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배탈이나서 소아과병원에 갔더니 먹지말아야할 것을 일러주면서 된장국은 괜찮다고 한다. 의사도 된장의 효능을 아는구나 생각했다. 요즘에 음식을 좀 챙겨먹는다고 고기도 좀 사서 얼려놓고 이것저것 몸에 좋다는거 사먹어보니 라면먹을 때보담 낫지만 그래도 뭔가 허전하다. 그래서 옛날에 내가 뭘먹었는가 한번 적어본다.
제일 먼저 기억나는게 옥수수죽이다. 미군 구호물자인데 동네 개천가에서 큰솥을 걸어놓고 끓인다. 바가지가져가면 꽁짜로 준다. 그다음 생각나는 순서대로 적어보면.
두부찌개, 도토리묵, 청포묵, 김치, 호박된장찌개, 콩비지찌개, 고추장콩나물국, 미역국, 시래기국, 계란말이, 고추장무국, 어쩌다 소고기당면국, 소고기 스키야키, 무말랭이 무침, 마늘쫑무침, 오이냉국, 시금치국, 냉이국, 쑥국, 시금치무침, 김장무 무침, 닭고기국, 콩나물무침, 김, 어리굴젓, 보신탕, 꽁치구이, 이면수구이, 고등어구이, 도루묵찌개, 명란두부찌개, 계란찜, 다꽝(단무지), 삶은감자, 삶은고구마, 삶은 옥수수, 사과, 참외, 수박, 쌀밥, 김치국물국수, 장터국수, 수제비, 동태찌개, 가자미구이 .............
이것말고도 많겠지만 생각나는게 이 정도다. 요즘 눈으로보면 무척이나 영양식만 먹었다고 할 수 있으나 당시만해도 지지리도 못살았다. 그런데도 웃기는게 어디 외출할 때면 모두 양복에 한복입고 빼입고 다녔다. 조선시대 양반의식이 아직 남아서인가 바깥옷만큼은 깨끗이 입었다. 허나 속옷은 여기저기 구멍난거 꿰매고 내복하나로 겨울 석달을 지냈다.
몸에 이는 기본이요 머리에 서캐가 끼어서 학교가면 디디티 뿌려준다. 그런데도 때되면 이발소는 곧잘 다녔다. 비록 못살아도 외관만은 갖춰야 되는 시절이었나보다. 운동화는 구멍나면 바느질로 꿰매서 신어도 잠바하나만큼은 멀쩡한 걸로 입었다. 옛날 양반이 죽어도 두루마기 걸치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옛날 어른들이 요즘사람들을 보면 아마 못살아도 지지리 못사는 사람들이라 생각할게다. 치마 사입을 형편도 안되는지 레깅스 내복바람에 다니질 않나 젊은 놈들은 꼭 어디 염천교 다리밑에서 살다가 나온 놈들 같고 배꼽 나온 여자는 정신병원 직행이다. 구두 살 돈이 없어서 운동화만 끌고 다니고 양복한벌 없어서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만 입고 다닌다.
각설하고 오늘 된장의 효능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했다. 어릴때 집에서 된장 고추장 담그던 기억이 생생하다. 방구석에 모여앉아 메주를 빚고 처마밑에 몇달을 띠워서 장을 담근다. 간장을 뜨고 남은게 된장이다. 그 간장을 여러번 끓여서 부정타지 않게 정성스레 담근다. 옛날 어머님들의 먹고사는 노력은 전세계에 으뜸이다. 힘들다 내색않고 당연한 일로 여겼나보다.
거기다 또 애는 한둘인가 너댓명은 기본이다. 산부인과가 어디있고 산후조리실이 어디있는가. 오로지 산파나 경험많은 동네 아주머니만 계셨을 뿐이다. 당시엔 의사들도 부르면 왕진을 다녔다. 요즘에야 어지간히 갑부아니면 어디 의사 부르겠는가. 김치맛은 또 어떠한가. 당시에 남자가 같이 김치 담구는건 꿈도 못꿀 일이요 그저 항아리 웅덩이나 파면 그만이었다.
땅속에 뭍은 김치는 지금의 김치냉장고는 발고락도 못따라간다. 김치를 먹으면 말그대로 싸하고 시원한 맛이 끝내 준다. 거기다 국수를 말아먹으면 띵호와다. 연탄가스 중독되면 김칫국물이나 식초를 먹이던 시절이다. 명품 중에 명품 국물이 바로 우리나라 김치국물이었다.
김치도 김치지만 가만 생각해보면 된장의 덕을 많이 본것같다. 그 없던 시절에 이리 저리 닥치는대로 먹고 살았지만 지금까지 살아있지 아니한가. 나이들어가며 좋은 것먹는다고 여기저기 입소문에 휩쓸릴 일이 아니다. 우리의 고유음식이 보약임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요즘엔 재료도 없고 만들줄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우리나라 최고 음식은 된장국이다. 호박넣고 감자 넣고 끓여낸 된장국 그만한게 어디 있는가. 말은 쉬워보여도 된장국 맛있게 끓이려면 그것도 만만치 않은 일이다. 요즘 부인네들 보고 밥상마다 된장국 올리라하면 뒤로 나가자빠질게다. 마누라가 안해주면 직접 끓여 먹으면 될 일이다. 사실 음식은 남자가 팔걷어붙이면 여자만큼은 한다.
다만 음식도 나름대로 경륜이 쌓여야 되는 법이다. 자꾸 해봐야 음식의 맛을 살릴 수 있는거다. 춤도 마찬가지다. 자주 춰봐야 시행착오 끝에 뭐가 되도 되지 않겠는가. 좌우지당간 오늘은 된장에 필이 박힌 날이다. 옛날음식을 한번 다시 되살려 보자.
첫댓글 옛날 먹고살기 힘들때 기억이 생생합니다...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