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벌레가
유럽 예술계를 붉게 물들이다!
작은 벌레가
유럽 예술계를 붉게 물들이다!
©Getty Images
남미의 작은 곤충이 유럽 미술사에 혁명을 일으켰다,
과연 어떻게 영향을 미쳤을까?그 답은
스페인 정복자들이 발견한 신비로운 붉은 염료에 있다.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수 세기 동안 사용된 이 색소는
유럽에 전해지며 카라바조, 페테르 파울 루벤스,
빈센트 반 고흐 같은 거장들의 팔레트를 물들였다.
르네상스에서 모더니즘까지 예술사를 뒤흔든
이 강렬하고도 눈부신 붉은 색소는 어떻게 유럽으로
전해졌으며, 또 어디에서 활용되었을까?
유럽을 붉게 물들인 작은 벌레의
놀라운 여정을 확인해 보자!
코치닐 곤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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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이 사진에서 선인장에 붙은 작은 물체가
마치 덩어리진 흰 얼룩처럼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이는 벼룩만큼 작은 기생충 무리다.
귀중한 염료 공급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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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곤충의 정체는 바로 코치닐 벌레.
남미 아열대 지역에서 북미 남서부까지
서식하는 이 벌레는 ‘코치닐’ 또는
‘카민’이라 불리는 천연 적색 염료의 원천이다.
카르민산 분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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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암컷 코치닐은 포식자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카르민산’이라는 붉은색 화학 물질을 분비하는데,
바로 이 성분이 염료로 활용된다.
참고로 ‘코치닐(cochineal)’이라는 이름은
라틴어 ‘coccinus’(진홍색)에서 유래했다.
수 세기에 걸쳐 축적된 지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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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남부의 메소아메리카인들은
무려 기원전 2000년경부터 이미
이 벌레의 특별한 특성을 알고 있었다.
고대의 다양한 사용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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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염료는 고대 문서나 벽화에서도 발견되었으며,
다양한 도자기 장식에도 활용되었다
직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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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실을 염색해 다채로운 태피스트리, 식탁보,
벽걸이 장식을 만드는 데 쓰이기도 하였다.
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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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군복과 의식용 의상을
제작하는 데도 중요한 요소로 자리 잡았다
색과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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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은 곤충에서 추출한 염료는
놀라울 정도로 강렬한 붉은빛을 띠었다.
붉은색은 메소아메리카 문화에서
피와 생명을 상징하는 중요한 색상이었으며,
동시에 중요한 교역품으로도 활용되었다.
에르난 코르테스와 정복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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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가치를 간파한 인물이 바로
1519년 11월 아즈텍 제국의 수도
테노치티틀란(현재의 멕시코시티)에 도착한
스페인 정복자 에르난 코르테스였다.
때 돈을 벌 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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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테스와 그의 부하들은
멕시코의 부를 즉각적으로 알아차렸다.
금과 은을 약탈하는 것이 그의 주된 목적이었지만,
그는 코치닐을 보고 또 다른 기회를 포착한다.
스페인 국왕에게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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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르테스는 스페인 국왕 카를 5세에게 보낸
여러 서한에서 테노치티틀란 시장에서
판매되는 형형색색의 면직물을 언급했다.
그러나 그중에서도 코치닐로 염색된
직물에 특히 매료되었다.
왕실 승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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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흥미를 느낀 카를 5세는 1523년,
이 신비로운 색소의 샘플을
마드리드 왕궁으로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이후, 이를 직접 확인한 국왕은 깊은 인상을 받았고,
코르테스에게 유럽으로 염료를 수출할 것을 요청했다.
멕시코산 코치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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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코치닐 곤충만이 귀한 진홍색
색소를 생산하는 능력을 가진
축복받은 벌레는 아니였다.
유럽의 특정 곤충에서 추출한
적색 염료가 사실 이미 존재했다.
폴란드산 코치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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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산 코치닐이 유럽에 소개되기 전까지,
폴란드 코치닐 벌레에서 채취한 염료
‘성 요한의 피’가 대표적이었다.
아르메니아산 붉은 염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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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아르메니아산 붉은색 염료도
오랜 세월 동안 자연 염료로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두 염료는 멕시코산 코치닐처럼
강렬한 발색력을 지니지 못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당대의 위대한 예술가들은
코치닐 염료가 지닌 가능성에 열광했다.
강제노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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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령 아메리카에서 코치닐 염료 제조업은
엄청난 수익을 창출하는 산업으로 성장했다.
그러나 이 노동집약적인 공정은 식민지 시대에
사실상 노예 노동을 통해 이루어졌다.
수익성 좋은 거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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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74년까지 스페인 식민지 개척자들은 매년
약 6만 8000kg의 코치닐을 스페인으로 수출했다.
코치닐과 관련 염료는 유럽 섬유 산업에서 엄청난
수요를 자아냈으며, 그로 인한 수익도 막대했다.
그러나 코치닐의 진정한 영향력은 17세기 초
유럽 회화의 팔레트에 도입되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
'아고스티노 팔라비치니 추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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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랑드르 바로크 화가 안토니 반 다이크는
1621년 작 추기경 아고스티노 팔라비치니의
초상화에서 멕시코산 코치닐을 활용해
강렬한 붉은 색의 인상적인 효과를 연출했다.
'학자 성 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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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슷한 시기, 1609년 에스파냐의 화가 엘 그레코가
그린 성 제롬의 초상에서도 코치닐 레드가
성인의 깊은 옷 주름을 강조하는 데 사용되었다.
'악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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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암 대비 기법(키아로스쿠로)의 대가였던 카라바조는
1595년 작품 '악가들(The Musicians)'에서 짙게 채색된
코치닐 염료를 사용해 인물의 로브를 강조했으며,
보다 은은하게 얼굴의 홍조를 표현하는 데도 활용했다.
'악마의 유혹을 받은 성녀 로사'
©Public Domain
멕시코에서 활동한 신(新) 스페인 화가 크리스토발 데 비얄판도는
1695년 작품 '악마의 유혹을 받은 성녀 로사'에서
코치닐 염료를 적극적으로 사용했다.
'성 토마스의 불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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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라바조는 1601년~1602년에 완성한 작품
'성 토마스의 불신'에서도 코치닐을
중요한 색채 요소로 활용하며
극적인 명암 대비를 만들어냈고,
이 작품은 그의 대표작 중 하나로 남았다.
'이사벨라 브란트의 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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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10년, 플랑드르의 대가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이사벨라 브란트의 초상에서 코치닐 염료로
벽면을 깊은 붉은빛으로 표현하는 한편,
성경책의 색감은 은은한 붉은 기운이 감도는
크림슨 색조로 묘사하는 등
다채로운 방식으로 활용했다.
'아를의 침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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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보다 훨씬 후에 폴 고갱, 오귀스트 르누아르,
빈센트 반 고흐의 작품에는 모두 코치닐의
붉은 색감이 디테일하게 사용된 흔적들이
발견되었는데, 예를 들어 반 고흐의
'아를의 침실'(1888)에서 붉은색 이 그 예이다.
오늘날의
코치닐 생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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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 시대가 끝난 뒤에도
멕시코, 페루, 아르헨티나를 비롯한
남미 여러 지역에서 코치닐 생산이
지속되었으며,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에서도 이 염료를 채취하고 있다.
재료 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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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닐 염료 약 450g를 생산하려면
약 2만 5000마리의 살아있는 곤충,
혹은 7만 마리의 건조된 벌레가 필요하다.
분쇄 및 건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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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치닐 벌레는 선인장에서 수집된 후
극심한 열에 노출된 뒤 분쇄된다.
생산 방식과 가열 온도에 따라
염료의 색조가 달라진다.
오늘날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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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에도 코치닐은 다양한 용도로 사용된다.
대표적으로 식품 착색제로 활용되며,
사탕이나 음료 등에서 '레드 E120'이라는
성분명으로 표기된다.
오늘날의 용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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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의약품, 화장품, 현미경 표본 염색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된다.
전통 염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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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여전히 전통적인 방식을
선호하는 장인들은
자연 염색과 수공예 직물 제작에
코치닐 염료를 사용하고 있다.
출처
(BBC) (World History Encyclopedia)
(Library of Congress) (IMBARE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