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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죽어버릴 거야!!! 당신 아니면 나한테... 살아갈 이유가 전혀 없어! "
사방으로 널부러진 유리파편들 - 그 하나를 집어들더니 그대로 손목을 긋고 만다.
선붉은 핏방울이 솟구쳐 오른다.
아픔도 느끼지 못하는 듯, 희미하게 미소지으며 그 자리에 쓰러지는 그녀를 서준은 선뜻 다가가지 못한다.
충격에 휩싸여 붉게 충혈된 눈에 눈물이 고여있다.
" 아아아아악!!!!!!!!!! "
두 손으로 머릴 감싸쥐며 그대로 주저앉아 소리를 내지르는 서준이다.
" 젠장.... "
온 몸에 땀으로 뒤범벅이 된 서준은 거친 숨을 몰아내쉰다. 악몽이다.
늘 같은 장면에서 자신을 놓아주지 않은 빌어먹을 악몽.
아직도 그녀의 죽을 듯한 목소리가 귓전에서 맴도는 듯 했다. 차갑고 무거운 공기가 그를 에워싼다.
한 손으로 진정이 되지 않은 가슴을 꽉 움켜잡아 뜯다, 이내 어느샌가 자신의 옆에서 잠이 든 그녀를
원망섞인 눈빛으로 내려다 본다.
떨리는 손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잡아든다. 선명하게 각인된 그날의 선자국 - 그의 시야에
원망의 덫인냥 걸친다.
발단의 원인이 되어버린, 자신을 꼼짝할 수없게 만들어버린, 그녀의 곁에 있을 수 없게 만들어버린
선자국에 차갑게 식어버린 몸둥이가 부르르 떨려온다.
그녀의 손목을 놓고는 이내 두 손이 괴로움으로 일그러진 서준의 얼굴을 감싸고 만다.
그러다 갑작스레 올라오는 토악질을 견뎌내지 못하고 화장실로 급하게 뛰어가는 서준.
화장실 안에서 고스란히 들려오는 괴로움의 산물.
조용히 화장실쪽을 응시하던 주련은 자신의 손목을 무덤덤하게 쳐다본다.
죽음조차 두렵지 않았다. 후회도 없다. 집착이라 욕해도 상관없다.
그가 자신을 떠나려한다는, 그 하나만이 그녀가 죽어야 했던 이유였을 뿐이었다.
영원할 것만 같던 관계 속에 그 여자가 불청객으로 자신들의 사이에 불쑥 들어와 버렸었다.
용납될 수가 없던 그녀가 자신에게서 가장 소중한 그를 앗아가려 했다. 두려웠다.
그리고 결단을 내려야 했고, 그래서 위험한 선택을 결정했다.
죽음을 각오하고 강행했던 일, 결국 자신의 곁에 주저앉게 만들어버리는데 성공했다.
그 여자만 나타나지 않았다면, 그가 저렇게 괴로워할 필요도 없을텐데!
주련은 신경질적으로 엄지손가락의 손톱을 잘근잘근 씹어댔다. 2년이란 시간동안에 생겨난
버릇이었다. 그러면서 그녀의 결론은 언제나 똑같아진다.
결국 모든 원인은 그 여자때문이야!
화장실 문 여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내 주련은 조용히 두 눈을 감아버린다.
아무 것도 모르는 것처럼 - 아주 조용히, 숨소리조차 새어나가지 않게, 있을 뿐이다.
지쳐버린 서준은 곧장 주방으로 가 싱크대 창장에서 양주를 꺼내 뚜껑을 열고는 한모음 가득
마셔버린다.
목줄기를 타고 들어간 양주가 쓰라린 그의 속을 더욱 따끔거리게 만든다.
이내 한모음 더 들이키는 서준이다.
절망에 찬 거친 숨소리가 어둠 속에서 쉴새없이 울려 퍼진다.
*****
아파트로 돌아온 서진은 곧장 욕실로 간다. 욕조에 알맞은 온도의 물을 틀어놓고는 방으로 향한다.
분홍빛의 코트를 벗어 장속에 걸어 놓고, 그다음에 걸치던 블라우스와 치마를 벗자, 유난히 하얀 피부의
살결이 드러난다. 목욕가운을 걸친 서진은 블라우스와 치마를 세탁소에 맡기기 위해 거실로 가지고 나와,
소파 위에 놓는다. 그리고는 언제나 늘 그렇듯 오디오를 튼다. 글루미썬데이 ... 이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참 잘 어울리는 음악이라 생각하는 서진이었다. 물 넘치는 소리가 들리자, 볼륨을 좀더 올리고는 욕실로 향한다.
언제나 똑같은, 나른한 그녀의 일상적 패턴이다.
물을 잠그고, 가운을 벗고는 욕조 안으로 들어가는 서진. 물이 넘쳐 흐른다. 가느다란 몸을 감싸는 뜨거운
느낌에 만족스러운 듯 욕조끝에 기대어 두 눈을 지그시 감는다.
거실에서 들려오는 음악소리 ... 모든것이 안정되고 여유롭다고 생각하는 그녀.
이내 그녀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있을때면 레드와인을 와인잔에 따라와 건네주던 서준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만 두 눈을 떠버린다. 이내 상실감이 서린 미소가 입가에 그려진다.
옳지 않아 ... 이건 아니잖아 ... 이 시간만은 기억하고 싶지않아.
목욕을 마친 후, 목욕타월만을 몸에 두른 채 욕실 밖으로 나온다. 그리고는 주방 냉장고에서 차디찬 와인병을
꺼내들곤 창장에서 와인잔 하나를 꺼낸다. 샤또 오 바이 와인병을 들고는 잔에 조금 따른다.
그가 처음 사다준 와인이 이 샤또 오 바이였다. 그 후, 그녀의 단골 애호품이 되어버렸다.
와인잔을 들어 조금 흔들어 본후 풍부한 과일향을 맡고는 마시는 그녀다. 입안 가득 쌉싸름한 맛이 퍼져나간다.
남겨진 와인을 다 마셔버린 후에야, 침실로 들어간다.
속옷과 평상복을 입고는 침대 속으로 파고든다. 목욕후의 와인 한잔 덕분인지 몰라도 스르르 잠이 든 그녀다.
*****
" 나 다시 모델일 시작할까봐 ... "
카메라를 조심스럽게 챙기고 있는 서준의 옆 소파에 앉아 관심을 끌어보려는 듯 말을 걸어보는 주련이였지만,
서준에게선 아무런 대답도 들려오지 않았다. 주련은 그럴 줄 알았다는 듯 씁쓸한 표정을 지어보인다.
" 아니면 .. 나 여기로 이사올까... 당신을 위해 청소도 하고 요리도 ... "
" 한주련! "
그제서야 주련의 이름을 부르며 말을 자르며 서준이 주련을 조금은 화가난 듯한 표정으로 쳐다본다.
그런 서준의 표정을 보던 주련이 웃기 시작한다.
" 그렇게 뚱한 표정 지을 필요는 없잖아. 농담이었어. 당신 눈 앞에 있는 한주련 좀 봐달라고! "
" 하아... "
" 나 당신이 싫어하는 행동 안하는 거 알잖아. "
그녀의 말을 듣고서야, 자신도 모르게 순간 신경이 곤두섰다는 걸 알고야 만다. 젠장... 낮게 뱉어진 말 ...
서준은 거칠게 머리카락을 쓸어올린다.
주련에게는 그런 그가 익숙하지만 또한 쓰디쓴 서운함을 남기기도 한다. 그 여자한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문득 스친 생각에 머리를 가볍게 내젖는다. 다시 분위기 전환을 시도해보려는 듯 환하게 웃으며 아양을
떨어보는 주련이지만 서준에겐 그저 무의미한 행동에 불과했다.
무거운 카메라 가방을 어깨에 들쳐메고는 자리에서 일어나는 서준. 그런 그를 뒤따라 일어나는 주련,
현관까지 그를 배웅하려한다.
" 서준씨 오늘도 파이팅! "
그러면서 서준의 입술에 살짝 뽀뽀를 하려고 제스쳐를 취하려 할때, 서준이 고개를 돌려버린다.
단호한 거부의사 표시였다.
굳어져가는 주련의 얼굴을 보지 못한 채, 먼저 갈게- 또한 무미건조한 말투을 내뱉은 서준이었다.
문 손잡이를 돌리려는 찰나에 - 주련의 낮게 깔린 지극히도 담담한 목소리가 그의 귓가에 파고들어온다.
" 새벽에 술 마시지 마! 속만 버릴 뿐이야. "
" ...... "
" 그래봤자, 소용없어! 항상 난 당신곁에 머물테니까. "
뜻하지 않던 승아의 말에 잠시 멈춰, 그녀에게 시선이 옮겨지더니 이내, 현관문을 열고 나가버리는 서준이다.
그런 그를 보니 괜한 말을 했다며 금세 후회하고 만다.
" 청소라도 해주고 갈까나 .. 아자아자 한주련! "
애써 아무렇지 않으려는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어본다. 베란다 창문을 활짝 열어제친다.
순식간에 겨울바람이 그녀를 뚫고 들어온다. 그 바람에 깊게 심호흡을 하는 주련.
진공청소기가 집 구석구석 먼지들을 빨아댄다. 바닥 청소를 끝내고 깔끔한 걸레를 집어들고 서재
책상으로 향한다. 깔끔하게 정돈된 책상. 그녀의 두 눈이 뜻하지 않았던 물체에 반짝거린다.
서준이 미쳐 챙겨가지 못한 책상서랍 열쇠가 놓여 있었다. 떨리는 손으로 조그마한 열쇠를 집어든다.
비밀의 문을 향해 열쇠를 꽂는다. 철컥 - 유난히 크게 들리는 듯 하다. 서랍을 천천히 연다.
그녀의 눈 앞에 갈색빛의 다이어리가 보이고, 보랏빛의 사각봉투가 같이 보였다. 우선 다이어리를 꺼내들어,
그 안을 살피는 주련의 표정이 일순간에 굳어지고 만다.
서준이 직접 쓴 필체가 그 여자에 대한 절절한 그리움이 뭍어나는 일기식의 내용으로 가득했다. 손끝이
바들바들 떨려온다. 다이어리를 바닥에 내려놓고 봉투를 꺼내든다. 약간 두툼한 봉투.
봉투입구를 여니 한 수십장의 사진들이 보였다. 하나하나 사진을 넘기며 주련의 몸은 바르르르 떨려오기
시작한다. 숨 조차 제대로 쉴 수 없다.
그 여자와 너무도 행복해 하는 서준을 보니 믿을 수가 없었다. 자신에겐 단 한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또 다른 서준이 사진 속엔 가득히도 존재하고 있었다.
그 동안 수없이 참아왔던 눈물이 왈칵 쏟아지며 주련의 두 볼을 타고 하염없이 흐르고 있었다.
*****
늦은 오후가 되서야, 일을 끝낸 서준은 무작정 거리를 배회하고 있었다. 딱히 장소는 정해지지 않았다.
새벽에 있던 일을 알고 있는 주련을 생각하니 마음한켠이 무거워짐은 어쩔 수가 없었다.
미안함과 동시에 원망스러움이 그를 한없이 어지럽게 만든다. 어지러운 마음을 떨쳐내려는 듯 거리의
풍경을 담아내듯이 사진을 찍어대는 서준이다.
" 강서준! "
어디선가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목소리에 고개를 돌려 그 대상을 찾는다. 인심좋게 자신을 향해 웃고 있는
사람은 다름아닌 윤태형이었다.
그를 보고 반가우면서도 선뜻 표현하지 못하는 서준이다. 그 마음 이해한다는 듯 그저 서준을 보며 웃고 있을 뿐이다.
낯선 커피전문점에 들어온 서준과 태형. 그들 앞에 놓인 두잔의 커피가 덩그러니 놓여있다.
태형은 서준의 얼굴을 찬찬히 살펴본다. 많이 야위어진 얼굴과 그리 밝지 않은 표정의 서준을 바라보니
안쓰러운 마음이 든다.
" 임마, 가게에 왜 한번도 발걸음 안하냐? 그럼 내가 서운하잖아! "
투정부리 듯 장난끼 섞인 말투의 태형은 더 당혹해하는 서준의 얼굴을 보자, 그만 입을 다문다.
죄지은 사람마냥 고개를 숙인 채, 가만히 있던 서준의 입술이 달싹거리며 천천히 움직인다.
" 형... 내가 가면 ... 그녀가 ... 올 수가 없잖아... "
" 서준아.. "
" 그녀의 유일한 안식처를 나는 침범할, 어떤한 권리도 없어. "
차마 서진의 이름을 입밖으로 꺼내지 못하는 서준이었다. 그의 말을 듣자, 태형은 서준의 진심어린
마음을 알고는 못내 안타까웠다. 비록 서진으로 인해 만난 두 사람이지만, 형동생하며 서로를 아껴왔었다.
그래서 두 사람이 헤어졌을 때 그 누구보다 마음아파했던 사람이 태영이었다.
" 진이... 지금 한국에 있어. "
" 아... "
" 2년이란 시간 덕분인지 몰라도, 그녀석 조금은 웃어보인다. "
조심스럽게 서진의 소식을 전해주는 태형이었다. 그의 말에 서준의 얼굴이 점차 울먹임으로 변한다.
입술을 꽉 깨물며 애써 눈물을 참아 본다.
그녀가 같은 하늘아래 있다는 것만으로도 서준은 설레이면서도 참으로 서글픈 생각이 든다.
참아보려던 두 눈에서 이내 눈물이 쏟아져내린다.
그녀의 작은 소식 하나만으로도 그는 주체할 수가 없었다. 당장이라도 그녀에게 달려가고 싶었다.
그녀가 보고 싶다.
첫댓글 다음편이 넘 궁금하네요 서준이 그녀를 만나러 갈까요 가면 좋겠어요
처음이 참 슬프게 시작되네요. ㅠㅜ 즐거운 추석 되시고 재미난 담편도 기다릴게요 ^^
재밌다...