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武將) 고만서 ⑩
성주 김태(金太)가 다가온다. 김태의 관등은 6품 아찬(阿湌)이다. 흰 턱수염이 길었고 얼굴은 붉다. 말에 앉아 턱을 조금 치켜든 자세로 주위를 둘러본다.
그 순간 옆으로 시선을 돌린 고만서는 숨을 삼켰다.
여자. 진주빛 겉옷에 머리에는 같은 색 두건을 썼는데 긴 머리를 뒤에서 묶어 붉은색 장식을 매달았다. 그리고 그 얼굴. 거리가 10보쯤 떨어져 있었지만 맑은 눈과 곧은 콧날, 단정한 입술이 뚜렷이 드러났다.
소란했던 시장 상인들이 좌우로 갈라서면서 만들어진 길을 김태와 여자가 나란히 다가온다.
그때 고만서와 여자의 시선이 마주쳤다. 이제 거리는 다섯 걸음, 이쪽의 시선을 느낀 여자가 머리를 돌린 것이다.
「넌 누구냐?」
그 순간 그렇게 물은 것은 김태다.
김태의 시선도 고만서에게로 향해져 있는 것이다. 눈을 치켜뜬 김태의 목소리가 시장을 울린다.
「처음보는 놈이다. 신분을 밝혀라!」
「성주시오?」
고만서가 역시 턱을 들고 되물었다. 심장이 거칠게 뛰었지만 머릿속에 입력된 기록이 거침없이 입 밖으로 뱉아진다. 아아, 유니스. 너구나.
「저는 대야성 근처에 사는 위정이라고 합니다. 제 부친은 위균, 조부는 위봉이신데 들어보신 이름이실 것입니다.」
「아아, 그대가 대아찬(大阿湌) 위봉님의 손이신가?」
서둘러 말에서 내린 김태가 고만서 앞으로 바짝 다가섰다. 얼굴이 반가움으로 웃음기가 번져져 있다.
「내가 자네 조부님의 막하였네. 돌아가신지 10년이 되었던가?」
김태가 묻자 고만서가 대답한다.
「올해로 12년이 되었습니다.」
「그렇군. 맞아. 부친께선 고향에 계신가?」
「예, 관직이 싫다고 하시니 어쩔수 없는 일이지요.」
「나도 조부께 들었어.」
김태가 덥석 고만서의 손을 쥐더니 다시 묻는다.
「그런데 이 변경까지 왠일이신가?」
「답답해서 유람을 다니는 중입니다.」
「어허. 잘 왔어, 이 사람아. 나부터 찾지 그랬는가?」
「제가 무슨 면목으로 찾습니까? 돌아가신 조부 성명을 앞세우다니요? 성주께서 우연히 물어주셨으니 이렇게 되었지요.」
「자, 가세. 내성으로.」
그러다가 아직도 마상에 앉은 여자를 그때서야 의식하고는 고만서에게 말했다.
「내 딸일세. 아들 둘은 전장에서 죽고 저놈 하나만 남았네.」
그때까지 둘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던 여자가 고만서를 향해 목례를 했다. 눈 주위가 조금 붉어진 것 같다.
김태에게 끌려 걷던 고만서가 뒤에 서있는 군사 비주에게 말했다.
「따라오너라.」
이제 비주는 위정의 종이 되었다. 김태가 소리쳐 물을 적에 혼이 반쯤 나가있던 비주는 아직도 정신이 제대로 돌아오지 않았으므로 허청거리며 뒤를 따른다.
위씨는 대야성 근처를 기반으로 삼은 호족(豪族) 가문이다. 신라 왕실에서는 호족 가문에도 관직을 주고 포용했는데 위씨 가문도 그 중 하나인 것이다.
내성을 향해 걷던 고만서가 머리를 돌려 비주를 보는 척 하면서 다시 여자를 보았다. 둘의 시선이 마주쳤고 여자의 눈 밑이 더 붉어진 것 같다.
「아아, 대아찬께서 그대같은 손이 있었다니. 그래, 잘왔어.」
김태가 말하는 바람에 고만서는 시선을 돌렸고 여자도 서둘러 외면했다.
길가에 개나리가 활짝 피어있다는 것을 고만서는 그때서야 본다.
첫댓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ㅈㄷ