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트남전쟁이 ‘월남’(남부 베트남)의 패배로 굳어져 가던 1974년, 대한민국의 FM 라디오 방송과 거리의 전파상점 스피커에선 연일 흥겨운 팝송이 울려 퍼졌다. ‘한국 전쟁에 참전한 우방국에 대한 보답’이라는 명분과 ‘베트남의 공산화는 한국 안보와 직결’되어 있다는 정치적 판단으로 (사실은 베트남 전선에서 발을 빼고 싶은 미국의 강력한 요청에 의해) 한국은 이미 1964년 9월 11일부터 낯선 베트남의 밀림에 젊은이들을 보내고 있었다.
잉글랜드 노팅엄 출신 로컬 밴드 페이퍼 레이스의 이 록 음악이 영국 차트 넘버원에 올랐을 때 한국군은 이미 전원 철수한 이후였다. 하지만 바로 전해인 1973년만 해도 보병 2개 사단을 비롯한 3만7000명 병력이 남베트남 전선에서 싸우고 있었으며 전쟁의 주체인 미국 지상군보다 더 많은 숫자였다.
가난에서 벗어나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었던 당시 한국 경제 상황에서 베트남 참전은 박정희 정권에는 놓칠 수 없는 기회였을지는 모르지만 아무런 직접적인 이해관계 충돌이 없는 같은 아시아인에게 총부리를 겨누어야 했던 건 약소국의 비극이라고밖에 볼 수 없다.
'빌리, 제발 영웅이 되지 마'<<b>사진>라는 이 노래는 60년대 비치 보이스를 흠모했던 드러머이자 리드보컬인 필립 라이트의 행진곡 드럼 연주로 시작한다. 이 노래의 후반부에서 우울한 전조가 이루어지기 전까지 이 노래 분위기는 (가사를 알아채지 못한다면) 신나는 군가조의 로큰롤이다. 마치 씩씩하게 전선으로 나아가자는 캠페인 송 같다.
하지만 이 노래 화자는 전쟁으로 끌려나가는 청년 애인이다. 괜히 참호 속에서 머리 내밀지 말고 꼭 숙이고 있으라고, 그래서 살아 돌아와서 남편이 되어달라고 이 연인은 기도하고 기도한다. 하지만 빌리는 '영웅'이 되어 고향으로 돌아온다. 전사 통지서 첫 줄은 '그는 영웅이었습니다.'
영어 가사를 꼼꼼히 챙기지 못한 공연윤리심의위원회 실수로 이 노래는 인기를 얻으며 흘러나왔지만 뒤늦게 알아챈 당국에 의해 이듬해 금지되는 철퇴를 맞는다. 반전(反戰)을 두고 벌어진 희극적인 반전(反轉)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