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대중은 청소년시절 이순신 장군에게 많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입니다. 김대중이 목포상업학교를 다닐 때 사는 집은 ‘목포대’(木浦臺) 안에 있었습니다. 목포대는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이 진을 쳤던 곳입니다. 김대중은 파헤쳐진 성터에서 조선 수군들이 사용했던 숟가락이나 밥그릇 같은 것이 출토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것을 보면서 이순신은 ‘조선 수군들이 여기서 숙식을 하고 나처 저 목포 앞바다를 응시하며 나라를 지켰겠구나’하는 생각을 하면서 ‘가슴이 뭉클했다’고 술회했습니다.(<김대중 자서전> 1권 40쪽)
김대중은 우리 역사에서 존경하는 인물이 여럿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전봉준 장군을 존경했습니다. 세종대왕은 “제왕으로서 정치, 경제, 문화 각 방면의 지도자였으며 창조적 실천인”으로, 전봉준 장군은 “일개 서당 훈장이 순식간에 민중을 조직하고 궐기시켰으며, 실천한 정책이 반봉건 반외세라는 역사적 진로와 일치한, 천재적인 지도자 자질을 가진 분”으로 평가했습니다.(김대중 <옥중서신>) 이순신 장군에 대한 평가는 이러합니다.
“이순신 장군은 인간이 가장 완전하고 위대하게 될 수 있는 그 정점의 모범입니다. 전략가로서, 전투지휘자로서만이 아니라, 위대한 발명가로서, 애민(愛民)의 지도자로서, 문인으로서, 경세가로서, 높은 경지에 이른 정신적 달인(達人)으로서 그 이상의 사람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김대중 <옥중서신>, 제16신)
김대중의 이순신 장군에 대한 흠모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습니다. 대통령 재임중 KBS 박권상 이사장에 한 말은 유명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IMF 외환위기 시절 어떻게 하면 고통 받고 있는 국민들에게 자신감과 용기를 불어넣을 수 있을까 고민합니다. 그래서 우리 역사에서 장보고, 이순신, 전봉준 세 인물을 사극 드라마로 만들어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합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퇴임 후 KBS에서 방영된 <불멸의 이순신> 드라마를 보며 “우리 민족이 이순신 장군과 같은 인물을 가졌다는 것은 행운이고, 축복이다”고 말했습니다. 또 퇴임 후 전라우수영이 있던 진도 울돌목에서 열린 ‘명량대첩축제’에도 직접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지금 살아계셨다면 최근 개봉된 영화 ‘명량’을 맨 먼저 달려가 보셨을 것입니다.
애민정신, 도전정신, 자기 원칙에 대한 확신
이순신 장군은 절세의 영웅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또한 우리 현대사의 영웅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목숨을 바쳐 나라를 구했습니다. 김대중은 여러 차례의 죽을 고비를 넘기면서도 조국의 민주주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싸웠습니다. 리더십의 측면에서 두 분은 공통된 점이 많습니다.
첫째는 충성심과 애민정신입니다. 인간(백성, 국민)을 사랑하고 자기가 속한 공동체를 위해 헌신하는 마음가짐은 리더의 기본덕목입니다. 리더십은 단지 조직을 끌어가고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으로 보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에 앞서 리더에게 필요한 것은 인간에 대한 깊은 애정, 사회와 국가의 진보에 자신을 내던지겠다는 신념입니다. 거기에서 자기의 원칙과 철학이 세워지게 됩니다.
이순신 장군은 백성들에 대한 지극한 사랑과 외세의 침략에서 나라와 백성을 구해야 한다는 굳은 결의가 있었습니다. 김대중 또한 빈곤, 독재, 전쟁, 분단으로 고통받는 ‘사랑하고 존경하는 국민 여러분’을 위해 헌신할 굳은 결의가 있었습니다.
둘째는 인내심과 도전정신입니다. 이순신 장군은 녹둔도에서 여진족을 격퇴했으나 파직되어 1차 백의종군을 했고, 임진년 이후 10여 차례 승전에도 불구하고 투옥된 후 고문까지 받고 출옥해 2차 백의종군을 했습니다. 만일 이순신 장군이 2차례의 백의종군 때 세상을 탓하고 임금을 탓하고 포기했다면 오늘날 불세출의 영웅 이순신은 없었을 것입니다.
김대중 또한 80년 5월 광주민중항쟁 때 사형선고를 앞두고 전두환 신군부에 굴복하거나, 세 차례의 대통령 낙선에 굴복하고 도전을 멈추었다면 오늘날의 김대중 대통령은 없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이순신과 김대중은 세상을 원망하며 자신의 행보를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보다 중요한 것은 조국과 국민에 대한 책임이었습니다.
셋째는 자기 원칙에 대한 확신입니다. 이순신은 질투심 많고 속좁은 임금, 당파로 갈려 무력하고 정세에 어두운 조정, 병력의 열세 등 현실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돌파구를 찾았습니다. 정유재란을 앞두고 임금과 조정은 수군(水軍) 전력을 포기하고 육전(陸戰)에 나서라고 했지만, 이순신은 수군이야말로 일본 수군의 서해 진격을 막아 이미 한양까지 진입한 일본군을 고립시켜 전세를 뒤집을 수 있다는 전략적 판단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김대중 역시 군사독재 치하에서 납치, 살해위협, 사형선고 등 자신에게 주어진 고난을 감수해야 했지만, 민주주의, 정의로운 시장경제, 사회정의와 복지, 평화통일론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이순신과 김대중은 자신이 추구한 방향(정책)이야말로 나라를 구하고 백성들을 편안하게 해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처럼 가치와 철학으로 무장하고, 자신의 방향에 대한 확신을 가질 때 리더는 어떠한 불리한 상황에서도 일어설 수 있는 힘을 얻게 되고 다시 도전할 수 있는 것입니다.
창의성과 감성의 리더십
넷째는 창의성과 문제해결능력입니다. 이순신 장군과 김대중 대통령은 지사도, 열사도, 투사도 아니었습니다. 지극히 현실주의자였습니다. 자신이 믿는 바를 위해 몸을 던질 각오는 분명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현실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었습니다.
이순신 장군의 창의력은 눈부십니다. 예부터 내려오던 선박제조기술을 찾아 거북선을 완성하고, 일본의 조총에 맞서 화포를 개량하고, 학익진·일자진 등 창의적인 전술을 발휘했습니다. 12척을 가지고 300여척의 왜선을 물리치기 위해 울돌목(명량)의 물살과 지형지물을 이용했습니다.
김대중 대통령의 창의력 또한 탁월했습니다. 박정희와 전두환에 쫓겨 조국을 떠나서는 ‘망명투쟁’을 전개해 한국의 독재와 민주회복 문제를 국제 정치화하는데 성공했고, DJP연합이라는 ‘연합정치’를 통해 정권교체를 이뤄냈습니다. 냉전의 한복판에서 ‘평화통일론’과 ‘4대국 평화보장론’을 내걸었으며, 재임중 평양방문이라는 이벤트를 통해 6.15남북공동선언을 만들어냈습니다.
다섯째는 인문학적 식견과 감성의 리더십입니다. 이순신과 김대중은 인문학적 통찰과 지식을 가진 지도자였습니다. 이순신 장군은 무인으로 인생을 출발했지만 여느 무인들과 달리 역사와 문학에 대한 깊은 지식과 성찰을 가진 분이었습니다. <난중일기>을 비롯해 이순신 장군이 남긴 많은 시문(詩文)에서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김대중 또한 인문학적 통찰이 깊은 지도자였습니다. 역사, 문학, 종교, 철학, 신앙 등에 대한 지식과 사유의 세계가 깊었습니다.
이순신과 김대중은 감성의 리더십을 갖춘 지도자였습니다. 이순신은 비록 무인이었지만 호걸 스타일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문인의 기질이 더 많았다고 합니다. 전쟁의 와중에서도 노모와 부인, 자식들을 걱정하고 눈물 흘렸습니다. 김대중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김대중은 어린 시절 ‘겁 많은 소년’이었고, 어른이 되어서도 수줍어하는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김대중은 “행동하는 양심이란 가족, 친구, 이웃을 위해 봉사할 기회가 있을 봉사하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김대중은 ‘눈물의 정치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순신과 김대중은 감성, 눈물에 빠져있거나 나약함에 머물러 있지않았습니다. 두려웠지만 용기를 갖고 앞으로 나아갔습니다. 자주 넘어졌지만 일어나 걸었습니다. 또한 두 영웅은 ‘생사관’이 분명했습니다. 이순신은 “죽으려 하면 살고 살려고 하면 죽는다”고 했고, 김대중은 “역사와 국민 속에서 살겠다. 나를 죽여라”고 말했습니다. 백성(국민)들은 이런 이순신과 김대중의 감성, 눈물, 용기, 생사관을 보고 인간으로서 매력을 느끼고 신뢰를 갖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지도자로 따르고 의지했습니다.
이밖에도 앞을 내다보는 통찰력과 예지력, 미래를 대비하는 준비정신(有備無患), 상황파악과 위기대처 능력, 소통과 설명능력, 선공후사와 청렴, 부지런함과 끈기 등도 이순신과 김대중의 리더십에서 공통적으로 배워야할 부분입니다.
리더십의 부재, 인물이 필요하다.
우리 사회는 지금 리더십의 부재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나라의 비전과 과제는 분명한데 이를 정책화하고 선도해나갈 리더십이 부재한 상태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역사 발전을 추동하는 요인을 국민과 지도자(리더)의 관계로 보았습니다. 훌륭한 국민과 훌륭한 지도자가 만날 때 사회와 국가는 발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김대중 대통령은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세 번의 독재를 이겨내고 민주화를 이뤄내고, 전쟁의 폐허 위에서 경제국가, 한류 문화국가, IT정보강국을 이뤄낸 우리 국민에 대해서는 걱정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도 우리 국민은 민주주의, 평화와 번영에 있어서 동아시아와 세계를 선도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리더, 인물의 부재에 대해서는 많은 걱정을 했습니다.
우리 사회의 리더십의 부재는 단지 정치권만이 아니라, 시민사회, 종교사회, 지식사회 등 모든 영역에 걸쳐 있습니다. 리더십의 총체적 허약상태(General Weakness)라 할 수 있습니다. 특히 야권의 대표주자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리더십 실종은 정당정치의 위기, 민주주의의 위기를 걱정하는 지경에까지 이르렀습니다.
김대중의 정치 리더십의 측면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의 리더십 복원과 관련해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는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합니다. 민주당은 우리나라 40여년의 민주투쟁에서 가장 선두에 섰던 집단입니다. 독재에 반대해 민주주의를, 관권경제·특권경제에 반대에 정의로운 시장경제를, 부익부빈익빈에 반대해 사회정의와 복지를, 전쟁통일·무력통일에 반대해 평화통일을 주장했습니다. 중산층과 서민의 당, 중도개혁노선의 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둘째는 전통과 업적에 대한 자부심입니다. 민주당은 두 차례의 집권에 성공했습니다. 즉 김대중-노무현 민주정부 10년을 이룩한 정당입니다. 그리고 정권교체, 민주주의와 인권증진, 외환위기 극복, 지식정보화 정책, 한류 융성, 남북화해, 생산적 복지, 투명한 정치 등에서 자랑할 만한 많은 업적을 남겼습니다. 새정치민주연합은 김대중-노무현 시대를 계승하고 발전시켜 나간다는 확고한 입장을 지켜나가야 합니다.
셋째는 친구들을 잘 돌보는 정당이 되어야 합니다. 김대중의 민주당에는 네 부류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민주당은 노동자, 농민, 도시서민의 친구였습니다. 민주당은 도시 중산층과 도시 젊은이들의 친구였습니다. 민주당은 지식인, 종교인의 친구였습니다. 민주당은 호남의 친구였습니다. 지금 민주당이 이런 친구들의 생활과 형편을 잘 살피는 친구 노릇을 잘하고 있는지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넷째는 국민 속에서 국민 손을 잡고 가야 합니다. 김대중은 ‘반 발짝만 앞서가라. 국민의 손을 놓지 말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지금 민주당은 시민들과 유리되어 있습니다. 마치 물위에 기름처럼 떠있습니다. 국민 속에서, 현장 속에서 국민들의 손을 잡고 나갈 때 힘이 생기고, 리더십도 그 속에서 자라납니다. 국민과의 소통에 실패한 리더, 정당은 성공할 수 없습니다. 당장 “베낭을 메고 국민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다섯째는 문제해결능력입니다. 대중 미디어 정치에서 리더에게 이미지와 스타일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이미지와 스타일에 의존하는 리더십은 오래가지 못하고 물거품처럼 사라지게 마련입니다. 아이돌(idol) 정치, 팬덤(fandom) 현상으로 정당정치를 무력화거나, 민심을 왜곡해서는 안됩니다. 저는 이런 점에서 이미지와 스타일만이 아닌 투쟁력과 협상력, 문제해결능력, 정치적 능력을 갖춘 지도자, 민주당의 역사성과 전통을 존중하고, 정체성을 분명히 가지고 있는 리더의 출현을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