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거리에서 뜬금없이 옛 노래들을 자주 듣게 된다. MBC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에서 1990년대 가수들을 한자리에 불러 모았던 특집 '토.토.가'의 영향이다.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에서는 왕년에 날렸던 가수들의 무대를 보며 눈물이 터졌더라는 간증도 흔히 보였다. 그 시절 20대였던 나는 아는 척하기 좋아하고 좀 재수 없는 타입이어서 당시 대중들이 열광하는 음악들은 콧방귀를 뀌며 무시하고 가능한 생소하고 폼이 나 보이는 음악에 심취하거나 심취하는 척 했었다. 그랬던 나도 오랜만에 보는 그들이 참 반가웠으니 열광했던 이들이라면 눈물이 터질 법도 하겠다.
작년 겨울 신해철이 사망했다는 뉴스를 듣고 나 또한 시도 때도 없이 울컥 눈물이 터졌다. 나의 1990년대 스타는 조성모나 터보가 아니라 신해철이었다. 어쩌면 지금의 20대들에겐 신해철은 왕년에 중2병 돋는 오글거리는 가사의 노래를 쓰고 불렀던 중년의 웃기는 아저씨 정도로 기억할지도 모르겠다. 컴백을 앞두고 출연한 코미디 프로그램에서도 그는 한때 '마왕'이라고 불리던 중2병 중년 아저씨의 모습을 스스로 희화화하여 패러디하기도 했다.
'하늘이 그리도 어두웠었기에 더 절실했던 낭만 지금와선 촌스럽다고 해도 그 땐 모두가 그랬지. 그때를 기억하는지. 그 시절 70년대를…'(70년대에 바침). 신해철의 노래 가사 한 구절을 90년대로 바꿔보면 조금 더 이해가 쉬울지도 모르겠다. 하늘이 어두웠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그때는 모두가 그랬다. 너나 할 것 없이 부질없이 진지하고 심각했고 새로운 것에 대한 열망이 넘쳐났으며 너나 할 것 없이 중2병을 앓고 있었기에 딱히 '중2병'이나 그 비슷한 말 자체가 없었다.
우리는 X 세대였고 신세대였다. 누가 붙여준 이름인지는 모르지만 그렇게 불리다 보니 X세대, 신세대처럼 습관적으로 새로워야 했고 규정지어질 수 없어야 할 것 같았고 '이제 그런 가르침은 됐어!'라고 외치며 괜히 반항적이어야 할 것 같았다. 반면 지금의 20대는 88만 원 세대, 연애 결혼 출산 3가지를 포기한 삼포세대 등 듣기에도 심란한 이름으로 불리우고 있다. 거참 돈 드는 것도 아닌데 애들 기 안 죽도록 이름이라도 그럴 듯하게 지어주지 좀 너무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금의 1990년대 열풍이 딱히 새삼스러운 것은 아니다. 7080열풍에 이어 이젠 나의 20대도 추억 마케팅의 순서가 되었구나 싶어, 그땐 그랬지 식의 글을 쓰고 있는 내 자신이 조금 씁쓸할 뿐이다. 가끔 옛날 노래를 듣고 오래전 영화를 찾아보고 옛 앨범속의 사진들을 뒤져보며 예전 기억들을 뽀샤시하게 색 보정하고 내 맘대로 편집하여 가지고 놀다보면 추억이란 것은 어쩌면 현재 시간에 대한 불륜 같은 게 아닐까 싶어 괜히 미안해지기도 한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왕년의 가수들이 추억으로 포장되어 다시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토.토.가' 같은 기획이 흥하는 현실 역시 씁쓸하다. 팬들과 함께 나이 들어가며 꾸준히 활동할 수 없었기에 '화려한 복귀'를 위한 기획이 가능했던 것이다. 지금 대부분의 TV 예능 음악 프로그램이 '버라이어티'라는 수식을 붙이지만 과거 '토요일 토요일은 즐거워' '젊음의 행진' '가요톱 텐' 같은 음악방송을 기억해보면 온갖 장르의 잡탕이라고 할 만큼 그야말로 버라이어티했다.
댄스, 발라드 가수는 물론이고, 통기타를 멘 포크 가수, 주현미, 현철, 설운도 같은 트로트 가수와 록 밴드 드물게 메탈 밴드 가끔 내한한 해외 팝스타까지 같은 무대에서 노래했다. 그러므로 세대와 취향이 다른 가족들이 어쩔 수 없이 함께 TV 앞에 앉아 좋아하는 가수의 순서를 기다리며 '저런 노래가 뭐가 좋다고 난리냐'며 서로 투덜거릴 수 있었다. 그러고는 학교 친구들과 구성진 트로트를 때창하며 놀았고, 부모님은 저도 모르게 아이돌 노래를 흥얼거리기도 했다. 지금은 아이돌 위주의 음악방송 외엔 다른 장르의 음악들은 저 멀리 심야시간대로 분리되어 서로의 취향은 알 수도, 범접할 수도 없는 영역이 되어버렸다.
어머니와 함께 TV 앞에 나란히 앉아 있었던 적이 언제였는지 잘 기억도 안 난다. 보고 싶은 프로그램은 인터넷 다시보기나 스마트폰 DMB로 챙겨보니 사실 TV 앞에 앉아 있는 경우도 드물다. 새해가 되어 나는 웬만한 유혹에는 다 흔들릴 것 같은 불혹이 되었고, 그럴수록 괜히 추억의 뒷골목을 배회하는 그런 청승맞은 짓은 자제해야겠다고 스스로 경계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90년대가 문득 그리운 건, 투덜거리면서도 어쨌든 같은 노래를 함께 들었던 그런 시절이었기 때문이다.
첫댓글 토토가...뭉클했어요.
터보도 좋았구요, 쉴새없이 쏟아내는 건모님도 좋았지요.
시즌 2.. 고대하고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