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룡산 (961.2m) 경북 영천
거리:11km 시간3시간 30분
영천호 조망 즐기며 오르는 호젓한 능선길 ~^^~
행정구역이 경북 영천시 화북면과 자양면에 걸쳐 있으며, 산기슭에는 영천댐이 있어 산중호수를 감상할 수 있는 즐거움이 더한다고 하겠다. 동쪽에는 운주산(806.2m)을 중심으로 낙동정맥 마루금이 남북으로 뻗어 포항시와 영천시 경계를 이룬다. 이 산은 산록에 자리 잡고 있는 묘각사의 창건설화와 관련이 깊고, 최근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탓에 찾는 사람도 드물어 한적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산행은 자양면사무소 맞은편의 버스정류장에서 영천댐을 왼편에 두고 차도를 걸어 파출소를 지난다. 오른편에 강호정, 오회공 종택, 사의당 등 문화재 표지판과 산행 들머리를 알리는 표지판(꼬깔산 2.5km, 기룡산 5.8km, 묘각사 7.8km) 사이의 콘크리트 포장도로로 들어선다. 입산통제 표지판이 서 있지만 특별하게 통제하지는 않는 것 같다.
길 왼편으로 강호정, 하천재, 오회공 종택, 오회당, 사의당, 삼휴정 등의 옛 한옥들이 도열하듯 자리 잡고 있다. 이 건물들은 경북 유형문화재 제71~76호로 지정된 조선시대 건축물로, 영천댐 건설공사로 인해 이전 복원한 것이다. 영천댐 건설로 자양면의 6개 법정동이 수몰됐는데, 당시 문화재로서 가치가 충분한 이 귀중한 건축물들을 옮긴 것이다. 그러나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못한 흔적들이 역력해 안타까울 뿐이다.
산과 물이 어우러진 이곳은 예로부터 풍수지리설로 인한 명당자리가 많아 후손들이 발복해 인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문화재단지 오른편의 노송 우거진 구릉에 오천정씨들의 무덤이 있다. 선무랑(宣無郞) 정차근(鄭次謹)의 무덤은 훌륭한 명당으로 자손들이 번창했다고 한다. 특히 그의 아들 정윤량은 소문난 효자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그 효성에 감복한 어느 노승이 이곳을 장지로 점지했다는명당이다
자양면성곡리복지회관 문화재 단지에서 바로 산행
사의당 앞에서 오르막길을 몇 발짝 옮기면 갈림길이다. 90도로 꺾어 오른편 길로 들어서면 소나무가 빽빽하게 들어찬 부드러운 숲길이다. 벽진이씨 묘를 지나 얼마 못가서 갑자기 수종이 변한다. 소나무숲에서 참나무숲으로 바뀌면서 가파른 능선길에 ‘꼬깔산 1.5km’ 표지판을 만난다. 경사가 심한 마사토 길을 오르려니 여간 힘든 게 아니다.
40여 분 힘겹게 오르니 정면에 암벽이 버티고 섰다. 좌우 어느 쪽이든 우회해 오르면 묵은 묘 1기가 자리하고 널찍한 바위는 쉼터를 제공한다. 전망도 시원해 자양면소재지 일대와 영천호가 한눈에 들어오고, 소나무숲 사이의 오천정씨 명당자리도 내려다보인다.
땀이 식을 즈음 자리를 털고 일어나 10분 가량이면 첫 표지목(하절 2.0km, 기룡산 4.1km, 묘각사 6.1km)을 만나면서 경사진 비탈길은 끝난다. 표지목에서 오른편으로 이어지는 암릉을 지나면 참나무 낙엽으로 뒤덮인 부드러운 길이다. 지난 여름의 푸르름은 볼 수 없고 잎을 떨군 나무들은 앙상한 가지만 붙들고 삭풍을 맞고 있다.
능선길을 10분쯤 걷다보면 신선암 갈림길이다. 표지목은 ‘신선암 1.3km, 하절 2.0km, 기룡산 3.8km, 꼬깔산 0.5km’를 표기하고 있다. ‘하절 2.0km’ 표기는 지나온 첫 표지목에서 본 것과 같아 어느 것이 잘못인지 분간이 어렵다. 이곳에서 발걸음을 옮기면 곧장 헬기장이다. 보도블록이 깔린 넓은 헬기장에는 ‘꼬깔산 0.8km' 라는 표지판이 나무밑둥 사이에 끼어 있는데, 이곳의 이정표들은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헬기장에서 고깔산까지는 10여 분이면 닿지만, 중간의 갈림길에서 오른편 경사진 능선길을 바로 올라야 한다. 왼편 길은 우회로로 자칫 정상을 밟지 못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꼬깔산 정상(736.1m)에는 오석으로 된 표지석이 있다. 2005년 5월1일 자양초등학교 총동창회가 설치한 표지석 뒷면에는 영천댐에 수몰된 고향과 모교에 대한 애틋한 심경을 새겼다. 옆에는 ‘기계 316’ 삼각점이 있고, 주변 조망은 좋지 않지만 나뭇가지 사이로 북쪽의 기룡산이 정수리를 내밀고 있다.
꼬깔산 정상에서 오른편 길은 신선암쪽 하산길이다. 발걸음을 왼편으로 약간 옮긴 후 북쪽 능선을 따르는 내리막길이 기룡산으로 연결된다. 수북하게 쌓인 낙엽에 길을 구분하기 힘들고, 때로는 미끄럽기까지 하다. 정면의 봉우리를 두고 왼편으로 우회하니 짧은 오르막길에 경주김씨 묘를 만나고, ‘기룡산 2.8km’ 표지판도 있다.
눈앞에 빤히 바라보이는 기룡산 정상을 향해 기룡의 등에 올라 길을 재촉한다. 오르내림이 심하지 않는 능선길은 별다른 갈림길이 없다. 꼬깔산을 떠난 지 30분쯤 갈림길 표지목(용화리 2.0km, 기룡산 1.7km, 꼬깔산 1.6km)이 나온다. 용화리로 떨어지는 길은 용화리~묘각사를 잇는 차도로 내려서게 되는데, 오히려 묘각사에서 더 가깝다.
다시 능선을 따라 오르면 곳곳이 전망대다. 조금 전 지나온 능선이 부드럽게 펼쳐지고 꼬깔산 너머 영천호의 일부도 조망되는 시원함을 맛볼 수 있다. 갈림길 표지목에서 15분이면 815m봉을 지나게 되는데, ‘기룡산 1km’ 표지판이 있다. 바로 정면의 기룡산을 바라보며 내리막을 한번 내려섰다가 올라치는데, 무덤 2곳을 지나게 된다. 명당자리가 많아서인지 무덤이 많은 특이한 산이다.
조망을 즐기기에 좋은 암릉을 지나 올라서면 삼각점(기계 317)이 있고, 곧장 갈림길 표지목(꼬깔산 3.3km, 음태골 1.4km, 묘각사 0.8km)을 거쳐 상봉에 닿는다. 암봉인 정상에는 무인산불감시카메라와 2000년 해맞이기념비가 어울리지 않게 서있다. 주변 조망은 너무나 시원해 북쪽에는 천문대가 있는 보현산이 손에 잡힐듯 가깝게 보이고, 그 뒤로 기상관측소를 이고 있는 면봉산, 베틀봉이 건너다보인다. 동쪽으로는 낙동정맥의 산줄기를 따라 운주산, 침곡산이, 서쪽에는 방가산, 봉림산, 화산이 산줄기를 이으며 솟아 있다.
하산은 무인산불감시카메라 뒤쪽의 너덜길을 지나 진달래나무 사이의 암릉을 따르면 된다. 우회로가 있지만 아기자기한 이 암릉길은 기룡산 산행에서 가장 두드러진 코스가 아닌가 여겨진다. 크게 위험한 곳도 없지만 오른편의 보현산을 건너다보며 오르내리는 맛이 일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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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분 정도 이 암릉을 지나면 삼거리 갈림길을 만나는데, 오른편 암봉은 전망대다. 기룡산에서 동남으로 뻗은 능선과 꼬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시 서남쪽 능선으로 나아가면 ‘기룡산 1.3km’ 표지판이 나온다. 여기서 길은 갈라지는데, 오른편은 시루봉으로 연결되고, 묘각사 또는 낙대봉으로 가려면 왼편 정남쪽 능선으로 길을 잡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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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림길에서 낙엽 쌓인 내리막길 중간에 무덤 두 곳을 지나 10분쯤이면 표지목을 만난다(묘각사 0.7km, 기룡산 0.8km). 능선길을 계속 이으면 낙대봉을 거쳐 용화리로 내려선다. 묘각사는 왼편 경사가 심한 비탈길로 10분이면 닿는다.
묘각사는 조계종 제10교구 본사인 은해사의 말사다. 신라 선덕여왕(632~647) 때 의상(義湘·625~702)이 창건했다. 설화에 따르면, 창건 당시 동해의 용왕이 의상에게 법을 듣기 위해 말처럼 달려왔다고 해서 절이 위치한 이 산의 이름을 기룡산(騎龍山)이라 했단다.
용왕이 달려와 의상에게 법문을 청하자, 의상이 법성게(法性偈)를 설하였더니 문득 깨닫고 승천했다. 용왕은 하늘에서 감로(甘露)를 뿌렸는데 , 이 비로 당시 극심했던 가뭄을 해소하고 민심을 수습했다고 한다. 이에 의상의 묘한 깨달음을 얻었다고 하여 절 이름을 묘각사라 했다고 전한다. 천년고찰 묘각사는 그 역사에 비해 초라하기 그지없다. 현재 불사가 한창이지만 350년 된 극락전은 많이 쇠락한 모습이다.
경내의 오룡수(悟龍水) 한 바가지로 목을 축이고 절집을 나선다. 콘크리트 포장도로를 20여 분 내려가면 왼편으로 기룡산~꼬깔산 중간 능선으로 오르는 들머리에 이정표(꼬깔산 3.6km, 기룡산 3.7km, 시루봉 8.2km)를 만난다. 용화리 마을이 보일 즈음 오른편 운곡지 갈림길(낙대봉에서 떨어지는 지점)이 나오고, 마을 경로당을 지나 용화리 버스정류장에 닿는다. 버스정류장에는 등산안내판과 묘각사 표지판이 있다.
임고서원 고려시대의 충신 정몽주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건립한 서원이다. 조선 명종 8년에 정몽주의 고향인 영천 사람들이 건립한 이후 소실과 중건, 정화를 거친 뒤에야 현재의 규모를 갖추게 되었다. 임고서원 소장전적 및 포은 정몽주 영정이 보물 제1109호, 1110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서원 앞에는 수령 500년 된 은행나무가 우람하게 서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