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정(北柯亭)은 오산마을 안에서 북쪽으로 조금 가면 쉽게 찾을 수 있다. 작은 정자다. 아래에 보면 궤정(柜亭)이라 쓴 걸 볼 수 있다. 柜자는 궤(櫃)의 뜻으로 궤정(柜亭)은 작은 정자란 뜻이다. 궤는 발음이 어려우므로 거정(柜亭)이라 발음하고 궤(櫃)로 뜻을 새겨도 상관없다고 본다. 기문(記文) 원본은 아래에 실었다. 오산마을 열락정(說樂亭)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된다. 하지만 오류가 있어 가감히 고쳤다. 북가정(北柯亭)의 柯는 가지(枝)의 뜻인데 예전 열락정 건물에서 쓸만한 목재를 골라 썼기에 열락정을 북쪽에서 잇는 亭子란 뜻이다.
※이해를 돕기 의해 지금 수안보면 오산마을 열락정(說樂亭)내력을 서술한다.
1)거정(柜亭) 최초 창건, 1813년 (순조 13)
주도: 절충장군 부호군 7대손 이응순(李膺淳), 이응규(李膺圭) 두 분.
내용: 산에서 나무를 베어다 소박한 초가 정자(樵欏茅亭)를 짓고 이름을 거정(柜亭)이라 함.
역할: 이후 후손들의 서당(書堂)으로 활용되어 수많은 유생들을 배출함.
2)경술국치 이후 훼철 및 빈터로 방치
1910년 (경술국치) 이후 상황: 왜정(경술합방)이후 관리가 소홀해지고 비바람에 썩어 문을 닫음.
결과: 수십 년간 정자는 없어지고 빈 터만 남게 됨.
3)열락정(說樂亭)의 창건, 1935년 (을해년)
주도: 후손 이창인(李昌寅), 이주현(李湊鉉) 두 분이 발의하여 대종회의 결의와 재정으로 추진.
위치: 오산마을 안 자그마한 산언덕인 일색봉(一色峰) 마루(巓).
역할: 훼철된 거정(선조의 학업)의 정신을 잇기 위해 새로운 이름인 ‘열락정’으로 창건함.
4)열락정(說樂亭)의 수난과 변천
1943년 (계미년) 경 상황: 원래 거정 터에 있던 3칸 기와집(열락정)이 소나무 숲 그늘 때문에 습기가 차고 썩어 보존하기 어려워짐.
변천: 기와를 걷어내고 당시 유행하던 함석(含錫) 지붕을 씌움. 이후 다시 기와로 수리했으나 눈비 피해를 극심하게 입음.
5) 정암(精菴) 송석성옹(宋錫星翁) 열락정기(說樂亭記) 찬술(撰述).
6)열락정(說樂亭) 현 위치 중건
1980년 (경신년) : 대종회 결의에 따라 열락정을 지금 위치에 중건함.
7)북가정(北柯亭)으로의 재건 (상량식 및 중건) ,1987년 (정묘년) 6월 ~ 8월
주요 내용: 1980년 열락정을 현 위치에 세우면서, 옛 열락정 건물에 쓰였던 주요 목재(體木)들을 버리지 않고 가져 옴.
1987년 6월 12일 (음력 5월 17일 임진일): 기둥을 세우고 상량식을 올림 (立柱上梁).
1987년 8월 6일 (정묘년 정해일): 거정 1칸 규모의 기와집으로 완공함.
의미: 옛 열락정의 쓸 만한 목재를 골라 북쪽에 새로 이었으므로, 북가정(北柯亭)으로 부르게 됨.
8)북가정기(北柯亭記) 찬술(撰述) 1993년 (계유년) 7월
내용: 북가정을 지은 지 6년 만에 그 내력과 변천 과정을 상세히 기록하여 후대에 전하고자 북가정기(北柯亭記)를 지어 정자에 걸어둠.
2017년 8월 사진.
北柯亭記
西紀 一千八百拾參(1813)年 折衝將軍 副護軍 七代孫 諱 膺淳 膺圭 兩公等 樵欏茅亭 建立名之 曰柜亭 其後 宗族子弟等輩 以書堂使用 學文硏磨 及經傳講議 從事儒生 多數輩出耳 嗚呼 庚戌之歲 日人倂呑後 管理疎忽 風磨雨洗 頹落朽損 維持困難 至於閉門但在空址之餘 噫 數十餘年 傳來中 昌寅及 湊鉉兩甫 先祖學業繼承 烏山一色峰巓(원문에는 嶺이다. 宋錫星翁이 쓴 說樂亭記에는 巓으로 나온다. 실지로 가보면 一色峰은 자그마한 산언덕에 불과하다. 따라서 嶺보다는 巓이 맞는 말이다. 글자가 비슷한걸 보면 北柯亭記를 쓴 분이 說樂亭記를 보고 잘못 쓴 것이다.)說樂亭 創建合意 大宗會提議 宗會可決 財政及勞役 宗中一體負擔 一千九百三十五(1935)年 乙亥 說樂亭 創建(원문엔 一千九百四十三(1943)年 癸未로 나온다. 열락정기 상량문을 보면 1935년 창건한게 맞다. 송석성옹이 열락정기를 쓴 것은 1962년인데 이 때의 기록이 더 과거이므로 신뢰성이 있다고 봐야 한다. 따라서 1943년은 重建한거로 봐야 한다. 다만 열락정이 어떠한 모습인가는 다음 구절에 나온다. 계미년은 1943년이다. 1942년으로 썼는데 오류다) 此亭(北柯亭을 말한다)東南三間 瓦家修箿 松林陰害難保 故以含錫變更 修葺瓦家 風雪被害極甚 再次重建 計劃 一千九百八十(1980)年 大宗會結議依現位置 說樂亭重建 即說樂亭精神 先祖學文傳受 雨澤之氣 潛在說樂亭 體木難棄而 體木全部 現位置遷移 柜亭一間 瓦家重建 即是北柯亭 維我李門 同時 千秋萬代繼承 左右蒼蒼松林之節介 永遠繁盛
西紀 一千九百九十三(1993)年 七月 日
<수정본>
北柯亭記 西紀一千八百十三(1813)年 折衝將軍副護軍七代孫諱膺淳 膺圭兩公 樵欏茅亭 建立名之曰柜亭 其後宗族子弟 以爲書堂 硏磨學問 講議經傳 從事儒生 多數輩出 嗚呼 庚戌之歲 日人倂呑後 管理疎忽 風磨雨洗 頹落朽損 維持困難 遂至閉門而但存空址 噫 數十餘年傳來之中 昌寅及湊鉉兩甫 欲繼承先祖之學業 於烏山一色峰巓謀創說樂亭 提議於大宗會 宗會決議 財政及勞役 宗中一體負擔 一千九百三十五(1935)年 乙亥 說樂亭創建 然此亭(北柯亭)東南三間瓦家 難保於松林之陰害 故變更以含錫 後以修葺瓦家 極甚風雪之害 計劃再次重建 一千九百八十(1980)年 依大宗會決議 於現位置重建說樂亭 卽說樂亭之精神 先祖學文之傳受 雨澤之氣 潛在於說樂亭 體木難棄 故全部遷移於現位置 柜亭一間瓦家重建 卽是北柯亭也 唯我李門 同時千秋萬代繼承 左右蒼蒼松林之節介 永遠繁盛
西紀 一千九百九十三(1993)年 七月 日
<수정본 표점>
北柯亭記
西紀一千八百十三(1813)年, 折衝將軍副護軍七代孫諱膺淳・膺圭兩公, 樵欏茅亭, 建立名之曰柜亭. 其後宗族子弟, 以爲書堂, 硏磨學問, 講議經傳. 從事儒生, 多數輩出. 嗚呼! 庚戌之歲, 日人倂呑後, 管理疎忽, 風磨雨洗, 頹落朽損, 維持困難, 遂至閉門而但存空址. 噫! 數十餘年傳來之中, 昌寅及湊鉉兩甫, 欲繼承先祖之學業, 於烏山一色巓, 謀創說樂亭, 提議於大宗會, 宗會決議. 財政及勞役, 宗中一體負擔. 一千九百三十五(1935)年 乙亥, 說樂亭創建. 然此亭(北柯亭)東南三間瓦家, 難保於松林之陰害, 故變更以含錫. 後以修葺瓦家, 極甚風雪之害, 計劃再次重建. 一千九百八十(1980)年, 依大宗會決議, 於現位置重建說樂亭. 卽說樂亭之精神, 先祖學文之傳受, 雨澤之氣, 潛在於說樂亭. 體木難棄, 故全部遷移於現位置, 柜亭一間瓦家重建, 卽是北柯亭也. 唯我李門, 同時千秋萬代繼承, 左右蒼蒼松林之節介, 永遠繁盛.
西紀 一千九百九十三(1993)年 七月 日
<번역>
북가정기 (北柯亭記)
서기 1813년(순조 13), 절충장군 부호군 7대손 휘 응순(膺淳)과 응규(膺圭) 두 분께서 나무를 베고 띳집 정자를 지어 이름을 '거정(柜亭)'이라 하셨다. 그 후 종족의 자제들이 이를 서당(書堂)으로 삼아 학문을 연마하고 경전을 강론하니, 유학에 종사하는 이들이 수없이 배출되었다. 슬프도다! 경술년(1910년) 일제가 병탄(倂呑) 후, 관리가 소홀해지고 비바람에 씻겨 무너지고 썩어 유지가 어려워지더니 마침내 문을 닫고 빈 터만 남게 되었다. 아! 수십 여 년이 흘러오는 가운데, 창인(昌寅)과 주현(湊鉉) 두 분이 선조의 학업을 계승하고자 오산 일색봉 마루에 '열락정(說樂亭)'을 창건하기로 뜻을 모으고 대종회에 제의하여 종회에서 가결되었다. 재정과 노역(勞役)은 종중에서 일체 부담하여 1935년(을해년)에 열락정을 창건하였다. 그러나 북가정(北柯亭, 원문에 此亭으로 나오는데 북가정을 가리킨다) 동남쪽의 세 칸 기와집이 소나무 숲의 그늘로 인해 보존하기 어려워 함석으로 변경하여 지붕을 이었다. 이후 수리한 기와집이 비바람과 눈의 피해를 극심하게 입자 다시 재건할 것을 계획하였다. 1980년 대종회의 결의에 따라 현 위치에 열락정을 재건(再建)하였다. 그리고 열락정의 정신과 선조의 학문 전수, 그리고 비와 이슬의 기운이 열락정에 잠재해 있는바, 도리나 기둥이 되는 나무(體木)를 차마 버릴 수 없어 전부 현 위치로 옮겨와 거정(柜亭) 한 칸 기와집을 재건(1987년)하니 이것이 바로 '북가정(北柯亭)'이다. 오직 우리 이씨 문중이 천추만대토록 계승하여, 좌우로 푸르른 소나무의 절개와 함께 영원히 번성하기를 바란다.
서기 1993년 7월 일
<상량문> 1987년에 건물을 지었다.
西紀一九八七年 丁卯 八月 六日 丁亥
重建,
立柱○ 五月 壬辰 辰時 上梁
應天上之三光 備地上之五福로 추정된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87년은 정묘년(丁卯年)이 맞다. 丁卯 八月 六日 丁亥는 앙력 1987년 8월 6일(丁亥日)을 표시한 것이다. 1987년 8월 6일은 윤달로 음력 6월 12일이다. 丁卯 丁亥가 된다. 윤달이므로 月이 빠졌다. 중건일이다.
1987년 음력 오월 임진 진시(7시~9시)는 양력으로 1987년 6월 12일이다. 丁卯 丙午 壬辰日이다. 立柱, 上梁日이다. 1987년 6월 12일 입주ㆍ상량식을 하고 1987년 8월 6일 중건한 것이다. 대략 두 달이 걸렸다.
應天上之三光 備地上之五福은 하늘 위의 세 가지 빛(해, 달, 별)에 응하고, 땅 위의 다섯 가지 복(수, 부, 강녕, 유호덕, 고종명)을 주옵소서란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