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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캉2 - 노르망디의 캉에서 옛 성에 올라 노르망디 박물관을 구경하다!
5월 27일 루앙 Rouen 에서 기차를 타고 노르망디의 캉 Caen 에 내려서 기차를
갈아 타고 12시 18분에 바이외 Bayeux 에 도착해서는 노트르담 대성당
Cathedrale Notre Dame 을 구경하고... 다시 정복왕 윌리엄 센터 Centre
Cuillaume le Conquerant 를 찾아 영국을 정복 한 윌리엄의 태피스트리 를 봅니다.
다시 바이외 기차역 으로 돌아와 14시 26분 기차를 타고 불과 24분 만인 14시 50분에
캉역 에서 내리는데, 역시나 이 역에도 코인 라카 Left Luggage, Consignas 가
없는지라... 배낭을 메고는 시내를 걸어 생 피에르 운하 Bassin St. Pierre 를
지나 6월 6일 대로 Ave. du 6 Juin 를 따라.... 생피에르 광장과 교회 를 구경합니다.
생 피에르 광장 Pl. St. Pierre 은 낭트나 트루아등 여러 도시에 똑같은 광장이 있고
생피에르 교회 Eglise St. Pierre 는 로마, 파리 몽마르트, 샤르트르, 몽펠리에
그리고 제네바에 같은 이름의 교회가 있는데.... 주로 베네딕트 수도원 에서 세운게
많으니 Pierre 는 Peter 가 그 어원으로 피터, 피에르, 페드로, 피에트로, 표트르 입니다.
그럼... 본명이 시몬 이었으나 예수가 베드로(바위) 라는 이름을 지어주었다는 베드로
Peter 를 말하니 형제 안드레와 마찬가지로 어부 였는데, 예수가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만드는 첫 기적을 일으킬 때 함께 있었고..... 또 결혼했다고 알려진
유일한 사도 인데 로마에 복음을 전하고 죽었으니.... 교회 이름 으로 삼았는가 봅니다.
그러고는 언덕을 올라가 영국 노르만 왕조 초대왕 에 오른 정복왕 The Conqueror
윌리엄 1세 가 1060년에 세운 성채인 공작 성 Chateau Ducal
에 들어가는데.... 이 성은 달리“정복왕 월리엄 성”이라고도 불린다고 합니다!
잉글랜드왕 이 된 노르망디공 윌리엄의 거성 이었으니.... 1346년과 1417년에 영국에 점령
되었으나 1450년 프랑스령 으로 되돌아왔고 프랑스혁명 때에는 온건파인 지롱드파의
거점 이 되었으며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노르망디 작전 영향으로 큰 피해 를 보았습니다.
먼저 왼쪽에 노르망디 박물관 Musee de Normandie 으로 가니 입장권은 반대편에 자리한
사무실에 가서 끊어오라고 하기에 다시 되돌아 오니, 여기 사무실이란게 아마도
캉 미술관 Musee des Beaux-Arts de Caen 이지 싶은데..... 무슨 교회 처럼 생겼습니다?
나중에 다시 보니 미술관은 그 뒤편에 따로 있고..... 저 교회 처럼 보인 건물은 실제로
Eglise saint Georges 라고 불리던 엣날 교회 였던 모양인데.... 지금은
인포메이션 센타 로 노르망디 박물관과 캉 미술관 티켓 을 판매하고 있었던 모얍입니다.
노르망디 박물관 입장권 만 구입해서는 다시 건너편 육중하게 생긴 건물로 들어가니 여긴
노르망디공국의 역사 뿐만 아니라 그 이전에 구석기 선사시대 의 유물 들이 먼저 보입니다.
그러고는 시대를 내려오면서 고대와 중세시대 유물 들이 전시 되어
있으니.... 그럼 여기 노르망디 지방의 역사 전시관 인가 합니다?
캉 은 노르망디주 칼바도스군의 주도 로 오른강을 끼고 있으며..... 북쪽 15km 지점의
영국 해협은 운하로 연결되기 때문에 항구 가 있고 무역이 성하다고 하는데...
고대에는 벨가이족과 켈트인 이 거주하였고 기원전 5~ 6세기 로마시대 에는
카이사르에 정복 되어 로마제국 르그두넨시스 (Lugdunensis) 주의 일부였다고 합니다.
3세기 프랑크 메로빙거 왕조 때 부터 루앙 등에 기독교가 전파 되었는데 9세기 프랑크
왕국의 쇠퇴기에 노르만인의 침입 이 시작되었으니... 데인족 롤로 는 노르만 바이킹
해적 들을 이끌고 수백척 배로 해안에 상륙해 루앙을 지나 프랑스 수도 파리를 공격 합니다.
견디기 어려워진 프랑크왕 샤를 은 911년에 노르만의 수장 롤로 에게 노르망디 지역 을
하사하고 공작(公爵) 작위를 주며 봉건적 주종 계약 을 맺는데... 노르망디 공국 이
성립한때 부터 센강 하류 지방은 '노르만족의 나라', 즉 노르망디 라는 이름으로 불립니다.
그 5대 후손인 노르망디공 윌리엄 은 1066년 5천의 기마병을 포함한 1만 5천의 병사
를 이끌고 바다를 건너가서는 헤이스팅스 전투 에서 웨식스의 헤롤드왕 을
격파해 승리를 하고는...... 윌리엄 1세 로 영국 노르만 왕조의 초대 왕 에 오릅니다.
그 정복왕 The Conqueror 윌리엄 1세 가 잉글랜드를 침략하기 불과 6년전인 1060년 에
세운 성이 여기 "공작성" 으로 다르게는 “정복왕 월리엄성” 이라고 불린다고도 합니다!
여기 노르만 바이킹 들이 영국과 프랑스 해안을 침략한 지도들을 보니 왜구 가
오랜기간 고려와 중국 명나라를 침략해 약탈하던 모습과 유사한데... 하나
더 나아간 것은 약탈에 그친게 아니라 땅을 점령해서 국가를 세웠다는 것입니다.
특히나 덴마크에 살던 노르만 바이킹을 데인족 이라고 불렀는데...
이들은 어찌나 집요 했던지 영국과 프랑스 는 오랜 세월
노략질 에 시달렸는데 바이킹의 배는 앞머리 가 특히나 인상적 입니다!
이후 중세 시대 에 노르망디 지방의 사람들이 살던 집이며 생활 도구와 농기구
에다가 옷이며 생활용품 그리고 범선 까지 전시되어 있는 것을 구경합니다.
윌리엄의 영국 정복 으로 노르망디는 잉글랜드령 이 되었는데 1204년 프랑스왕
필립 2세가 잉글랜드에서 탈환해 프랑스에 통합 시켰으나.....
노르망디 공국 은 독자적인 관습법과 최고 재판소, 그외 여러 특권을 유지합니다.
1360년 브레티니 조약으로 프랑스령 이 되었으나, 잉글랜드의 헨리 5세 가 1415년
노르망디를 재정복 하였으며 백년전쟁 중에 1419∼1450년 까지는 잉글랜드령
이었으나 1450년 프랑스령으로 편입된 이후 1460년대 부터 프랑스가 다스렸습니다.
16세기에 들어 구교도 가톨릭 과 신교도 위그노 간의 처절한 동족 상잔 인 종교전쟁
내란으로 인해 쇠퇴하였으나 17, 18세기에 동부에서 섬유 공업 이 성장하며
다시 번영하였고.... 19세기에는 산업 혁명이 진전 되었는데 제2차 세계대전
말기인 1944년 6월에 연합군의 대규모 상륙작전 이 행해진 곳으로 널리 알려집니다.
오늘 캉 의 고성을 구경하면서 우리 한국인 입양아 중에 프랑스 장관 이 된 두분이
있으니 한분은 이 도시 캉 출신인 플라세 씨 이고, 다른 분은 펠르랭 씨
인 데, 주 프랑스 공사 겸 파리 문화원장이 쓴 마르코 글방 에 보니....
“프랑스 개각과 희비쌍곡선의 한국계 입양인, 프랑스를 생각한다” 글이 떠오릅니다.
"이번주 단행된 프랑스 개각에서 퇴진하는 장관은 2012년 5월 프랑수아 올랑드 정부 출범
때 부터 승승장구해온 플뢰르 펠르랭 문화장관 인데... 출생 직후 서울의 길거리에
버려졌다가 생후 6개월때 프랑스 과학자의 가정에 입양된 그녀는 프랑스 고등고시
(ENA) 출신의 재원으로 영화 같은 스토리의 주인공 이니 남편도 ENA 출신 고급 관료이다."
"그녀는 프랑스 아시아계 첫 장관 으로 프랑스 사회에서의 성공신화를 꿈꾸는 아시아인
들의 우상 인데.... 이번에 국가개혁 장관 에 임명되어 입각한 장 뱅상 플라세
상원의원(녹색당) 도 일곱 살 때인 1975년 경기도 수원의 한 보육원 에서 프랑스
노르망디의 변호사 가정으로 입양된 한국 고아 출신으로 한국명은 권오복(權五福) 이다."
"플라세 신임 장관 은 노르망디에 위치한 캉 대학 에서 경제 및 은행법을 전공한후
금융 분야에서 일하다가...... 1993년 라로셸 지역의 미셸 크레포 의원의
비서관으로 처음 정계에 진출했다. 플라세는 프랑스 역사 에 조예가
깊고 특히 나폴레옹 에 대해 몇시간을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일가견이 있다고 한다."
"지난해 5월 펴낸 자서전 ’Pourquoi pas moi!‘(내가 안 될 이유가 없지!)
에서 “25살 때 나는 40살 이전에 국회의원 이 되는 꿈을
꾸었다. 이런 인생 계획을 화장실 벽에도 걸어 두었다” 고 밝힌다."
“정치 지도자 가 되려면 자기 자랑을 해야 한다. 나는 실제로 프랑스
의 장관을 할 수 있는 자질 이 있다고 생각한다.
허풍 이 아니다. 사람들이 인정하는 나의 협상 능력은 유용한 것이다”
"펠르랭 장관 은 중소기업· 디지털경제장관 시절 기업에서 호평 을 받으며 많은 업적을
쌓았다. 그러나 문화부장관 취임후 2014년 10월 방송 인터뷰에서 노벨문학상 을
받은 프랑스 소설가 Patrick Modiano 에 대한 질문을 받고는..... 보고서와 법안을
읽느라 시간이 없어 그의 작품을 읽은 것이 없다 고 실토해 논란을 불러일으킨 적이 있다"
"그녀는 어제 있었던 이임식에서 “개발도상국의 빈민가에서 발견된 한 아이 가 중산층
가정에 입양되어 문화 장관 이 된 나라는 세계에 별로 없을 것이다”라고
자신의 개인 역정을 소개해 참석자들을 감동 시켰다. 그녀는 이 이임사에서
마뉴엘 발스 총리에게 감사한다고 말하고 올랑드 대통령의 이름은 따로 언급하지 않았다"
"개각 인사야 프랑스 내정 문제지만 한국을‘나의 마음에 소중한 나라’(le pays cher
a mon coeur) 라고 말하며 한-프랑스 간의 가교 역할을 훌륭히 수행해온
펠르랭 장관 이 한불 수교 130주년 기념 "한불 상호교류의 해" 행사가 진행되고
있는 이때 이 행사의 주무 장관직을 사임한 것은 우리로서는 매우 안타까운 일 이다."
그런데 얼마전에 신문 기사를 보니..... 한국계 입양아 출신으로 프랑스 국가개혁장관
을 지낸 캉 출신 장 뱅상 플라세 (50· 한국이름 권오복) 전 녹색당 상원의원 이
만취해 여성에게 욕설 을 하고 경찰관을 모욕한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 을 받았네요?
"파리형사법원은 10일(현지시간) 플라세 전 장관 에게 인종차별 발언과 경찰관 모욕 등의
죄목으로 금고 3개월에 집행유예 를 선고하고 벌금 1천 유로 도 납부하라고 판결 했다."
"플라세 전 장관 은 지난 4월 5일 새벽 파리 시내의 한 디스코텍 에서 20세
여성에게 춤을 추자고 제안했다가 거절당하자 욕설을 하고
경비원과 경찰관에게도 인종 차별적 인 모욕 발언 을 한 사실이 인정 됐다."
"그는 디스코텍의 경비원 이 소란을 피우지 말고 나가라고 요구하자....
"여기는 마그레브(북아프리카) 가 아니다. 내가 누군지 아느냐.
너를 아프리카로 보내 버리겠다"고 말하고 출동한 경찰관 에게는
"ㅇㅇ 같은 놈들, 내가 누군지 모르지" 라며 욕설을 한 사실 이 인정됐다."
"플라세는 지난 7월 법정에 출석해 자신의 행동이 "매우 거만하고 미숙하고 부적절했다"
고 뉘우치면서도 "희롱이나 인종차별, 모욕발언을 하지 않았다" 고 주장했다.
특히 법정에서 그는 자신의 알코올 의존증 과 정치적 야심이 강한 기회주의자
라는 세간의 시선 등에 따른 심적 고충 등을 털어놓으며..... 선처를 호소 하기도 했다."
"녹색당 소속 상원의원 플라세 는 프랑수아 올랑드 대통령 재임 때에는 국가
개혁 및 간소화 담당 국가비서(장관급) 에 발탁돼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 취임 직전 까지 프랑스 경제의 디지털 전환과 규제 개혁 을 이끌었다."
"플라세 는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나 수원의 보육원에 맡겨졌다가 일곱 살 때인 1975년
프랑스로 입양된 뒤... 이 도시 캉에서 대학까지 다녔으며 상원의원과 장관 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 이다. 한국 이름은 '권오복' 으로, 장관 재직 때와 퇴임
후에도 한국을 여러 차례 방문하는 등 한-불 민간 교류의 전도사를 자임하며 활동해왔다"
"그의 자서전 '뿌르꾸아 빠 무아!' (Pourquoi pas moi) 가 국내에 번역 출간 되기도 했다. 파리의 한
재불 교포는 "플라세가 매우 폐쇄적이고 배타적인 프랑스 정계에서 아시아 입양아 출신에 대한
보이지 않는 차별 을 딛고 성장하며 많은 일을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 매우 안타깝다" 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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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ㅇ즐거운
여행되세요
노르망디..... 참 대단한게
바이킹 노르만족의 모헙심이란....
바이킹이야 왜구 같은 해적인데도?
즐감해요
고마운 말씀입니다.
늘 건강하시기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