이 부임하여 군적(軍籍)을 정리할 때 그를 검독(檢督)에 임명,
한정(閑丁) 50명을 독납(督納)하게 하였다. 그러나 병을 핑계로 거절하자 토호(土豪)라고 상주(上奏)하여 다음해 평안도 강동현에 유배되었다. 유배지에서 계속 학문에 정진, 많은 후진을 양성하여 관서 지방에 학풍을 진작시켰다. 선조로 부터 관서부자(關西夫子) 즉 관서지방의 대학자란 뜻의 칭호를 받았다.
6.활동사항(活動事項) : 1592년 임진왜란 때 유성룡(柳成龍)의 청으로 풀려나와 금오랑(金吾郎)에 특
별 임명되어 행재소(行在所)가 있는 중화로 달려갔다. 그 뒤 소모관(召募官)이 되어 군민(軍民)을 규합, 중화·상원 등지에서 전공을 세워 녹비(鹿皮)를 하사받았다. 이어 형조정랑·절충장군(折衝將軍)에 승진되고, 1593년 평양싸움에 참가하는 등 전공을 세웠다.
그 뒤 대구부사·성주목사·안주목사·성천부사 등을 역임하고, 1597년 정주목사가 되었으나 병으로 사직하였다. 1604년 선산부사, 1606년 남원부사에 임명되었으나 병으로 나가지 못하였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영천(永川)의 지봉서원(芝峰書院)과 도잠서원(道岑書院), 성천의 학령서원(鶴翎書院), 강동의 청계서원(淸溪書院)에 제향 되었다.
7.사우(師友) 및 문인(文人)
백운동 서원의 설립을 주도한 주세붕의 아들인 주박, 퇴계 이황을 스승으로 유성룡·이원익·김성일·이
항복·이이·이덕형·곽재우·기대승 등 당대를 대표하는 이들이 우인(友人)들이다.
문인으로는 김육· 박대덕· 이시직· 이정남· 조경· 이희백·김 응택 등 관서지방과 경기지역, 영천지역
등 여러 곳의 문인들이 지산문하에 출입했다.
영천의 문인인 정사진의 예설에 대한 질문과, 복재(復齋) 정담(鄭湛)이 제례(祭禮)에 관하여 논한 편지를 보내오자 상세히 그에 대한 답을 적어 보내 주기도 했다.
8.저서(著書) : 『지산집』·『심경질의고오(心經質疑考誤)』·『가례고증(家禮考證)』·『주역석해(周易釋解)』 ·『역상추설(易象推說)』·『논위학지요(論爲學之要)』·『이기유석등변(理氣儒釋等辨)』·『대학동자문답(大學童子問答)』·『소황이두시가구주(蘇黃李杜詩家句註)』가 있다.
9.유품(遺物) : 『지산집(芝山集)』 및 『가례고증(家禮考證)』·『대학동자문답집(大學童子問答集)』 등의 목판이 보존되어 있다.
도잠서원은 현재 경상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건물은 문화재건조물 제109호로 고시되어 있다.
10.서원 설립과정
1)서원은 1612년(광해군 4) 지방 유림들이 모사리에 사당을 짓고 서재(書齋)를 강당으로 삼아 지산
선생의 학문과 덕행을 추모하며 배향하다.
2)1613년에 조호익의 위패를 봉안하고 지봉서원(芝峰書院)이라 했다.
3)1678년(숙종 4) 현 위치인 대창면 용호리로 이건, ‘도잠’이라는 사액을 받아 사액서원으로 승격되
면서 선현 배향과 지역의 유생들에게 학문을 강론하며 지방교육의 일익을 담당해왔다
4) 그 뒤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1868년(고종 5)에 훼철되었으나 1914년 복원되었으며 1981
년에 정부의 지원으로 중수했다.
5)1985년(을축) 서당이 다시 경북도 문화재자료 제100호로 변경 고시되다.
6)1999년(기유) 서원 건물이 완공되어 현판을 게시하였다.
11.도잠서원 구조 및 규모
서원의 구조는 외삼문을 들어서면 동재인 희안재(希顔齋), 서재인 봉원재(逢原齋), 중앙에는 강당인
회만당(會萬堂)이, 사당인 성모묘(聖慕廟)는 강당 뒷편에 있으며, 숙종이 내린 사제문(賜祭文)에서
“내가 깊이 사모한다”(우여심모·寓予深慕)고 하여 병와 이형상이 묘우이름을 지었다.
규모는 묘우(廟宇)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건평이 9.4평이고 내삼문(內三門)은 정면 3칸, 측면 1칸,
강당(講堂) 정면 5칸, 측면 2.5칸, 동재(東齋), 서재(西齋), 외삼문(外三門) 등이 배치되어 있다.
지산 조호익은 1603년(선조 36년) 2월, 영천 도촌(陶村)에서 지산촌(芝山村)으로 이거(移居)한 후,
오지산(五芝山) 아래 경치 좋은 곳에 집을 짓고, 서재(書齋)를 완여(翫餘), 정자(亭子)를 망회(忘懷)라 하며 은거했다.
그리고 못을 막고 복숭아 나무를 심어 도화담(桃花潭)이라 하고 못 가운데에 대(臺)를 지어(知魚)라
했다.
o 호수공과의 각별한 관계
1)의락당에서 조지산운을 차운하시다.
2)을유(乙酉) 1609년 지산선생 영전에 만사를 써 문상하시다. -국역호수선생실기에 등재됨.
宜樂堂, 次曺芝山韻
의락당, 차조지산운
宜樂名何以 당명(堂名)을 어찌해서 의락(宜樂)이라 하였는고
의락명하의
於焉共瀉襟 여기에서 형제들이 함께 훙금을 기울이네.
어언공사금
黃花庭爛熳 뜰 앞에 국화꽃은 난만하게 피어있고
황화정란만
白鳥水浮沉 호수 위에 백조들은 한가로이 부침(浮沈)한다.
백조수부침
詩客思提筆 시객(詩客)들은 글쓰기를 생각하고
시객사제필
遊人欲謝簮 유인(遊人)은 벼슬길 사양하네
유인욕사잠
相酬琴酒趣 주거니 받거니 거문고에 술의 흥취
상수금주취
誰似弟兄心 누가 이들 형제 마음 같으랴.
수사제형심
<참고자료>
o제1회 지신조호익선생 학술세미나 ‘지산 조호익의 삶과 사상’.
o문강공지산조호익선생 도잠서원.
o국역호수선생실기.
o네이버 지식백과 도잠서원.
첫댓글 도잠서원 춘향제에 아헌관 추대되시어 행사 잘 하셨습니다,
군위숙부님 이어 서원 헌관으로 천망 되심은 우리집의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숙부님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