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20일 사순 제1주간 화요일
제1독서
<나의 말은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리라.>
▥ 이사야서의 말씀입니다.55,10-11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0 “비와 눈은 하늘에서 내려와 그리로 돌아가지 않고
오히려 땅을 적시어 기름지게 하고 싹이 돋아나게 하여
씨 뿌리는 사람에게 씨앗을 주고 먹는 이에게 양식을 준다.
11 이처럼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음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6,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다른 민족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해야 들어 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니 그들을 닮지 마라.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
10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11 오늘 저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고
12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도 용서하였듯이 저희 잘못을 용서하시고
13 저희를 유혹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저희를 악에서 구하소서.’
14 너희가 다른 사람들의 허물을 용서하면,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하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마태 6,9)
벗님 여러분은 기도를 많이 하시지요? 여러분에게 있어 기도란 무엇인가요? 뭐라고 정의하고 싶으세요? 기도에 대해 수많은 정의와 방법들이 존재하는데, 저는 '기도란 하느님과 시간을 보내는 것'이라 여깁니다. 대화가 오갈 수도 있고, 침묵으로 서로를 부둥켜 안고 있을 수도 있고, 마음과 정감을 나누며 일치 안에 머무를 수도 있습니다.
시간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것 중 가장 공평하면서, 아무리 날고 기는 인간이라도 만들어 낼 수 없고 필요에 따라 늘이거나 줄일 수 없는 창조주만의 선물이지요. 또 시간은 종자 씨앗과 같아서 누구는 재물을 위해, 누구는 학문을 위해, 누구는 자아실현을 위해, 누구는 가족을 위해 사용합니다. 저마다 중요하게 여기는 곳에 쏟아붓기 마련이지요. 그리고 대개는 투자한 만큼의 열매를 가져다 줍니다. 그만큼 인간 삶에 방향성과 내용을 결정하는 '시간'이라는 귀중한 선물을 주인이신 하느님과 쓰고 싶어, 그분 앞으로 들고와서 그분과 함께 엮어가는 여정이 저에게는 기도입니다.
우리가, 우리와 함께하고 싶어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감지하고, 마음을 돌려 그분을 향하는 순간 이미 기도는 시작됩니다. 실은 먼저 우리 마음에 하느님을 찾을 일이 생긴 것이지만, 벅찬 세상사에 이리저리 떠밀리며 사느라 미처 갈망의 핵심을 깨닫지 못하고 자꾸 남의 다리를 긁는 우리를 하느님께서 먼저 손 내밀어 건드리신 것이지요. 이미 그분은 우리에게 필요한 바를 아시기에 당신과의 만남으로 초대하시는 겁니다. "넌 내가 준 그 선물보따리를 나와 함께 풀러가야 할 사람이구나!" 하면서요.
"아버지께서는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계신다."(마태 6,8)
우리가 하느님 앞에 다가오는 순간, 이미 그분은 우리가 온 까닭을 알고 계십니다. 밥이 필요한지, 능력이 필요한지, 알고 싶은 게 있는지, 아니면 그저 당신과 사랑을 나누고 싶은지... 마치 자신을 향해 엉금엉금 기어오는 아기에게 지금 젖이 필요한지, 기저귀를 갈고 싶은지, 뭐가 무서운지, 그저 안기고 싶은지 한 눈에 아는 엄마처럼 말입니다.
"너희는 기도할 때에 ...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마태 6,7)
그러므로 기도할 때 많은 말이 필요치 않습니다. 아니, 그분께는 필요치 않다고 해야 정확할 것 같습니다. 오히려 말이 필요한 건 우리 자신입니다. 우리의 입을 통해 발설되는 우리의 욕구, 슬픔, 좌절, 청원 들을 통해 스스로를 깨닫고 정화하는 과정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니다. 주님의 기도에는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하느님께 바라야 하는 내용이 충만히 들어 있어 가장 완전한 기도라 하지요. 아버지의 이름과 나라와 뜻, 우리가 살아갈 양식과 관계성과 죄악에서의 보호. 예수님께서 알려 주신 것 외에 더 필요한 것이 있다면 그건 탐욕이고 이기주의일 겁니다. '하느님 앞의 인간'으로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본질을 아직 깨달지 못한 것일 수도 있고요.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
하느님 말씀의 힘이 드러나는 구절입니다. 그 말씀이 세상을 창조하셨고 또 이루어진 모든 것에게 "보시니 좋다"고 말씀하셨지요. 이미 자연과 모든 피조물은 그 자체로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진 작품입니다.
뭔가 한참 모자라는 것 같아 자꾸만 하느님께 더 청하고 더 조르고 싶어하는 우리도 실은 있는 그대로 하느님 말씀의 결과물이기에 그분 뜻이 완수된, 완수되고 있는 존재입니다. 완수되어 가는 과정이라면 누구보다 완수에 관심을 기울이실 분은 바로 하느님이시기에 그 또한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반드시 완수하고야 만다." 이 말씀 안에 깃든 하느님 의지가 느껴지십니까? 이는 전지전능하신 절대자 하느님의 강력한 바람이고 신념입니다. 그 의지가 곧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과 시간 안에 함께 현존하며 그분과 현재를 공유하고, 오로지 그분 뜻이 이루어지길 바라는 것이 오늘 가르쳐 주시는 기도의 골자입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해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그 자체로 하느님의 말씀이 완수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벗님 여러분, 여러분은 기도를 잘 하십니까? 기도를 많이 하십니까? 주로 어떤 기도를 하시나요?
어떤 장로님은 정말 기도를 멋지게 하시더군요. 하시는 기도를 듣고만 있어도 '아멘'이 저절로 나옵디다. 어떤 자매님은 묵주기도를 하루에 백단을 바치더군요. 참으로 부럽습니다. 어떤 형제님은 절을 삼천배 올렸다고 하더군요. 저는 가끔 33배를 하는데도 힘들던데...
예수님은 오늘 기도할 줄 모르는 우리에게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시네요. "빈말을 되풀이하지 마라." 기도는 양에 비례하지 않는다네요. 오히려 마음을 담아 단순하게 기도하라네요. 쓸데없는 것 주절주절 청하지 마라네요. 하느님이 이미 필요한 것 다 알고 계신다고요. 그냥 하느님께 찬미와 칭송을 드리고 소박하게 이 험난한 세상에서 하느님의 착한 자녀로 살아갈 은혜만 청하라네요. 그 나머지는 사실 다 우리의 욕심이지요.
오늘 단순하게 그분께서 가르쳐주신 주님의 기도를 각자 벗님 한사람 한사람을 위해 정성껏 세 번만 바쳐 보실래요~~^^
▶ 작은형제회 오 바오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