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산업단지를 지나 영취산 산자락에 포근히 안긴 사찰 흥국사에 다녀왔습니다. 산단의 이미지 때문에 별로일 거라는 생각이 기우였습니다. 등잔 밑이 어둡다고 했던가요. 바로 엎드리면 코 닿을 곳에 있는 흥국사, 한나절 돌아보는 것으로는 턱도 없이 부족할 정도로 깊이가 있는 사찰입니다. 보고 들을 것이 정말 너무 많은 역사의 깊이가 있는 곳입니다. 십수 년 여수에 살면서 이제야 가본 것이 후회스러웠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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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울 근처 과수원에는 매화가 만발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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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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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초입에 있는 홍교위로 백구가 지나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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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17일 흥국사 가는 길가에는 노란 개나리가 피어나고 있었다. 중흥마을의 개울물은 돌밭 사이를 조잘거리며 흘러간다. 개울 근처 과수원에는 매화가 만발했다. 벌들의 합창소리가 요란하다. 흥국사 초입에 있는 홍교위로 백구가 지나간다.
고통스런 사바세계를 벗어나 불국계로 건너가는 무지개다리다. 홍교는 보물 제563호다. 홍교는 조선 16대 인조17년(1639년) 계특대사(戒特大師)가 화강석을 재료로 하여 아치식으로 축조한 석조 문화재이다. 이 다리는 1981년 폭우로 부분적으로 붕괴했으나 이듬해 다시 원형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흥국사 절은 국가의 융성을 위해 건립되었다고 한다. 흥국사는 고려 명종 25년(1195년)에 정혜결사를 일으킨 보조국사 지눌이 창건하였다. 이 절의 승려들은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을 도와 왜적을 무찌르는 공을 세웠으나 절이 모두 타 버렸다. 지금 있는 건물들은 인조 2년(1624)에 다시 세운 것이다. 특히 대웅전은 조선후기의 대표적인 사찰 건물로 손꼽힌다.
일주문을 들어서자 부도전이다. 부도는 부처님께서 열반하셔서 다비(화장)하여 사리를 모신 것을 탑이라고 하고, 스님들의 유골을 모신 것은 부도라고 한다. 흥국사에는 1500-1800년 사이에 이루어진 불일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탑 등 12기의 부도가 있다. 원래 세 곳에 안치되어 있었으나 1986년에 이곳으로 옮겨 모시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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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일 보조국사(佛日 普照國師)탑등 12기의 부도가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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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새소리가 정겹다. 영취산 숲 속에서 부엉이 소리가 들려온다. 몇 발짝 더 옮기자 장끼가 푸드덕거리며 촘촘한 나무숲 사이로 잽싸게 도망간다. 개울물은 졸졸거리다 바위에 부딪혀 부챗살을 만들었다. 이내 곧 흩어진다. 산비둘기가 머리 위로 날아가 노송에 사뿐 내려앉는다.
산비둘기가 앉아 있는 곳은 노송과 참나무 신이대가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다. 절에 다다를수록 새들의 지저귐이 요란하다. 아주머니 일행이 나물을 캐서 머리에 이고 내려온다. 쑥도 캐고 고루고루 봄나물을 해온다고 한다.
영취산 중턱에 자리한 흥국사는 호국정신이 창건의 사상적 배경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 때는 의승수군의 본거지로 400여 명이 이곳에서 활약했다고 한다. 절 안에는 보물 제395인 대웅전, 원통전, 팔상전 등 14채의 절집과 괘불, 보물 제578호인 대웅전 후불탱화 그리고 입구에는 보물 제563호인 홍교가 있다.
영취산은 진달래 군락지로 널리 이름이 알려진 곳이다. 해마다 영취산에서 진달래축제가 열린다. 영취교 못 미쳐 왼쪽으로 영취산 가는 등산로가 있다. 다리를 건너 천왕문에 들어서자 남쪽에 증장천왕, 서 광목천왕, 동 지국천왕, 북 다문천왕(비사문천)이 지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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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왕문에 들어서자 남쪽에 증장천왕 서쪽에 광목천왕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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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이 끝이 없다. 바람소리 스치고 지나는 나뭇가지에 박새가 총총거리며 날아다닌다. 흥국사는 산새들의 천국이다. 봉황루 앞에서 '의승수군유물전시관' 관장 박용기(39)씨를 만났다.
박 관장이 전하는 흥국사사적기(興國寺事蹟記)에 전해 내려오는 흥국사의 창건설화다.
순천 송광사에 머물던 보조국사 지눌은 좋은 성지에 절을 지으려고 이산 저산 절터를 찾아다녔다. 금오도(金鰲島)의 굴봉산(掘棒山)에 올라 풀을 깔고 좌선하며 정진하였는데, 기이한 노승이 나타나서 국사를 금성대(錦城臺)로 안내하여 영취산을 바라보며 진지하게 설명하였단다.
영취산과 진례산은 사방 산봉우리가 연꽃의 꽃잎처럼 웅장하게 솟았고 지세가 맑고 깨끗하여 덕(德)이 높은 곳이므로 고승 대덕이 머물 수 있는 큰 도량이 될 것이라고 말하였다. "이곳에 큰 절을 짓고 이름을 흥국사라 하라. 이 절이 부흥하면 나라와 민족이 잘되고 나라가 잘되면 절이 잘될 것이다"라며 사찰의 이름까지 지어주었다고 한다. 지눌은 성현의 가르침이라고 믿고 추앙하면서 이곳에 흥국사의 터를 잡았다고 한다.
봉황루 못 미쳐 기념품 판매점 앞에서 여인이 나무 끌텅(고사목 뿌리)을 다듬고 있다. 법윤성(여·39)씨다. 뭐냐고 묻자 "노느니 염불한다고, 목부작 만들려고 다듬고 있어요. 처음 해보는 거예요"라고 대답한다. 나무뿌리를 잘 다듬어 난을 붙이면 목부작이 된다고 한다. 봉황루는 부처님께서 예불을 드리고 제반의식을 행하는 장소다.
대웅전 앞에 서니 마음이 숙연해진다. 대웅전의 우물정(井) 빗살무늬 문이 참 정교하다. 대웅전 기단에 새겨진 바다 속에 사는 해초, 게, 자라는 바다를 상징적으로 표현했다. 대웅전 앞의 석등 또한 바다에 사는 거북등에 설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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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 기단석에 새겨진 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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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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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다에 사는 거북등에 설치되어 있는 석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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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대웅전은 반야용선(般若龍船)을 상징하므로 그 기단을 바다의 상징물로 조각하고 양쪽에는 용을 조각 호위하는 형태를 취했다. 용이 호위하는 지혜의 배, 깨달음의 배다. 대웅전은 중생들을 가득 태워 고통의 세계에서 부처님의 세상으로 건너게 해주는 배가 되는 셈이다. 반야용선(般若龍船)의 반야(般若)는 지혜, 용(龍)은 용을, 선(船)은 배를 지칭한다.
대웅전 불단 뒷벽에는 한지에 그린 수월백의관음 벽화가 있다. 흰 두건을 머리에 쓰고 하얀 장삼을 걸쳤으며 흰 바탕에 붉은 꽃무늬 치마를 입었다. 편안한 느낌을 주는 근엄하고 자비로운 반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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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월백의관음 벽화는 근엄하고 자비로운 반가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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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대웅전 배 주변은 바다다. 이 사찰의 특징은 탑이 없다. 주변이 바다이기 때문에 바다에 탑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이다. 대웅전은 반야용선이므로 오르는 계단을 금강계단이라고 한다. 금강계단에는 4마리의 용이 조각되어 있다. 괘불석주에도 용이 새겨져 있다. 괘불석주는 괘불탱화를 세우는 기둥을 지지하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대웅전 좌측에는 해태가, 우측에는 자라가 양각으로 조각되어 있다.
흥국사 대웅전 문고리 잡으면 행운이 온대요
문고리에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임진왜란 시 신검당 건물만 유일하게 남고 모든 사찰이 전소됐다고 한다. 그 이후 대웅전은 송광사 설계 도면대로 지어졌다. 대웅전 건축 시 승려목수 41분이 천일 간 기도를 했단다. 천일기도 시 서원(소원)은 "법당의 문고릴 한번만이라도 잡아본 사람은 그 누구나 삼악(지옥, 아귀, 축생)을 면하고 성불하게 해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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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흥국사 대웅전 문고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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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이 법당 문고리를 잡으면 행운이 온단다. 방문객이 하도 잡아서 문고리에 녹이 슬지 않는다고 한다. 청동주물로 만들어진 다른 문고리를 확인해 보니, 그곳에는 녹이 슬고 부식되어 있었다.
대웅전 탱화는 보물 제578호로 지정되어 조선시대 후불탱화 중 최고의 걸작이다.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왼편에는 보현보살이 오른편에는 문수보살이 함께 모셔져 있다. 대웅전의 진정한 가치는 천장에 있다고 한다. 380년 동안 한 번도 덧칠을 하지 않은 단청이다. 대들보에 그려진 용이 화려하고 섬세하다. 십여 마리의 용과 극락조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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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웅전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이 모셔져 있다. 왼편에는 보현보살이 오른편에는 문수보살이 함께 모셔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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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대웅전 후불탱화 영산회상도는 거리에 따라 반대의 원근현상이 나타난다. 물러나면 크게 다가오고, 다가가면 물러서고, 점점 작게 보인다. 고즈넉한 산사에 저녁 예불을 알리는 범종소리가 웅장하다. 아침저녁으로 타종을 한다. 아침에는 28번을 저녁에는 33번을 타종한다. 인간세계와 지옥세계에 불법을 널리 전하는 의식이다. 마음에 울림이 크다.
법왕문 바로 옆에는 100년을 넘게 산 보리수나무가 있다.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을 얻었다는 보리수나무는 그 열매로 염주를 만들면 좋다고 한다. 4~5월경에 보리수나무에 꽃이 피면 온산에 벌이 다 날아든다고 한다. 벌 때문에 골머리를 앓을 정도로 벌이 많단다. 7월 말 경에 열매를 수확한다. 보리수열매는 이파리 한가운데서 줄기가 나와 특이하게 열매를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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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수나무, 보리수열매는 이파리 한가운데서 줄기가 나와 특이하게 열매를 맺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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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찬현 |
| 벚꽃이 활짝 필 때, 팔상전에서 내려다본 흥국사의 경치는 정말 빼어나다고 한다. 뒷모습이 특히 아름다운 절 흥국사는 그 어느 곳에서 봐도 아름답다. 비 온 후 구름 걷힐 때의 산사의 풍경은 이루 말로 형언키 어려운 절경이란다.
영취산과 진례산에 둘러싸인 흥국사는 연꽃이 감싸 안은 형상이다. 산봉우리는 연잎이며 사찰이 있는 곳이 연밥이다. 자연과 잘 어울려 외적인 아름다움 속에 스며있는 내면의 깊이는 조상들의 숨결까지 느낄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