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낫도깨비 낯도깨비 나도깨비
홍종의
달개가 지나가자 도깨비 마을의 보름달이 더 둥글고 환해 졌다.
“후욱! 후우우!”
가슴을 조이며 달개먹음를 지켜보던 도깨비들이 참았던 숨을 몰아쉬었다. 보름달이 까맣게 가려지는 달개가 올 때마다 도깨비 마을에는 좋지 않은 일이 생겼다. 무덤 속 귀신들이 밖으로 나오고 인간들까지 길을 잃고 도깨비 마을에 찾아 들었다. 그것은 도깨비들로서도 아주 골치 아픈 일들이었다.
“자, 이번 달개는 무사히 지나갔다. 먹기 춤, 놀기 춤으로 한바탕 풀어내자. 얼쑤!”
대장 도깨비가 힘차게 추임새를 넣었다. 대장 도깨비의 손짓에 제상에 차려졌던 떡과 과일, 고기가 공중에 떠올랐다. 도깨비들은 자기가 먹고 싶은 음식들을 잡으려고 서로 아우성들이었다. 그것이 바로 도깨비들의 먹기 춤이다.
“우걱우걱, 쩝쩝!”
“와작와작, 뒤뚱!”
“배 빵빵, 퉁퉁퉁!”
도깨비들의 배가 점점 보름달처럼 둥그러졌다. 게걸스런 먹기 춤이 끝나고 이번에는 놀기 춤이다.
“팔 비틀어 돌리기, 슝슝!”
“솥뚜껑 솥단지에 넣기, 잘강잘강!”
“머리 떼어 가랑이에 끼기, 껑충껑충!”
도깨비들은 괴상망측한 행동으로 놀기 춤을 추었다. 한번 흥이 나면 멈추지 못하는 것이 도깨비들의 신바람이다. 도깨비들의 신바람은 마침내 파란 도깨비불이 되어 동쪽 산등성이 타기 놀이로 이어졌다. 바로 그때였다. 서쪽 산등성이 너머로 별똥별처럼 떨어지는 도깨비불이 있었다. 도깨비불은 두 줄기였다.
“낫도깨비, 낯도깨비가 도망쳤다!”
보초를 서던 안경 도깨비가 번갯불을 내리치며 소리를 질렀다. 놀이에 빠져 있던 도깨비불들이 땅에 뚝뚝 떨어졌다. 도깨비불이 사그라지면서 스멀스멀 도깨비들의 몸이 나타났다. 모두들 걱정스런 얼굴들이었다. 순식간에 도깨비들의 잔치가 끝이 났다.
낫도깨비는 도깨비 마을에서 가장 똑똑한 도깨비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닌데 풀을 베는 낫을 가지고 혼자 글자를 깨쳤다.
“쳇! 베라는 풀은 안 베고 기역, 니은, 디귿, 할 때부터 알아 봤어. 도깨비에게 글자가 뭐가 필요해. 힘이 최고지.”
낫을 들었다 하면 풀베기 밖에 모르는 단순한 도깨비가 이죽거렸다.
낯도깨비는 마을에서 가장 잘생긴 도깨비였다. 얼굴이 다른 도깨비의 반 밖에 안 되고 다리가 사다리처럼 길었다.
“핏! 삐쩍 마른 것이 낯짝 작게 보이려고 더럽게 머리카락에 침 바를 때부터 알아 봤어. 도깨비가 얼굴이 작으면 뭐해. 그래봐야 도깨비지.”
쟁반 도깨비가 픽픽 거렸다. 쟁반 도깨비는 도깨비 중에 최고로 얼굴이 컸다.
“백 년을 채우고 인간 마을로 내려가라 했는데…….”
대장 도깨비가 크게 실망을 하며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대장 도깨비에게는 꿈이 있었다. 도깨비들이 예전처럼 인간들과 어울려 사이좋게 지내는 것이었다. 그래서 고민 고민을 하여 찾은 방법이 ‘인간을 닮자’ 였다.
낫도깨비에게는 공부 열심히 하라고 종이 백 뭉치와 낫 백 자루를 주었다. 낯도깨비에게는 얼굴 가꾸기에 좋다는 벌꿀 백 통과 키 크는 사탕수수 백단을 주었다. 대장 도깨비는 이렇게 지극정성으로 두 도깨비들에게 공을 들였다. 그렇게 한 지 모레가 딱 백 년이 되는 날이다. 인간 마을 쪽에서 밀려온 검은 구름이 보름달을 가렸다.
“후유! 언젠가 저 구름처럼 인간들이 달개가 되어 우리 도깨비들을 삼켜 버릴 거야.”
대장 도깨비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그러니까 더 도깨비다워야지요.”
나도깨비가 불쑥 나섰다. 나도깨비는 도깨비 마을에서 가장 고집이 센 도깨비였다. 인간 아이가 진흙덩이를 가지고 놀다 깜빡하는 바람에 그대로 굳어서 도깨비가 되었다. 자기 말로는 도깨비가 되는데 천년 쯤 걸렸다고 우겼다. 나도깨비는 ‘인간을 닮자’라는 대장 도깨비의 말을 가장 싫어했다.
“제가 잡아 오겠습니다.”
나도깨비가 어깨를 으쓱거리며 말했다. 나도깨비는 틈만 나면 몸을 계곡물에 불렸다. 그리고 땅바닥에 뒹굴었다. 그렇게 하자 몸이 차진 진흙이 되고 그 위에 흙이 묻고 또 묻었다. 도깨비들이 봐도 영락없는 도깨비짓만 골라서 했다.
“그, 그렇다면 그래 보고.”
대장 도깨비가 더듬거리며 허락했다. 반대를 한다고 해도 고집을 꺾지 못하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었다.
이제 도깨비들은 달아난 두 도깨비 보다 나도깨비가 더 걱정이었다. 인간 마을로 들어가자마자 발각이 될 것이 빤한 일이었다. 나도깨비는 뻣뻣한 몸으로 놀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왜 이렇게 신바람이 안 나지?”
나도깨비는 도깨비불이 되기 위해 땀을 뻘뻘 흘렸다. 먼 곳으로 이동하기 위해서는 도깨비불이 최고였다.
“자, 한바탕 놀아 보자. 얼쑤!”
지켜보던 대장 도깨비가 나도깨비를 도와주기 위해 추임새를 넣었다. 신바람은 함께 놀기 춤을 출 때 더 빨리 일어나는 법이었다.
“팔 비틀어 돌리기, 슝슝!”
“솥뚜껑 솥단지에 넣기, 잘강잘강!”
“머리 떼어 가랑이에 끼기, 껑충껑충!”
드디어 도깨비들이 도깨비불이 되어 이리저리 날아 다녔다. 마지막으로 나도깨비도 하늘로 치솟았다.
“힘들면 그냥 돌아 와.”
“배고프면 얼른 돌아 와.”
“못 생겼다고 흉보면 화내지 말고 참고 돌아 와.”
도깨비들이 걱정스러워하며 나도깨비를 배웅했다.
나도깨비는 파란 도깨비불이 되어 서쪽 산등성이를 넘었다. 낫도깨비, 낯도깨비가 도망친 곳이었다. 멀리 인간 마을의 불빛이 보이고 그 불빛들이 나도깨비를 빨아 당겼다. 특히 파란 불빛의 힘이 더 강렬했다.
“어어엇, 쾅!”
온 힘을 다해 버티던 나도깨비가 인간 마을의 파란 불빛에 사정없이 부딪쳤다. 파란 불빛은 나도깨비의 도깨비불을 눈 깜박할 새에 빨아 들였다. 나도깨비는 매미의 허물처럼 힘없이 땅에 떨어졌다. 나도깨비는 정신을 차리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와글와글 바글바글, 온통 인간 아이들 천지였다. 뱅글뱅글 도는 큰 수레바퀴, 일렁일렁 움직이는 산더미 같은 배, 천둥소리를 내며 우르릉우르릉 달리는 기차. 번쩍거리는 색색의 불빛 속에서 인간 아이들도 도깨비불이 되어 놀이에 흠뻑 빠져 있었다.
“와! 도깨비가 나타났다.”
인간 아이 하나가 나도깨비를 발견하고 소리를 질렀다. 나도깨비는 깜짝 놀라 몸을 숨기려 했다. 그러나 마땅히 숨을 곳이 없었다. 나도깨비는 순식간에 인간 아이들에게 둘러싸였다. 이럴 때 나도깨비가 탈출을 하는 방법은 딱 한 가지였다. 신바람을 내어 도깨비불이 되는 것이었다.
나도깨비는 기운을 내어 놀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두 팔을 비틀어 바람개비처럼 돌리기, 다리를 꼬고 앉아 뒤로 폴짝폴짝 몸 뒤집기, 머리를 가랑이 사이로 빼어 엉덩이에 얹기.
“짝짝, 짝짝짝! 짝짝, 짝짝짝!”
박수 소리가 어찌나 큰지 나도깨비는 귀가 멍멍해 졌다. 나도깨비의 놀기 춤에 인간 아이들이 박수로 추임새를 넣었다. 그래도 나도깨비는 신바람이 나지 않았다. 신바람이 나야 도깨비불이 될 텐데 아주 큰일이었다. 그때였다. 인간 아이들 속에서 낫도깨비가 툭 튀어 나왔다. 낫도깨비는 나도깨비의 귀에 대고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네가 웬 일? 여긴 네가 올 곳이 아냐. 내가 도와줄게 얼른 도망 쳐!”
낫도깨비가 놀기 춤을 보탰다. 낫도깨비는 한 술 더 떠서 소리를 빽빽 지르며 노래까지 불렀다. 뱅글뱅글 큰 수레바퀴가 구르며 내던 노래였다. 똑똑한 낫도깨비는 벌써 그 노래를 다 배운 것이다.
“야, 너 누구야, 얼른 안 들어 와? 음정 박자도 다 틀리는 완전 무식쟁이야.”
인간 아이들이 손에 들고 있던 것들을 낫도깨비에게 던지며 야유를 보냈다. 졸지에 낫도깨비는 무식쟁이가 되었다.
이번에는 낯도깨비가 인간 아이들 속에서 튀어 나왔다. 낯 도깨비는 비스듬히 얼굴을 보이며 손가락으로 턱을 받쳤다. 그리고 엉덩이를 씰룩이며 걸음마질을 쳤다. 그것도 모자라 다리를 흔들어 대며 놀기 춤을 추었다. 윗몸 따로, 아랫몸 따로 놀기 춤이다.
“거기는 뭐냐? 집어 쳐라! 완전 못생긴 것이 웃긴다, 웃겨! 하하하하.”
인간 아이들이 배를 잡고 웃었다. 인간 아이들은 무식하다며 낫도깨비를 끌어냈다. 그리고 못생겼다며 낯도깨비도 끌어냈다. 낫도깨비와 낯도깨비를 멀리멀리 쫓겨났다.
“짝짝, 짝짝짝! 짝짝, 짝짝짝!”
인간 아이들이 다시 나도깨비의 놀기 춤에 박수 추임새를 넣었다. 나도깨비는 죽을힘을 다해 놀기 춤을 추었다. 비로소 도깨비불이 되려는지 나도깨비의 몸에 푸른빛이 돌았다.
“고객여러분, 이제 도깨비 놀이공원이 끝나는 시간입니다. 잃어버린 물건이 없나 살펴보시고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도깨비 놀이공원이 쩡쩡 울리도록 안내방송이 나왔다.
“아이이∼∼.”
인간 아이들이 아쉽다는 듯 큰 소리로 합창을 했다. 몇몇의 인간 아이들이 잽싸게 뛰어 나와 나도깨비의 팔짱을 끼고 사진을 찍어달라고 소리쳤다. 여기저기에서 번쩍번쩍 불빛이 터졌다. 사진기의 불빛은 나도깨비의 몸에 감돌던 푸른빛을 깡그리 지워 버렸다.
그 많던 인간 아이들이 나도깨비에게 손을 흔들며 뿔뿔이 흩어졌다. 높고 먼 곳에서 비치던 도깨비 놀이공원의 불빛들이 비눗방울처럼 툭툭 터졌다. 이제는 낮고 가까운 곳의 불빛들만 남았다.
“도깨비 아저씨, 아주 멋졌어요. 진짜 도깨비가 맞죠?”
끝까지 남은 인간 아이 하나가 나도깨비를 말끄러미 올려다보며 물었다. 인간 아이는 나도깨비를 무서워하지 않았다.
“요즘은 도깨비 탈도 어쩜 이렇게 잘 만들까? 진짜 도깨비가 나타난 줄 알았어. 호호홋.”
인간 여자가 나도깨비의 볼을 툭툭 두드려 주며 인간 아이를 떼어갔다. 인간 아이는 엄마의 손에 끌려가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다보았다. 나도깨비는 인간 아이를 향해 손을 흔들어 주었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얼마나 지났을까. 낫도깨비와 낯도깨비가 지친 모습으로 나도깨비를 찾아 왔다. 더 깜짝 놀랄 일은 대장 도깨비도 함께 였다. 그 사이 도깨비 마을에 다녀 온 것이다.
“이제 방법을 바꿔야겠다. 지금부터 나도깨비처럼 진짜 도깨비가 되자.”
대장 도깨비가 활짝 웃으며 말했다. 대장 도깨비의 말에 기분이 좋아진 나도깨비가 몸을 비틀어 대며 슬슬 놀기 춤을 추기 시작했다. 대장 도깨비와 낫도깨비, 낯도깨비도 나도깨비를 따라 춤을 추었다. 파란 도깨비불 네 덩이가 밤새도록 도깨비 놀이공원을 휘젓고 다녔다.
*열린아동문학 발표작
첫댓글 홍종의 선생님 작품을 소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우선 제목이 흥미를 유발하는 것이 좋았습니다. 게다가 제목에 걸맞게 내용 또한 흥미롭고 설정도 기발한 작품같습니다!
도깨비들의 행동이 눈에 보이는 것처럼 잘 느껴집니다. 도깨비의 이름과 특징이 잘 매치되어 좋았습니다. 인간 세상에 내려온 도깨비들의 이야기가 참 흥미롭고 좋은 작품이라 생각됩니다.
제목부터가 참 흥미로웠습니다. 우리나라의 전통 도깨비들의 유쾌한 특성을 잘 살려낸 동화인 것 같습니다.
잘읽었습니당
제목이 재치있었고 보는내내 즐거웠습니다.
의성어를 많이 넣어 어린 영아들에게 좋을 것 같습니다. 대장 도깨비의 꿈인 인간들과 사이좋게 지내자. 이것을 위해 인간을 닮고자 했지만 마지막에서는 본래 도깨비의 모습으로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마음에 들었습니다.
제목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작품이었습니다. 내용 또한 실망시키지 않아서 읽는 내내 재밌었습니다.
도깨비를 가지고 이렇게 색다르고 유쾌한 이야기를 써내었다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듭니다. 요즘 아이들은 일본 요괴 '요니'를 우리 도깨비로 착각을 많이 하고 있는데, 도깨비에 대한 동화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네요.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각자의 개성을 가진 도깨비들의 이야기들을 통해 보여주고 있는 이야기가 무척 재미있다. 다른이들고 함께 하기 위해서 내 자신의 본 모습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인만의 장점을 가지고도 어울릴 수 있다는 내용이 참 좋았다.
도깨비들이 노는 모습에서 웃음이 나왔습니다. 이름들이 비슷해 살짝 헷갈렸지만 각자 개성이 다른 도깨비들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우걱우걱 쩝쩝같은 부사? 같은 것이 생동감있게 보여져서 좋았습니다. 인상깊게 남았네요.
제목부터 흥미를 끄는 작품입니다. 의태어나 의성어가 잘 섞여있어 재미있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
읽었습니다: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