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 원주 깊은 산 정상에 있는 뮤지엄 산을 찾았다. 가을날의 차갑고도 상쾌한 바람을 들이키며 예술보다 아름다운 자연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자연과 예술로 가득한 뮤지엄 산
뮤지엄 산(Museum SAN)은 서울 남산보다 약간 높은 해발 275m 겹겹의 산속에 자리했다. 처음 문을 열 당시 한솔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개관했으나, 자연과 예술이 어우러진 정체성을 살리기 위해 ‘공간(Space)’ ‘예술(Art)’ ‘자연(Nature)’의 영문
머리글자를 모아 ‘산(SAN)’으로 이름을 바꿨다.
뮤지엄 산은 자연과 빛을 예술품처럼 느낄 수 있도록 디자인됐다. 빛, 물, 돌 등
자연적인 요소를 중시하는 세계적인 건축가 안도 다다오가 설계를 맡았고, 그는 무려 8년을 공들여 미술관을 완성했다.
[왼쪽/오른쪽]플라워 가든에 들어서면 붉은색 철제 조각이 두 팔을 벌리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
패랭이꽃과 어우러진 뮤지엄 산 관람권
전체 길이 700m에 달하는 미술관은 야외 정원과 실내 전시관을 고루 갖췄다. 전시는 주차장 앞 웰컴 센터를 벗어나면서부터 시작된다.
미술관의 첫 관문인 웰컴 센터를 지나면 돌담 사이로 널찍한 마당이 펼쳐지는데, 철 따라 수십만 송이의 패랭이꽃이 만발하는 플라워 가든이다.
이곳에서는 마크 디 수베로의 붉은색 철제 조각 작품이 두 팔을 벌리고 관람객을 맞이한다. 새파란 하늘과 머리를 맞댄 육중한 조각물은 바람을 타고
움직이며 자연과 하나가 된다.
플라워 가든 끝자락에는 하얀색 자작나무가 줄지어 서 있다. 미술관이 들어서기 전부터 있던 진짜
주인들이다. 좁게 난 자작나무 숲길을 빨려 들어가듯 통과하면 워터 가든이 등장한다. 이곳에선 수심 20cm의 얕은 연못이 거울이 되어 하늘을
비추고 산을 품는다. 부유물 없이 맑은 물속에는 짙은 색 해미석이 단정하게 누워 햇볕을 쬐고 있다.
미술관 본관으로 이어지는 워터 가든
길 중간엔 알렉산더 리머만의 아치형 조각이 일주문처럼 드리워져 인상적인 풍광을 연출한다. 아치 너머로 보이는 황토 빛깔 건물은 미술관
본관이다. 파주석을 일일이 자르고 붙여 외관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 때문인지 자연의 기운이 곳곳에서 감돈다.
[왼쪽/오른쪽]워터 가든에 비친 미술관 그림자가 바람을 따라 춤을 추고 있다 / 파주석을 일일이 자르고
붙여 만든 뮤지엄 산 본관
본관은 종이의 역사와 가치를 전시한 페이퍼갤러리와 백남준 소장품 등을 볼 수 있는 청조갤러리로 구성됐다. 청조는 뮤지엄 산을 설립한
한솔그룹 이인희 고문의 호다. 현재 청조갤러리에서는 대규모 판화기획전이 한창이다. 내년 2월 28일까지 계속되는 이번 전시는 앤디 워홀,
데이비드 호크니, 이영애 등 국내외 판화작가 41명의 작품 113점을 소개한다.
미술관 본관 내부
[왼쪽/오른쪽]뮤지엄 산 청조갤러리 / 지금 청조갤러리에서는 대규모 판화기획전이 한창이다
[왼쪽/오른쪽]백남준의 작품 ‘위성나무’ / 미술관 본관 통로에 전시된 독특한 의자
백남준 관에서는 올해 말까지 ‘위성나무’를 선보인다. 제목 그대로 위성을 상징하는 TV가 접시 모양의 판 사이에 열매처럼 달린 나무다.
소통과 공존을 지향하는 백남준의 예술 세계가 돋보인다. 제작 후 거의 전시된 적이 없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갤러리를 돌며 캔버스에
그려진 예술품을 감상했다면, 통로를 지날 땐 빛이 또 다른 예술로 다가온다. 전시실을 옮길 때마다 크고 작은 창을 여러 개 지나게 되는데, 매번
다른 바깥 풍경이 그림처럼 걸려 그대로 액자가 된다. 네모난 야외 공간에 설치된 파피루스 온실과 세모난 모양으로 하늘이 뚫린 삼각 코트도 놓치기
아쉬운 작품이다. 잿빛의 차가운 공간을 파고든 뜻밖의 자연이 느닷없이 가슴을 뭉클하게 만든다.
빛이 그리는 거대한 그림
[왼쪽/오른쪽]파피루스 온실 / 페이퍼갤러리와 청조갤러리 사이 세모난 하늘
건물을 나오면 스톤 가든이 펼쳐진다. 신라시대 왕릉을 모티브로 한 아홉 개의 돌무더기가 듬성듬성 솟아 있다. 부드러운 곡선 사이로 조성된
오솔길을 걷다 보면 대지의 평온함이 마음까지 깃든다. ‘두 벤치 위의 연인’ ‘부정형의 선’ ‘누워 있는 인체’ 등 개성 넘치는 조각품을
감상하는 재미도 특별하다.
[왼쪽/오른쪽]신라 고분을 모티브로 한 스톤 가든 / 스톤 가든에 전시된 헨리 무어의 ‘누워 있는
인체’
미술관 끝에 다다르면 제임스 터렐관이 기다린다. 세계적인 빛의 예술가 제임스 터렐의 작품만을 위해 설계된 공간이다. 이곳에는 그의 작품
가운데서도 최고로 꼽히는 5개 작품이 전시돼 있다. 빛이 만들어낸 상상 너머의 공간이 예기치 못한 힐링을 선사한다.
여기까지 오면
700m의 대자연을 누빈 것과 같다. 바깥으로 나가려면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 그렇게 한 번 더 둘러보게 되는 미술관은 마치 처음 만난 듯
새롭기만 하다. 같은 전시물이라도 빛과 바람에 따라 전혀 다른 느낌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이는 계절이 바뀔 때마다 뮤지엄 산을 찾아봐야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여행정보
뮤지엄 산
주소 : 강원 원주시 지정면 오크밸리2길
260
*원주고속버스터미널에서 오크밸리 셔틀버스 운행(운행시각은 홈페이지 또는 전화로 확인)
전화 :
033-730-9000
관람시간 : 뮤지엄 10시 30분~18시, 제임스 터렐관
11시~17시 30분(매표 마감은 뮤지엄 17시, 제임스 터렐관 16시 30분)
쉬는 날 : 매주
월요일(월요일이 공휴일인 경우 정상 개관)
관람요금 : 대인 2만8000원(뮤지엄만 관람 시
1만5000원), 소인 1만8000원(뮤지엄만 관람 시 1만원), 미취학 아동 무료(제임스 터렐관은 관람
불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