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효로 4가 1-1번지 성심여자 중,고등학교 내엔
용산 신학교와 원효로 성당(사적 255호)이 있다
이 건물에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의 영문 이니셜인
A.K(Andre Kim)와 그의 생존 연대(1821~1846)가 기록되어 있다
1942년까지 김대건 신부의 유해가 안치되었던 곳이다
어제 늦은 밤
눈웃음이 귀여운 그녀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 해가 가기 전에 꼭 만나야 한다고...
뜻밖에도 그녀의 회사는 바로 이 근처였다
몇 년만에 만나는 반가움이지만, 근무중에 점심시간이란
고작 할애해야 1시간 반 정도였을까
맛깔나는 전라도 음식으로 아쉬운 시간을 나누고
나는 곧바로 성심여고로 향했 다
벌써 43년 전이다
당시 내가 살던 집은 성심여고의 담을 끼고 있었기에
이곳에 서면 금방 찾을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이 있었다.
몇 걸음 안되는 거리를 걷는 동안 계속 가슴이 뛰었다
거의 안갖고 다니는 디카도 오늘만은 무겁지 않다
어린시절을 보낸 그 집을 찾아 형제들과 모처럼
옛이야기를 나누고 싶은 마음이 먼저 도착해 있었다
지금도 그 집은 길고 둥근 분홍색 담장일까?
생각해 보면 아버지는 담의 벽색을 수시로 바꿨던 것 같다
마지막엔 핑크색까지 갔다
내부도 다다미를 깔았다가 마루로 했다가
봄만 되면 한지로 창호지 바꾸듯 매년 내부시설을 바꿨다
지금으로 말하면 집안 인테리어에 관심이 많았던 것 같다
분홍빛 담을 마지막으로 70년 대 여의도에아파트단지가 생겨
이사를 했으니 그 후로 단층집은 살아본 기억이 없다
그 시절엔 공사 인부들에게 직접 밥까지 해주던 때여서
도우미언니와 엄마는 봄이 오는 것을 아예 귀찮아 하기까지 했다
어느 봄날엔 넓은 마당 한 켠에 작은 수영장까지 만들어 안쪽엔
푸른 페인트까지 칠하는 센스를 발휘하기도 했다.
마치 풀장을 연상케하는...
지붕없는 풀장엔 대신 포도나무를 심어 넝쿨을 이어놓으니
여름엔 그늘을 만들어 주어 시원한 지붕이 되어 주었다
소낙비가 내리면 나가 놀지 못하고 동생과
물에 들어가 입으로 포도따기 했던 추억이 있는 집
비가 오면 오히려 물 속이 따뜻하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며
돌담사이를 벌써 몇 바퀴나 돌고 있는지 모르겠다
당시엔 기계실에서, 지금은 수위실에 근무하고 계시다는
아저씨에게 이 근방에 변천사를 들어본다
딸 많은 핑크빛 담벽 집을 아시나요?
...차마 물어보지 못했다
첫 사진에 정문에서 바로 보이는 성당외에는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없는 주위에 낯설음이 왠지 꿈을 꾸고 있는 듯
잠시 멍하다
학교의 담과 우리 집 장독대가 붙어있어 체육시간만 되면
공이 넘어와 장독을 몇 번 깨트리곤 했는데..
수위아저씨께 허락을 받고 학교 안으로 들어갔다
조금 높은 위치에 서서 옛날을 스케치 해본다
바로 저 쯤일텐데...
교내는 조용했다
마침 수업중인가 보다
학생들의 교복도 바뀌었구나
참 단정하고 예쁜교복이었다
경호원을 따라 등교하던 당시 박근혜 씨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통령의 영애가 다니는 중,고등학교라 하여
큰 행길과 골목엔 아스팔트가 깨끗이 깔려 있었고
무척 조용한 동네였다
1902년에 완공을 본 '원효로 성당'
경사지에 지어졌기 때문에 앞에서는 일부가 3층으로
언덕위인 뒤에서는 1층으로 보인다
그래서 작은 건물이지만 외관이 당당하다
내부의 천장구성과 장식은 고딕양식에 가깝다
며칠간 한강이 얼을 정도의 매서운 한파가 몰아쳤다
나는 언니가 사 준 밍크털 모자를 오늘도 벗을 수가 없었다
혼자 서성대고 있는 모습을 보고, 지나던 수녀님께서
친절한 미소로 사진 몇 장 찍어주시고 가신다
건물의 내부는 제단과 예배석만 있는 단순한 교회형식이지만
뾰족아치로 된 창문이나 지붕위의 뾰족한 탑은 전체적으로
약식화된 고딕풍을 이루고 있다.
교내엔 육여사가 좋아하셨던 목련나무가 얼마나 많은지
봄이 되면 하얀 목련꽃으로 교내는 얼마나 성스러운 분위기였던가..
그냥 흥얼거려 본다.
목련꽃 그늘아래서.♬..
학교를 나와 다시 흔적을 찾아 나섰다
당시는 콘크리트 담이었었는데 지금은 건물의 빨간 벽돌과 어우러지게 새로 쌓았다
틀림없이 이쯤일텐데...
저렇게 성당이 보이고 긴 담을 끼고 있었는데..
빌라도 많아졌고 골목이 너무 좁으니 생소하다
아무리 어릴 적 기억이라도 집이 많지 않아 길이 얼마나 넓었던가
술을 즐기던 아버지는 큰 골목에 들어서면 딸들의 이름을
차례로 부르며 집으로 들어왔었는데
초 저녁 잠이많은 세째 딸인 나는 언제나 자는 척하기 바빴다
못찾겠다 꾀꼬리♪ ~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아쉬움을 남기며 다시 학교로 발길을 돌린다
아까 교내를 돌면서 봐두었던 카페에서 차를 마시려고 했는데
그만 깜빡하고 나와 버렸던 것이다
흔쾌히 재입장을 허락해 주신 수위아저씨가 고맙다
나 살던 고향에서 집은 찾지 못했지만 커피 한 잔이라도 마시고 떠나고 싶었다
이곳에 산다면 형제들과 함께 다시 찾아 오고 싶지만
한국을 떠나 산 지도 어언 30여 년이 다 되어가니
그리 쉽게 찾게되지는 않는다는 핑게가 앞선다
작은 칠판에 Hand drip coffee 라고 쓰여 있는 것이 느낌이 좋다
옆에 Dog food가 놓여있는 것을 보니 학교에서 犬도 키우나 보다
실내에 들어서자 커피향이 다운되었던 기분을 업시켜 준다
마침 로스팅을 하고 있는 중이란다
바리스타를 꿈꾸는 학생과 같은 참신한 처자였다
커피를 즐기는지라 물어보니
India monsorned Malabar AA 커피라 한다
갓볶은 빈을 로스팅 하여 바로 클레마에 쿨링을 시키고 있었다
성심여고 동문들이 운영한다는 카페
월 수 금 에만 문을 열고 3시 정도면 클로즈라 한다
운 좋게도 오늘은 금요일이다
원래 로스팅한 커피는 조금 숙성을 시켜야 하는데
오늘은 바로 드립을 해준다고 한다
어떤 맛인지 느껴보라 한다
자기만의 감각으로 끓인 물을 85도에 맞추더니
정성스레 내리기 시작한다
로스팅에서 내리기까지 15분 정도 걸렸다
의자에 앉아 향을 느끼며 맛을 상상하고 있는 그 시간이
얼마나 행복했는지 모른다
커피는 그라인더에 갈고 있을 때나
내리고 있을 때 기다림이 전혀 지루하지 않다
커피는 향을 즐기는 것이기에..
바리스타가 가장 행복한 순간도 그 시간이지 않을까?
한국에 커피문화를 일으킨 재일교포 박이추씨의
이야기를 그녀는 서슴없이 꺼낸다
알고있는 분이지만 그냥 조용히 들어 준다
나는 커피를 즐기고 커피를 이야기하는 사람을 아주 좋아 한다
보너스로 커피 맛있는 카페까지 알려 받았다
오늘의 인연은 특별하다
점심을 같이한 그녀 덕분이다
알맞은 온도에 적당히 짙은 인도 커피 맛
이 향은 여직껏 마셔 본 적이 없는 강한 여운을 준다
한 입 마시고 간격을 두어야 할 정도로 향은 입 속에서 오래 남아 있었다
마치 와인을 음미하듯 그 짙은 향은 혀의 연막을 타고 뇌리에 전달되었다
잔에 커피가 반쯤 남아있을 때 수녀님이 쿠키를 구었다고
갖고 오신다
블랙커피에 쿠키 한 조각은 환상에 궁합 아닌가?
아!~
뒷맛이 아련히 남아있는 커피향을 품고
카페를 나오니 눈이 내리다 녹았는지
바닥이 질퍽해져 있었다
어제보다는 날이 풀렸나보다
내일은 모놀 송년 답사날인데 다행이다
정문은 원래 그 자리이고
문만 대리석으로 다시 만들었다는데 나는 왜 집을 찾지 못했을까?
사람이 흘러간 추억이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것은
기억에 있고 그 감정의 마음이 없어서 깨끗하기 때문이다
어릴 때의 마음은 마음에 이런저런 마음이 없어 그 시절이
더 그리운 것처럼..
..
첫댓글 답사 전 날, 마셨던 인도커피 덕분에 한 잠도 못자고 떠났던 송년답사,,돌아와서 부터 왠지 몸살이 나서 답사후기도 못쓰고
있습니다. 늦은 밤 커피를 마셔도 잠은 잘 자는데 인도커피는 향도 짙고 카페인도 짙은 것 같습니다.ㅎㅎ
일전에 끄적거려 놓았던 기억 한 줌 얹어 놓습니다. 제가 좋아하는 음악 한 곡 들어보세요.
요시님,전 저무는 해를 먹었다가 그만 몸살이 났답니다. 얼른 쾌차하시고...사진도 글도 잘 읽고 갑니다. 추억을 함께 더듬다 갑니다. 담에는 일본에서 뵙게 되기를 기원하여 봅니다.
저의 일본생활이라야 주중 가족봉사 열심히 하고 주말엔 거의가 여행과 산행으로 이어집니다.
대장님이 언젠가 진행하신다고 했는데 그때 꼭 일본에서 뵈어요.
음악 쥑이네.. 전 오늘까지도 그녀와 한잔 때리고 들어와 답사 정리를 해야 하는데 이러고 있심더 ㅎㅎㅎ저도 옛 고등학교를 찾아 보고 싶네요
나처럼 서울띠기 인가요? 달새 님이 청춘을 보내셨다는 남산이 얼마나 달라졌는지 오시면 깜짝 놀래실겁니다.
곳곳에 길이 나고 끓어진 성곽도 재현되고, 6키로 산책길엔 냇물과 폭포가 흐르고 밤엔 라이트 업으로
훌륭한 서울 1번지로 변해가고 있습니다. 고등학교도 그 근처인가요?
옛 기억을 떠올리는 건 나이들어가는 증거라던데...
달새 님, 음악이 원할하지 않아 미안합니다. 플레이를 다시 눌러야 제대로 들을 수 있다는...ㅎㅎ
학교는 종로구 일번지 바로 옆이지요
좋아하는 음악이 멋지네요....
자세한 설명을 곁들인 사진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오랜만에 함께 한 답사~ 반가웠습니다...
변함없이 예쁘고 마음넓은 김사랑 님, 사진찍는 모습도 예뻐서 사진찍어놨는데 답사사진 언제 올릴지,
지금은 춘천에 와있어 시간내기가 힘드네요. 멋진사진 올려주세요.
요시님, 오랫만이예요. 저 기억하실지...잔잔한 수필 한편 읽은 느낌입니다. 커피향도 전해지구요.
구슬옥 님, 답사가자고 전화드렸더니 핸폰번호가 바꿨더군요. 많이 아쉬웠답니다.
저는 이 달에 가면 4월 첫 주에 다시 한국에서 봄 날을 즐기러 옵니다. 011 9072-6583 평생 안바뀌는 제 핸폰입니다.ㅎㅎ
오랜만 입니다요~행님... 그녀는 만나서 반갑고 즐거웠노라고 ~~~ 그 동네가 이런 곳이 있었군요,사진 멋집니다~~~
오우가야~ 그대 덕분에 좋은 하루였다오. 그냥 기억속에 있던 동네였는데 정말 뜻밖에 전화 한 통으로 그곳을 가게 될 줄이야..고맙소!~ 건강하고 내년 봄에 다시 만나세!~
잘보고 머물다 갑니다 감사합니다 ~~~~~~~~~~~~~~~~~~~~~~~~~~~
정말 처음으로 옛 생각에 젖어본 것 같습니다. 60년 대에 그 동네는 전차가 다녀 종점이 숭례문이었죠.
집 옆에 좋은 학교를 놔두고 나는 전차를 타고 시내로 학교를 다녔었는데...
우와~~ 부르조아로 자라셨구나..ㅎㅎ
무시기 부르조아..지나간 것은 어떠하던 간에 잘 되돌아보지 않는 성격인데..정말 생각치도 않게
오우가를 만나고 나니 바로 그 동네였고, 나 어릴 적 살던 집이 생각나더라구요.
예서만 만나다가 답사날 만난 님은 나에게 신선함이 한아름 안겨왔습니다. 저 매력은 어디서 오는걸까?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아름다운 추억이 동반된 삶이셨군요.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한잔의 커피와 쿠키 그리고 음악 . . . 학교 건물이 참 고풍스럽습니다.
멋지게 인생을 채색하며 사시는 요시님 송년답사에서 얼굴 뵈서 정말 좋았습니다.
새해에도 좋은 곳 많이 다니시고 멋진 산행기 올려주시길 기대하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