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현전에서 세종대왕의 신임을 얻었던 여덟 학자(최항, 박팽년, 신숙주, 강희안, 이개,
이선로, 성삼문)가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과정을 그린 그림
한글이 없다는 상상
만약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가끔 그런 상상을 하게 된다. 뜻 모를 외국어 간판과 외제 상표, 심지어 우리나라 사람이 쓴 소설의 한 문장 안에 서너개의 외국어 단어가 뒤섞여 있는 걸 발견할 때마다 나도 모르게 뇌리를 스치는 상상이다. 오늘 우리가 소중함을 모르고 푸대접하는 한글이 아에 만들어지지 않았거나 사람에게 버림을 받아 세상에서 영영 사라지게 되었을 경우를 상상해보는 것이다.
우리말은 있으나 우리글이 없는 세상은 상상만으로도 끔직하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말을 있는 그대로 옮길 수 있는 글이 없다면 우리는 여전히 한글 창제 이전처럼 한문을 사용하고 있을 것이다.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사람들은 잘 모른다. 만약 지금 우리글인 한글을 없애고 국문을 한문으로 바꾼다면 한글이 없던 양반 사회보다 더한 계급 관료 사회가 펼쳐질지 모른다. 한문은 우리말과 다르고 배우기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한글 창제 이전의 양반은 자신들의 정치적, 경제적 지배 발판을 한문으로 삼았다. 요컨대 양반만이 한문을 공부하고 과거 제도를 통해 관료 체제에 편입해 온갖 기득권을 누릴 수 있었던 것이다.
양반 세상에서 세종이 한글 창제를 꿈꾸었다는 건 혁명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세종이 신하들을 시켜서 한글을 창제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지만 실제로는 세종 자신이 한글 창제를 주도한 언어학자였다. 그래서 "세종실록"에서도 훈민정음에 대해서만은 유일하게 "친제"라는 표현을 쓴 것이다.그것을 비밀리에 진행되지 않고 공개적으로 진행했다면 양반 기득권 세력의 반대로 훈민정음 창제는 꿈도 꾸지 못할 일이 되고 말았을 것이다. 한글 창제에 제동을 걸기 위해 집현전 책임자라 할 수 있는 최만리가 올린 상소에 대해 세종은 일언지하에 잘라 말했다
그대들이 운서를 아느냐? 4성과 7음을 알며 자모가 몇인지 아느냐? 만일 내가 운서를 바로잡지 않았다면 누가 바로잡는단 말이냐?
한글은 '한 나라의글'이고 '큰 글'이고 '세상에서 첫째가는 글'이다. 한글이 있어 지금 우리는 우리의 말과 생각을 글로서 표현한다. 그것이 없었다면 지금 우리는 컴퓨터 자판과 휴대폰 자판은 모두 한문을 구현하기 위한 조합이 되어 있을 것이다. 민족의 바탕은 고유의 말과 글이고 그것이 없었다면 더 이상 민족이라고 내세우기 어렵게 된다. 만주어와 만주족이 사라진 게 대표적인 예이다. 하지만 파란만장한 우여곡절을 겪으며 만들고 지켜온 한글이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어떤 대접을 받고 있는지 똑똑히 눈여켜볼 필요가 있다.
지금 한글은 그것의 사용자들에게 학대당하고 혹사당하고 멸시당하고 있다. 채팅과 휴대폰 문자에서 뭉개지고 비틀어지고 있다. 서울은 "하이 서울'이고 수원은 해피 수원'이고 한국은 다이내믹 코리아'이니 한글의 문전 박대는 국가적 차원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셈이다.
도대체 국가적 정체성의 기반을 모조리 영어에 헌납한 뒤 국제화 되고 세계화 되어 무엇을 하자는 것인지 모를 일이다. 외래어로 일색을 이룬 아파트, 상가, 간판의 홍수에 떠밀려 한글은 지금 이 골목 저 골목 어두운 사각지대를 배회하고 있다. 제 집에서 문전박대당하고, 제 집에서 쫓겨난 한글의 신음이 국적 불명의 도시를 배회하고 있다. 하지만 제 집으로 돌아가 한글의 이름으로 눌러앉을 만한 빈틈은 여전히 없어 보인다.
만약 한글이 없다면 지금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그것에 대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생각해봐야 할 시간이다. 한글이 창제되지 않아 여전히 한문을 사용하는 한국인, 일제강점기처럼 일본말과 일본 이름을 사용하는 한국인을 상상해보라. 그러면 내가 물려받은 한글, 내가 배운 한글, 내가 쓴 한글이 얼마나 아름답고 완벽한 정신적 유산인지 알게 될 것이다. 한글, 내 마음에 품고 내 마음처럼 평생 갈고닦아야 할 보배가 아닌가.
글 : 박상우
페르귄트 제 1조곡 작품 64“아침의 기분” / 그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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