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늘 깨어 있으라
이미숙
길을 가다가 "도를 아십니까?"나 "인상이 참 좋으십니다."라며 접근하는 사람들에게 잡혀 본 적이 몇 번 있었다. 지금은 길거리에서 그런 사람들을 만나기 쉽지 않다. 하지만 1990년 대 중후반에는 그런 장면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하물며 그들을 따라갔다 온 사람들도 있었다고 한다.
올 설날은 연휴가 꽤 길었다. 특히 명절 전으로 쉬는 날이 4일이나 되었다. 그 긴 시간을 뭘 할까 고민하다가 남양주 운길산에 있는 수종사를 다녀왔다.
수종사는 북한강과 남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양수리)를 바라볼 수 있는 경관이 참 멋진 곳이다. 예부터 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의 풍광을 시, 서, 화로 남겼다. 조선 전기 훈구파 문인인 서거정은 수종사를 동방 제일의 전망을 가진 사찰이라 하였다고 한다.
사계절 내내 신록, 단풍, 설경이 신비스러운 곳이다. 해가 뜨는 시간이든 지는 시간이든, 구름이 낀 풍광이든 맑은 경치든, 대단히 아름다운 전망을 지니고 있는 풍경 맛집이다.
범종각 옆에는 세조가 심었다고 전해지는 오백 년 된 은행나무가 있었다. 오십 년 내 삶이 남긴 생채기는 수도 없이 많은데 오백 년이라니, 기왓골 이끼처럼 오랜 시간에 더욱 단단해진 나무를 보면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졌다. 잔잔한 강물에 비친 산그림자는 시간을 잊게 했다. 망부석이 되어 종일 서 있어도 좋을 것 같았다.
꼬르륵꼬르륵.
알람을 맞춰놓은 듯 정확한 시간에 울리는 배꼽시계는 도나 깨달음에는 관심이 없는 듯하였다. 나약한 육신을 입은 나는 배고픔을 핑계 대며 수려한 풍광을 포기하고 돌아섰다. 서둘러 돌 비탈을 내려왔다.
올라갈 때와 달리 주차장은 빈자리 없이 가득 찼다. 작은 차가 올라오기에 버거울 정도로 가파른 길이었는데 경차가 두 대나 있었다. 그중 한 대는 바람 빠진 풍선처럼 주저앉아 있었다.
“어휴, 저 차는 어쩌나? 긴급 출동을 부르면 여기까지 올까?”
“투덜거리며 오느라 시간이 꽤 걸리겠지.”
작은 차를 몰고 다니는 차주로서 안타까움과 안쓰러운 마음에 펑크 난 타이어에 눈길이 갔다.
그때였다. 나란히 붙어 있던 경차 중 멀쩡한 차의 문이 열렸다. 누군가 손짓을 했다. 그 시간 주차장에 서 있던 사람은 나 하나뿐이었다. 아는 사람이 있을 리 만무했기에 무시하고 가려는데 또 손짓을 했다.
"저요?"
"네!"
쭈뼛거리며 다가가자 창문이 스르륵 내려졌다. 차 안에는 승복을 입은 남자가 있었다.
두 손을 모으고 합장한 후 인사를 주고받았다.
"올해는 처사님께 좋은 일이 생길 겁니다. 이 부적 두 장을 팔자 모양으로 해서 붙이면....."
스님은 황금 색 부적을 양손에 쥐고 한참 설명했다. 마치 부적에 주문이라도 거는 것 같았다. 웅얼웅얼. 무슨 말을 하는지 도무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반문을 하기도 애매했다.
“복이 들어온다고? 기왕 줄 거면 복만 주시지 액운은 왜 생기는 거야?“
불행은 벗을 부르고, 생각은 또 다른 생각을 몰고 오기 마련이다. 좋은 일이 생긴다니 배시시 미소가 지어졌다. 하지만 액운은? 자신에게 불행이 닥친다는데 손 놓고 기다리기만 할 사람이 있을까.
염불하듯 중얼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머리는 내 의지와 상관없이 행운의 룰렛을 돌리기 시작했다. 영험한 부적을 공짜로 줄 리는 없고 시주를 해야 하나? 그렇다면 얼마를 해야 하지? 만 원은 적다고 할 테고, 오만 원은 너무 과하고, 삼만 원이면 될까?
한참을 설명하던 스님이 흑진주처럼 매끈한 구슬로 만든 염주를 내밀었다. 두 손을 가지런히 모아 정성스럽게 받았다. 수도자와 복이라는 단어 앞에서 나는 한없이 겸손하고 연약한 사람이 되어 자비를 구하고 있었다.
스님 손에 있던 부적과 염주가 내 손으로 넘어왔다. 얼떨결에 받긴 했는데 어떻게 해야 할까? 갑자기 생긴 고민에 난처해하며 쩔쩔매고 있을 때였다.
"빠아앙 빵 빵!"
묵직하게 가라앉은 바리톤 같은 경적이 울렸다. 순간, 번쩍하고 머리에 불이 켜졌다.
비행청소년처럼 가출했던 이성이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내 생각과 상황은 아랑곳없이 스님은 계속 혼잣말을 했다. 그러다 결국 속내를 드러내고 말았다.
"죄송합니다. 제가 천주교 신자라 이 물건들이 필요치 않습니다."
"석가모니 부처나 예수님이나 이웃사촌인데 뭘......"
얼버무리는 스님을 뒤로하고 차에 올랐다.
예열을 끝낸 자동차에서 나를 기다리던 친구가 짜증 섞인 말투로 핀잔을 주었다.
"뭘 그렇게 다 듣고 있냐?"
"그럼 어떻게? 스님이 말씀하시는데"
"스님이야? 뭐라는데?"
"올 한 해 내게 좋은 일이 생길 거래. 그러면서 부적 두 개와 염주 팔찌를 하나 주시네."
"그래서 뭐라고 했어?"
"죄송하다고 했지."
친구는 더 이상 묻지 않았지만 나는 주저리주저리 상황 설명을 했다.
"새해라 부처님 전에 인사드리러 왔는데, 먼 길 가는 데 기름값이라도 보태 달래."
"야, 그게 스님이냐? 땡 중이지!"
친구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주차장을 벗어난 차는 성질 급한 시어머니 같은 내리막길에서 느려터진 며느리처럼 움직였다. 운전대를 잡은 친구의 얼굴에 한심함과 긴장감이 함께 엿보였다.
술을 마시거나 고기를 먹는 등 승려가 지켜야 할 계율을 따르지 않는 승려를 땡 중이라고 한다. 잠시 스친 인연이지만 승복을 입은 그 남자는 정말 스님일까? 친구 말대로 땡 중일까? 아니면 내게 가르침을 주기 위해 환생한 부처님일까?
주차장에서 일어난 해프닝은 30년 전 순진했던 나를 소환해 주었다. 신혼 때의 일이었다.
1톤 트럭에서 어떤 남자가 백과사전을 공짜로 나눠준다고 소리를 질렀다. 오가는 사람들이 관심을 보였다.
책 욕심이 많았던 나는, 궁금하기도 하고 한 부 얻어 가고도 싶었다. 이유를 물어보니 다니던 회사에 부도가 났단다. 출판사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중이며, 비용 마련을 위해 부득이 헐값에 처분한다고 했다. 자신들이 재기할 수 있도록, 점심값이라도 주면 좋겠다고 상냥하게 말했다. 사정을 듣고 나니 안쓰럽기도 하고 승소하길 바라는 마음도 컸다.
점심값 정도라는 말에 가벼운 마음으로 만 원을 건넸다. 그리고 얼마 후 수십만 원의 백과사전에 대한 지로용지가 날아왔다.
"내가 남들에게 속아 넘어가기 딱 좋은 인상인가?"
"......"
내 질문에 친구는 어이가 없어서인지, 대꾸할 가치가 없다는 것인지 묵언으로 답했다.
“그대 늘 깨어 있으라.”
부처의 ‘늘 깨어 있으라’는 가르침과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부처가 열반에 들기 전, 그의 수제자인 아난다 존자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다. 이에 부처는 마지막 가르침을 남기며 말했다.
“아난다여, 나는 곧 이 세상을 떠나리라. 그러니 너희는 법(法)을 등불로 삼고, 스스로를 등불로 삼아라. 남에게 의존하지 말고, 오직 법과 스스로의 지혜에 의지하라,”
그리고 그는 “항상 깨어 있으라(常精進, sammapadhana)”는 말을 덧붙였다. 이는 항상 수행에 힘쓰고, 무지와 번뇌에 물들지 않도록 정신을 깨우라는 뜻이었다.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고 끊임없이 일어나는 욕심과 욕망, 제값을 치르지 않고 거저 얻어 보려는 탐욕과 이기심은 인간이라면 누구에게나 있을 법한 마음이다.
반백을 살아낸 삶이 혜안을 열어 준 것일까. 나의 성향을 파악한 친구의 경적소리가, 어리석은 짓을 하려는 나를 멈추게 한 것일까. 어쩌면 종교를 초월한 부처님의 자비인지도 모르겠다.
지난날 삶의 수레바퀴처럼 터덜거리던 시멘트 길이 끝나고, 매끄럽게 포장된 도로가 나왔다. 검은 아스팔트에 부서진 햇살이 눈부시다.
첫댓글 좋은 글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건필하세요.
감사합니다.
작가님의 왕성한 집필력을 본받고 배웁니다
성질 급한 시어머니 내리막길ㆍ느려터진 며느리 자동차ㆍㅋㆍㅋ 웃어요ㆍ
잔잔한 깨달음ㆍ사월 봄과 같은 글 잘 읽었어요
감사합니다
봄과 같은 글이라는 작가님 말씀에 미소가 지어집니다
그 시각 저는 두물머리에 있었답니다.
ㅎㅎ대학시절, 똑같은 전집 레파토리에 속아서 복장 터지는 지로영수증을 받았드랬죠. 저쪽에서 달달 볶는데 제가 더 달달 볶아댔더니 슬그머니 책 두고 도망갔어요.
그리고 도를 아십니까에 여러번 당할 뻔했죠.
재미있게 잘 읽었습니다. 깨어있지 못한 저의 무지를 탓하며, "깨어 있으라".
의외의 장소에서 만날 수 있었는데 아쉽습니다
저도 그들을 깨볶듯 달달 볶아볼 걸 그랬습니다
순진하게 다 납부했어요 저는
세상엔 사기꾼들 많지요.
늘 깨어있어야 합니다.
수종사라는 단어가 나오니 공광규 시인의 '수종사 풍경'이 떠오르네요.
시의 마지막 부분에
'바람이 와서 마른 몸을 때릴 때
몸이 부서지는 맑은 소리'
건필하세요.
잔잔한 두물머리 수면위로 청아한 수종사 풍경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이 새벽
자다가 정녕 깨지못하였다면
이 댓글도 없었을 겁니다 ㅎㅎ
딱 두 가지
욕심이 왜 없겠습니까,
그것도 공짜를.
다만, 공짜 뒤에 오는 진짜를 선택하냐마냐의 판단과 갈등을 동반한
손해와 불신 불안을 피하는
자신의 최선을 위하면 되지 않을까싶어요
저는 그런편이거든요
공짜도 좋아하구요 ㅎㅎ
그리고 다른 하나는
수종사,
내 기꺼이
가까운 기간 내
한번 다녀 오렵니다
이 새벽
은근한 고요
평온합니다~~
손톱만하게 잎을 내민 은행나무와 두물머리의 윤슬을 보면서 청아한 풍경소리 듣고 오세요
종일 서 있어서 지루하지 않을 것입니다
@이미숙 꼭 다녀오겠습니다
반달모양의 눈웃음이 어린아이처럼 맑아보이던 미숙작가님 얼굴이 떠올라서 쿡쿡웃으며 글을읽었습니다 작가님 예쁜봄날~
예쁘게 기억해 준 작가님의 마음에 사랑이 가득합니다.
읽어주시고 마음 남겨주셔서 감사합니다.
작가님 거절못하고 곤란하게 서서 듣는 모습 상상됩니다.ㅋ 모두 깨어 있어야 할 때입니다 부적을 가져야만 좋은일이 생긴다면 세상 참 살기 쉽죠.
오늘 깨어나는 일. 먹는일, 말하고 생각하는 일상이 모두 기적이며 좋은일입니다.
시인님 말씀처럼 일상이 늘 기적이라 생각하며 감사하고 있습니다
얼굴뵌지 꽤 오래된 것아 보고픔이라는 단어가 생각납니다
@이미숙 5월엔 만나요 ^^
ㅋㅋㅋ 작가님 너무 착한 인상히셔서 그랬나봐요 ㅎㅎ 그 땡중은 그게 직업인가봐요. 스님복 입고 ㅎㅎ 저도 옛날에 도를 아시나요한테 붙잡혀서 커피숍까지 들어갔었어요. 저한테 돈을 5만원이라도 내라고해서 ATM 기계 좀 다녀오겠다고 하고 나와서 그 길로 집에 갔어요 ㅋㅋ 그때가 2000년도인데 알바하는 학생한테 5만원이 어딨어요 ㅎ 그리고 또 한번은 중국 장가계를 갔어요. 산 꼭대기에서 자수정 조각을 팔아서 한 관광객 일행이 그 돌을 샀어요. 근데 비가 오기 시작하는거에요 ㅋㅋ 웬걸 자수정 돌에서 보라색 물이 뚝뚝 ㅋ 가짜 자수정이었어요! ㅋㅋㅋㅋ 정말 늘 깨어있어야겠어요^^ 주차장으로 시작해서 옛 기억까지 소환한 글 잘 읽었습니다.
ATM을 핑계로 위기를 벗어난 작가님의 지혜가 돋보입니다.
우리 일상에서 비일비재한 거짓과 위선과 속임수들 늘
깨어 있어야 함을 다시금 느낍니다.
긴 글 읽어주시고, 작가님의 경험을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집 나간 비행청소년 돌아오듯 정신줄 챙겼으니 됐습니다. 작가님 예쁜 눈이 고와서 표적이 되기 십상입니다. 눈에 힘을 주고 사물을 꿰뚫어 보는 연습을 간간히 해보세요. ㅎㅎ
"쌍수하면 사나워보인다는데...."
의사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선생님은 좀 사나워보여도 될 것 같습니다."
3년전 성형외과 의사 선생님 말씀이 생각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